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12장 - 상담사와 조직생활 (1)
오기철 교수가 날 알게 된 경위는 단순했다.
교수진 중 젊은 축인지라 학부생들과 사담도 나누곤 했는데, 실검에 오른 상담사가 있다는 얘길 듣고 찾아봤다는 것.
그 결과 내 방송 하이라이트를 몇 편 봤다는 것이다.
과연 입소문이란 게 무섭구나 싶었다.
설마 서울대 교수진 중에 날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이후 팬이 됐다는 말에는 약간 립서비스가 섞여 있겠지만, 표정에서 불쾌한 감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사실은, 내 상담을 인용해서 그릇된 ‘야매’ 심리학의 사례로 소개하려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지 않았다는 건 크게 실수를 한 구석이 없었다는 얘기.
그 사실에 안도감과 함께 작은 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오만한 상담사만큼이나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나를 믿고 찾아주는 내담자들을 위해서, 나만큼은 언제나 스스로를 불신하고 회의해야 한다.
그래야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담을 할 수 있을 테니.
어쨌든 오기철은 오래 헤매지 않았다.
이 교수님이 또 무슨 장단을 치시는 거야- 하고 중얼거리더니, 웃으면서 강의 PPT를 켰다.
“새로 온 청강생도 있고, 지난주 리뷰부터 갈게. 자, 정보처리의 흐름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다. 그치? 감각저장소에서 단기기억과 장기기억구조로 연결되는 흐름을 잘 기억해둬라. 그리고 형태 재인. 감각저장소의 정보들은 장기기억 내의 정보들과 비교해석된다. 그치? 그때에 비로소 뭐가 돼? 의미를 갖게 돼. 그 형태 재인을 위해서 장기기억 정보들이 어떻게 돼야 돼? 단기기억으로 인출돼야 해. 다들…… 응? 왜. 뭐? 농담 마라. 저기, 박대민 학생?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마흔일곱입니다, 교수님.”
“엇…… 어…… 하하. 이런. 이게 강의가, 존대를 하기가 조금 어려운 면이 있어요. 혹시 이해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요. 지식을 구걸하러 온 청강생일 뿐입니다. 얼마든지 편하게 수업해주십쇼.”
“아하하, 뭘 또 그렇게까지. 그럼…… 어, 이어가자.”
강의 면에서는 약간 학원강사 같았다.
연수 외에는 따로 교수법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 자기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강사의 말투를 인출(retrieval)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위엄은 느껴지지 않지만, 귀에는 쏙쏙 들어왔다.
그럼에도 수업에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내 옆자리로 옮긴 빨간 머리 준범장이 자꾸만 말을 걸어서.
“진짜, 와, 진짜 잘생기셨네요. 어떻게 이래요? 피부 완전 매끈매끈하신데요? 이게 캠빨이 전혀 아니었네요.”
“학생, 수업에 집중해야죠.”
“아…… 집중이 안 돼요. 와…… 연예인이랑 같이 앉았어.”
“연예인까지는 아니고요. 부탁해요. 나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면 내가 미안해서 계속 있을 수 있겠어요?”
“헉. 그, 그럼 안 되죠. 집중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한 5분쯤 귀를 여는 시늉을 하다가, 또 돌아보며 연습장에 뭔가를 휘갈기는 것이다.
「제 소개도 못 드렸네요^^ 저 장준범이라고 합니다 꼰마님!!! 아.... 근데.... 저 형님이라고 불러도 돼여?? ♥」
「형보다는 아저씨에 맞는 나이가 아닐까요?」
「안대여 안대여 ㅠㅠ 그럴수없어 영원한 형님이십니다!!」
뭐가 그럴 수 없다는 건지 원.
잘하면 아빠뻘도 될 수 있었을 아저씨한테 별소릴 다 한다.
그야, 내 외모가 ‘아저씨’의 장기기억에 매치되기엔 너무 어려져서 형태 재인이 어려운 까닭이겠지만.
그런 식으로 주변의 인지심리까지 관조해보는 수업 도중.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미리 무음 모드로 바꿔둬서 수업에 지장을 주는 일은 없었지만, 화면에 뜬 전화 발신자의 이름이 관심을 끌었다.
“……저, 장준범 학생. 나가서 전화를 받고 오면 실례겠죠?”
“예? 아뇨 아뇨, 교수님 그런 거 관대하세요. 성적만 잘 나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 요즘은 대부분 그래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교실을 나섰다.
그리고 민원식 차장의 전화를 수신했다.
[아, 부장님. 납니다.]
“……편하게 대민 씨라고 부르세요. 나도 그렇게 할 테니.”
[어. 음. 내가…… 그게 더 어색해서 말이죠.]
“그러면 편하게 부르시고요.”
[예. 전에 말씀드렸던 건, 처리됐어요.]
전에 말씀드렸던 건이야말로 내가 부득불 전화를 받으러 나온 이유.
그렇지만 벌써 처리됐다는 게 정말 뜻밖이었다.
“정말입니까? 아직 파트너BJ도 아닌데.”
[거기 큐에 이미 올라가 계시던데요? 그래서 얘기가 수월했습니다. 이력 짧다고 연이틀 만 명 넘긴 분을 일반BJ로 놓는 것도 웃긴 일이고, 컨테츠 특성상 모델 말고도 PPL이 쏟아질 게 분명하고. 그리고 논란만 없으면 승승장구할 것 같은 코어 팬덤까지 구축을 하셔서…… 이건 올려드리는 게 합당한 일이 된 거죠. 제휴팀은…… 내가 부탁하니 오히려 좋아하더군요. 안 그래도 눈치 보고 있었다나.]
이건 또 무슨 소릴까?
제휴사업팀 내부의 일을 하는데 민원식의 눈치를 봤다는 말이 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야 민원식이 날 싫어했음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3초쯤 고민한 뒤에야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VR 전공자로서 미래기획팀을 이끌고 있는 민원식이, 어쩌면 회사의 실세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조직생활이라는 것이 아마 그렇지 싶다.
평상시에는 직위 직책에 따라서 최소한의 위계질서가 형성되지만, 지금 프리월드처럼 회사 내의 캐시카우가 이동하는 격변기에는 그보다 라인과 전공이 중요해질 수 있다.
대표와 친하고 차기 프로젝트의 엑스퍼트인 민원식 차장이 권력을 획득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이다.
‘진단’이 낮았던 과거의 나는 그 기본적인 이치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대표에서 평사원들까지 그저 동등하게 대했다.
늘 웃기만 하고 파워를 만들 줄 몰랐다.
내가 있던 시절의 중간관리직 실세는 누구였을까.
나중에 편한 사람에게 한번 물어봐야 되겠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건 중요한 질문은 아닙니다만, 진 대표는 어떻게 설득하신 건지요?”
[예? 대표님이 막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한 일 아닙니까? 마지막에 그런 소리까지 했는데. 애초에 자기 손으로 자른 직원이 달갑게 보일까요.”
[아니…… 아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 그런데 부장님.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정말 달갑지 않은 사이면, 그날 내가 대표님한테 부장님 영상을 왜 보여드렸을까요?]
“음. 같이 보며 비웃으려던 건 아닙니까?”
[아니, 나 참. 뭘 꼭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봅니까? 대표님도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이런 소리까지 할 건 아니지. 아무튼 그래서 오늘 러프하게 미팅을 할까 하는데, 몇 시쯤 시간이 괜찮습니까?]
점심때 잠깐 만나는 걸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으며.
나는 민원식이 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봤다.
대표님도 사람이…… 까지 말했지.
문맥으로 보면 그렇게 나쁜 성격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야 할 부분인데.
내가 편견 속에서 대표를 악인으로 몰고 있다고 본 걸까?
그건 아무래도 좀 우스운 이야기였다.
회사의 사정이 곤란하다 말했다면, 그게 뻔한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앞장서서 연봉삭감을 감수했을 나다.
실제로 어려웠던 초창기 몇 년을 최저임금으로 버텼다.
그런 전우를 팽한 사람이 어떻게 선인일 수 있으랴.
민원식이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
햄버거 봉지를 들고 다가온 진대수는, 잔뜩 들떠 있었다.
“세상에 네상에 다섯상에! 일주일 만에 파비(파트너BJ) 달고 차기 프로젝트 메인모델까지! 우리 형님 너무 이뻐!”
“얼른 타기나 해. 빨리 먹고 이동하자.”
“거 봐요! 인맥이란 거, 쓰면 이렇게 좋잖어. 이제라도 팍팍 밀어붙이시니까 얼마나 좋슴까?”
“인맥으로 한 건 아니야.”
“아니에요? 아니면 어떻게 이게 되지? 불가능한 속돈데?”
……생각해보면 민원식과의 악연도 인맥은 인맥인가.
거기까지 설명하기는 민망해서, 그냥 햄버거를 꺼냈다.
하지만 대수는 식사보다도 호기심 쪽이 급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형님! 그건 그거고, 학교는 좀 어떠셨어요? 판교까지 갔다 와도 시간 괜찮은 거?”
“걱정했는데 다행히 허락해주시더라. 사실은 첫날이라 연구실 사람들이랑 같이 먹었어야 했던 거지만, 저녁에는 방송 때문에 미팅을 잡을 수가 없으니 말이야.”
“아니이, 저는 수업 여쭤본 거거든요? 어?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형님 같은 스타가 연구실 가주는 게 영광인 거지.”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라. 내가 무슨 스타라고.”
“엥? 뭔 소리예요? 설마 학교에 알아보는 애들 없었어요?”
“……있긴 했지.”
정확하게는 학부생 중 반 이상이 나를 알아봤다.
내 홍보대사가 된 장준범과 심리학과라는 특성이 작용한 결과겠지만, 이 정도라면 타과에서도 한두 명 정도는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많은 내담자를 만나봐요’ (21011/22000)」
NBSC에 등록된 내담자의 수는 아직 2만여 명.
그러나 그건 내가 출연한 방송을 통해 소통한 사람들의 수일 뿐, 녹화방송, 탐방, 유튜브 하이라이트 영상, 커뮤니티 사이트 짤 등을 통해서 알게 된 이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대수야. 지금 구독자 수가 몇이라고?”
“이제 17만 좀 넘었죠.”
“그렇구나. 보람이 야방 하이라이트 조회수는?”
“어제 100만 찍고 이제 103만 정도?”
103만 명.
그들 중 여러 번 재생을 한 케이스도 있을 거고 앞부분만 보다가 끈 시청자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그로 썸네일을 생각해보면 50만 이상은 유효시청인구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따지면…… 전국에서 날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이미 100만에 근접한 것은 아닐까.
“이게 진짜 아쉽단 말이죠. 100만이 봤으면 100만이 다 구독을 해야 되는 건데 말이야.”
“너도 참. 103만 중 17만도 대단한 비율인 거잖아.”
“그렇긴 한데, 솔직히 형님 방송은 더 나와야 되거든. 아예 보기만 하면 다 구독을 해야 되는 각 아닙니까?”
“전혀 아니다. 누누이 말했다시피, 나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못 돼. 네가 눈에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는 거야.”
“색안경이면 나쁜 쪽 아닌감요?”
“편견이란 의미니, 주로 나쁘게 쓰이긴 하지.”
“헤헤. 전 그냥 그거 쓰고 있을랍니다. 아무튼…… 아, 드시죠. 드세요 드세요. 가면서 들어도 되는 얘긴데.”
짧은 식사 동안 나는 NBSC 쪽을 고민했다.
연구실 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사고자 exp를 온존해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갈등의 키워드만 알아내면 되는 문제였으니.
그 키워드로 속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일정 시간 라포 형성만 하면 되기에, 있는 exp를 아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순위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관계’를 100으로 올리는 게 우선일까, 아니면 ‘진단’이나 ‘화술’을 80으로 올리는 게 더 시급한 일일까?
“대수야. 먹으면서 들어. 너는, 내가 어떤 부분이 더 발전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아? 예를 들면 말을 더 잘했으면 좋겠다거나, 아니면 더 속을 잘 읽었으면 좋겠다거나, 아니면 더 마음이 편해지게 해줬으면 좋겠다거나.”
“우음…… 놉.”
“어?”
“전혀 필요 없는데스? 형님은 이미 완벽 그 자체죠, 흐흐.”
아무런 도움 안 되는 대답이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
퇴사 후 판교 사옥을 방문하는 것도 벌써 세 번째.
그렇지만 이전까지는 1층 카페에서 돌아섰던 발걸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 층으로 올라가는 건 거의 2주 만인지라, 절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형님? 왜 그런 표정이심까? 혹시 긴장하셨어요?”
“으, 응. 그런 것 같다. 기분이 묘하네.”
“묘할 게 뭐 있대요? 쓰레기 같은 회사 박차고 나왔다가, 실력으로 금의환향하고 계실 뿐인데. 당당하게 팍 갑시다.”
“쓰레기 같다니. 그런 말…… 앗. 오랜만이에요.”
열린 엘리베이터 문 앞에 직원들이 서 있었다.
제휴사업팀 소속 사원과 대리들.
날 보고 얼음이 돼 있다가, 잠시 후에 허리를 접어 보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장님!”
“어…… 그러지들 마요. 이제 부장도 아닌데. 아, 어서들 타요. 대수야, 비켜드려. 자 자, 어서 타요.”
그렇게 직원들을 보낸 뒤, 진대수가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크. 간지 좔좔.”
“응? 무슨 말이야?”
“형님의 온몸에서 간지가 콸콸콸!”
“……너 왜 그러냐? 햄버거 먹고 체한 거야?”
“엥? 아니거든요? 하여튼 칭찬 싫어하셔. 갑시다 형님.”
칭찬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이해가 안 됐던 건데.
대수는 가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다.
그에 반해, 첫 미팅의 담당자는 다 아는 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다.
“잘 아시겠지만, 형식상 말씀은 드려야 돼요. 여기 서명하시고 나면 BJ꼰마님은 프리TV의 파트너BJ로서 별사탕 수익의 80%를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대신 이후 플랫폼 내 모든 수익사업에 있어서 회사를 거치셔야 됩니다. 물론 회사에서 연결해드리는 PPL도 많고 하니까 이건 손해는 안 되실 거예요. 일종의 MCN 매니지먼트인 셈이죠. 그리고 다음으로…… 근데 부장님. 아직 환급하지 않으신 별사탕까지도 적용되는 거 아시죠? 그것만 해도 벌써 상당한 액수겠네요. 하핫.”
제휴사업팀 정해진 과장.
얘길 들어보면 보수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더라.
하필 이름까지 ‘정해진’이라서, 주변 직원들이 ‘정해진 말만 하는 로봇’이라는 식으로 험담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그게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앞에선 이렇게 장난스런 얘기도 잘 하는 친구라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역시 내 높은 ‘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그의 너스레는, 내게만 특별히 보여주는 일면이었다.
“정 과장. 그 정도면 됐어. 정말 잘 기억하고 있어. 그런 얘기보다 남는 시간 동안 한담이나 나누자. 그래도 괜찮지?”
“음…… 하긴 뭐, 모든 업무에 빠삭하셨던 우리 부장님께 제가 설명을 드리는 것도 웃긴 노릇이겠죠? 하하.”
“그래, 겨우 2주 텀이니까. 일단 이 친구랑 서로 모르지? 대수야, 정해진 과장이야. 정 과장, 이쪽이 내 디렉터 봐주고 있는 진대수. 왜, 예전에 은진이 메이킹했던 그 친구야.”
“아, 그 찐데스라는 분? 반갑습니다. 정해진입니다.”
“하하핫! 부럽네요. 안 정한 거 말곤 다 정해진 거니까?”
나와 편하게 대하던 정해진에게 드립을 시도한 진대수는, 금세 무안해지고 말았다.
정해진이 정색하고 냉담하게 노려봐서.
그러게 이름 드립 같은 건 조심해서 쳐야지.
“정 과장, 미안해.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은 아니야.”
“아, 예. 뭐 그랬겠죠.”
“그리고…… 아, 내가 실은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 일이랑은 전혀 무관한 일이긴 한데, 몇 가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아, 그럼요. 위에는 15분까지 올라가시면 됩니다. 제가 일부러 넉넉하게 잡았으니까, 그때까지 뭐든지 물어보십쇼.”
“그래. 별다른 얘기는 아니고, 요즘 회사 실세가 민원식 차장이 된 모양이야? 그렇지?”
“아…… 예. 그렇죠. 뭐…… 전공도 전공이고, 이래저래요.”
그래서 핵심부서인 제휴사업팀조차 눈치를 봤다는 거로군.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미래기획팀은 완전히 쩌리였는데.
“그렇구나. 참, 흥미로운 일이네. 아, 그리고 정 과장. 혹시 이것도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 전까지 실세는 누구였어? 내가 이쪽으로는 눈치가 없어서 말이야. 회사생활 하면서도 전혀 모르고 살았지 뭐야.”
“……예?”
정해진이, 정말 해석하기 힘든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무슨 그런 말씀을…… 부장님이셨잖습니까?”
“응? 하하, 그런 말 마. 말만 최고참이지 끗발도 없었잖아.”
“아니, 끗발 말입니다. 부장님이 상무님보다 위셨잖습니까?”
……정말 해석하기 힘든 소리까지 듣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