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14장 - 상담사의 인간관 (1)
한효준이 처음 재단이란 말을 꺼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박중민을 떠올렸다.
서른일곱의 화가이자 오랫동안 교류하지 않았던 동생.
그래도 혈육인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인사였다.
하지만 중민이는 내가 예상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제안해줘서 고맙긴 한데, 형. 난 화가야.]
“어, 그렇지. 하지만 재단 이사장 자리가 바쁠 건 없어. 출장도 사무도 직원 고용해서 시키면 되고, 나도 전반적으로 감독을 할 거야. 남는 시간에 그림 마음껏 그려도 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좀 화날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난 화가라고. 돈 가지고 하는 일에 관심 없어.]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걸 그때 느꼈다.
예술이라는 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절대다수가 그렇듯, 동생도 예술인마을에서 미술 강습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처지.
그렇기에 당연히 기뻐할 거라 생각했다.
자선사업이라곤 하지만 거대한 돈을 움직이는 자리라서, 연봉도 사회적 지위도 차고 넘칠 테니까.
벌이가 시원찮은 동생에 대한 연민에서 나온 제의.
그건 내면의 열정이라는 가치를 무시한 폭력이었다.
8년 동안이나 신경 끄고 살았으면서 이제 와 형 노릇을 하려던 꼴이니, 분명 불쾌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미안하다. 선을 넘었네. 불쾌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알아. 방송 봤으니까. 화가 났다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 알아보라는 거야. 고맙긴 하지. 신경 써준 거니까.]
“음…… 그래. 솔직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냥 혹시나 싶어서. 요즘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거 없는지 싶고.”
[하하. 그러지 마라, 형. 내가 아직도 앤 줄 알아? 형이 벌어준 돈으로 비싼 미대까지 나왔다. 이젠 알아서 살아야지.]
“그래도…… 너 결혼도 해야 되잖아.”
[알아서 한다니까. 내가 뭐 돈 다 까먹고만 산 줄 알아? 목돈 있어. 여자가 없을 뿐이지. 나 이제 끊는다. 쉬어.]
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정말 행운아라고.
이 행운을 더 꽉 잡았어야만 했던 거라고.
열 살 터울의 중민이는, 사춘기 때도 형 형 하면서 날 참 많이 따랐다.
입주과외로 돈 벌며 용돈 챙겨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정말 형으로 믿고 따라준 마음이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줬더라면.
내 지갑에서 나간 돈이 비싼 미대 학비로 들어갔다는 사실에 질투심을 느끼지 않고, 형으로서 응원해줬더라면.
단둘이 된 우리 형제 사이가 조금쯤은 더 돈독했을 텐데.
침대에 누워 그런 생각을 얘기했을 때, 아내는 말했다.
“웃기셔. 돈 대줄 거 다 대주고 좀 질투했기로서니, 그게 뭐 죄야? 당신이 무슨 예수님이니? 잘못한 거 없어. 그때는 도련님이 철이 없었던 게 맞아. 뭘 그런 걸로 죄책감을 느껴?”
그 말에 웃음이 나오더라.
내가 ‘귀찮아’에게 해줬던 말과 판박이라서.
스스로 한 말도 실천하지 못하는 상담사였다.
그래도, 그게 사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방식을 바꿔주는 정답이란 게 어디 있겠는가.
거듭해 번민하고 또 흔들리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어쨌든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긴 해야 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주변에 혹시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없을까?”
아내는 대답하기 전에 몸을 틀어서 날 마주봤다.
베개 사이의 거리에서, 그녀는 볼멘소리를 뱉었다.
“나는 믿음이 안 가?”
“어, 어?”
“그렇잖아. 어떻게 한마디 물어보질 않니? 내가 뭐, 당신이 힘들게 번 돈 허투루 쓸 것 같아? 나도 나름 배운 여자야. 서울대에서 교육학 석사까지 땄고, 속도위반만 안 했어도 교육청에서 한자리 하고 있었을 거라구. 그런데도 믿음이 안 가?”
“아니…… 이런. 전혀 생각을 못 했네. 편견이 남아있었어. 늘 집에 있는 모습만 보니까…… 미안해. 적임자가 여기 있었는데.”
“진짜야? 솔직하게 말해도 돼. 주부만 십 몇 년 한 아줌마한테는 맡기기 싫을 수도 있지. 아니면 지수한테 신경 덜 쓰게 될까봐 걱정될 수도 있겠고. 그냥 투정부려본 거였어.”
딸애는 이제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 기간이라 학원은 많이 안 보내고 과외 위주로 진행하고 있지만, 방학 때부터는 일정 시간은 내보낼 예정이다.
그때가 되면 아내 혼자 집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
“주희 네가 이사장을 맡아준다면……”
“맡아준다면?”
“좋겠다.”
“……뭘 또 그렇게, 웃으면서 말하고 그래? 사람 설레게. 그럼 알았어. 한번 해볼게. 당신 기준에 맞게 선별하고 집행하고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런 거면 나도 잘하지.”
잘해줄 거다.
오랫동안 교육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또 딸 가진 엄마의 입장에서, 공익재단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일은 아내 혼자 매달려야 하는 업무가 아니다.
이튿날 임시조교로서 한효준의 교양강의에 참관한 뒤, 나는 내 재단 일에 흥미를 가진 세 조력자와 만날 수 있었다.
“어제 처음 방송 봤는데, 진짜 진짜 감동했어요. 와…… 이런 분도 계시구나 했어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열심히 할게요. 작년부터 실습 나가면서 아동 노인 장애인 다방면으로 경험을 쌓았어요. 사회복지사 1급도 꼭 딸 거고요. 그래서 월 5천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생각해봤어요. 전국 규모의 사업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일단 장학사업이라는 측면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그렇게 열성적으로 자선사업 플랜을 설명한 건 사회복지학과 17학번 오현서 학생이었고.
“저도 생방송은 어제 처음 보긴 했는데, 유튜브에서 하이라이트는 우연히 봤거든요. 그때부터 관심 갖고 있었어요. 일단 교육캠프 같은 방향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학교나 기업에서 주관하는 캠프들 여러 개 다녔는데, 거의 다 영재 위주 캠프였어요, 저소득층 공부방 교육봉사 나갔을 때랑 너무 다른 그런 게 느껴지는 거예요. 교육의 기회는 동등해야 하는데, 조기교육에서 이미 차이가 나버리니까. 그런 면에서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요? 마침 또 이렇게 다 서울대고 하니까…….”
연민 속에서 교육봉사 방향의 캠프를 꿈꾸는 건 교육학과 17학번 심주연 학생이었고.
“비영리법인 차려서 공익재단 인가받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계신 거 같은데, 맞아요? 그래서 지정기부금으로 세제 혜택을 받으시려는 것 같은데. 근데 그게 생각하시는 것처럼 충분한 공제가 아니거든요. 문제가 되실 텐데.”
근본적인 의문을 먼저 입에 담은 게, 경영대 17학번 장일환이었다.
“그 부분은 나도 알고는 있어요.”
“정말로요? 어……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공익재단 지정기부금이라고 해도 소득 30% 한도에서만 인정되는 거고, 2014년부터 세액공제로 바뀌었어요. 예를 들어서 별사탕으로 연간 3억을 버신다고 하면 거기서 나오는 종소세 과표가 9,460인데, 3억 전부를 기부하셔도 당해 기부금으로 9천만 잡힌단 얘기예요. 그러면 천까지 15% 이후로 30% 해서 2,550만 공제돼요. 남은 세금이 7천이란 거죠. 그러면 또 그만큼을 따로 버셔야 되는데, 거기서부턴 세율이 40% 이상으로 잡히니까, 적어도 1억 2천은 더 버셔야 현상유지가 된다는 거고요. 생활비 생각하시면 2억은 넘겨야 될 텐데요?”
맞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우선 유튜브 쪽에서 연 1억 정도는 충당이 될 거라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PPL과 모델 활동이 예정돼 있어서, 계약조건상 그쪽에서도 1억 정도는 나올 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게 안 된다면 상황을 보면서 별사탕 환전액을 조율할 수는 있겠죠. 그 외에는 원칙을 지키고 싶습니다.”
“……5억 벌어서 5천만 가지는 원칙을요?”
“그래요. 그 이상이 될 수 있게 내가 더 노력해야겠지요. 한계가 있는 별사탕 쪽과는 다르게, 유튜브나 PPL은 노력하는 만큼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분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5천이어도 이후로는 얼마든지 그 이상이 될 수 있겠지요.”
“아니, 와……. 죄송합니다. 저 잠깐만 정리 좀 할게요.”
그러더니 불가해를 마주한 사람처럼 큰 눈을 끔뻑거리며 홀로 중얼중얼 하는 것이다.
한효준이 껄껄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좀 별난 친구지?”
“예? 아, 아닙니다. 저랑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은데요?”
“뭐?”
“계산이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성미요. 저도 그렇습니다. 공대생이라서요.”
“……허.”
“아하!”
한효준의 헛웃음에 장일환의 맑은 탄성이 겹쳐진다.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청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치구나. 그렇죠? 정계 진출하실 거죠? 이 정도 투자면 대통령까지 보고 계시다는 건데? 제 생각이 맞는 거죠?”
“어허허! 거봐, 별난 친구지?”
“……좀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장일환은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자길 바라보는 우리 넷의 표정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이후 겹치는 길목까지 함께 걸어가는 동안에도, 장일환은 끈덕지게 내 검은 속을 캐내려 했다.
“솔직히 말씀해주시면 안 됩니까? 전 그거 나쁘다고 생각 안 하는데. 좋은 일 해서 정계 입문하면 좋은 거잖아요?”
“정말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요.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사회 환원의 기준을 정한 것뿐이에요.”
“정말입니까? 말이 안 되는데. 환원이면 그냥 세금만 내셔도 충분한데요? 5억 벌면 1억 7천이 나가요. 매년 그만큼 환원하는 셈이죠. 충분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그 정도만 해도 아깝다고 투덜대는 게 사람 마음 아닙니까?”
“그렇지요. 나도 그게 참 아깝다고 생각해요.”
“아, 그렇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거니까. 공무원들이 어련히 잘 써줄 거라는 생각도 하지만……”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요! 어…… 진짜 이상하네? 왜 그러세요? 왜 그렇게 막 퍼주는 건데요? 저도 어제 방송 보긴 했거든요? 근데 그때도 이해가 안 됐고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데. 진짜 정치 안 하실 겁니까? 아, 아니다. 종교구나? 재단에서 이제 포교활동을 하실 생각인 거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떠드는 장일환을 보며, 한효준은 참지 못하고 낄낄 웃었다.
그리고 나는 한효준의 의도를 생각했다.
저 교수가 내게 이 친구를 붙여준 의도는 뭘까.
열정이나 연민으로 가득한 두 여학생과 전혀 결이 다른 경영대생이, 나와 어떤 면에서 소통하길 바라셨던 걸까.
“……장일환 학생. 혹시 굶주려본 경험이 있습니까?”
“예? 아뇨, 저희 집 나름 은수저예요.”
“그렇군요. 그래도 굉장히 목이 말랐던 경험은 있지요?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잔 날이라든가.”
“아, 있죠. 그럴 때 엄청 목마르죠. 아, 그러니까 그렇게 목마른 불쌍한 애들을 도와주는 게 이제 장기적으로 충성스러운 인력을 만들어주는 투자가 된다는 거예요?”
“아뇨, 반대예요. 내가 목이 마릅니다. 삶에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목이 말라요. 뭐라도 해주고 싶어요. 장일환 학생은 그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나요?”
“어…… 글쎄요?”
접근이 잘못됐던 것 같다.
이런 일에 쓰는 게 맞는 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기술을 한번 사용해보자.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장일환
주제 ‘목마름’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마음이 불편해지는 짤’ 」
……음.
이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되겠지.
“그러면 혹시, 마음이 불편해지는 짤을 본 적이 있어요?”
“어! 와, 그런 것도 아세요? 인싸신데요?”
“하하. 그거 보면 어떤가요?”
“예? 보면 불편하죠. 속이 부글부글 끓고.”
“내 마음이 그래요.”
“예?”
“아무 죄 없이 차별받는 아이들을 보면, 부글부글 끓어요. 정리되지 않은 방을 보면 치우고 싶어지는 것처럼, 나 역시 불평등한 세상에 작은 받침대를 놔주고 싶게 돼요. 그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예요. 다만 서로가 바라보는 방의 모습이 다른 거겠지요. 하나만 비뚤어져 있는 퍼즐을 맞추는 게, 미래를 위한 투자는 아니겠지요? 본능이에요. 사회적인 동물 모두가 가지고 있는, 아주 본능적인 마음인 거예요.”
장일환은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뼉을 쳤다.
“와우…… 그런 느낌이구나?”
“하하.”
“완전 이해가 쏙쏙 되네요.”
“고마워요. 그러면, 우리 같이 일하게 되는 건가요?”
“아, 예! 저기…… 열심히 하겠습니다. 와…… 쩔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돌아섰다.
또 생각을 정리하려는 건가 했는데, 황급히 되돌아서 인사하더라.
생각에 빠져서 인사하는 것도 잊고 갈 뻔했던 모양이다.
한효준이 말한 대로 참 독특한 학생이었다.
자기 세계관이 너무 뚜렷해 공감에 문제를 겪는 케이스.
일단 그렇게 진단하고 나니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졌다.
학부생 때 질리도록 겪었던 타입이기에.
워낙 높은 커트라인을 가진 학교인 만큼, 서울대는 과를 막론하고 엉덩이가 무거운 학생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세계관을 타인과 타협하지 않는 외골수들이 많았다.
수시가 과반인 이 시대에도 그 점은 그대로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고집이 아니고서야 12년간 이어지는 과도한 학업을 버텨내기 어려운 게 보통이니.
좋게 보면 집념과 끈기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특성이다.
그렇지만 그게 서울대라는 학벌과 결합되어 타인에 대한 괄시나 선민의식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때는 문제가 생긴다.
자기확신은 종종 죄책감을 지워버리는 법이니.
고학력자들의 변태적인 범죄가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게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장일환은 거기까지 가지는 않을 듯했다.
비록 쉽게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호기심이 있으니까.
타인을 궁금해 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고 자신의 알을 깨뜨리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서 한효준을 바라봤다.
내 대응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의 표정을 해석하기에 앞서, 눈시울이 붉어진 심주연이 엉거주춤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팔이 아플 정도로 흔드는 악수였다.
“저기…… 존경합니다. 저는 진짜…… 쟤 왜 저래 속으로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얘기로 설득을 하시니까, 완전 속이 시원해서…….”
“아, 하하. 속이 시원해지자고 한 얘기는 아니었어요.”
“아, 네, 죄송합니다. 저기 그러니까 저는……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교육봉사 그런 거 다 자기만족 아니냐, 요즘처럼 EBS 인강 넘쳐나는 세상에 지들이 노력을 안 하는 건데 왜 도와줘야 되냐, 애들이 다 그러거든요.”
“다는 아니겠지요? 일부의 말에 너무 상처받지 말아요.”
“아, 네, 네. 죄송합니다. 아무튼 저…… 열심히 할게요.”
그녀에 비해서는 상당히 얌전한 태도였지만, 오현서 역시 귀밑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꾸벅여 보였다.
“저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하. 학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딱 그 정도만 해줘요.”
“아뇨…… 최선을 다할게요.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아, 저기, 교수님, 감사합니다. 저한테 이런 기회 주신 거요.”
“허, 기회는 무슨. 감사는 저기 돈 줄 사람한테 해.”
“아, 예. 감사합니다. 저…… 선생님?”
“아저씨라고 부르면 돼요.”
“네…… 아저씨.”
사회대 건물로 이동하며, 한효준은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키 차이 때문에 뒤뚱거리면서도 흥에 겨운 눈치였다.
“재미있지? 전혀 다른 애들을 셋이나 묶으니, 역동이 마구 끓어오르잖나? 그 안에서 어떤 아이템들이 피어날까? 흥미로워. 정말 궁금해. 재밌는 일들이 참 많을 것 같아.”
“그러시면 이사회에 들어오시면 어떻겠습니까?”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사회복지 공익법인의 이사회는 7인 이상이어야 하는데, 저 세 친구를 포함하더라도 아직 다섯 명이어서요.”
“저 꼬마들을 이사로 선임하겠다는 게야? 헛소리! 아니 그보다, 나보고 자네 밑에서 똥이나 닦으라는 건가!”
“아뇨, 이사장은 제 아내가…….”
“……어흠. 내가 말이 거칠었네. 흠…… 그래. 아무래도 꼬마들 데리고 일을 하려면 헷갈리는 부분이 많겠지. 이사 일곱 명이라. 날 포함해서 일곱 명, 리스트 뽑아주지.”
상황에 잘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탈룰라’라는 단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