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0화 (10/200)

# 10

4장 - 말을 잘하는 상담사 (3)

전화를 수신하며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두 가지였다.

첫째는 송은진이 내게 연락한 이유.

진대수와 협업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정보람 야방 다시보기에서 날 본 모양이었다.

[언제 그렇게 잘생겨지셨어요? 부장님 맞나 한참 고민했잖아요. 아무튼 우리 방송도 나와주세요. 괜찮죠? 11시쯤 오시면 되는데, 좀 일찍 오셔도 되고요. 집 주소 아시죠?]

“음. 주소도 모르지만,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

[응? 왜요? 아, 엄마 보기 불편해서요? 괜찮아요. 엄마 방송하는 거면 쿨하게 이해해줘요. 야식도 차려주실 거예요.]

잠깐 시간을 달라고 답한 뒤, 진대수에게 연락해봤다.

아마 이 얘기 들으면 마음이 복잡해지겠지만…… 디렉터에게 보고도 없이 움직일 순 없었다.

그랬는데 의외로 쾌활하게 대꾸하더라.

[아 진짜요? 찬스네! 은진이 본방 요즘도 5천따리잖어. 나가면 홍보효과 쩔 겁니다. 내일 생방 홍보도 해버려요.]

“음…… 너도 올래? 디렉터로서…….”

[전 편집해야죠. 형님이 알아서 잘하고 오십쇼. 아, 유튜브 편집권도 잘 말해봐요. 게스트 방송은 말하기 나름이니까.]

쿨하게 받아들이는 게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빨리 공부해서 ‘진단’을 올려야 되겠어.

어쨌든 그렇게 된 마당에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진대수 말대로 찬스인 게 사실이니.

편집자 바꾸고 난 뒤로 유튜브에서는 맥을 못 추는 느낌이지만, 프리TV 본방에서는 여전히 날아다니는 아이다.

특히 여성 BJ인데도 여성팬이 많기로 유명한 녀석.

그 생방송에서 화술을 뽐낸다면 큰 소득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아내에게 전화했을 때는, 뜨끔해졌다.

[이 화상아! 방송 준비를 뭐 철야로 하니? 애 자기 전에 얼굴은 봐야 될 거 아냐? 뭐 하느라 그렇게 바쁜데?]

“그게…… 이제 막 들어가려고 했는데, 유명한 스트리머가 게스트로 불러줬거든. 그게 놓치기 아까운 기회라서 그래.”

[그래? 뭐 이상한 사람 아니지?]

“아냐. 은진이란 앤데, 착해. 평판도 괜찮고. 이번에도 나 도와주려고 일부러 불러준 거야.”

[여자애야? 당신…… 아니다.]

아마 잘생겨진 내 얼굴을 떠올리고 바람기를 살짝 염려했다가, 실질적인 나이를 생각하고 수그러든 듯했다.

이 사람이 이렇다.

나 같은 건 사실상 중늙은이나 다름없는데.

그렇게 찾아가게 된 BJ은진의 아파트.

차에서 얼굴과 목청을 점검하고 조심스레 벨을 눌렀다.

예상하지 못한 두 번째는 그 집안의 풍경이었다.

가끔 모니터링하며 봤던 모습 그대로긴 했는데……

거실에서 술먹방을 하고 있더라.

날 초대했으니 당연히 상담 컨텐츠 준비했을 줄 알았는데.

“부장님! 부장님 오랜만이에요! 일루 오세요. 여기 울 엄마.”

“……안녕하세요, 박…… 아니, 꼰마라고 합니다.”

“꼬마예? 미남이시네예. 반갑습니더. 결혼은 하셨어예?”

“예. 딸이 중학생입니다. 그리고 꼰마-”

“예에? 참말예?”

“엄마! 부장님 엄마랑 동갑일걸?”

“뭐어?”

그 말엔 나조차 좀 당황하고 말았다.

“음. 올해 마흔일곱입니다.”

“진짜예? 오메야…… 뭔 일이고? 시상에나…… 친구네예.”

“예. 반갑습니다.”

“둘이 말 놔라! 부장님, 엄마 친구 해주세요. 엄마 외롭거든요. 같이 영화 볼 사람도 없어가지고 저만 불러내고요.”

“가시나야 뭐라캐쌌노. 부장님예, 이리 앉으이소.”

“예…… 고맙습니다.”

이런 데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다니.

반갑긴 하지만 영 어색한 느낌이었다.

BJ은진-송은진은 올해로 스물네 살.

그 모친이 마흔일곱이란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중1 딸이 있는 내가 그리 늦은 축은 아니니.

지금 송은진 나이쯤에 아이를 뱄다는 얘긴데, 대학원 졸업하자마자 프로포즈 받았던 내 아내보다도 빠른 편이다.

아무튼 채팅창은 벌써 난리가 났다.

얼핏 보면 고모와 조카뻘로 보이는 우리가 동갑이라는 얘기에, ‘상견례임?’ 어쩌고 채팅 치고 있던 시청자들이 단체로 패닉에 빠진 것.

나쁘지는 않은 분위기다.

이런 전개를 보면 아내도 좀 안심할 거고.

아니…… 오히려 동갑인 모친 쪽이 더 염려스러우려나.

어느 쪽이 더 걱정스러운 일일지 잠깐 고민하다가, 은진이가 건네주는 잔에 당황했다.

“아니, 나는 됐어.”

“진짜요? 부장님 술 안 마셔요?”

“그게 아니라 차를 가져왔어.”

“아 왜요? 자고 가요.”

“이 가시나가 미칬나, 뭐라캐쌌노?”

“아 왜요? 오빠 군대가서 방 비잖아? 자고 가시면 좋지.”

“아니, 내가 곤란해. 외박은 안 한다.”

“진짜요? 그럼 대리 불러드릴게요. 그럼 됐지요?”

“부장님예, 편하게 드시소. 대리 잘 옵니더.”

“……잔만 받겠습니다.”

그런 대화 중에 톡이 하나 왔다.

발신자가 진대수여서 살짝 긴장했는데, 이상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고 가라고 권장하더라.

「 형님, 엄마가 외로움 많이타요. 같이 말동무도좀 해주고 자고가면 안되까요? 」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인 건가.

그거 보며 고민 중인데, 톡이 하나 더 왔다.

아내였다.

「 쫌만마시고 빨리들어와 기다린다 」

음. 조금만 마시고 빨리 들어가야겠다.

“저는 반잔씩만 하겠습니다.”

“자, 짠! 엄마랑 부장님 친구 먹은 기념이에요.”

“가시나 그만 쫌 씨부리라. 부장님예, 편히 드시소.”

“예…… 참 편하네요…….”

그렇게나 불편하게 시작된 방송이지만, 나쁘진 않았다.

은진이가 뭐라고 소개를 해둔 건지 벌써부터 시청자들이 내담자로 전환되고 있다.

은진이 모녀가 먹고 마시기에 여념이 없어서 내가 대신 소통하기에도 적절했고.

“은진알통님,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거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하셨네요. 일단 여자친구가 있다는 점 축하드려요.”

“푸하하하! 알통 오빠, 여친 없잖아요? 뻥치고 계시네.”

“음…… 핸드폰을 안 보여준다, 데이트 중에도 몰래 카톡을 하는 게 보인다, 예쁜 애라서 분명히 달라붙는 놈들이 있을 거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네요. 자…… 이런 문제는요.”

꼰대마스터가 출격할 시간이다.

물론 고작 몇 마디 채팅을 통해서 파악한 정보고, 그마저도 빠르게 휙휙 올라가는 통에 숙고할 시간은 없었지만.

지금 내게는 독심술에 가까운 기술이 있다.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은진알통

주제 ‘여친’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집착’ 」

“한번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네요. 추측하시는 게 사실이라면, 그래서 여친 분이 알통님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거라면, 분명히 배신이죠. 그렇지만 그건 50%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부장님, 알통 오빠 여친 없다니까요? 자, 짠해요!”

“음…… 다른 50%의 확률은 이런 겁니다. 예쁜 여친이라서 톡으로 귀찮게 구는 남자들이 많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알통님만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조차 들키고 싶지 않을 가능성이죠. 두 사람의 연애에 남 얘기 끼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걸지도 몰라요. 이런 경우엔 추궁하고 의심하는 행위가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집착남이 될 수 있어요. 그런 남자는 좋다가도 싫어질 겁니다. 즉, 의심하면 100%의 확률로 깨집니다. 하지만 믿고 기다려주면, 50%의 확률로 관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둘 중에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하세요.”

“오메야, 부장님예. 말씀 참말로 잘하시네예.”

70의 ‘화술’과 [정문의 일침]은 조합이 좋았다.

말을 잘한다 해도 핵심을 짚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키워드를 안다 해도 전달을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그 두 가지가 결합되면, 나는 그럭저럭 상담사 흉내를 낼 수 있다.

물론, 절대적인 성공률은 아니다.

대수 케이스처럼 당장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살짝 에둘러 가야만 했다.

“whteo……님? 자해를 했는데 아빠한테 들켰어요…… 저런. 다들 마음이 많이 안 좋겠네요.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부장님, 나도 심심해요. 빨리 짠!”

“음……. 그런데 이런 문제는 제가 해소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상담에 여러 차례의 회기가 필요해요. 인터넷상으로 말하는 건 문제를 더 키울지도 모릅니다. 가족 전체가 함께 상담을 받아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마포 쪽에 ‘연 심리상담연구소’라고 있어요. 원장님이 상담심리사 자격증에 가족상담사 자격증도 갖고 계시니까, 분명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의 상담은 받아줘선 안 된다.

나는 닉네임 그대로 꼰대일 뿐이니까.

혹여 잘못된다면, 죄책감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응? 뭐예요? 부장님, PPL이에요? 사모님 상담소예요?”

“아니, 전혀. 개인적으로 상담 받아본 곳일 뿐이야.”

“헤…… 의심스러운데? 부장님, 이 쫌 드세요. 어때요? 울 엄마 음식 잘하죠? 인제 시집가도 안 되겠어요?”

“어, 정말 되게 맛있습니다.”

“흠, 흠. 많이 드시소. 가시나 니는 입 쫌 닫아라.”

메인 BJ가 입을 닫으면 안 되는데.

그렇지만 송은진은, 모친의 지적 때문은 아니고 급하게 마신 술 때문이었겠지만,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번쩍 눈을 뜨더니 화장실로 달려갔다.

“꾸으어…… 꾸에엑…….”

“……은진이가, 벨소리가 특이하네요.”

“벨소리는 뭔 벨소리. 토하는 기라예.”

“아니…… 시청자 여러분, 아닙니다. 벨소리예요.”

“벨소리 아니라니까예? 꼬마 부장님 보청기를 하셔야겠네.”

그쪽 따님을 포장해주고 있는 건데요.

그렇지만 도저히 덮을 수 없는 소리였는지, 채팅창에선 이미 신나는 은진까기 놀이가 시작돼 있다.

또 하나의 흑역사를 적립했다면서.

“저, 여사님. 아무래도 슬슬 방종하는 게 좋을 것-”

“근데예, 부장님예. 금슬은 좋아예? 이래 방송하는 거 사모님이 알아예?”

“네…… 아마 보고 있을 겁니다.”

혹시라도 뭐라고 할까봐 채팅창 봤는데,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글귀는 없었다.

그저 사모님 몇 살이에요 예뻐요 묻는 호기심천국일 뿐.

“그래예. 부럽네예. 지는예, 일찍 사별을 해가꼬예.”

“예, 들었습니다. 아들딸 건사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고생은예. 그냥 마…… 가끔 이래 가슴이 담다압하고 그렇지예. 아-들은 몰라예. 나이 들어가 하루하루 늙어가는 게 어떤 기분인지예. 부장님도 모르시겠네, 하도 동안이셔가.”

“못 믿으시겠지만, 저도 잘 압니다.”

“그래예? 와예? 밤일이 잘 안 돼예?”

“……그런 건 아니고요.”

흘끔 채팅창을 봤더니 웃음이 끊이지 않더라.

은진이 애청자들 중에 어머니를 더 좋아하는 팬들도 있고 한 게, 이런 폭탄발언들 덕분이랬지.

딸 아닌 타인에게까지 이러시는 건 술기운이겠지만.

“참말 부럽네예. 꼬마 부장님 사모님은 얼매나 좋겠노. 이래 멀끔하고 얘기도 잘하는 남편이 있어가, 하루하루 살 맛 나겠지 싶네예.”

“그렇지도 않습니다. 제가 속을 많이 썩였죠. 최근에는 회사에서 퇴사하기도 했고요.”

“방송 하면 안 됩니꺼? 잘하실 것 같은데. 이 봐라, 채팅창에도 벌써…… 이래 꼬마님 잘한다 잘한다 해준다 아입니꺼?”

“꼬마가 아니라 꼰마인데…… 감사합니다, 여러분.”

[은진사랑님 별사탕 100개. 꼬마 크크크. 형님 재밌어요.]

“은진사랑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진이가 많이 취한 것 같아서, 이만 방종하고 저는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은진까기님 별사탕 100개. 꼬장은진 하루이틀도 아니에요. 꼬마부장님, 가지 말고 상담 더 해주세요.]

“아, 예…… 죄송하니까 몇 건만 더…….”

은진 없는 은진방에서 한 20분을 더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동갑내기 모친과도 상담이 깊어졌고.

“꼬마 부장님예, 사모님한테 잘하시소. 여자 나이 마흔일곱이 어떤지 알아예? 세상이 다 남의 편이라예. 남편이라도 내 편이 돼줘야지 않겠십니꺼. 그래줘야 안 되겠십니꺼.”

“예…… 마흔일곱은 아니지만, 잘하겠습니다.”

“사모님 몇 살인데예?”

“올해 마흔입니다.”

“오메야, 도둑놈이네! 아야, 경찰 불러라. 여 도둑 있다꼬.”

[은진짱님 별사탕 100개. 꼬마부장님 사모님도 동안?]

“……그건 프라이버시라, 죄송합니다.”

잠시 후에 아내에게서 톡 하나가 날아왔다.

「 미안하게 됐네요 당신보다 늙어보이는 아내라 」

……들어갈 때 선물을 좀 사가야 할 것 같다.

*

방송을 마치고 가는 길에, 진대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약간 촉촉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형님,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엄마가 말을 그렇게 툭툭 해버리신다니까. 은진이 주사 심하죠? 속 좀 괜찮대요?]

“그건 모르겠다. 다 토하고 곯아떨어졌더라.”

[하하하! 그렇다니까. 하여튼 손 많이 가는 녀석이에요.]

“그래. 사실…… 술먹방 아니었으면, 은진이 얘기도 좀 들어볼까 했는데. 예를 들면 연애 문제라든지.”

[엥? 에이, 하지 마요 형님. 진짜로. 걘 알아서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손 많이 가는 녀석이라며.”

[그런 쪽으로는 또 알아서 해요. 그럼 됐지 뭐.]

참 이상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방송 챙겨보고 뒤처리까지 궁금해 하는 주제에, 정작 고백은 받아주질 않았다니.

50의 ‘진단’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대수야. 불편할 거 알지만, 하나만 물어보면 안 될까?”

[저한테 물어보시는 건 오케이요.]

“너…… 사실은 혼전순결 때문이 아닌 거 아니냐?”

[엥? 그거 때문이라고 한 거 맞는데? 아니 좀 그렇잖어. 걔랑 비교하면 전 너무 걸레거든요. 내가 생긴 건 이래도 좀 인기가 있었거든. 음…… 뭐 믿으실진 모르겠지만요.]

“믿긴 하겠는데. 그게 문제가 되는 일이야?”

[그냥 내 맘이 좀 그랬어요. 너무 맹탕이고 착한 애라, 자기처럼 순한 사람 만났으면 싶었죠. 그래서 그거 핑계로 깐 거예요. 다른 이유 말하면 안 들을 것 같아서.]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단’이란 능력치가 있는데도 또 [정문의 일침]이란 기술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그 기술은, 문제의 핵심을 진단하는 독심술이 아니었다.

그저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키워드를 제공해줄 뿐.

둘은 서로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맹신했다간 전혀 다르게 오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발견까지 포함해서 이래저래 소득이 많은 하루였다.

은진이의 술먹방은 레전드가 잘 나오기로 유명.

그래서 누적시청자가 5600에 달했고, 열심히 소통에 임한 덕분에 그중 4200명 정도를 내담자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29명을 행복해지게 만들었다.

송은진의 모친을 포함해서.

이제 남은 건 귀가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졌으면 싶은 내 아내를 만나는 일.

“이제 와? 손에 그건 뭐야?”

“오다가 샀어. 왜…… 화이트데이는 좀 지났지만…….”

“얼씨구? 그러셨어요? 참나. 몇 년 만에 받는 선물이니.”

편의점에서 산 사탕으로는 기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이럴 때 기술이 도움이 된다면 좋을 텐데.

지금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알려주려나?

「 주제 ‘선물’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랑해’ 」

……정말 예상치 못한 키워드였다.

70의 ‘화술’로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더라.

한참을 쭈뼛거린 뒤에야, 들릴 듯 말 듯 말할 수 있었다.

“음…… 주희야. 저…… 사랑해.”

“뭐? 뭐래. 술 많이 마셨어?”

“어, 그게, 술기운이긴 하지만, 진심이야. 오늘 방송 진행하면서 생각했어.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딱 둘 있다면, 지수랑 당신이야. 특히 당신은…… 내가 항상 웃게 해줄게. 사랑하니까.”

“……뭐래. 진짜, 웃겨. 술 냄새 나. 얼른 씻기나 해.”

머쓱하니 욕실로 가다가, 혹시나 싶어 살짝 돌아봤을 때.

작은 효과음이 들렸다.

그리고 눈앞에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모습.

소녀처럼 해맑게 웃는 내 아내의 얼굴이 있다.

……‘화술’을 올리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이게 오늘 내가 얻은 최고의 소득.

말을 잘하는 상담사가 돼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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