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39화 (39/200)

# 39

15장 - 상담사의 도전 (1)

그 순간에, 나는 세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첫째로는 전자녀 소리에 대해서.

기존의 채팅 상담 때에야 언제 후원을 하든 개인의 자유이니 제재를 하지 않았지만, 이번 방송을 진행하면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주의해달라 요청했다.

전자녀 소리로 인해 상담 과정이 방해를 받으면 안 된다고.

가능한 회기가 다 끝난 이후에 후원해달라고.

돈 벌 기회를 마다하는 셈이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더라.

애청자들은 하여튼 후원하기 까다롭다며 칭얼댔고.

이후 본방송 입장을 제한했으니 그 약속을 모르는 시청자들은 여기 없을 텐데, 대체 왜 끊임없는 후원이 나온 걸까?

[효준한님 별사탕 100개. 기결정의 원칙은 어디다 버리고 그따위 소리를 하는 겐가. 제정신인 게 맞나. 도대체 자-]

[효준한님 별사탕 100개. 네라는 사람은 왜 그러나. 상담사로서 할 수 있는 일과 결코 해서는 안 될 일 사이에-]

[효준한님 별사탕 100개. 구분을 둘 줄을 모르는 건가? 방송에서 인기 좀 끄니까 무슨 신이라도 된 줄 아는 게-]

……한 명이었군.

전자녀가 읽어주는 채팅 내용에 글자 수 제한이 있어서, 반복해서 100개씩 후원해온 듯했다.

별사탕 한 개씩만 해도 될 걸 100개씩 하는 이유는, 교수 체면에 소액 후원은 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 같았고.

어쨌든 중요치 않은 얘기인지라 전자녀를 꺼뒀다.

둘째로는 NBSC 시스템의 희한한 메시지에 대해서.

‘아시죠?’라는 질문에 담긴 은근한 뉘앙스 때문에 당장이라도 메시지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래서야 시청자들의 채팅마저 무시하고 내담자만 바라본 원칙이 무너지는 일.

애써 신경을 끄고 도세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도세나가, 내 세 번째 의문이었다.

웃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비웃을 거라고.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거냐며, 이런 게 상담이라면 괜히 받겠다고 한 것 같다며 투덜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반응에 대비해 이런저런 설명들을 준비했었다.

그랬는데 나온 게 폭소였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안다면서도, 내가 참 좋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71의 ‘진단’으로도 이해할 재간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아…… 신나게 웃었다. 상담, 원래 이렇게 하는 거 아니죠?”

“……예. 상담이 아니라 그저 제 개인적인 약속이었어요.”

“그렇구나. 아니 저, 임상심리사? 그분이랑도 상담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면서 병원 밖에도 상담 센터 있던데 그런 데도 가볼까요 물어봤는데, 거기 가봤자 시간낭비라면서 자기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그랬어요. 의사 선생님도 외부랑 병행하면 오히려 꼬일 수 있다고 하셨고요.”

불쾌하긴 하지만 일면 이해도 되는 이야기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전문가와 상담심리사 사이엔, 내담자에 대한 공감대로도 극복이 안 되는 거리감이 있으니.

의사들은 그들만이 유일한 치료행위자라고 믿는다.

임상심리사는 그들이야말로 심리평가와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집단이라고 믿는다.

상담심리사의 경우, 병원의 진료와 약물치료와 심리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내담자가 스스로 치유되기 위해서는 사람 대 사람으로 진행하는 심리상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나마 정신과와 임상심리는 공생관계를 이룬다.

오더라는 수직적 관계 속의 불편한 동행이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병원이라는 하나의 체계에 소속되어 있으니.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심리상담을 괄시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도세나가 만난 의사와 임상심리사가 그쪽 부류였던 모양.

“그래서 임상 선생님이 자기가 상담사들이 하는 거 직접 보여주겠다고 그랬어요. 밥 한 끼 같이 하면서 체험해보라고.”

“뭐라고요……!”

김지연이 드물게 눈을 부릅떴다.

그 이유에는 나도 공감했다.

직종간의 매너를 떠나 윤리적으로 해선 안 되는 일인 까닭.

“그분, 남자였죠?”

“네? 아, 네.”

“으…… 뻔하네. 수작부린 거예요.”

“네? 에이, 설마…….”

“그런 거예요. 자기 입으로 상담센터 갈 필요 없다고 해놓고, 직접 보여주겠다고? 말이 돼요? 흑심이에요. 사심이야.”

“잠시만요. 세이 선생님? 너무 흥분하셨어요.”

“아…… 네. 죄송해요. 계속 말씀해주세요.”

김지연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려 채팅창을 바라봤다.

제대로 글을 읽기가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데, 종종 효준한의 이름이 보이기도 했다.

전자녀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마음이 몹시 상한 듯했다.

내일 잘 풀어드려야지.

“그래서 몇 번 저녁 약속 잡아서 그 사람한테 상담을 받았는데, 진짜 하나도 도움이 안 됐어요. 제가 말할 땐 생글생글 쳐다봐서 불편하고, 자꾸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저렇게 해보라고 자기 생각 강요하고, 제 마음은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당연하다 싶었죠. 비슷한 경험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제 마음을 알겠어요?”

“사실 그건, 심리상담이 아니에요.”

김지연이 다시 목소리를 냈다.

방금 전보다는 훨씬 더 차분해진 모습이어서, 나도 말리지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들어보니까 이젠 확실해지네요. 그 임상심리전문가는 상담심리사 자격증은커녕 수련 경험도 없을 거예요. 슈퍼바이저 밑에서 수련해본 사람이면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요. 심리상담은 더 많이 아는 사람이 해결책을 가르쳐주는 충고 따위가 아녜요. 함께 알아가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내담자를 환자가 아닌 의뢰인, 클라이언트라고 부르는 거예요.”

“음, 그렇구나. 진짜 흑심이었나?”

나도 흑심이었을 거라는 의심은 들지만……

없는 사람 욕하는 자리가 되는 것은 좋지 않다.

때로 부정적인 관계에조차 공감해줘야 하는 것이 상담사의 자세이되, 중립적인 관점을 부정적으로 바꿀 이유는 없으니.

“좋은 의도였을 수도 있겠지요. 다만 내담자와 사적인 약속을 잡고 자기 범주를 넘어서는 치료를 하려 들었으니, 그건 학회 제명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겠지요?”

「효준한 : 아까부터 그렇다고 몇 번 말했잖나!!! 그 인간 이름 알아놔. 내가 바로 임상학회장이랑 통화할 테니까!」

「효준좌 극대노 ㅋㅋㅋㅋㅋ」

「혼내주세요 효준좌!!!」

「흑심이 흑당밀크티급이다 이건 조져야됨」

……저분이 현 임상심리학회장의 전임자셨지.

도세나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닌 이상, 그 임상심리사는 이제 업계에서 완전히 퇴출될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이야기를 다시 내면으로 끌어왔다.

“도세나님께는 좋지 않은 경험이었겠군요. 이후로는 그 임상심리사와의 상담에도 부담을 느끼게 되셨을 것 같습니다.”

“아, 맞아요. 병원 끊은 게 그런 이유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은 이해해주지도 못하고 매뉴얼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들인데, 믿고 의지해도 되나 싶었어요.”

“대신 사과드립니다. 모든 임상심리전문가가 그러는 건 절대 아닙니다. 상담심리사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 여행을 다니면서 스스로 치유하려 하셨군요.”

“네. 그 선생님이 그런 얘길 했거든요.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극복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는 거라고. 제가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거라고요. 심리평가 해봤더니 이런 게 낮게 나왔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린 거다…….”

“이런 개새끼가.”

고개를 숙인 김지연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내게만 들렸다.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던 건데, 참 격정적인 상담사다.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마음을 상담사의 탈과 잘 융합시킨다면 열망 가득한 따듯한 상담사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런 점에서 한효준 교수가 그녀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내담자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건 금기.

방금 전까지 격정적으로 외쳤던 내가 할 생각은 아니지만, 지금은 김지연을 대신해 중심을 잡아줘야 할 것 같다.

“음. 그랬군요.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그래서, 우울증 앓아본 적 있냐고 물어봤어요.”

“아…….”

“자기는 그런 적 없대요. 그래서 전문가인 거래요.”

“네…….”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됐어요. 알지도 못하면서. 책에서만 봤을 뿐이면서. 왜 제 마음을 이런 거다 아닌 거다 판단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 게 심리상담이라면 받아봤자 아무 의미가 없겠구나 했어요.”

“이해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악플 같은 거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요. 엄마아빠는 아예 인터넷을 보지 말라고 그랬어요. 난…… 내가 그렇게 약한 사람이면, 왜 살아야 되는 건가 싶었어요.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일인데. 저도 알아요. 웹툰 그리려면 평생 거기서 못 벗어난다는 거. 어떻게 안 봐요? 혹시라도 응원해주는 얘기 있을까봐 완결된 웹툰 댓글까지 싹싹 다 읽어보는데. 맨날 포털에 내 이름 검색해보는데. 이게 난데, 이게 잘못됐다잖아요. 내가 틀린 거라잖아요. 세상은 다 그대로니까, 나보고 약 먹고 신경 끄고 살라잖아요.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건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자살은 일시적인 충동이고, 케어가 필요한 문제행동이라고.

심리학계에서도 좌절, 호소, 현실도피, 자기파괴적 본능 따위의 다양한 감정을 중점으로 두고 연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모든 분석들을 회의한다.

자살은 과연 감정적인 행동일까.

상담사를 꿈꾸기 전부터 그랬다.

아마도 김 이병 사건 이후부터, 나는 자살이 결코 격정적이고 감성적인 무언가가 아니라고 믿어왔다.

죽어 있던 김 이병이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자살은 이성적인 판단의 결과라고.

그것이 옳은 직관인지 헛된 망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명확한 건, 자살을 결행하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이 오랜 시간 내적인 싸움을 벌인다는 것.

엘리베이터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는 중학생을 떠올려본다.

그게 생의 마지막 순간으로부터 7시간 전이었다고 한다.

그의 모든 고통과 고민과 결정이 그저 비이성적인 문제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아픔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도세나 역시 그렇게 보였다.

주변의 모든 이야기로부터 그녀는 무엇을 생각해왔을까.

단지 충동이나 감정 같은 게 문제가 아니다.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강력한 부정적 인지도식(사고방식의 색안경)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의도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다들 그녀가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세상을 바꾸긴 불가능하니 행동을 바꾸라고 조언해줬겠지.

그러나 의도는 결과를 담보하지 못한다.

그건, CBT(인지행동치료)의 반대쪽 극단에 있는 공허였다.

“도망쳐야 벗어날 수 있다면, 왜 살아야 돼요? 약으로 잠들고 보고 싶은 댓글도 못 보고 살면, 웹툰 작가로서의 삶은 뭐가 되는 거예요? 그냥 돈 벌어서 먹고 싸려고 로봇처럼 그림만 그려야 된다고? 그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나쁜 선택을 했는데…… 그때마다 구조돼서 엉엉 우는 엄마아빠 얼굴 보는데, 그게 또 미치겠는 거예요. 아예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왜 태어나서 이렇게 다 힘들게 하나…….”

한순간의 충동 따위로 나온 결론이 아니다.

그러니 1년이 넘도록 내원하면서도 차도가 없었겠지.

그녀는 사회 속의 자신을 이성으로써 부정하고 있었다.

‘인싸부심’이라는 인싸들의 최애 만화를 그리면서, 그녀 스스로는 가시덤불 속에서 홀로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톱을 쥐어주고 싶었다.

변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공고한 가시들을 톱으로 잘라내어, 그 덤불이 이불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도세나에게 내 그 말도 안 되는 호언장담은……

“그랬는데, 나 진짜 상상도 못했잖아. 이런 얘기 해주실 줄 몰랐어요. 내가 아니라 세상을 바꿔주겠다는 그런 소리…… 태어나서 처음 들어봐요. 예수님 만난 줄! 아하핫!”

“놀리지 마세요. 난 진심이에요.”

“네? 놀리는 거 아닌데요? 진심이신 거 아는데!”

……진대수가 맞은편에서 손으로 TT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이번에도 나는 사토라레였던 걸까.

대수가 완성할 하이라이트가 두려워졌다.

“티가 많이 났어요?”

“네. 그게 너무 웃겼어요. 진짜로, 놀리는 거 아니고 진짜로. 아니 그런 말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진짜로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애기들도 아니고! 신도 못 하는 일이잖아요!”

흥분했는지 도세나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혹시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발전한 것은 아닐까 염려했지만, 김지연이 걱정 없다는 듯 웃고 있다.

덕분에 조금 안심하고 대꾸할 수 있었다.

“정말 해낼 겁니다. 죽기 전에는요.”

“봐! 이거 봐! 세이 선생님, 이거 진심이신 거죠? 그쵸?”

“하하. 아시잖아요, 원래 이런 분인 거.”

“미쳐, 진짜. 왜 그래요? 왜 그렇게 얘기하신 건데요?”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하고 싶어서요.”

“그렇구나. 울컥해서 저 위로해주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진짜로 하실 수 있어서 하신 말씀이구나. 우와 짱 짱.”

“영혼 좀 담아줘요. 오해하지도 말고요.”

도세나는 갑자기 마우스를 쥐고 전자녀 옵션을 건드렸다.

그러더니 자기 핸드폰을 꺼내들고는……

[dosena님 별사탕 10000개. 꼰마님 고마워요. 안 된다는 거 알지만 믿어볼게요. 그러는 동안은 행복할 거야.]

「엌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코앞에서 입금해버리네」

“……아니, 액수 너무 크다고 몇 번 말합니까. 그리고 옆에 있는 상황인데 직접 얘기를 하시지, 왜 후원을 해요?”

“쑥스러워서요.”

전혀 쑥스러워하는 표정이 아닌데.

아마 의도적으로 신호를 보낸 게 아닐까 싶다.

이제 상담 다 끝났으니, 마음껏 후원들 하시라는.

그래서 BJ꼰마의 말도 안 되는 야망에 힘을 실어주시라는.

이후 줄을 잇듯 별사탕이 쏟아졌다.

그만큼 도세나의 표정 변화가 극적이었던 거겠지.

중등도의 우울증 환자가 이토록 해맑게 웃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들의 공감대일 것이다.

어쩌면 비슷한 우울감을 겪어본 이들에게 카타르시스가 됐을 수도 있겠고.

나란 인물의 호언장담에는 어떤 효력도 없다.

고작 1만을 조금 넘는 시청자들만이 내 영향권이며, 그들조차 방송은 재미로만 보고 어딘가에서 악플을 달지도 모른다.

그러니 문제의 근원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도세나 스스로 말했다.

적어도 내가 방송을 하는 기간 동안에는 힘을 내보겠다고.

안 될 걸 알지만 믿어보겠다고.

그 말 자체가 가시덤불을 걷어내는 전기톱이었다고…….

우선은 그 정도면 됐다.

나는 이후로 결코 방송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도세나에게 공수표의 금액을 지불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침내 NBSC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연해졌다.

「 < No Back Silver Challenge >

NBSC는 당신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아시죠?

‘상담사’로서 숨겨진 에픽퀘스트를 찾아낸 당신!

이제부터 NBSC와 함께 최고의 ‘상담사’가 되어볼까요?

히든퀘스트 “목숨을 걸어 이룰 사명을 찾아봐요” 완료!

보유하신 가장 낮은 능력을 100까지 올려드릴게요.

준비되셨나요? (2:19 후 자동으로 수행됩니다) 」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에픽퀘스트(epic quest)에 해당하는 목표를 찾아냈기에, 능력치 하나를 100으로 고정해주겠다고?

지금 능력치로도 거듭해서 신기록을 세워온 BJ인 내게?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주어져야 마땅했다.

능력치를 높여본들 내가 한심하면 별무소용이니.

박대민의 한심한 사고방식을 보조하기 위해서 어떤 능력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명확했다.

물론 지금 가장 낮은 능력치는 ‘외모’지만……

이제껏 exp를 아껴온 게 참 다행이다.

레벨업을 통해 ‘외모’를 72로, ‘화술’을 73으로 만들었다.

「 71이었던 진단이 100이 되었어요! 축하드려요!

에픽퀘스트 1 “이용덕을 쓰러뜨려봐요” 발생!

NBSC는 ‘상담사’님의 끝없는 도전을 응원합니다. 」

……끝없는 도전을 응원해주는 건 참 고마운데.

이용덕은 갑자기 왜 쓰러뜨려야 하는 걸까.

정말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인터페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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