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8장 - 목마른 상담사 (3)
우리의 상담은 사실 특이케이스였다.
그래서 내 조카인 걸로 둘러대고 진행하려 했는데, 늦게부터나마 어제 방송을 본 김지연이 사정을 꿰고 있었다.
“박대민 보호자님께서 예약시킨 이아리 양이, ‘아리아리’죠?”
“아, 예. 죄송하게 됐습니다. 속이려고 해서…….”
“괜찮아요. 나쁜 의도가 아니잖아요. BJ가 시청자 데려왔다고 하면 상담 과정에 편견이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러신 거잖아. 아무튼 그런 거면, 같이 들어오실 거죠?”
“예. 아리한테 비밀보호 서약은 했는데, 또 필요한 게?”
“……자발적으로 깐깐하시네요? 그 정도면 됐어요. 아리 양?”
김지연이 이아리를 상담실로 데려온 뒤.
눈을 부릅뜨고 관찰한 그 회기는, 정말 상담 같지 않은 방식이었다.
적어도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아, 그랬어? 목소리 때문에 반해버린 거야?”
“네에. 아저씨 목소리…… 좋아요.”
“그러게. 언니도 그 생각 했어. 얼굴도 멋있진 않고?”
“에헤헤.”
“아리야, 여기 종이에 한번 아저씨를 설명해볼까? 자, 세 글자로 언니 말을 이어가는 거야. 첫째, 아저씨의 외모는?”
“헤헤…….”
“짱멋있? 하하. 그러네. 그러면 아저씨의 성격은?”
“……히힛.”
“천사님? 에이, 이건 너무 갔는데?”
“아닌데…… 맞는데…….”
내 얘기였다.
옆에 사람 앉혀놓고 아저씨 아이돌로 만드는 중이다.
낯부끄러워서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내 얘기가 일단락된 뒤에는 가정 얘기로 옮아갔다.
술을 좋아하지만 잘 놀아주는 아빠, 잔소리가 많지만 맛있는 밥을 해주는 엄마, 자꾸 귀찮게 구는 어린 남동생.
그런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을 또 오갔다.
심층적인 표현 면에서는 문장완성검사가 계속 병행됐고.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라포 형성을 위해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 시간 내내 주변만 에둘러가는 게 신기했다.
이후, 예약된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아리를 인형과 함께 쇼파에 앉혀두고서야 그 이유를 듣게 됐다.
“아, 힘들었다. 전 청소년상담이 제일 까다로운 것 같아요.”
“성인 상담과는 많이 다른가요?”
“그렇죠. 일단 애들인지라 정신연령 편차가 커요. 상처도 훨씬 쉽게 받고, 부정적 전이(기존의 관계를 상담사에게 투사해 감정적으로 대하는 일)도 쉽게 일어나고. 각각의 사고발달 수준에 따라서 신뢰관계 형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아리 같은 경우엔 그 퀄리티월드에…… 아세요?”
“압니다. 글라써.”
“정말 공부 열심히 하고 계시네요? 아리는 사고발달이 아직 초등학생 수준에서 못 벗어난 것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우선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상들, 퀄리티월드의 사진들을 재점검한 거예요. 제가 거기 들어가기 위해서.”
임상심리사 글라써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모든 것들이 담긴 마음의 사진첩을 퀄리티월드라 명명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기에 그 얘기 자체는 이해가 됐는데……
딱 한 가지가 의아했다.
“그럼 제 얘기는 왜 하신 건지요?”
“어, 박대민 씨요? 왜는요. 제일 뚜렷한 사진이었으니까죠.”
“……제가요? 오늘 처음 만난 사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요. 저 나이 소녀들 마음이 얼마나 쉽게 요동치는지 모르시나봐요? 어렸을 때는 연애 안 하셨어요?”
“공부만 하느라…….”
“아하. 음, 정확하게는 어제 상담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될 수가 있어요. 백마 탄 왕자님이란 클리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게 사회문화적 인지 때문인지 여자애들의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 성적인 의미는 아녜요. 요즘 애들이 빨리 여물긴 하지만, 아리는 아니니까.”
즉, 나는 이아리란 소녀에게 왕자님이라는 얘기……
그건 좀 민망해서, 키다리아저씨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꽤 좋은 인상을 준 모양이군요.”
“그리고 가족 얘기는, 꼭 퀄리티월드가 아니더라도 초반에 접근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가족역동, 아시죠?”
“아, 예. 가족 사이의 관계가 패턴화된다는……. 그렇지만 그건 문제행동에 대한 상담에서나 쓰이는 것 아닙니까?”
“주로 그쪽에서 강조하지만,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는 데에도 유용해요. 가족역동을 알면 내담자의 자아분화수준을 이해할 수 있죠. 그걸 모른 채 섣불리 상담했다간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도 있어요. 다행히도 아리는, 그쪽으론 생각보다 괜찮네요.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활기찬 게 그 덕분이겠죠.”
자아분화수준이란, 정서와 사고가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는지를 표시하는 척도다.
그게 낮은 수준이면 사고가 정서에 지배되어 타인의 정서에 융합당하거나 역기능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
그 측정에는 테스트 문항이 별도로 존재하지만, 첫 회기라면 테스트보다는 간접적인 관찰이 유용하다고 했다.
그래서 라포 형성과 동시에 가족역동을 살폈다는 얘기다.
한순간 슬픔이란 정서에 잠식되어 자살까지 기도했던 아리지만, 자아분화는 잘 되어 있는 모양.
그건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그 자해가 중독성 습관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테니.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 문장완성검사로 진행한 이유도 아시겠어요?”
“아, 예. 내성적인 청소년들은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게 본심에 더 가깝기 때문이죠? 책에서 본 것 같습니다.”
“짧은 기간에 많이 읽으셨네요. 꼭 청소년들만 그런 건 아니고, 성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케이스가 꽤 많아요. 특히 아리 같은 경우엔 애가 심하게 순해요. 쑥스러워서 감정을 잘 표시하지도 못하고요. 아마 그런 점도 친구들이 아리를 쉽게 괴롭힐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대민 씨 보면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웃더라고요? 그래서 퀄리티월드인 걸 확신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 거였군요. 전 원래 활달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하핫. 그래서 청소년상담이 힘들어요. 하필이면 이런 케이스 들고 오신 게 참 밉네요?”
밉다고 말하면서도 샐쭉 웃고 있긴 하지만.
내내 밝은 표정으로 상담 스킬들을 알려준 김지연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그녀는 내가 상담사를 목표로 하는 BJ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은근슬쩍 스킬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 친절한 스승에게 조금쯤은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저, 말씀드리는 게 늦어져서 또 죄송한데…… 사실 제가, 하루빨리 실제 상담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방송에서 내담 지원자를 찾았던 거예요.”
“네. 그런데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제 욕심에 선생님께 이런저런 것들을 여쭙고 있다는 겁니다. 비겁하게 이걸 말씀드리지 않았던 걸 용서해주세요. 상담 비용에 추가로 교습료까지 지불하겠습니다. 아, 혹시 스파이 같아서 불편하다고 느끼신다면, 이후 회기에서 저는 빠질게요.”
그 말에 김지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알고 있었는데요?”
“예……?”
“그러실 거라고 생각해서 자세히 말씀드린 건데. 좀 도움이 되실까 해서요. 교습료도 상담료도 안 주셔도 돼요. 어차피 아리는 앞으로 박대민 씨가 맡으시면 되니까요.”
“어, 예?”
“애가 착하다고 해서 쉽기만 한 건 아니에요. 아리, 마음에 공고한 벽이 있어요. 그래서 퀄리티월드에 단기간에 들어가긴 힘들 것 같아. 그러니까, 이미 그 안에 계신 분이 하세요.”
“……그렇다고 해도, 저 같은 게 이런 민감한 상담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생님처럼 경력이 있는 분이 맡아주셔야죠.”
그 순간, 김지연이 잔뜩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휴. 부끄러운 얘기부터 시키시네요?”
“예? 제가 그랬어요?”
“네. 상담심리사에 자격증이 있고 그 안에서 1급 2급을 또 나누지만, 1급 딴 저도 이 세계에서는 햇병아리에 불과해요. 더 몇 년을…… 아마 평생을 공부해도 제대로 된 상담 한 번 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아리하고의 관계도 그래요.”
“그러니 더더욱 안 되는 일 아닙니까? 전 거의 달걀인데.”
“달걀? 하핫.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무수한 이론과 스킬을 갖춘 상담사들이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계시지만, 사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큰 위로를 받는 건…… 상담소에서가 아니잖아요?”
그건,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사회심리학을 공부할 때 다양한 사례들을 읽은 바 있다.
파편화된 사회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증언들.
개중에는, 가족의 인정이나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격려로 삶을 뒤바꾸는 충족감을 느꼈다는 얘기가 가장 많았다.
김지연은 그 포인트를 지적하고 있다.
내가 이미 이아리에게 가족 같은 신뢰를 주었다는 점을.
“사실은 사회생활 하는 인간 모두가 상담사예요. 복잡한 스킬도 복잡한 윤리규범도 타인이기에 필요한 일들이죠. 더없이 지지적인 관계…… 따뜻한 퀄리티월드가 돼주는 거야말로, 상담의 가장 중요한 원리예요. 우리가 왜 문제행동 볼 때마다 가족 집단상담을 당부하겠어요? 남이 백 마디 해주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한마디가 더 중요하니까 그래요.”
“……그래서, 아리에겐 제가 적격이라는 거군요. 이미 지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니.”
“네. 전 방법만 알려드릴게요. 상담은 왕자님이 하세요.”
“왕자님은 좀……. 그리고 그렇다면 더더욱 교습료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됐어요. 다른 좋은 일에 쓰셔야죠? 별사탕 받으신 셈 치세요. 음, 사실은 어제도 드렸는데. 저, ‘세이클럽’이에요.”
간밤에 10만원을 후원했던 닉네임의 주인이, 청소년 상담료 10만원을 마다하며 활짝 웃는다.
그 웃음이 그저 개운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어째선지 조금쯤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김지연 선생님. 왜 후원까지 해주신 겁니까? 그때는 자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랬죠. 테스트 당했다고 생각했어요.”
“기분 나쁘지는 않았습니까?”
“기분 나빴죠. 그런데, 어제 상담하시는 거 보는데…… 그냥 좀 그렇더라고요. 이제 공부를 계속 하시면 알게 되시겠지만, 저희는 경청도 공부해요. 내담자가 편안하게 느낄 만한 표정, 자세, 목소리, 가벼운 제스쳐까지. 왜 그러게요?”
질문의 의도를 알기 어려웠다.
묻고 답할 것도 없이 너무 당연한 일이라서.
“더 좋은 상담을 위해서잖아요?”
“아뇨.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예요. 안 그러면 분명히 상담 중에 엉망인 모습 보일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김지연의 얼굴은 처연했다.
자괴감, 부끄러움, 경외,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저, 박사 과정 밟으면서 하루에 세 케이스씩 맡고 있어요. 사람도 많고 고민도 많은 서울이라, 그전엔 예닐곱 케이스도 받았고요. 그러면서 참 많은 내담자를 봤어요. 그 사람들을 언제나 진심으로 대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요?”
“아…….”
“전, 끔찍해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듣고 있는 제 자존감이 땅 파고 지하로 떨어져내려요. 무기력한 피해자들은 무슨 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해답을 바라고, 가해자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책임전가에 분노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깨닫게 됐다.
사람의 정신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단순한 진리를.
상담사라는 직업은, 사실상 감정의 쓰레기통이다.
무수한 내담자들이 토해내는 서로 다른 어둡고 아픈 이야기들을 매일같이 듣고 연구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스트레스를 토해낼 수조차 없다.
내담자 비밀보장의 예외조항에 적용되지 않는 까닭에.
내담자가 위급상황에 처하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는 한, 상담자는 그들의 비밀을 보호해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이 썩어들고 있을지라도.
어쩌면 상담사들이야말로 가장 상담이 절실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현실에 약간의 공포도 느껴졌고.
하지만, 김지연이 그 얘길 꺼낸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저, 그게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하핫. 왜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전, 부러웠어요. 고민상담이라고 수십 개씩 올라오는 채팅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답해주시면서…… 진심이셨잖아요. 연기가 아니라.”
“어, 예. 그렇지만 저야 가벼운 고민상담이었잖습니까?”
“마찬가지예요. 문제의 사이즈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게 좋아 보였어요. 보고 있자니 부러웠어. 저는 그렇게 못하거든요. 좀 한심한 상담사라서요.”
“아뇨, 굉장히 멋지시던데요. 아리 상담할 때만 해도…….”
“그거야 ‘실검스타’ 오셔서 들떠서 그랬고요. 내일부터는 또 가면 쓰고 연기할 거예요. 매일 무너져가는 이상 속에서.”
……그녀에게 해줄 말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꾸도 없이 멍하니 바라본 걸 어떻게 해석한 걸까.
잠시 후, 김지연이 마치 이아리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랬는데, 오아시스 같았어요. 꼰마님 방송이요.”
“오아시스요……?”
“교수님이라든지 다른 선배님들이라든지, 상담을 잘하시는 분들은 많이 봤어요. 그분들을 롤모델로 열심히 수련하고, 논문 쓰고, 석사 마친 뒤에 개원까지 했고요. 상담사들 중에서 꽤 빠른 편이라 자부심도 느꼈는데…… 근데, 되게 목말라 있었나봐. 아리 상담하셨을 땐 저까지 울컥해져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었는데, 생각하게 됐어요. 오아시스가 이상이란 나무를 키워준 거예요. 돈은 제가 드리는 게 맞아요.”
서른쯤 돼 보이는 커리어우먼이다.
석사 마치고 개원한 뒤, 이제는 일과 병행해 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는, 초보인 내게는 롤모델과도 같은 상담사.
배움에 목마른 내가 찾아나선 첫 번째 스승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를 오아시스라고 부른다.
마른 상담사의 목을 축여준 이상이라고.
지나치게 과분하고, 지나치게 부끄러운 이야기였다.
나는…… 호구 같은 나는, 사실은 그냥 괜찮다.
타인의 감정배설이 오히려 달가웠다.
경청이나마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서 행복해질 수 있었다.
회사에서 잘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 결과를 받아든 뒤에는 많이 우울해졌다.
한심한 성격 탓에 나락으로 빠진 꼴이라고 자평했었다.
그랬는데,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호구 박대민이,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말해주고 있다.
“……황당한 말씀이네요. 격려해주신 걸로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면, 제게 아리 상담할 방법을 알려주시겠다는 거죠?”
“아, 이거 큰맘 먹고 드린 얘긴데요? 바로 또 상담 얘기?”
“어흠. 절 믿어주는 애라고 하니까 책임감이 들어서…….”
“아하핫. 알았어요.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찬찬이 말씀드리면 좋을 텐데, 아리 데려다주고 방송 하러 가셔야 되죠? 오늘은 별다른 거 물어보지 말고 보내세요. 스스로 말 꺼내면 들어주시는 건 오케이. 실질적인 상담은 다음 회기 때…… 오전 열 시쯤에 전화 주시면 알려드릴게요. 그럼 됐죠?”
“아, 예. 그래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 부족한 실력, 저도 좀 갖고 싶네요.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아리한테 지원군을 만들어주세요. 그건 꼭 학교 안에서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어디서든…… 아시죠?”
수강생에게 퀴즈를 내는 듯한 태도.
첫 번째 스승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요. 그럼 이제 수업 끝! 아리야? 언니랑 아저씨 얘기 끝났어. 이제 들어가고,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만날까?”
“네에! 에헤헤.”
웃으며 뛰어온 이아리와 그녀를 쓰다듬는 김지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 자신도 목마른 여행자에 불과하지만.
오아시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아시스가 되어주리라.
내가 걸어가는 걸음걸음을 마실 물로 가득 채우리라.
그런 마음으로 상태창을 주시했다.
바라보는 곳은, ‘외모’나 ‘화술’이나 ‘진단’보다 먼저 올렸어야만 했을 능력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퀄리티월드에 들어설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 가장 무거운 가치.
상담사 박대민의 ‘관계’가 92로 상승했다.
*
“오늘 아리아리님을 만났습니다. 왜 아리아리인가 했는데, 롤의 아리를 닮았더라고요. 그래서 별명이 아리라고 하더라고요. 이제부턴 그냥 아리라고 부를게요. 예, 아리랑 같이 상담소 다녀왔습니다. 참 저한테도 큰 도움이 된 시간이었어요. 다행히 아리도 굉장히 즐거웠다고 말해줬습니다.”
「오ㅋㅋ 아리닮아서 아리아리구나ㅋㅋ」
[꼰마야놀자님 별사탕 100개. 다행이네요. 아리 부럽네요. 저도 아저씨랑 같이 놀고 싶어요. 아리 축하해.]
이아리를 위해서 사소한 거짓말을 해야 했다.
원조교제 등의 루머로 고생했다는 아이가 아저씨인 나와 함께 상담소에 다녀왔다는 건, 결코 알려져선 안 될 일이니.
이아리는 게임 LOL의 캐릭터 아리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예쁘장하긴 하지만 무척 유순하게 생긴 얼굴.
그러나 닮지도 않은 캐릭터와 이름이 같은 까닭에, 짭아리(가짜 아리)라 불리며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당했다고 했다.
이후 갖은 괴롭힘 속에서 긋게 됐다는 손목은……
여전히 붉은 빛깔의 흉터였다.
이제는 살이 돋아 보호대로 감싸고 다니지만, 그 자체로 또 동급생들에게 경멸을 당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멍청한 행동을 해서 엄마아빠한테 걱정을 끼쳤다며 자기 머리를 콩콩 때리더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듣게 됐다.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내내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다만, 아리에게 새로운 지원군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게 됐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상담만으로 금세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지금 상담사가 해줄 수 있는 건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에요. 문제행동이 있어서 따돌림을 당한 게 아니니까요. 그게 참 안타깝고 괴로웠습니다.”
[dosena님 별사탕 500개. 괜차늠 그거라도 어디에여 아리도 즐거웠다고 했으니까 해피엔딩.]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이따 여덟 시 되면 아리도 들어오기로 했어요. 그때 저랑 같이 응원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리가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게…… 잠깐 노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저랑 같이 아리 업 해주실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아재요 왜 우릴시켜」
[케바케님 별사탕 1000개. 아따 성님 인건비도안뽑히겄소.]
「해주면 머해줄거임 ㅎㅎ」
「우리가 마 착한사람으로 보이나~」
[마구니님 별사탕 500개. 꼰성논란 크크 주작 오짐 크크.]
그렇게 츤데레처럼 굴던 시청자들이, 8시 돼서 ‘아리아리’가 입장하자마자 ㅇㄹㅇ을 쏟아냈다.
「아리아리 : ㅇㄹㅇ이 뭐에여?? ㅎㅎ」
“아리아리님 안녕? 우리 아리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거야. 아리가 착한 아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네?”
「아리아리 : ㅎㅎㅎㅎㅎㅎㅎ아머에여 부끄러워여ㅎㅎㅎ」
[세이클럽님 별사탕 1000개. 예쁜 지원군이네요.]
ㅇㄹㅇ은 10분 가까이 이어졌다.
그것만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못 되는 일이지만……
7천의 지원군을 등에 업고 이아리는 참 자주 웃었다.
그 ㅎㅎ가, 내 오아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