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9장 - 사랑받는 상담사 (1)
사람 사이의 관계란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이쪽에선 칭찬 받는 사람이 저쪽에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최고의 인품이라 일컬어지는 인물이, 때로는 가족에게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NBSC의 ‘관계’가 뜻하는 게 사회성은 아닐 터였다.
그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누군가와 마주했을 때에 그와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가까워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92로 증가한 ‘관계’는, 분명 그랬다.
아주 명확하게 수치화가 가능한 개념이었다.
“최고시청자 8천 명에, 별사탕이, 4만이라고?”
“예압. 쭉쭉 올라가고 있네요. 형님 이제야 인방에 좀 적응하고 계신 듯? 팬클럽 좀 더 쌓이고 나면 일평균 5만 별 정도는 나올 것 같네요. 역시 내가 선택한 능력자!”
5만이 아니라 4만만 해도 400만원.
하루 4만 개는 최상위 BJ들에게도 드문 일이다.
미션 방송이나 ‘백두산’이나 ‘실드’ 같은 특별한 흐름 속에서 10만 개 넘는 별폭탄이 터지며 평균치가 올라갈 뿐.
기본 컨텐츠만 진행해서 4만 개를 받는 BJ는 극소수였다.
내가 그 극소수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고민상담만 진행하면서, 도중에 방송과 무관하게 ‘ㅇㄹㅇ’ 청탁까지 진행한 결과가, 환급액 240만원.
단순히 인방에 적응했단 이유로 나온 결과일 리 없었다.
물론 상담 회기가 반복되면 점점 라포가 깊어져 상담의 효율이 높아지는 건 일반적인 사실이다.
그렇지만 반복할수록 신선도는 떨어지는 법.
방송이라는 측면에서는 흥미도가 줄어들어야 마땅했다.
그러니…… 이게 바로 92의 ‘관계’인 거겠지.
스스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니었다.
‘외모’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화술’이나 ‘진단’이 그랬듯 달라진 사고방식을 느끼게 되지도 않았다.
그저 날 대하는 시청자들의 적극성만이 달라진 것이다.
대체 어디에서 나온 힘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음…… 지금 큰손들 비중은 어떻게 돼 있어?”
“전체 액수 대비 2% 이상으로 따지면, 여덟 명이에요. 케바케, 마구니, dosena, 보람찬하루일을, 은진알통-”
“대수야. 님 자를 붙여야지.”
“헤헤. 아 그럼요. 우리 고객님들이신데. 거기에 소망강처녀님 꼰마야놀자님 세이클럽님, 이렇게 여덟 분요. 보람찬님이랑 은진알통님은 딴 방 열혈이라 요즘은 좀 쉬는 느낌이고요. 케바케님이랑 야놀자님이랑은 그냥 심심하면 100개씩 쏘는 큰손. 마구니님 dosena님은 마음에 드는 상담 나올 때 한 방씩 터뜨리고요. 지난번 연애상담에 만족하셨던 소망강처녀님이랑 늘 진지하신 세이클럽님이 요새 뜨는 열혈이시고.”
여러 차례의 후원 덕분에 익숙한 이름들이다.
특히 세이클럽의 경우 김지연 상담사의 닉네임.
하지만 그 외에도 무수한 후원자들이 있을 터였다.
“여덟 분을 제외하면?”
“좀 많어요. 이게 진짜 좋은 신호인데, 애청자 중에서 팬 비율이 반이 넘어요. 건빵이 별로 없는 거야. 그래서 액수로 봐도 열혈들이 한 30 정도고 나머지 70은 무수한 팬들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슴다. 탑급 남캠들도 열혈 비중이 보통 50은 넘거든요? 근데 그러면 좀 의존적이 되기 쉽죠. 우린 열혈도 10위 밑으론 1000별 정도예요. 19위에 진석이도 있고요.”
열혈팬이란 후원으로 팬 가입을 한 이들 중 상위 20위까지.
건빵이란 후원을 한 번도 안 한 시청자들을 의미한다.
열혈팬 의존도가 낮다는 건, 몇몇에게서 많은 돈을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얘기였다.
분명 좋은 신호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총액.
오늘의 4일차 방송으로 누적 별사탕 10만 개를 돌파했다.
일반BJ 환급 비율로도 600만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대수야. 오늘 늘어난 팬클럽이 몇 명 정도 돼?”
“헤헷. 오늘 팬가입 좀 많았던 걸 느끼셨군요? 바로바로, 2,360! 오늘만 천 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장난 없죠?”
“……장난 없는 수준이 아니잖아?”
“좀 쩔긴 하죠. 꼰마신화전기! 근데 뭐, 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형님 방송은 충분히 이럴 수 있는 수준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해?”
“엥? 아, 본질적인 질문인가? 오케이. 잘 한번 들어보십쇼.”
진대수는 해외파 교수들처럼 꽃게손을 만들었다.
“형님. 형님이 방송 진행하면서 센터 몇 번이나 보게요?”
“어, 센터?”
“캠 있는 쪽이요. 형님 모습 나오는 메인 모니터 중앙, 몇 번이나 보신 것 같아요?”
“어…… 자주 보지 않나? 네가 외모 점검하라고 시키니까.”
“그 소릴 왜 하는데요? 제가 맞은편에서 보면, 형님 방송하는 내내 채팅창만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어떤 표정 짓고 있었는지도 감 못 잡으시는 거지. 차원이 다른 집중력이란 겁니다. 그래서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와 여기는 진짜 소통을 잘해주는구나, 좆목 하고 놀거나 별 유도하는 게 아니라 하나라도 더 들어주려고 애쓰는구나, 이렇게 느끼게 되죠.”
좆목이라는 건 X 같은 친목질이라는 의미다.
주로 열혈팬들과 사담을 나누며 컨텐츠를 도외시한다는 뜻.
그리고 별 유도는, 더 많은 별사탕을 받기 위해서 시청자들의 자존심을 긁거나 도발하는 행위를 뜻했다.
“음…… 그렇지만 나야 상담 컨텐츠니까 그런 거잖아?”
“아니죠. 보이는 라디오에도, 소통이라고 켜놓고 푸념하고 지 자랑하고 그런 애들 많아요. 되도 않는 드립으로 맥 끊는 하꼬들은 더 많고요. 형님은 그런 게 없죠. 오직 컨텐츠. 누가 별을 쏘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우직하게 소통만 하고 있으니까 민심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사실 역차별인 셈인데, 큰손들은 역으로 컨텐츠 자체에 만족하고 있고. 그야말로 공방일체 문무겸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말하자면 경청의 힘이라는 건가.
다른 BJ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채팅창 읽는 데에 할애하는 점이 매력포인트라는 말 같았다.
그래서 소수의 과시가 아닌 풀뿌리 후원이 이어져, 8,325명의 시청자들 중 기존 팬이었던 1,415명을 제외한 945명이 새롭게 후원자로 가세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에 대해 진대수는 당연한 결과라며 기뻐하는 중이지만……
컴공인인 나는 고민에 빠졌다.
경청이라면 이전에도 의무적으로 해왔던 일이다.
92의 ‘관계’가 만든 변화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대수야.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
“엥? 갑자기 그런 고난이도 질문을? 어디 보자…….”
“아니, 외모 말고. 방송 진행하면서 말이야.”
“방송하면서? 글쎄요? 왜요, 뭐 다른 시도 하셨어요?”
“아니…… 그냥.”
그저 하던 대로 소통했을 뿐이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으며 새로운 기술도 쓰지 않았다.
그 평범한 방송에 어떤 차이가 있었기에, 무수한 시청자들이 결제와 후원이라는 불편한 과정을 감수하게 된 것일까.
“전 모르겠던데? 솔직히 오늘은 미션 고민하느라고 방송 제대로 못 봤어요. 아니 오늘도 계속 업만 쌓였잖어? 당장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계속 이러면 긴장감이 약해질 거란 말이죠. 형님 방송은 이상한 포인트에서 어려워.”
“……점점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겠어.”
“그렇겠죠? 아, 잘난 BJ 둔 디렉터는 이게 힘들구나.”
내가 잘나서는 아니고, 그 역시 NBSC 덕분.
‘관계’를 올리고 나서는 무슨 말을 하건 호응부터 나왔다.
욕을 지껄여도 용서받을 수 있을 법한 그 분위기 속에서는, 다운 버튼을 눌러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시점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NBSC의 ‘관계’란 무엇일까.
나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유로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92가 아닌 82에서 시작해야 하리라.
어쩌다 이아리의 키다리아저씨가 됐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게 내 현실이니.
메타인지적인 로그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
송성희와 우선희는, 동기이자 동갑내기.
키도 비슷하고 둘 다 단발에다 이름까지 비슷했던 까닭에, 초기에는 두 사람을 헷갈리는 선배들이 많았다.
이후에 둘이서 모종의 합의를 봤는지 성희 쪽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 둘과 점심약속을 잡고, 나는 다시금 본사로 향했다.
이틀 전 현수를 만나러 왔을 때는 고민에 빠져 수첩만 보며 들어섰던 카페.
당시 셀카를 찍어갔던 아르바이터가 오늘도 근무 중이었다.
“어서 오- 왓! 꼰마님!”
“다시 뵙네요. 에스프레소 한 잔 부탁드립니다.”
“와, 오늘도요? 그거 무슨 맛으로 드세요?”
“원두 맛이겠지요.”
“와…… 네, 저, 4천원입니다. 저, 스탬프 찍어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오늘은 진동벨 주세요.”
“아, 아뇨! 제가 가져다드릴게요. 헤헤.”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카운터 앞 테이블에 앉았다.
사방이 트여 있는 자리인지라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들과 간간이 눈을 맞추고 미소로 인사를 건넸는데, 일부는 어떡해 어떡해 외치며 셀카를 찍어갔고, 그게 아니더라도 대체로 호의, 호기심, 가벼운 흥분 등을 보여줬다.
진단을 ‘70’으로 올린 뒤로는 표정을 읽는 게 수월해졌다.
그 전까진 친한 사람들 속내도 잘 몰랐는데.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면서도 부하직원들에게 사랑받았던 게, 바로 82의 ‘관계’ 덕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 송성희는 내게 ‘아빠’라는 별명을 지어주고는 정말 친아빠처럼 따르곤 했다.
부장과 사원이라는 간극에 더해, 다른 팀에 큰소리 한번 못 치는 무능한 상사였음에도.
그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점심 약속을 잡은 참이었다.
그랬는데, 그곳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방문했다.
“어? 부장님! 안녕하세요!”
“어…… 정 과장.”
제휴사업팀 정해진 과장.
명현수 과장과 동기지만 사이가 친하지는 않아서, 나와도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할 기회는 없었다.
애초에 서로 얽힐 일이 없는 팀이었으니.
그런 친구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내 맞은편에 착석했다.
“잘 지내셨죠, 부장님? 송별회도 안 해서 진짜 아쉬웠어요.”
“음. 프로젝트 때문에 회사 전체가 바빴잖아.”
“그래도요. 창업공신을 그렇게 대우하면 안 되는 건데.”
“난 괜찮아. 이제 다른 일도 하고 있고.”
“아, 부장님!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언제 한번 연락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희 요즘 부장님 방송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도 깨끗하시고 방송 내용도 훈훈하고, 딱 PPL 들어가기 좋은 사이즈거든요.”
“……벌써? 좀, 성급한걸?”
이제 고작 4일 방송한 일반BJ다.
주로 파트너BJ들의 PPL 계약을 위해 뛰는 이 팀에서, 내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는 안 되는 시점이었다.
“하하. 제가 좀 밀어붙이고 있거든요. 이 정도면 바로 파트너 만들어드려도 괜찮지 않겠냐고.”
“정 과장이 날……? 왜?”
“왜는요. 방송이 좋잖아요? 그리고 부장님이시기도 하고.”
“이젠 부장 아니잖아?”
“에이. 그래도 옛정이 있지. 딴 놈들 해주는 것보다 부장님 밀어드리는 게 저도 훨씬 기분이…… 아, 나왔네. 부장님, 저 미팅 때문에 커피 사러 온 거라 바로 올라가야 됩니다. 요청하실 부분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혹시 개별 PPL 들어오셨으면 파트너 안 찍으시는 것도…… 아, 늦겠다. 또 뵙겠습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슝 가버리는 태도가 미울 건 없었다.
저쪽 팀이 대접하는 사업체들은 투자자니까.
회사의 명운이 걸린 업무이기에, 언제나 저렇게 바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미래기획팀과는 극과 극.
늘 느긋하게 내부 회의만 하는 우리 쪽에, 악감정까진 아니더라도 호의는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저 태도인 것이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진짜 미쳤어 미쳤어! 볼수록 잘생겼잖아요? 난 당연히 캠빨이구나 했는데, 아니잖아? 어떻게 이래요? 성형 하고 그럴 시간 없었는데? 그냥 닮은 사람 아냐? 부장님 동생 분?”
“……민망하니까 그만해라.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아니 진짜루요. 부장님 그동안 특수분장하고 사셨어요? 머리 좀 넘겼다고 어떻게 이렇게 되시는 거지? 미쳐 미쳐. 이런 미남이 우리 팀에 있었네. 와, 등잔 밑 겁나 어두워.”
송성희는, ‘참견쟁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원체 활달하고 유쾌한 친구다.
그래도 회사에 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상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아주 삼촌 대하듯이 했다.
그에 비해 우선희 대리 쪽은 훨씬 어른스런 느낌.
둘이 있을 때도 주로 성희 장난을 받아주는 쪽이라 했다.
퇴사한 내게 말하는 투 역시 성희보다는 한참 더 차분했다.
“부장님, 진짜 여기 괜찮아요? 꽤 비싸요, 여기.”
“음, 괜찮아. 이젠 수입도 꽤 되니까.”
“그래도요. 어차피 번 만큼 기부하실 거면서.”
“어…… 번 만큼 기부한다고는 말한 적 없는데?”
“저 눈치 빨라요, 부장님.”
“하하. 그거 참.”
그렇게 소갈비집에 들어가 10분.
두 사람으로부터 회사 안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주로 새 프로젝트에 대한 푸념이었다.
“미래사업이다 블루오션이다 하는데, 전 솔직히 모르겠어요. VR 그거 이미 여기저기서 하고 있는 거잖아? 사실상 후발주자인 셈인데, 무슨 컨텐츠로 거길 뚫느냐는 거죠.”
“다 대표님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지.”
“생각은 무슨? 아빠 퇴사시킨 것만 봐도 돌대가리가 분명해요. 우리가 추진했던 아이디어들이 훨씬 좋은데.”
“……누가 들을라. 그리고 회사 밖에선 아빠라고 부르지 마.”
“하핫, 그럼 오빠라고 할까요? 얼굴은 오빠잖아?”
성희가 이토록 내게 친근하게 구는 이유는, 참 모르겠다.
현수야 첫인상도 좋았던 데다 10년의 정까지 쌓여 그런다지만, 이 친구한테는 따로 밥 사주는 것조차 이번이 처음인데.
그러나 직접적으로 물어보기엔 민망한 일.
나는 조심스레 화제를 옮겼다.
내가 알지 못했던 박대민 부장 쪽으로.
“요즘 생각하는데, 내가 참 나쁜 상사였던 것 같아. 다른 팀에 요청해야 할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팀원들에게 짐을 많이 지우지 않았나 싶어.”
“네에? 와. 선희야, 부장님 이상해.”
“그러게. 부장님, 이상하세요.”
“……왜 그래? 사실이 그렇잖아?”
“전혀 아닌데요? 그야 프로젝트는 계속 물먹고, 다른 팀 일 떠안게 되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 팀이 제일 편했는데요?”
“그랬어?”
“네. 선희야, 말씀 좀 드려봐.”
“어…… 저도 좀 당황스럽네요. 부장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 저흰, 부장님 와룡이라고 불렀어요.”
내가, 와룡?
“평소에 허허 웃으면서 다 도와주고 다니셨어도, 필요한 건 다 얻으셨잖아요. 그것도 주는 사람 기분 하나도 안 나쁘게.”
“내가 뭔가를 뜯어낸 적이 있었던가?”
“네. 매번요. 하하호호 이런저런 얘기 하시다가, 원하는 거 얻고서야 돌아가셨어요. 업무 분담이 아니면 비품이라도 받아내셨죠. 부장님 가시고 나면 저희 팀장님 얼굴 참 볼 만했어요. 씩 웃으면서 모니터 보고 계시다가, 잠깐 뒤에 고개 갸웃거리면서 물어보는 거예요. 잠깐만, 이럼 우리가 손해 아냐?”
……그것도 ‘관계’의 힘인 건가.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이득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성희가 화장실에 가서, 우선희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선희 씨. 이런 질문이 부끄럽긴 하지만, 꼭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성희 말인데…… 나한테 왜 잘해주는 걸까?”
“앗. 왜요? 성희가 부장님 남자로 좋아하는 걸까봐요?”
“어? 어…… 그건 너무 말도 안 되는데. 전혀 아니야.”
“하핫. 열 살만 젊으셨어도 가능성 있었을걸요? 근데 그런 건 직접 물어보시지 그래요?”
“그게…… 민망해서.”
“되게 쉬운데. 부장님은요…… 봐요, 지금도. 이렇게 아빠처럼 보시잖아요. 남 아닌 것처럼, 이산가족 상봉한 할아버지처럼. 음, 이건 말씀드려도 되려나? 성희가 전에 그랬어요. 부장님이랑 있으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대요. 이 사람은 절대로 나한테 나쁘게 대하지 않는다는 걸 믿을 수 있어서, 세상과 싸우려고 곤두세웠던 가시들을 접을 수 있다고…… 앗.”
“아 뭐야 뭐야! 왜 나 오니까 조용해져? 둘이 무슨 얘기 했어요? 내 흉 봤죠? 부장님, 선희가 뭐라고 욕했어요?”
송성희가 잔뜩 부아가 나서 따져드는 시간 동안.
묵묵히 그 억측들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인간은 호구가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착해져도 괜찮은 세상이었다면, 다들 그렇게 됐을 거라고.
그리고 난…… 착해져도 괜찮은 세상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