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20화 (20/200)

# 20

8장 - 목마른 상담사 (1)

차를 타고 마포구로 돌아가며, 여러 생각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상담사를 그저 과정으로만 생각해왔다.

NBSC로 능력을 키우고 멋진 인방러로 인정받기 위해, 딱 빛 좋은 개살구 수준의 가짜 상담만을 하자고.

하지만 오늘 보육원 봉사를 통해 그 생각이 깨져나갔다.

유튜브 하이라이트를 두 개 시청했을 뿐인 김효원이, 날 마치 경륜 있는 상담사 보듯이 대했다.

지금이야 몇 명 되지 않겠지만, 유명세를 키우면 키울수록 원치 않는 오해가 많아질 터.

때로는 버거운 상담 의뢰도 받게 될지 모른다.

그럴 때는 은진이 합방 때 했던 것처럼 정신과 진료나 진짜 심리상담을 추천해주는 게 올바르겠으나……

종위보육원의 아이들처럼, 라포 형성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내담자라면?

그때는 문제를 알고서도 방치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능력치를 조금 올렸을 뿐 나는 아직 부족한 상담사.

오늘 정말 상담을 받게 됐다면, 아무 말도 못 해줬으리라.

그게 아무래도 자괴감이 드는 지점이었다.

물론 그저 주기적인 소통만으로도 도움은 될 것이다.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한두 번의 방문에 그친다고 하니까.

그런 이별의 과정이 쌓이고 쌓이며 세상을 불신하게 되는 것일 텐데, 상담이 없더라도 꾸준히만 찾아간다면 작은 안정감 정도는 줄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도망치기보다는 극복하고 싶다.

마침내 나를 믿고 의지하게 된 수아가 자신의 어둠을 고백했을 때, 다른 상담사 찾아가라며 밀어내는 일이 두려워졌다.

나 스스로 내 앞에 다가올 내담자들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나는, 정말 상담사가 되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성공에 안주해선 안 된다.

NBSC의 수혜자가 아닌 진짜 상담사로서 성장해야 한다.

그렇게 결단하며 원룸 앞에 차를 댔다.

“형님! 오면서 통화를 좀 해봤는데, 핸드폰은 제가 아는 데 가서 사면 될 거 같음요. 대리점에 아는 형님이 있거든. 좋은 취지라고 설명해줬더니 최대한 빼주겠대.”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는 대수의 말이 당황스럽다.

“최대한 빼준다고? 단통법이란 거 때문에 안 되잖아?”

“엥? 모르시는구나? 이게 여섯 시 넘어가면 단속이 안 되니까, 그때쯤 되면 약간의 재량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약간의 재량? 불법 아니야?”

“불법까진 아니고 약간의 편법? 나쁜 일에 쓰려는 거 아니잖아요? 최대한 아껴서 좋은 일 많이 하셔야죠, 헤헤.”

자기가 폰 받게 된 사람처럼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이다.

자세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나도 피식 웃게 됐다.

“넌 참 희한한 녀석이다. 뭐가 그렇게 좋냐?”

“좋죠. 저라고 착한 일 하기 싫어서 안 하나 뭐.”

“그래…… 집 사려고 돈 모으는 중이랬지?”

“옙. 편집이란 게 워낙 트렌드 따라가는 업계라, 언제까지 잘 벌 수 있을지 몰라서요. 잘될 때 바짝 벌어서 집부터 사놓으려고요. 아 근데 형님은 괜찮아요! 말빨이란 거는 절대로 유행을 타는 게 아니거든. 솔직히 부럽습니다, 형님.”

스타메이커라고 자칭하면서도 그런 불안은 있었던 건가.

마침 좋은 흐름이 된 것 같아서, 원룸 계단을 오르며 내 생각을 꺼내봤다.

“대수야. 사실 나도 너처럼 불안을 느끼고 있어. 이대로 내가 상담사 흉내를 계속 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엥? 뭔 소리예요? 형님처럼 좋은 상담사가 어디 있다고.”

“기초가 없잖아. 자격도 없고. 그래서 전에 말했던 자격증 준비를 할 생각이야. 그러면서 수련도 병행하려고 해.”

“지금 하고 있는 거 아녜요? 맨날 수천 명씩 상대하는데.”

“그건 고민상담이잖아.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얘기일 거야.”

은진이 방 때는 자해 사연이 채팅창에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개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라포 형성이 안 된 내 방송국엔, 아직 그런 이야기가 없다.

설혹 사연으로 나온다 해도 내가 상담을 해선 안 되고.

능력도 부족하거니와, 다수가 보는 생방송에서 함부로 파고들기보다는 전문적인 상담을 권유하는 게 올바르다.

뭔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학위가 없는 상태에서 상담에 참관하거나 임상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점이야.”

“엥? 그럼 어떡해요? 학위부터 따야겠네.”

“그렇지. 상담심리 인턴을 따려면 최소한 심리학 학사 학위가 필요한데, 학점은행제로 전적대 학점 활용하더라도 1년은 소모돼. 당장은 독학밖에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럼 수련은요?”

“네가 말한 약간의 편법. 나도 한번 그래보려고. 돈을 써서 상담 과정을 배워나갈 셈이야. 시청자들 중에서 정말 심리상담이 필요한 친구들과 직접 만나보겠어. 그리고 상담료를 대신 내주는 대가로써, 상담 회기에 나도 동석하는 거야.”

대수는 웬 사치스런 계획이냐며 비웃진 않았다.

그 대신, 눈을 빛냈다.

“오, 그럼 레알 상담소 야방?”

“……그건 절대 안 되고. 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담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어. 방송이라니, 턱도 없지.”

“그럴까요? 아닐 것 같은데. 일단 형님 방 시청자면 불편하기보다는 걍 좋아할 것 같고, 아주 민감한 내용 아니면 허락해줄 것도 같은데.”

“……상담사 입장에서도 불편할 수 있잖아.”

“에이, 졸라 짱 센 PPL이 되는 건데 불편할라고요? 암튼 좋은 아이디어 같슴다. 야방 각이야 그때그때 상황 봐서 정하더라도, 좋은 상담을 위해 빡공하고 있다는 게 어필이 될 테니까. 거기다 상담료까지 대신 내준다니. 이것도 이슈감이죠.”

야외방송 용도로 쓴다면 나쁜 이슈가 될 것 같은데.

하지만 대수 말대로 그때그때 논의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바로 지원자를 뽑아볼까 해. 방송 시작할 때 그렇게 공지해도 괜찮을까?”

“옙…… 근데 형님, 좀 더 극적으로 가보죠?”

“극적으로?”

“처음부터 훈훈하게 가면 재미 없잖어요? 시청자들도 생각이 복잡해져서 고민 떠올리느라 채팅 재밌게 못 할 수 있고. 그러니까 중반쯤에 이렇게 들어가죠. 나 오늘 봉사활동 하고 왔는데, 가서 보니까 기부 짱 많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겁나 실패하고 싶다. 너희 고민 진짜 센 거 가져와봐라. 내가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봐라.”

“어…… 왜?”

“재밌잖어요? 그렇게 하면 애들도 더 쉽게 속 얘기 꺼낼 수 있을 거고, 그러고 미안하니까 같이 상담받으러 가자 했을 때 큰그림이란 게 드러나면서 임팩트도 줄 수 있을 거고.”

대수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다시금 경탄했다.

이 녀석은 방금 들은 내 결심을 갖고 어떻게 순식간에 이런 계략들을 짜내는 걸까?

“너는 평소에 남 속여먹을 생각만 하는 거야?”

“헉…… 형님…… 말넘심…….”

“어, 미안하다. 감탄한 건데.”

“헤헤. 알죠 물론. 팩트기도 하고.”

“남 속여먹을 생각 하는 거?”

“옙. 선의의 거짓말은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전.”

“그런데 방송에서 대본은 안 쓰잖아?”

“그건 선의가 아니잖어. 별 뽑아먹으려고 하는 건 역하죠. 딱 시나리오까지만 기획하는 게 진짜 디렉텁니다.”

대본과 시나리오의 명확한 차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기준이 분명한 녀석이었다.

어쨌든 진대수의 의견에 동의해서 평소처럼 방송을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시청자가 늘어났다.

“어서 오세요, etp500님. 엔서니킴님 안녕하세요. 은진알통님 또 와주셨네요…… 어…… 이게 왜 이렇게 빠르지?”

송출 이후 30초도 안 됐는데 500명을 돌파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속도에 대수를 쳐다봤더니, 씩 웃으면서 매니저 채팅으로 답했다.

「ㅎㅎㅎㅎㅎ어제 신인BJ 1위 찍고 종합순위 8위 찍고 애청자증가 순위 업 순위 다 1위 찍었으니까 아닐까여~?」

“그걸로 어떻게 이런 속도가 나와? 거짓말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ㅎㅎ.. 어제 본사에 메인배너 신청했거든요 형님 인맥빨인가 바로 통과됐음여. 지금 앱 키면 형님방송 맨위에 뜸」

엉거주춤 폰을 켜봤더니 정말 그랬다.

프리TV 이미지 전반에 도움이 될 법한 공식 행사 등이 게재되는 최상단 배너에, 내 프로필 사진이 걸려 있다.

‘실검스타 꼰대마스터의 고민상담소 LIVE’라는 문구와 함께.

“……야, 이걸 나한테 말을 해줬어야지.”

「ㅎㅎㅎ 선의의 거짓말입니다 형님 요런게 또 유튭각이 나오거든요 방금표정 좋았는데 또해주세엽 뿌잉뿌잉」

“하하. 거참. 담당자 누구였냐?”

「순혜였나 선희였나 그랬을걸요?」

방송지원팀 우선희 대리가 담당자였던 모양이다.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송성희 대리와 제일 친한 동기여서 몇 번 얼굴 마주했던 사이.

그래서 조금쯤은 특혜를 준 걸지도 모르겠다.

「제가 오죽답답했음 그랬겠음? 솔직히 형님방송 실검도 탔겠다 내용도 건전하겠다 이런건 위에서 밀어줄만도 한데, 인맥만 쓰면 하루면 될일을 신청을 안하고계시니깐말이죠」

“어휴. 됐다 됐어. 여러분, 죄송합니다. 잠깐 PD랑 얘기 좀 했어요. 저 몰래 메인배너를 신청했더라고요. 그거 보고 오신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꼰마입니다. 간단하게 소개를 드리면 은퇴하고 우연한 계기로 인방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마흔일곱 살이고 주로 고민상담을…… 예, 정말로요. 정말 마흔일곱 맞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이 나쁘다곤 생각지 않는다.

아마 대수가 몰래 하지 않았더라면, 난 민망한 마음에 우선희 대리에게 취소해달라는 문자를 보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30분 만에 5천 명이 입장하진 못했겠지.

3천 명 가량의 신규 내담자를 받지 못했으리란 얘기다.

속은 셈이지만, 진대수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은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모든 방법을 써서 더 유명해지고 커져야 한다.

그래야 내 사람을 지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평소처럼 고민상담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시청자 수가 7천 명을 돌파했을 무렵에, 대수의 지시에 따라 나도 선의의 거짓말을 실시했다.

“어제 방송 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 제가 기부를 좀 하고 있습니다. 여러 용처를 알아보다가 오늘 보육원에 다녀왔어요. 요즘 애들인데도 개인 스마트폰 하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열여섯 대를 지원해주고, 매달 핸드폰 요금도 주려 합니다.”

「헉 아재요..」

「오빠 너무무리하지마세요ㅠㅠ」

[케니H님 별사탕 100개. 좋은일에 써주세여.]

“케니님 후원 감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선전포고를 하겠습니다. 방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고민 해결에 실패할 때마다 50만원씩 기부금을 누적시키고 있어요. 업다운 투표로 진행되는데, 어제는 솔직히 실패를 못 했거든요.”

「ㅋㅋㅋㅋㅋ억지로 실패하지 마여」

「자신이 없다 실패할 자신이ㅋㅋㅋ」

“오늘은 억지가 아니라 진짜 실패해보려 합니다.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고민들을 말씀해주십쇼. 저를 처참하게 패배하도록 만들어주십쇼. 오늘 반드시 200만원 적립할 겁니다.”

「아잌ㅋㅋㅋㅋ 광역도발ㅋㅋㅋㅋㅋ」

[보람찬하루일을님 별사탕 500개. 헉 흐흐. 칼을 갈고 나오셨군요. 그게 마음처럼 되실지 모르겠네요 흐흐.]

마음처럼 되진 않더라.

대놓고 도발을 했음에도, 당장 심리상담이 필요해 보이는 이야기들이 아닌 가벼운 신변잡기들이 이어졌다.

그런 경우에는 나도 최선을 다해 NBSC를 활용했다.

그래서 상담을 진행할수록 업만 쌓여갔다.

그러길 2시간쯤 했을 때, 마침내 기다리던 이야기가 나왔다.

그건……

내가 예상했던 사연들보다도 좀 더 무거웠다.

「아리아리 : 저 중딩인데 학교에서 아싸인데여」

「아리아리 : 이런것두 상담해도돼여??」

“……아리아리님, 반갑습니다. 당연히 돼요. 이제부터 아저씨가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볼 건데, 불편하다 싶으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아리아리 : 아진짜요? 우와.. 넹..」

[전자담요님 별사탕 100개. 너무 딥한거같은데. 이런거는 어려워요. 딴거하면 안됨?]

도발 이후에 들어왔는지 염려해주는 시청자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유쾌했다.

다운 버튼에 커서 갖다놨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싸’ 또는 ‘찐따’.

성인들끼리는 그저 장난처럼 쓰는 용어지만,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왕따’를 부르는 다른 말이라고 보면 맞다.

‘너 아싸지?’ 하는 말은 농담일 수 있지만 ‘쟤 아싸야.’가 되면 그때부터는 따돌림인 것.

그걸 알고 나서는 나도 꽤 놀랐다.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 덕분에 왕따 같은 것 없이 지낸다고 믿어왔으니까.

그렇지만 방식이 바뀌었을 뿐, 정신적인 공격이나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은 과거보다 훨씬 더 심해져 있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딸애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 아이와는 깊은 얘길 해본 적이 없어서.

아이를 일찍 낳았다는 방송지원팀 차장에게 들었을 뿐이었다.

왕따는…… 몇 마디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흔히들 상담이랍시고 이렇게 행동해라, 저런 걸 주의해라 말해주지만,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면 사회문제가 아닐 터.

방법을 몰라서 당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리 강한 아이라도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집요하고 무서운 공격들이 지속적으로 마음을 망가뜨릴 뿐이다.

가해자 쪽의 상담이라면 이런저런 이야기로 행동교정을 할 방법이 있을 텐데.

그렇지만 피해자라면……

해줄 수 있는 게 경청과 공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또래들 사이에서 유리돼 있다는 감각과 그로 인한 자존감의 하락을 막기 위해, 긍정적인 대화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뿐.

고작 인방으로는 해소하는 게 불가능한 문제다.

그러니 나는 아리아리라는 학생을 통해서 처음으로 상담에 실패할 것이고, 그 뒤에 동행 상담을 제안할 것이다.

“괜찮다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얘기해줄래요?”

「아리아리 : ..저 애들이 투명인간시켜요」

「아리아리 : 근데 제가머만하면 쑤군쑤군하고」

「아리아리 : 돈빌려달라고하고 가져가서 안갑고」

[케바케님 별사탕 100개. 아 성님 이건좀. 다른고민하져?]

“케바케님, 죄송합니다. 제가 딸이 있는 아빠라서 조금 더 얘기하고 싶어요. 아리아리님, 조금 더 얘기해줄래요?”

「아리아리 : 에스크에서 저욕하고 원조했다고루머하고요」

애스크(ask.fm)는 익명으로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플랫폼.

응답자의 정체만 드러나기에 사이버불링의 온상이라더라.

다른 애들 다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계정을 만들게 되는데, 거기서 익명에 기댄 각종 공격에 노출되는 것.

아리아리의 채팅은 10여 개 정도 이어졌다.

어른들 사이에서라면, 그냥 미친개한테 물렸다 하면서 피할 수도 있을 만한 일들이다.

그렇지만 아이에겐 그런 문제가 아닐 터였다.

학교만이 사회의 전부인 시기이기에, 그 일들이 깊은 상처가 되어 자살기도까지 했었다고.

나는 그저 채팅을 읽기만 했다.

꼰대도 마스터도 없이, 어떤 첨언도 없이 그저 읽어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아이가 지수라면.

지수가 무리 속에서 따돌림 당해 자살까지 생각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힘들었겠구나. 지금도 많이 힘들겠네요. 그 아이들이 참 미워요. 참 나쁘다. 아리아리님은 나쁜 사람이 아닌데.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미안. 아저씨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아리아리 : ㅎㅎ아저씨 울지마여..」

“아냐, 아저씨 안 울어요. 그냥 아저씨로서도 어떻게 말을 해줄 수가 없어서 그래요. 이건 정말 능력 밖이네요.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번 상담은 방법이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숙여 보이며 생각했다.

이 아이를 잠시나마 웃게 해주고 싶다고.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마음을 안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런 와중에, TTS 소리가 들렸다.

[아리아리님 별사탕 1개. 히히. 아저씨 갠차나여. 내얘기 일거줘서 고마워여. 재밌었어여. 인제 딴사람 들어바여.]

그 한 개의 별사탕.

돈으로 따지면 고작 100원이고, 환급을 받으면 60원에 불과한 작은 성의가, 갑자기 턱없이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정말 좋은 상담사가 되고 싶다.

“……아리아리님. 아저씨랑 같이 상담소 가볼래요?”

「아리아리 : ㅎㅎ상담소여?」

“예. 학교에도 상담선생님 계시겠지만, 찾아가기 불편하죠? 서울에 아는 상담소가 있어요. 아저씨가 차로 데리러 가서 몰래 상담하게 해줄게요. 그렇게 해볼래요?”

「아리아리 : ㅎㅎ아저씨랑 같이가여?」

“응. 혹시 싫어요?”

「아리아리 : 아닌데 짱조은데ㅎㅎ 갈래여」

이후로도 신이 난 듯 ㅎㅎ를 많이 쓰더라.

그 마음을 알 듯 모를 듯해서 멋쩍게 웃고 있는데, 잠깐 늘어나던 다운이 뚝 끊기고 업 쪽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 여러분? 저기, 그냥 기분 따라 업다운 누르지 마세요. 이거 지금 투표 중입니다. 실패했으니까 다운이에요.”

「시른데 시른데ㅋㅋㅋㅋ」

[케바케님 별사탕 1000개. 성님 울지말랑게 흐흐.]

아니, 울지는 않았는데.

울 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잘 참았는데, 얼굴이 제멋대로 그런 느낌을 주고 만 걸까.

[dosena님 별사탕 500개. 크크 이런 삼촌 있음 좋겠네.]

[마구니님 별사탕 2000개. 어디 또 주작해바라 크크.]

[세이클럽님 별사탕 1000개. 해결안돼도 훈훈하네요 흐흐. 오늘 첨왔는데 방송 따뜻하네요. 다음 사연도 잘부탁해요.]

이후로 다양한 방향에서 실패를 유도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그날도 실패에 실패한 채 네 시간 방송이 마감됐다.

진대수가 멋쩍게 뒤통수 긁적이더라.

“끙. 이건 진지하게 생각을 좀 해봐야겠네. 유입 시청자 늘어나면 박빙의 승부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네. 아무래도 다운으로는 실패 절대 못 할 것 같어요.”

“너…… 거기까지 생각하고 배너 올렸던 거야?”

“옙. 쩝. 아쉽네요. 껀이 껀이라 야방도 못 하겠고. 아쉽!”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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