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38화 (38/200)

# 38

14장 - 상담사의 인간관 (3)

웹툰 작가라고 하면 근자에 연예인들과 비등할 정도로 주목을 받는 직종이다.

스마트폰 세대의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TV에 게스트로 출연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패널로 고정된 인물도 여럿 생겼다.

개중 트위치에서 레전드급 인방러로 거듭난 친구도 있고.

그리고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유명세를 탄 이들이 있다고 한다.

도세나- 아니, 도나쓰 작가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아…… 민망하다. 알아보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SNS 괜히 했던 것 같아.”

“예. 그래도 저는 몰랐습니다.”

“하핫. 저, 세이 선생님은요?”

“저 그 웹툰 재밌게 봤는데…… 작가님 얼굴은 몰랐어요.”

“네. 사진 올렸다가 너무 많이 퍼져서, 바로 닫았거든요.”

“그랬구나. 잘하셨어요. 재밌는 웹툰 정말 잘 봤어요.”

“아…… 감사합니다. 혹시 꼰마님도 보셨어요?”

“죄송합니다. 짤은 몇 개 본 것 같은데, 제가 웹툰을 챙겨볼 정도로 여유 있게 살지를 못해서요.”

“아…… 그렇구나…….”

웹툰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고는 해도, 사실 아저씨들에게는 좀 먼 얘기였다.

가장 최근에 본 만화가 신불남 이런 것일 테니까.

오랜 세월을 격해서 다시 접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거기에 나는 회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던 워커홀릭.

아무리 유명한 웹툰이라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 와중에 ‘짤방’이나마 몇 개 봤던 건, 그만큼 웹툰 ‘인싸부심’이 대단한 인지도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고.

‘아싸’가 심도는 다르지만 거의 전 세대에서 통용되는 것처럼, ‘인싸’ 역시 2010년대를 관통한 커다란 관념이다.

요즘 유행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렇기에 교우관계가 남들보다 탁월한 사람.

그런 존재의 허와 실을 그려낸 ‘인싸부심’은, 유려한 그림체와 흥미로운 전개보다도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유명했다.

그만큼 벌이도 좋았을 것이다.

작품을 쉬고 있는 지금도 인방 큰손으로서 6만 개 이상의 별사탕을 후원할 수 있을 정도로.

“자, 지금 채팅창에 도세나님이 최근에 열혈 회장으로 올라서지 않았느냐, 그래서 우선권이 주어진 것은 아니냐, 이런 의혹들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전권을 쥐고 있던 제 장자방, 디렉터 찐데스 씨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청문회 들어간다잉」

「찐데스 어디서 들어봤는데??」

「엥??? 은진방 찐데스님???」

「은진알통 : 오오.. 찐이시여..!!」

“자, 찐데스 씨? 한말씀 해주시죠.”

“……엥? 저 진짜 말해요?”

“예.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지금 그림이 제 양쪽에 미녀 두 분이 계신데, 그런 그림이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사모님때문인가」

「절 대 유 부 해」

「은진알통 : 찐이시여 옥음을 들려주소서 ㅠㅠ」

“흐흐. 예, 저 찐데스라고 하는데요. 이거 완전히 블라인드로 뽑은 겁니다. 사연도 안 봤어요. 다음 주 게스트 보시면 아실 겁니다. 어디까지나 우연히 회장님이 당첨되신 거예요.”

“그렇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때 다시 청문회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을까요?”

「찐문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찐데스님 얼굴 궁금해여」

「미남임?」

“그건…… 세이 선생님?”

“아, 예. 별로…….”

「별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찐별로데스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1부를 시작했다.

세 명이서 함께 고민을 들어주는 컨텐츠.

그 덕분인지 그간 보지 못했던 관점의 고민들이 올라왔다.

“다음 사연입니다. 양수리퀸님. 얼마 전에 어장관리녀 소리를 듣고 울컥했어요. 절대로 그런 게 아니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남자애들이 많았던 건데, 잘 모르는 애들끼리 뒤에서 절 나쁜 애로 몰아갔어요. 솔직히 저한테 고백했던 애들이랑 친구로 지내고 있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걔들도 동의한 거고 저도 친구 없이 살아야 되는 죄인은 아니잖아요? 이게 제가 나쁜 거예요? 예쁜 언니들이 나와서 이런 거 잘 아실 것 같아서 여쭤봐요……. 초반부터 시청해주셨던 후원자님이신데, 전 이런 걸 잘 모를 거라고 보셨던 모양입니다?”

「오 꼰마성님 자존심 상했다」

「왜 우리꼰마 기를죽여요??? 연애도 잘하신다고요!!!」

“이게 옳게 보신 거죠. 제가 여성들의 심리를 정말 잘 모릅니다. 그러니 도세나님의 의견부터 한번 여쭤볼까요?”

“하하핫. 네. 저…… 제가 막 그렇게 예쁜 건 아니지만, 저도 양수리퀸님이랑 비슷한 일을 겪어봤어요. 그때는 양수리퀸님처럼 저도 억울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생각이 달라졌어요. 물론 악의를 가지고 그러셨던 건 아니겠죠. 하지만 세상엔 호의라도 용인될 수 없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나쁘시다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해요. 이성관계라는 건 결국 누군가가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거고,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믿으면서도 피해를 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쉬워도 일부 친구를 포기하시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모두 다 가지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도세나는 생각을 넓게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지라도 전체를 조망하며 수정할 줄 아는.

판단의 적합성을 떠나, 상담사로서는 염려가 됐다.

그렇게 주변의 관계부터 신경 쓰는 사람은 자기를 우선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상처받기 쉬우니까.

김지연도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수첩에 메모를 시작했다.

1부의 관찰로 2부의 상담에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과정.

다만, 그런 상담사들과 달리 시청자들은 그저 열광적이었다.

「목소리 KIA~」

「진짜 보고만 있어도 힐링됨 ㅠㅠㅠㅠ」

「언니 개이뻐여ㅠㅠㅠㅠㅠ」

“데스야. 컨텐츠와 무관한 채팅에 채금(채팅금지) 드려라.”

「ㅋㅋㅋㅋ 꼰마오빠 질투하신다ㅋㅋㅋㅋ」

[마구니님 별사탕 100개. 저는 도세나님의 아쿠아맨.]

“존경하고 애정하는 마구니 후원자님께도 채금 드려라.”

「마구니 : 으엌ㅋㅋㅋ전 왜죠」

“아쿠아맨의 함의를 알기 때문입니다. 자제해주세요.”

그렇게 간신히 채팅창을 정화하고 나서.

김지연과 도세나가 충분히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말수를 줄인 채로, 나는 웹툰 작가에 대해 생각했다.

선망 받는 직업군은 대체로 비슷한 직업병을 안고 있다.

우울증.

다수의 관심을 받다 보면 다양한 의견을 마주하게 되는데, 사람의 심리가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을 보이기 쉽다.

부정적인 정보가 긍정적인 정보를 압도하는 현상이다.

악플(악성 댓글)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된 게 그래서다.

비율로 보면 극히 일부일지 몰라도, 그들의 폭언과 루머, 모욕적인 언사가 한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 흉기가 되는 것.

악성댓글에 시달리다보면 자연히 우울증이 뒤따른다.

그 증상은 사고의 협소화.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이 치닫게 된다는 것인데, 거기서 역기능적 문제해결의 극단인 자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신건강 전반에서 가장 위험한 병증이다.

아직 나로서는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은 문제였다.

또한, 이용덕이라는 의사가 제대로 지적할 수 있는 요소.

모쪼록 도세나의 고민이 그쪽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잠깐의 휴식 뒤 2부를 시작했을 때.

도세나가 바로 그 문제를 입에 담았다.

“아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악플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정신과 상담을 받았는데, 우울증이라고, 장기적으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매달 한 40만원? 정신과 내원하면서 진료받고 약 받고…… 그렇게 1년 정도 지냈던 것 같아요. 인싸부심 후반부 진행하면서도 계속 그런 상태였고…… 완결을 내고 나서도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푹 쉬었어요. 알아보는 사람 없는 외국으로 여행도 많이 가고, 일이 된 웹툰 말고 다른 쪽으로 공부도 하면서 충실하게 살려고 했어요.”

적절한 대처였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면 우울감을 완화할 수 있다.

단, 정말로 ‘멀어질 수 있는 일’일 경우에 한해.

완결을 내고도 좋아지지 않은 증상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악플의 경험에 성공우울증(성공을 경험한 뒤의 허탈감, 하강의 경험이나 공포 등으로 인해 겪는 우울증)까지 연관되었다면, 차기작의 압박이 우울감을 더욱 키웠을 수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됐어요. 결국 집에 돌아오면 똑같은 거예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맞더라고요. 약은 증상을 완화시켜줄 뿐이고, 한번 망가진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래서 포기하고 살았어요. 자살기도도 여러 번 했어요. 그러다가 꼰마님 방송을 보게 됐어요. 보람님이랑 합방하셨던 그거. 그걸 유튜브에서 보는데,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어요. 잠깐 그러고 다시 우울해졌지만…… 기대하게 되는 거예요? 어쩌면, 혹시,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고. 나도 보람님처럼 다시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웹툰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신청하게 됐어요. 너무 무거운 얘긴 안 된다고 하셨지만, 딱 한 번이라도 꼰마님이랑 이렇게 얘기해보고 싶어서…….”

대꾸 없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수많은 생각을 했다.

어쩌면 방송을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이용덕과의 신경전.

정신의학에서 병리로 규정된 질환에 대해 함부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윤리의식.

무엇보다 이 어려운 문제에 섣불리 나서서 한창 잘나가고 있는 내 이미지를 망치기 싫다는, 하강에의 공포.

그런 생각을 하며 김지연을 바라봤다.

전문가로서 문제를 해소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그녀가 약간 흐트러진 가면 속에서 질문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셨다고 하셨으니, 여쭤볼게요. 등도는 어땠나요?”

“등도요? 어, 아. 중등도라고 하셨어요.”

“그렇구나……. 많이 안 좋아지셨네요.”

“음, 처음부터 그랬어요. 경등도였을 때는 놓쳤나봐요. 그냥 완결만 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참았거든요.”

김지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순간 진대수를 째려봤다.

첫 초대석에 이 정도로 어려운 케이스를 가져오면 어떡하냐고 힐난하듯이.

“일단…… 저로서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도세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약물치료를 받으셨는데도 차도가 없었던 케이스고, 약물도 끊으셨죠. 장기적인 플랜과 상담 회기가 필요해요. 약물치료도 병행을 하셔야 되고요. 그래서 당장 오늘 어떤 대화를 통해 결과를 보여드릴 수는 없을지도 몰라요.”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보통 심리상담이라면 그게 정석.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것은 시청자 초대석이며, 그것도 야심찬 프로젝트의 첫걸음이었다.

여기서 어떤 차도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곤란했다.

그게 김지연이 가면을 유지하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오아시스인 나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었겠지.

전문가로서 획기적인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터였다.

그러지 못하고 약한 소리만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책감이 들어, 컨텐츠에 적합하지 않은 케이스를 가져온 대수에게 불만을 품게 됐을 터였다.

그렇게 ‘진단’한 뒤에……

문득 생각했다.

지금 이 발상은 어떤 사고의 결과인가.

나는 정말 상담사로서 사고하고 있었던 게 맞나.

도세나라는 아이를 이슈의 도구로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오늘 방송을 진행하며, 나는 도세나를 정말 몇 번이나 제대로 바라보았는가.

“악플러들의 심리는…… 단순합니다.”

그렇게 운을 떼자, 김지연이 슬쩍 내 허리춤을 건드렸다.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나는 후진하지 않는다.

“심리적 열등감. 억압된 자아. 그걸 얼굴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풀어내며 순간의 긴장과 짜릿함을 즐기죠. 때로는 술에 취한 채 그러기도 하고, 웹상의 자신과 진짜 자신을 분리해 죄의식으로부터 도피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절대로 근절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단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세나님은 악플에서 벗어나실 수 없습니다. 이미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이며, 직업 자체도 대중을 상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평생 가면의 모욕을 감당하셔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도세나님의 현실입니다.”

“저기, 제발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에요. 이거 혹시 나중에라도 잘못되면…… 박 선생님 미래는 없는 거예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이는 김지연.

진한 염려와 비애가 담겨 있다.

내담자를 자살하게 만든 상담사라는 게 알려졌을 때의 귀결에 대해 떠올린 까닭이겠지.

그렇지만 나는, 우리는, 전진해야 한다.

“어쩌면 저도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운 좋게도 이렇게 따뜻한 후원자님들과 방송을 하고 있지만, 더 유명해지고 나면 이렇지는 않겠죠. 불쾌한 이야기도 많이 보고 욕도 많이 먹을 겁니다. 그리고 자책하겠죠. 내가 부족해서 이 꼴이 된 거다. 나는 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인간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존재다…….”

몇 개의 얼굴을 떠올린다.

회사에서 잘리고 모든 의욕을 잃었던 나.

보호대 아래의 붉은 흉터를 보여주던 이아리.

학대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 이병…….

나는 그들을 보아왔다.

그리고 지금, 어색하게 웃는 도세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게는 아직 그녀를 구할 기회가 있다.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나이며, 이아리이며, 김 이병이다.

그 앞에서 대체 어떻게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도세나님. 당신의 웹툰을 정독한 적도 없고, 오늘 이전에는 대화조차 나눠본 적이 없습니다. 매번 후원을 받으면서도, 돈 쓸 데가 없는 심심한 분이겠거니, 그런 식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할 말이 있습니다.”

“네…… 뭔데요?”

잠깐 NBSC를 떠올렸다.

exp는 충분하다.

‘화술’을 올리거나 새로운 기술을 살 수 있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려면, 이 아이로부터 시선을 돌려야 한다.

나는 아주 잠깐이라도 도세나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바꿔드리겠습니다.”

“……예?”

“이 세상을 바꿔드리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도세나님을 괴롭히는 악플을 달지 못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을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꿔드리겠습니다.”

“아, 어, 안 바뀐다고 하셨잖아요? 악플은 현실이라고…….”

“바꾸겠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비관적이지만 사람을 바라보면 낙관적이다. 칼 로저스의 말입니다. 그걸 믿겠습니다. 어떤 인간도 인간을 죽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겠습니다. 안 될지도 모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당장은 어떻게 해야 될지 감도 안 잡힙니다. 그래도 바꾸겠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는 이 세상을 바꿔놓겠습니다. 어쨌든 나보다는 도세나님이 오래 살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기다려주세요.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내가 세상을 바꿀 때까지.”

무엇 하나 보장할 수 없는 미래의 호언장담.

상담사가 가장 조심해야 마땅할, 내담자에의 공수표.

그저 그걸 던졌다.

레벨업도 없이, 어떤 기술도 없이, 도세나를 향해 말했다.

“내가 바꾼 세상을 보기도 전에 가버리지 마세요.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면서 견뎌주세요. 그래주세요. 이 세상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내가 증명하게 해주세요……. 꼰마저스 엔드게임을 안 보면 궁금해서 눈이나 감기겠어요?”

나는 칼 로저스가 아니다.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폭력들을 보아온, 그 앞에서 도망치고 두려워 떨던 작고 약한 개인에 불과하다.

모든 인간이 선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렇게 믿고 싶다.

한 여인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날 영웅이라 불러주는 이들의 아저씨로서.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주고 싶다.

모든 인간이 선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앨 수 있으리라 믿겠다.

NBSC와 함께라면, 어벤저스가 될 수 있으리라 믿겠다.

칼 로저스가 아닌 꼰마저스는, 그렇게 믿는다.

“……아하하핫! 아, 하하하하하하하핫!”

도세나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옆자리의 김지연이 허탈한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맞은편의 진대수가 얼이 빠져서는 엥 엥 소리를 내고.

전자음이 잠깐의 텀도 없이 무수한 목소리들을 전달하고.

그 뒤에, 도세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미쳐 진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몰라. 아. 진짜, 진짜 오랜만에 웃었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긴데, 좋았어요. 이러니까 안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요. 저는…… 꼰마님이 참 좋아요. 휴방 하지 마세요. 계속 방송 하시면, 안 죽을게요.”

그때, 전자음보다도 훨씬 커다란 어떤 효과음이 들렸다.

NBSC가 처음으로 메시지가 아닌 것을 전했다.

그 소리가 귓전을 쩡쩡 울렸다.

‘NBSC는 당신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아시죠?’

……전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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