# 41
15장 - 상담사의 도전 (3)
“도대체가 말이야! 대체 어쩌자고 그런 거야!”
거친 목소리를 내며, 한효준은 성난 사자처럼 굴었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만인의 스승 같은 상담사의 탈을 썼을 때에도 상담의 윤리에 반하는 행위에는 준엄한 일갈을 날렸던 분이니.
도세나에게 건넨 내 약속은, 정말로 상담이 아니었다.
상담사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
부친에 얽힌 감정적인 연민으로 넘어가줬을 뿐, 원래는 김지연부터가 화를 내며 제지해야 했을 행동이었다.
상담사라는 존재가 그렇다.
어떤 내담자와도 감정적인 친밀관계를 형성해선 안 된다.
오직 상담자와 내담자로만 만나야 한다.
‘다중 관계’라고 하여, 상담사의 윤리강령에도 지양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요소.
때로 ‘건강한 역전이’라고 해서 상담사가 정서적인 참여자로 기능할 때가 있기는 했다.
단, 공감이나 직면을 위해 필수적일 경우에만.
내담자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심리상담의 근간이다.
그와 반대로 약해진 마음을 파고들어 상담자에게 의존하게 만들었으니, 상담이 아닌 최면이라고 욕해도 무방할 터였다.
“정말 생각하지 못한 게야? 만약에.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아주 만약에라도. 어떤 사건으로 자네의 명예가 실추되기라도 하면? 그 도세나라는 친구가 어떻게 될 것 같나? 신뢰를 단숨에 배신당하고 계속 살아갈 수가 있을 것 같아? 자네는 어제 베르테르가 된 거야! 내담자의 자기결정을 무시하고 그 마음을 온통 자네에게 집중시켜서, 삶의 추동을 오롯이 한 인간에게 몰입시켰다는 말이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묘사된 주인공의 자살은, 그 캐릭터에게 깊이 감정이입한 독자들을 모방적 자살로 이끌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도세나에게도 적용이 가능한 문제다.
그녀가 존경하는 ‘꼰마’라는 캐릭터가 사회적으로 사망하는 순간, 그녀 역시 삶의 의욕을 잃게 되리라.
내가 어떤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비슷하겠지.
그러니……
나는 스스로 도세나의 마지막 잎새가 된 셈이다.
O.헨리의 소설에서는 그림이었다.
그렇기에 주인공 존시는 담쟁이덩굴 잎사귀에서 유대감과 함께 플라시보 효과를 얻어, 마침내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림이 아닌 인간.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매달려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이제 내 어깨 위에 달린 것은 내 목숨만이 아니다.
산맥처럼 무거운 생명이 올라타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한 일입니다.”
“알고서! 그걸 알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자네는 신이 아니야!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할 수밖에 없고, 개인적인 관계든 상담이든 때때로 실망감을 줄 수밖에 없어. 그렇기에 우리가 스스로를 치료적 도구로 전환하는 거라고 말했지 않나. 우리가 인격으로서 내담자에게 개입하는 순간, 그 모든 상담들이 정서적으로 부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지키겠습니다. 평생 상담사로서 살고,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건강검진도 자주 받고요.”
“말이면 단 줄 아나! 이런 못된, 멍청한 위인을 봤나!”
그 꾸지람을 들으며, 나는 종종 웃었다.
‘진단’이 NBSC가 줄 수 있는 극한에 이르렀다.
한효준이 왜 저렇게 얼굴을 붉혀가며 외치는 것인지, 이제는 모를 수 없었다.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어떤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도세나가 잘못된 결론을 내렸을 때, 내가 그 책임소재를 소급해 자책할 것을.
그는 도세나보다도 박대민을 염려하고 있었다.
이런 스승을 만나다니, 난 정말 행운아지.
그런 생각 중에 종종 진갑수 대표를 떠올렸다.
그는 어땠을까.
한효준보다 훨씬 더 자주 호통을 쳤던 그 선배는, 내게 어떤 마음을 호소하기 위해서 그토록 얼굴을 붉혔던 걸까.
그에게 나는 무어라고 대답해줬어야 옳았을까.
“교수님. 각오하고 있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각오는 무슨 각오! 자네 따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야! 그 젊고 예쁜 내담자를 걱정하고 있음을 모르겠나?”
“아니신 거 압니다. 전 괜찮습니다. 진짜 상담사가 되자고 결심한 이후로, 제 어깨 위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족들. 예전 동료들. 그리고 시청자들. 꼭 도세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스스로가 영웅이 되고 싶었습니다.”
“영웅은 얼어죽을!”
“정말 해내겠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제가 마음의 지도를 들고 있다고요. 그 말씀 때문에 오만방자한 생각을 품은 건 아니지만, 정말로 할 수 있습니다. 평생 상담사로서 살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악플을 근절하겠습니다. 언어가 통하는 모든 이들로부터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유 없는 악플은 크게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분명 태클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이 됐는데도 잠이 덜 깬 거냐는 식으로.
그렇지만 한효준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침묵했다.
그는 심지어 고개를 흔들며 픽 웃기까지 했다.
“자넨 참…… 미친 자야. 그래서 좋아.”
“예?”
“마흔일곱 먹었고, 사회생활도 해볼 만큼 해본 사람이, 이렇게 사회초년생도 안 할 소리나 하고. 상담사의 윤리강령 따위는 좁은 우리라고 하면서 박차고 나가버리고. 그래. 그렇지. 이런 상담사도 하나쯤 필요한 거야. 무수한 상담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강령은 답답하겠지. 대붕이라면…….”
대붕이라는 어휘부터가 당혹스러웠다.
내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이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나?
“그렇지만 선은 지켜. 사회가 만든 선은 몰라도, 자네 스스로 결정한 선만큼은 반드시 지켜. 한 차례의 성공에 들뜨지 말고 언제나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내리란 말이야.”
“어…… 성공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왜? 아닌 것 같나?”
“도세나를 말씀하시는 게 맞지요?”
“그럼 누구 얘기겠어? 나도 봤어. 그 친구가 애초부터 자네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찾아왔다는 걸. 그 상담에서도 뭔가를 얻지 못했더라면 분명히 잘못된 선택을 했겠지.”
“……그건 너무 앞서가신 게 아닙니까?”
“나한텐 보여. 그러니까 토 달지 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였지만……
어쩌면, 하는 생각은 들었다.
‘진단’이 100에 이른 지금은 그게 가능할 것도 같다.
괴짜 석학 한효준 역시 그 수준에 이른 인물인 건 아닐까.
“그렇다면, 성공이라는 말씀은……?”
“좋아졌어. 확연히 좋아졌어. 표정을 봐도 스스로 말한 내용을 봐도, 의존보다는 인정욕으로 들뜬 상태야. 경애하는 상담사를 위해 이번 상담의 효과가 대단했다는 걸 보여주겠다, 그런 쪽으로 생각이 이른 것 같더군. 아니었나?”
“……방송 뒤에 신작에 대해 이야기하긴 했습니다.”
“그랬겠지. 좋은 반응이야. 예상치 못한 곳을 찌른 덕분에 부정적인 인지도식을 벗어나서 이타적 사고를 하게 됐을 거야. 일정 부분 자네 존재에 의지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자네를 증명해주려고 애쓰게 될 거야. 무조건 영웅이 될 필요는 없어. 상호의존적으로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가.”
……그 신작이 그런 의미였던가.
드높은 ‘진단’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감정을 이해하고도 내적 추동에 이르지 못했던 건, 한효준과 비할 바 못 되는 일천한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알겠습니다, 교수님.”
“문제는 그쪽이 아니야. 그런 말은 안 먹힐 거란 말이지.”
“예? 먹히다니요? 누구에게 말씀이십니까?”
“이용덕. 그 의사 나부랭이를 찾아가야 돼.”
내가 실수로 NBSC의 퀘스트를 언급했나 싶어 움찔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방향의 이야기였다.
“어제 올라온 트윗은 봤지? 오늘 아침에 또 올라왔어. 선인들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룬 윤리강령을 우회하는 인물이 득세하니 심리학계의 미래가 크게 염려된다…… 어쩌고.”
“미꾸라지 한 마리, 그런 식으로 표현했겠군요.”
“정확하군. 어떻게 알았나?”
“저와 사고방식이 비슷한 것 같아서요.”
“……툭하면 다 비슷하다고 하는군! 어처구니가 없어.”
그렇지만 사실인데.
이용덕과 나 사이에는 분명 유사점이 있다.
NBSC를 얻기 전까지는 나 역시 원칙주의자였으니.
그의 비판들을 이해하지 못할 건 없었다.
“그래서, 난 자네가 그 양반을 좀 만나봤으면 해.”
“예?”
“확인해보니 오늘 본원에서 우울증 공개 강연이 있더군. 거기에 가봐. 가서 인사하고, 잠깐 얘기를 나눠봐.”
바라던 바이긴 했다.
민원식의 요청도 있었기에 오늘 공개 강연이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청강 일정으로 참석이 곤란하던 상황.
한효준이 문제 삼지 않는다면 당장 가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왜 내게 이용덕과의 만남을 권하는 것일까?
“뭘 그렇게 보나? 가서 잘 얘기하고 풀어보라는 거야.”
“대체 왜……?”
“미래를 생각해야지! 이용덕 그 방송쟁이가 매스컴에만 발을 걸치고 있는 게 아냐. 서울대병원 본원 신경정신과 과장이잖아. 그러면 한국에선 이미 적수가 없는 권위야. 거기랑 처음부터 척을 지고서야, 어떻게 학계에서 커나갈 수 있겠나?”
정말 의외였다.
한효준 성격상 대번에 들이받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자신을 향한 공격이야 상담사로서 웃어넘기는 사람이지만, 심리학계 전반을 공격하는 경우엔 본성을 드러낸다고 했다.
심포지엄에서 싸움닭처럼 논쟁을 벌인 게 여러 번이라나.
지금도 얼굴을 보면 분을 삭이기 위한 조소를 띠고 있다.
그렇게 마음을 억누르는 이유는……
사이에 내가 끼어 있는 까닭일까.
“감사합니다, 교수님.”
“헛소리. 심리학계가 같이 욕을 먹으니까 지시하는 거야.”
“하하.”
“……웃기는. 얼른 가! 권 교수한테는 내가 말해둘 테니까.”
이용덕은 몰라도 한효준이라면 잘 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내 성장을 기대하는 것인지.
이제는 그 신뢰에 보답해야 할 때였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이용덕을 쓰러뜨리길 요구하는 NBSC.
미래를 위해 굽히고 넘어가자는 한효준.
그중 어느 쪽이 올바른 길일까?
후진 없이 전진하자고 결심했지만, 갈림길을 만나고 말았다.
다가올 선택의 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
서울대병원 본원은 현재의 서울대와 동떨어져 있다.
과거 정권의 복합적인 의도에 의해 주요 학과들이 관악구로 이전되며, 변두리로 옮기기 곤란한 의과대학만이 남았다.
그렇게 전통의 연건캠퍼스와 현재의 관악캠퍼스로 나뉜 것.
한효준과의 면담을 마치고 바로 차를 몰았지만, 10시로 예정된 연건캠퍼스 공개 강연 시간에 맞추기는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강당에 들어선 게 10시 15분쯤.
이미 인사와 서설이 지나가고 본론에 접어드는 단계였다.
열린 문을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강단의 이용덕 역시 내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우울증이라는 게 그렇지요? 여기도 한 줄에 환자가 서너 명은 있는 셈이야. 이게 우울증 강연이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우울감 경험자가 214만 명이래. 지금은 300만쯤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울증 진료를 받은 사람은 고작 80만쯤 돼요.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우울증이 감기라고 하는 사람들 있지요? 이건 소위 개소리다, 난 이렇게 말을 해요.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 낫는 바이러스 감염이야. 우리 면역력이 극복을 한다고. 하지만 우울증은 달라요. 치료 없이 시간 보내면 더 악화될 수도 있는, 그런 폐렴 같은 질환인 거야. 봐요. 감기도 걸리면 대부분 약을 먹죠? 그런데 더 심각한 우울증은 병원으로 눈길도 안 주잖아. 이게 말이 되냐는 거지, 내 말은. 흔한 질환이라는 걸 강조하겠답시고 감기 어쩌고 표현을 했겠지만, 그거 처음 말 꺼낸 사람 보면 내가 그냥 혼쭐을 내줄 겁니다. 보시면 제보해줘요.]
이용덕은 정말 말을 잘하는 위인이었다.
내용 면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논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그보다 화술 쪽에서 신기할 정도로 빨려들었다.
적절한 눈짓과 제스처, 그리고 호흡과 음량의 조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센스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그는,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교수인 동시에 신경정신과 과장으로서 의료계 전반에서 인정받는 의사이기도 하다.
학식과 언변을 겸비한 것.
정신건강의학계의 ‘사기캐’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성향.
말을 잘하는 이들이 대체로 소통을 즐긴다는 건 일반적인 사실이지만, 그는 좀 과한 경향이 있어 보였다.
구태여 생방송 도중에 SNS로 비난했다는 것만 봐도.
그럼에도 지금껏 논란에 휩싸인 적이 없다는 건, 능력이지.
차고 넘치는 학식과 원칙주의가 그를 보호하고 있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논파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한효준 말대로 지금은 숙이고 들어가는 게……
[어? 잠깐만. 내가 아는 얼굴도 한 명 보이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이용덕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강당을 채운 수많은 청강생들 역시.
[이게 누구야? 여기서 뵐 줄은 몰랐는데요? 웬일이실까?]
“……훌륭한 공개강연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반가운 일이네요.]
그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반갑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교한 가면일까?
그게 아니면……
[마침 잘됐군요. 아는 분들도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 저분이 인터넷방송을 하고 있는 상담심리학 대학원생이에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실 거야. 한효준 교수 랩에서 공부 중이래. 그리고 바로 어제, 우울증 환자 한 명을 상대로 심리상담을 진행하신 분이고. 그런 의미에서 잠깐 강단으로 불러도 좋을까요? 괜찮겠지요?]
괜찮겠냐고 묻는 질문은 날 향한 것이 아니었다.
청강생들이 들떠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그는 또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증폭되는 관심에 잔뜩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정말 참된 관종이었다.
강단에 올라서며, 곁눈질로 청강생들을 살폈다.
주로 여성들이 많고 남성들은 학부생 정도가 몇 보였다.
날 아는 사람들인지 들뜬 얼굴들도 제법 있었다.
아직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지만.
그리고 나는……
수백의 관객 앞에서, 마침내 이용덕 앞에 섰다.
“반가워요. 거기 마이크 들고. 옳지. 자기소개 해주실까요?”
“……반갑습니다. 박대민이라고 합니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고, 인터넷방송에서 고민상담을 진행 중입니다.”
“고민상담이라고 겸양할 게 뭐 있겠어요? 어제 보니 배운 것들을 응용하셔서 심리상담을 하고 계시던데. 하하. 인상적이었어요. 한 교수님께 참 많은 것들을 배우신 모양이에요. 나로서는 처음 보는 치료까지 하셔서, 내가 배울 점이 있을 것 같던데요? 환자를 대하시는 태도가 참 감명 깊었어요.”
기만이다.
가까이 선 까닭에 그 감정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칭찬에 들떠서 떠벌리기 시작하면, 그때 의사로서 문제점을 짚어내 ‘야매’ 상담의 한계를 비판하려는 의도겠지.
그럼으로써 면전에서 나를 찍어누를 셈인 것이다.
거기까지 인지한 뒤에,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효준이 권한 대로 그를 높이며 웃어줘야 할까?
“하하. 수백 명 앞에 서보시는 건 처음이시겠구나? 인터넷에서는 얼굴이 안 보이잖아. 그렇죠? 아무래도 긴장되고 떨리고, 그럴 수 있지. 우울증 환자들이 대중을 마주할 때는 그게 몇 배로 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어제 이…… 대민 씨? 대민 씨 방송에 출연했던 환자는 웹툰을 그리는 분이라고 해요. 그러면, 여러분이 아마 나보다도 더 잘 아시겠지만, 이 댓글이라는 게 올라오거든? 거기서 얼굴 없는 악플들도 보게 돼요. 이게 처음에는 그저 분노하지만 점점 몰입하게 되거든. 나중엔 일상의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오직 댓글만 보이는 부정 편향 상태가 되는 거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병이에요. 약은 약사에게 환자는 의사에게, 아시죠?”
내가 잔뜩 긴장했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시작한다.
한때 전 국민이 되뇌었던 캐치프레이즈를 변형해서.
나로서는 그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어? 뭐라고요?”
“진료는 의사에게. 환자라고 해서 반드시 의사만 만나야 한다는 법은 없지요? 약을 사는 것 역시 환자입니다.”
“하하하. 꼬집으시긴. 알아듣기 쉽게 말했을 뿐이에요. 진료나 환자나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자 자, 돌아가서. 어제 상담하셨던 환자 얘기를 잠깐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한효준은 말했다.
내 미래를 위해 권위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그 스스로는 오직 압도적인 논문만으로 학계를 휘어잡고 있는 인물이면서, 내게는 좋게좋게 가는 길을 권했다.
그만큼 날 아끼고 염려하는 까닭에.
그런 한효준의 마음을 무시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하지만 나는, 그건 좀 곤란할 것 같다.
날 믿고 의지하는 이들의 마음을 무시할 수 없기에.
여기서 내가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내 캐릭터를 그리며 웃던 도세나의 행복을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기에.
“상담이란. 우리 상담사란. 우리 앞에 앉은 누군가를 정상인이니 환자니 하며 구분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환자가 아닙니다. 언급하시려거든 내담자라고 해주시지요.”
“아니…… 하하. 의사한테는 환자예요, 이 사람아.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사람이니 환자라고 불러야 이해가 되지.”
“말씀하신 대로라면, 의사면허가 정지된 의사도 의사입니까? 진료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환자가 아닙니다, 교수님.”
순간, 이용덕의 눈에서 불길이 이는 듯했다.
당장이라도 노호성이 터질 것 같은 눈빛.
그렇지만 낯빛만큼은 늘 그랬던 것처럼 밝았다.
그 동공을 빤히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거대한 적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 무모한 도전에 몹시 두렵고 흥분될 줄 알았는데……
어쩐지, 마음은 더없이 편안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