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34화 (34/200)

# 34

13장 - 후원을 유도하는 상담사 (2)

진대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상태창을 살폈다.

「 직업 : 상담사 Lv.7 (14/10)

‘경청은 상담사를 성장시켜요’ (190042/200000)

‘더욱 많은 내담자를 만나봐요’ (21823/22000)

‘내담자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287/290) 」

오늘 방송을 통해 얻은 exp는 1.

내담자 행복 퀘스트만이 1회 완수되었다.

기본적으로 경청 퀘스트는 10만 회를 단위로 하는 만큼, 하루이틀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채팅이 아무리 많다 해도 내 집중력에 한계가 있기에.

일평균 3만 정도 증가하는 현재의 추세가 맥시멈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방송이 8회차에 도달한 지금은, 소통 컨텐츠를 좋아하는 거의 모든 시청자들이 내 방송을 경험했을 터.

특정 남캠 여캠만 보거나 겜방 엽캠 쪽으로만 관심을 가진 이들은 내가 아무리 유명해진들 오지 않을 것이다.

즉, 내담자 퀘스트 역시 이제는 반복달성이 어려워졌다.

마지막 행복 퀘스트가 유일한 희망인 셈인데……

이것마저 극단적으로 둔화되고 말았다.

예상한 대로였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NBSC가 요구하는 ‘행복’은 ‘즐거움’보다는 훨씬 더 좁은 개념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판정이었다.

유쾌하거나 짜릿하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순간의 즐거움이 아닌 깊고 진한 여운이야말로, 행복 퀘스트를 달성시키는 요인일 터였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방송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대수가 유튜브 레전드 각이라고 평할 정도로 방송 자체는 재밌게 나왔으나, 행복을 느낀 시청자는 고작 9명.

12탐방의 첫 번째 방송 때보다도 못한 성과가 나왔다.

집단상담을 가정하고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까닭이었다.

고민 사연에 더해 조언 채팅까지 읽어주는 일에는, 혼자 생각해서 상담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시청자들의 신경이 분산돼 내 이야기에 온전히 관심이 집중되지 못한다.

거기다 시청자들 사이에는 아직 라포 형성이 되어 있지 않으니, 집단 내의 소통으로 유의미한 반응을 끌어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재미는 있을지언정 퀘스트를 달성하기에는 곤란한 방식.

새롭게 채택한 방송 스타일은 분명한 단점을 갖고 있다.

‘관계’가 92가 된 지금 제대로 상담을 한다면 적어도 3~4회씩은 완수가 가능할 텐데, 그걸 포기해야만 하니까.

하지만……

이게 더 나은 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NBSC라는 시스템은 분명 내 인생을 바꿔준 기연.

그러나 그 능력을 사용하는 건 나 자신이다.

내가 어리석은 선입견에 빠져 있는 한, 높은 능력치와 대단한 기술들도 효과를 내지 못한다.

지천명(知天命)을 앞두고 있다 한들 나 역시 배울 것이 많은 개인일 뿐.

시청자들의 자기투입(타인의 상담 내용에 스스로를 대입하고 표출하는 일)을 살펴보는 건 인간으로서 성숙할 기회다.

당장 exp 좀 더 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능력치를 100으로 올려봤자, 편견 속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니까.

“아우, 시원해. 형님, 화장실 환풍기 좀 켜놓을게요. 제가 어제 한 잔 했더니 냄새가 좀…… 히히.”

“그래. 앉자. 정리해야지.”

“예압. 덩 싸면서 전체적으로 검토해봤는데, 오늘 방송은 특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시청자들 조언도 스무스하게 잘 교통정리를 해주셨고…… 뭣보다 설심19 가즈아가 꿀잼이었죠. 교수님 꼰대짓도 대유잼이었고요.”

“꼰대짓은 아니고, 그분은 학문적으로 조언해주신 거야.”

“예 예. 아무튼 그런 것도 있고, 후원자로 네이밍한 게 신의 한 수였어요. 생각보다 훨씬 더 쇼킹하게 들어갔어. 벌써 커뮤니티마다 게시물 솔솔 올라오고 있습니다. 방송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2천 번 것도 센세이션인데 그 2천을 다 기부한다는 얘기니까 뭐. 꿀잼이니까 집에 가서 검색해보세요.”

원래 계획상으로는, 일정 금액만 기부한다고 밝힌 뒤 나중에 실제 기부금액이 드러나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는 편이 더 이슈가 될 테니.

하지만 이미 충분한 수익이 잡힌 상황에서 전액 기부 계획을 알리게 되자, 이것도 효과가 만만찮은 듯했다.

“잘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나는 혹시 내용이 바뀌어서 후원이 줄어들까봐 걱정했는데.”

“에이, 그럴 리가요? 지금 팬클럽…… 몇 명이야. 3,551 됐네. 얘네들은 이미 형님 골수팬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열혈들은 말 번복하고 기부 안 하신대도 따라올 형님들이고.”

“누님도 있어, 대수야.”

“헤헤. 관용적인 표현이죠. 암튼 그래서 금액 쪽으로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고, 전에 말씀드린 대로 월 5천 정도로 운영계획 잡으시면 될 듯요. 근데 형님, 누가 운영해요?”

”그러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봐야 할 텐데…….”

고민하며 무심결에 쳐다봤는데, 대수가 손사래를 치는 걸로 모자라 고개까지 흔들었다.

“놉 놉. 전 안 합니다. 열정페이 싫어요!”

“흐음. 회사원 월급 정도는 줄 생각인데?”

“그래도요. 전 편집에 집중할랍니다. 집 사야 된다고요.”

“하하, 그래라. 유튜브 애드센스 승인은 언제쯤 나올까?”

“워낙 일처리 느린 애들이라, 5월은 돼야지 싶슴다. 그래도 그때쯤 되면 구독자가 최소 30만 이상은 될 거고…… 아마 첫 달에 천은 땡길 수 있지 않을까 보시면 될 거 같고요.”

별사탕 수익이 일주일 2천인데, 유튜브로 또 월 천.

PPL까지 들어오면 월 1억 수입도 가능할 법했다.

매달 수천만 원씩 재단에 출연할 예정이지만, 생활비 측면에서는 오히려 예전보다 윤택해지리라.

프리월드 연봉은 세전으로 따져도 월 천이 안 됐으니.

NBSC와 진대수가 그런 행운을 안겨줬다.

나 역시 기대에 걸맞게 되어야지.

“알겠다. 유튜브 각 나오게 더 열심히 공부할게.”

“헤헤. 그리고요 형님. 방송 내용 관련인데요. 이게 약간 흥미로운 게, 시청자들이 나름대로 조언하겠다고 이런저런 소리들 하는 게 의외로 티키타카가 되더라고요?”

“좀 그랬지?”

“옙. 그냥 다양하게 소통해주면 충성도 올라가겠거니 하면서 하시라고 한 건데, 애들이 의외로 재밌네. 컨텐츠 특성 때문에 그런가? 채팅창에만 두기는 아까운 애들이 있더라고요.”

“채팅창에만 두기 아깝다고?”

“예압. 시청자 초대석 어때요? 애들 중에 좀 진지한 고민 신청 받아서 출연시키는 거죠. 그래서 상담도 같이 하고 나중에 걔 고민도 해결해주고. 상담 실패로 긴장감 주는 거 못 하게 됐으니까, 뉴페이스로 흥미도 높여주는 건 어떨까 싶어서요.”

시청자 초대석이라…….

다른 BJ와의 합방에 비해서 메리트가 적은 방식이지만, 애청자들 사이에서는 흥미로울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방송을 보며 ‘나도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 테니.

그런 심리로 방송을 보면 자연히 집중도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얻을 수 있는 효과가 하나 더.

방송이라곤 해도 면대면 상담이다.

그저 채팅만으로 마주할 때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을 거고, 그만큼 깊이 있는 상담이 가능해질 터였다.

집단상담의 관점에서 봐도 좋은 효과가 기대됐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일 그렇게 공지할게.”

“얍. 너무 자주 해도 애매할 것 같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괜찮을 듯요. 그리고 2주차 됐으니까 하루쯤 합방 가보면 좋을 것 같어요. 누구랑 할지 대충 각 잡았는데, 자연스럽게 탐방부터 이어져야 되니까 미리 말씀 안 드릴게요. 괜찮죠?”

“그래, 그렇게 해. 내가 연기가 안 되잖아.”

“헤헤. 암튼 합방도 너무 잦아지면 기존 팬들이 싫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것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흠. 가만있어봐. 하루는 시청자. 하루는 합방. 흠…… 흥미롭네.”

“뭐가 흥미로운데?”

“아, 아닙니다. 이거는 제가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미스터 스타크!”

후다닥 뛰어가는 뒷모습이 참 흥겨워 보인다.

저럴 때마다 꼭 획기적인 아이템을 들고 왔으니, 이번에도 기대해도 좋을 듯했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엔 정말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내가 달려와서 끌어안더라.

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는데……

올려다보는 아내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여보! 오늘 주민이가, 당신 방송 보여드렸대.”

“처남이? 이런. 왜 말도 없이…….”

“원래 그러려던 건 아니고 방송 보다가 결심했나봐. 그래서 거실 TV에 연결해서 엄마아빠랑 같이 봤대. 그랬는데, 아빠가 웃었다는 거야. 정말 오랜만에 껄껄 웃으셨다고……. 잘했어. 우리 남편, 진짜 잘했어. 왜 이렇게 멋있나 몰라.”

……아내에게 처가는 그간 슬픈 곳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사랑하는 남편을 경멸했으니까.

명절에도 찾아가지 않던 나야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딸애를 데리고 종종 왕래하던 아내는, 매번은 아니지만 얼굴 붉히며 싸운 적도 꽤 많았다고 했다.

아마 퇴직 때 이 사람이 나보다 더 슬퍼했던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돈이야 당장 걱정할 것 없을 만큼 모아뒀지만, 멀쩡한 직장 갖고 있을 때도 못난 놈이라고 까였던 나였으니.

다음 방문 때 장인께 무슨 얘길 들을지 걱정도 됐겠지.

하지만 이제는 칭찬만 듣게 될 것 같다.

장인장모는 사회 환원을 바른 가치로 믿는 양심적인 부자.

고수익을 내면서도 부에 취하지 않은 내 행동에, 분명 큰 호의를 품게 되셨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아내와 함께 거실 쇼파로 갔더니, 끄트머리에 있던 딸애가 내 옆으로 다가앉았다.

또 용돈 올려달라는 얘길 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즐거워했다.

“아빠 아빠, 아빠네 교수님이 아빠 디게 좋아하나봐?”

“하하. 그래 보였어? 그런 것도 같고.”

“어. 대학생 오빠들도 아빠 좋아하나봐?”

“그 친구들은 이전부터 방송 쭉 보고 있었다더라. 그러다가 학교에서 만나게 되니까 반가웠던 모양이야.”

“응. 근데 아빠, 아까 반톡에 뭐라고 왔게?”

“뭐라고 왔는데?”

“우리도 백두산 해보자고 애들이 그랬어.”

“아니…… 저런.”

“용원13 백두산 가즈아 해가지고.”

“너희는 그런 거 안 해도 괜찮아. 별사탕 결제, 복잡해.”

“쉽던데? 나도 해봤는데.”

“……누구 방송에?”

“진석이 오빠.”

진석이 방송 좋아하더니 후원까지 했었구나.

그나마 이상한 BJ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었다.

“그랬구나. 그래도 아빠 방송에는 하지 않는 걸로 하자. 딸 친구들 용돈을 어떻게 받겠니.”

“그런가? 암튼 아빠, 학교 언제 와? 애들 다 아빠 보고 싶다고 그러는데.”

“금요일쯤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날 중간고사가 몰렸대.”

“아 진짜? 그럼 아빠도 시험 봐?”

“아빠는 안 보지, 청강생이니까. 그래서 그날은 지수 학교에 가볼까 하는 거야. 아빠가 내일 선생님이랑 통화할게.”

“아하. 히히. 오케이. 금요일 금요일, 금요일 금요일.”

메모를 하려는 건지 쯔르르 방으로 달려간다.

그 뒷모습이 또 참 흥겨워 보여서, 문득 생각하게 됐다.

지금까지 가족에게 보여주던 내 뒷모습은 어땠을까.

밥도 대충 때우고 일찌감치 집을 나서던 가장의 뒷모습.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비쳤을까.

“……여보. 나, 방송 하길 참 잘한 것 같아.”

“그래. 아주 잘하셨어.”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야. 약속한 대로 별사탕은 전부 기부로 들어가겠지만, 유튜브 쪽 추세가 좋아. 조만간 예전 급여보다 더 많이 벌 수도 있을 것 같아.”

“알아. 나도 궁금해서 이리저리 알아봤어. 당신처럼 빨리 구독자 늘린 BJ는 한 명도 없었대. 당신 참…… 자랑스러워.”

아내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연애 시절처럼 그녀의 볼을 쓰다듬어줬다.

*

“자, 이거 봐.”

아침 일찍 찾아간 교수실.

한효준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서류철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세 남녀의 신상정보가 담겨 있다.

사진까지 붙어있는 걸 보면, 아마도 한효준의 교양 과목 수강생들인 모양이었다.

“이걸 왜 보여주시는 겁니까?”

“복지 쪽에 관심 있는 4학년들이야. 자네 재단 취지 설명해주면 분명히 좋아할 거야.”

“아…… 이런. 이렇게 개인정보를…….”

“뭐! 불만이야? 어디다 제소할 거야? 감사는 못 할망정.”

“그런 얘기가 아니라, 자리만 마련해주셔도 됐을 텐데 서류로 주시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개인정보 침해잖습니까.”

“거 뭐 대단한 거라고. 햇병아리 조교들도 다 보는 건데. 사실은 살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셋 다 자네가 데려가면 돼. 졸업반이니까 일단은 인턴 개념으로 쓰라고.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할 거 아니잖아?”

방식은 보기 좋지 않았지만, 마음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아마 어제 방송 보면서 따로 뽑아뒀던 거겠지.

내가 만들 재단을 잘 관리해줄 만한 친구들을 선별해 추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곤란하다.

일면식도 없는 학생들에게 기부처를 찾고 금액을 결정하는 모든 일들을 맡겨도 될지, 솔직히 확신이 들지 않았다.

추천자인 한효준 역시 알게 된 지 나흘밖에 안 된 인물.

고마운 마음에 앞서 짚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교수님.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 방송은 왜 보셨습니까?”

“왜, 늙은이는 보면 안 되나?”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바쁘시잖습니까.”

“이런 시즌엔 별반 바쁠 것도 없어.”

“그래도, 인터넷방송이 원래 취미셨던 것도 아니고.”

“아, 자네 때문이잖나! 애들 지도하는 걸 낙으로 삼고 있었는데, 지나치게 가까이 두지 말라는 소리나 하니까. 그것 때문에 시간이 많이 비었단 말이야. 그래서 본 거야.”

“교수님. 방송에서 채팅 보셨겠지만, 교수님께선 저명한 석학이십니다. 인터넷방송에서 후원하시는 모습은 주변에 소문이 나기 쉽습니다. 결코 좋은 얘기는 안 나올 거고요.”

“허. 그걸 누가 모르나?”

“아신다면 더욱 이상한데요. 왜 보신 겁니까? 왜 제 방송에…… 저란 사람에게 그렇게나 관심을 두시는 겁니까?”

버릇없다 느낄 수도 있는 발언이라 생각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석사라는 기회를 안겨주고, 방송에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지적해 안계를 넓혀줬으며, 이제는 믿을 만한 인재까지 추천해주고 있는 사람.

그러니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는 게 합당할 터였다.

그렇지만 그의 관심은 분명 도가 지나쳤다.

92의 ‘관계’ 덕이라고 믿고 넘기기에도 미심쩍은,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집착.

그 근간을 모른 채 신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기에 내뱉은 질문에, 한효준이 흰 수염을 쓸어내렸다.

“허…… 그거 참. 그냥 알겠습니다 할 것이지는.”

“무조건 믿기에는 과분한 내리사랑 아닙니까.”

“알아. 알지. 그래도…… 후우. 자네, 소주 좋아하나?”

“술은 좀 곤란합니다.”

“아니, 마시자는 게 아니라. 이런 말 혹시 공감이 될까 싶어서 물어본 거야. 상담소는 멀고 소주는 가깝다. 들어봤나?”

인터넷 서핑 중에 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상담사를 지망하게 된 뒤로 이런저런 조사를 해왔기에.

“예. 상담소는 심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이죠. 그렇기에 심리상담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이들조차 상담소보다는 소주를 통해 문제를 회피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 내가 보면, 자네는 성장환경이 좋았을 거야. 그렇지?”

“예? 어…… 그리 유복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인 거 말고. 자네는 참 표정이, 사람이 밝잖아. 가정이 어두웠다면 그런 얼굴은 안 나와.”

얼굴 표현(facial expression)이 성장환경을 일부 암시해준다는 건 일상에서도 흔히 하는 이야기다.

심리학계에서도, 정설은 아니지만, 장애의 유무가 표정 발달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선 꽤 연구가 진척되어 있었다.

실제로 내 유년기는 가난하되 화목한 가정이었던 게 맞고.

그 점을 한효준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의 가면을 벗고 있을 때는 정말이지 괴팍한 표정만 보여주는, 저 교수가.

“교수님께선…… 그렇지 않으셨던 거군요.”

“허! 관상가 양반 납셨구만. 그래. 아버지라는 인물이 매일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둘렀어. 자세히 얘기할 문제는 아니고. 어쨌든 문제행동이 상당히 있었는데, 상담소엘 못 갔어. 나야 어떻게든 끌고 가고 싶었지만, 그 시절엔 흔하지도 않았고, 또…… 흠. 그래서 생각했던 거야. 국가적으로는 그래도 상담 전문가가 있을 테니, 경찰을 불러서 끌고 가면 어떨까 하고. 그런데…… 쥐뿔도 없더군. 순경들은 당신 신원만 확인하고 돌아가버렸어. 그 뒤로 주먹질이 더 거세어졌고.”

……처음 한효준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이 교수실에서, 그는 내 녹방을 보며 상담 과정을 캐물었다.

그게 부자간의 갈등에 관한 상담이었다.

씬보이라는 시청자는, 내 짧은 상담을 들은 뒤로 대화방법을 바꾸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

한효준은 그 사연을 꼬집어 물었다.

그건 어쩌면 불우한 과거의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아무튼…… 세상이 좋아지긴 했지? 이젠 거리마다 상담소가 참 많이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국가에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좀 멀어. 심리적으로 말이야. 그런 곳에 가면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 같고 그렇잖아. 그러니까 정말 상담 받아야 할 놈들은 계속 멋대로 살고 있고, 아무 잘못 없는 애들만 마음이 망가져서 상담소를 찾아오지.”

“예……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자네 방송은 안 그렇잖아.”

“예?”

“아무나 와서 볼 수 있잖아. 가해자도, 피해자도.”

“저, 교수님? 제 방송은 소소한 고민상담소일 뿐입니다.”

“그래? 정말로? 소소한 고민상담 말고는 안 할 거야? 자네 성격에 그럴 수 있겠어? 정말로? 그럼 여긴 왜 왔나? 방송 잘 되고 있는데, 왜 굳이 시간 내서 상담을 공부하러 왔나?”

……그 말대로다.

당장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해 심도 깊은 상담은 회피하고 있지만, 거기에 그치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진대수의 시청자 초대석 아이디어가 반가웠다.

하지만 인터넷방송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면대면으로도 어려운 것이 상담인데, 그걸 채팅과 방송으로 수행하다니요.”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래서 하는 사람이 없는 거야. 딱 피상적인 수준에서밖에 해줄 말이 없으니까. 그래서야 도움은커녕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지도 모르잖나. 헌데…… 자네는 되잖아. 자네는 그게 되잖아. 그 문자열 몇 개를 보고 속내를 짐작해내는 그런 마음을 가졌잖아. 그런 사람을 본 거야, 내가. 아 다르고 어 다른 마음의 미로 속에 있던 내가, 마음의 지도를 들고 있는 상담사를 만나게 됐다고. 그러니 가르치고 싶지 않을 수 있겠나? 어떻게든 붙잡고 싶지 않을 수 있겠어? 나는…… 이봐, 박 군. 나는 말이야. 자네한테 내 남은 인생을 걸어보기로 했어.”

그의 눈동자 안쪽에,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고통이 보였다.

나는 마침내 이 스승을 완전히 신뢰하게 됐다.

그렇기에, 사죄의 염을 담아 고개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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