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4장 - 말을 잘하는 상담사 (2)
정보람이 떠나고 진대수가 화장실에 간 뒤.
홀로 남아 상태창을 확인했을 때, 나는 눈을 의심했다.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4 (8/10) 」
경험치가 8이 돼 있었다.
보람이 한 명을 상담했을 뿐인데.
곧바로 퀘스트창 쪽에 시선을 줬다.
「 ‘경청은 상담사를 성장시켜요’ (1341/100000)
‘더욱 많은 내담자를 만나봐요’ (1191/2000)
‘내담자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70/80) 」
……두 번째 퀘스트와 세 번째 퀘스트의 목표치가 바뀌었다.
버그는 아닐 텐데.
문구의 내용을 신뢰한다면, 나도 모르게 여러 차례 퀘스트가 달성되어, 그에 따라 목표치가 늘어났다는 얘기가 됐다.
변화한 숫자도 계산에 딱 들어맞는다.
내담자 퀘스트가 1회 완수되어 1exp.
행복 퀘스트가 7회 완수되어 7exp.
반복달성을 위해 자동으로 수치가 변화하는 메커니즘 같다.
그렇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 방송이 아닌데도 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다니?
생각 끝에 아연해지고 말았다.
기존의 전제가 왕창 무너지는 결과가 아닌가.
경청 퀘스트의 경청이야, 게스트로서 주로 보람이 눈만 보고 있었으니 1000건 정도만 오른 게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전부 당황스런 변화.
새로운 가설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선 내담자 퀘스트의 상승폭이 1140.
방송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51이었다.
3일의 휴방 뒤에 갑자기 공지된 야방이었음에도 BJ보람의 생방송 누적 시청자는 1500명 정도였고.
내가 막 등장해서 자기소개 하던 때가 1100명쯤.
상담 결과로 보람이를 울리고 나서는 1200명쯤.
그 사이의 값이 내담자의 값을 치환했다고 하면 말이 된다.
그 시점은, 아마도 보람이가 울기 시작할 무렵일 거고.
퀘스트가 완료되면 효과음이 난다.
울음소리와 전자녀 소리로 정신없던 때에 퀘스트가 달성된 게 아니라면, 그 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었다.
즉.
상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시청자들만은 즉각적으로 날 ‘상담자’로 인지해, ‘내담자’로 변화했다는 얘기다.
그 사실만 해도 충격적인데, 다음은 더 심했다.
행복 퀘스트의 상승폭이 무려 69명.
그중 70번째 행복의 주인공은 보람이였을 테니, 방송 중에 68명의 시청자들이 행복해졌다는 뜻이 된다.
그 시점 역시 보람이가 울기 시작한 무렵이었겠지.
그야…… 숫자에서 밀릴 뿐이지, BJ보람 열혈팬들의 충성도는 최상위 BJ의 팬덤에도 밀리지 않는다.
자기 스타의 고민이 해소되길 기대했을 것은 당연지사.
1140명 중 68명쯤 행복해졌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행복이 꼭 자기 일로만 발생하는 감정은 아니니.
하지만, 말이 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상담을 수행한 대상이 아니다.
보람이가 눈물 닦으러 화장실에 간 이후로 10분쯤 대신 소통하긴 했지만, 별 얘기는 안 했다.
그냥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금방 올 거예요 어 민망하네 안 되겠네요 방종하고 다시 켜라고 할게요 그런 말이나 했다.
그들이 내담자로 판정된 것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하지도 않고 결과를 내다니.
그건 버그다.
이 NBSC란 인터페이스가 그렇게 허술할 리 없는데……
잠깐만.
상담의 카테고리를 좀 넓게 잡는다고 하면……?
혹시,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집단상담으로 취급된 거라면?
상담심리학에서 집단상담은 꽤 흔한 기법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미국 드라마 등에서는 무슨 사건만 생기면 상담소나 집에서 여럿이 한 명의 상담사를 마주하곤 한다.
상담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지만.
어쨌든 이 집단상담은 개인상담과는 결이 전혀 다르다.
이때 상담사의 역할은 해결사가 아닌 조력자.
하나하나의 고민을 듣고 답을 내주는 게 아니라, 여러 내담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상담효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개인의 고민은 하늘의 별만큼 다양하고 특수하다.
그렇지만 그 본질만을 따지면 손에 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집단상담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가능하다.
타인이 자기개방과 피드백 속에서 문제를 직면하는 과정을 보며 스스로의 인지를 재구조화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하나 상담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고민이든 공통분모는 있게 마련이니까.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앙금이 해소될 수도 있다.
이번 건 역시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
발화자는 보람이 한 명이었지만,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의 고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시청자들 중 일부는 보람이의 표출과 내 역전이를 보며 느끼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68명의 행복을 만들어낸 거라면, 말이 됐다.
정말 그런 거라면……
인방 상담을 질보다 양이라고 생각한 건 오판일지도.
어쩌면 질과 양을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수만 명 단위의 초대형 스트리머와 합방해서 그의 고민을 해결해준다면, 단숨에 몇 개의 레벨을 올릴 수도……
아니, 아니지.
들뜨지 말자.
오늘의 성과는 어디까지나 얻어걸린 행운이니까.
고민이야 어느 스트리머든 한두 개씩 갖고 있겠지만, 그걸 하루아침에 해소해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보람이 케이스는 라포 형성이 잘 돼 있어서 일이 쉬웠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여러 회기(상담 횟수)를 거치며 친밀해진 뒤에야 간신히 뭔가를 해볼 수 있을 터였다.
‘화술’이 70이라고 해서 내가 천재 상담사는 아니다.
그저 말을 좀 잘하는 상담사 지망생일 뿐.
함부로 남의 내면에 개입하는 건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 ‘진단’은 아직도 평균치에 불과한 수준이다.
자칫해서 상황을 잘못 읽고 헛소리만 한다면?
밑바닥을 보인 꼰대는,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마스터가 아닌 야매 돌팔이로 찍힐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허파에 바람 채울 때가 아니다.
이제는 현실을 바라볼 시간.
아직 레벨업에는 좀 모자란 exp지만, 내게는 기술 상점과 특성 상점이 있다.
튜토리얼을 마치고 상점들의 개방을 본 직후 생각했다.
레벨업을 먼저 해야 하나, 상점에 먼저 가야 하나.
어느 쪽이 초기성장에 도움이 될지 확신이 안 섰다.
그런데 exp가 없을 때는 상점이 열리지도 않더라.
덕분에 이제야 그 내역을 볼 수 있게 됐다.
기술 상점은 뭔지 알 것 같으니, 우선은 특성부터.
「 < No Back Silver Challenge >
특성 상점에 오신 ‘상담사’님을 환영합니다.
직업과 관련된 새로운 특성을 개화합니다.
현재 exp로 구입 가능한 특성은 1개입니다.
특성 ‘청력’ (5exp)
청각의 감도를 향상시켜 작은 소리까지 잡아냅니다. 100에 도달하면 10m 밖의 한숨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
하하……
특성은 이런 거였구나.
사면 바로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관계’ ‘진단’ ‘화술’ ‘외모’처럼 추가로 수치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특히 다른 능력치처럼 노력으로 향상시킬 수 없는 분야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건 상당히 장기적인 성장방향일 것 같다.
5exp를 들여서 현재 수치만 확인하는 건 아까운 일이니.
‘성장’에 여유가 있을 때 살펴봐도 늦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NBSC는 대체 어디까지 바라고 있는 걸까?
지금 가진 능력들만 해도 언제 다 올릴지 까마득한데, 거기에 추가해서 올릴 수 있는 특성치가 또 있다니.
복잡한 심경으로 이번엔 기술 상점에 들어갔다.
「 < No Back Silver Challenge >
기술 상점에 오신 ‘상담사’님을 환영합니다.
직업과 관련된 새로운 기술을 전수합니다.
현재 exp로 구입 가능한 특성은 1개입니다.
기술 [정문의 일침] (5exp)
내담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해줍니다. 한 명의 내담자에 단 한 번씩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이건, 대박이다.
거의 독심술에 해당하는 능력.
이거라면 ‘진단’이 낮다 하더라도-
“형님 형님, 저 왔습니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속을 비우고 온 진대수는 홀가분한 듯 어깨를 흔들어댔다.
“제가 덩 싸면서 이후 플랜을 점검해봤습니다. 일단…… 방금 촬영한 거 편집해서 유튜브 올리는 걸로 시작하는 건데.”
“어, 그래. 보람TV에 올라갈 때 방송 시작해야지.”
“응? 아니 아니. 오늘 분량은 내 거예요. 보람이랑 그렇게 말 맞춘 거야.”
“뭐? 그래도 돼? 생방이 보람이 거였는데?”
“우리 캠도 켰잖아. 편집할 겁니다. 보람이 영상도 내가 편집해주는 대신, 우리 영상 하루 먼저 올리는 걸로 했어요. 그렇게 해서 일단 보람이 팬들부터 구독자로 흡수하자고요. 영상에 방송국 개국 공지 때리면 초기시청자 좀 유입될 거야.”
보람이 위하는 척은 다 하더니, 뒤로는 이렇게 얌생이 수를 추진하고 있었군.
이 녀석에게 ‘기획자’라는 직업이 생긴다면 어떨까.
‘전략’ 능력치가 90쯤은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오늘 들어가시면 새 채널부터 만드세요. 유튜브에 꼰마TV, 프리TV에 꼰대마스터.”
“흠. 저쪽은 꼰마고 이쪽은 꼰대마스터야?”
“옙. 유튜브는 어차피 풀네임으로 검색 가능하니까. 프리TV에선 이름으로 어그로 끌어야죠. 그러다가 나중에 채널 좀 커져서 어그로 필요 없을 때 꼰마로 통합하자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합방 진행하면 좋을 것 같어. 오늘처럼만 되면 아주 그냥, 흐흐. 진석이랑 뜨갱이는 확보할 수 있을 거고. 형님, 혹시 또 친한 BJ 있어요?”
“없어. 솔직히 보람이도 의외였다. 나한테 호의를 갖고 있을 줄은 몰랐어.”
“이 형님이 이렇다니까. 아무튼 저한테 맡기세요. 은진이랑 오래 일해서 인맥 쩌니까. 그 은진이만 빼면 말이죠.”
BJ은진과 편집자 진대수의 관계는 유명했다.
결별하기 전까지 은진이가 고맙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해서.
프리TV 버라이어티부문 대상 탔을 때도 진대수 닉네임을 제일 크게 외쳤었다.
그랬는데, 정작 결별의 내막 쪽은 대중은 물론 회사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 역시 물어본 적 없고.
알아봐야 도와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물론 [정문의 일침]을 구입해서 사용한다면야……
“음. 대수 너,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도움요? 뭐, 편집요? 형님 툴도 배우셨어요?”
“아니, 편집 말고. 혹시…… 인간관계. 은진이나.”
“……엥.”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진대수가 멍해졌다.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 픽 웃더라.
“에이. 형님 헛소문 들으셨구나? 저 은진이 안 좋아해요. 고백했다 차였다는 그거 말도 안 되는 개구라야. 진짜로요.”
“……어, 그러냐.”
“뭐야? 그거 듣고 하신 말씀 아니었어요? 갑자기 훅 들어오길래 그런 건 줄 알았잖어. 됐고, 나갑시다. 갈 데 있어요.”
“어디?”
“스튜디오요. 프로필 찍어야죠. 그걸로 메인 프로필이랑 배너랑 만들고 그래야 돼. 인테리어 쪽도 체크해야 되는데…… 형님, 혹시 방송 어디서 진행하실 거예요? 집에서?”
집에서 방송하는 건 선택지 밖의 일이다.
실수로 가족들이 보일 수도 있고,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딸애가 출몰할 수도 있고.
“집 근처에 원룸 하나 빌려뒀어. 내일 들어가면 돼.”
“오케이. 원룸이면 꾸미기 편하겠네. 예산은요?”
“어? 예산?”
“인테리어 비용이요. 손님,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안 알아봤는데. 그냥 여백의 미를 살리면 안 되나?”
“엽캠도 아니고 그러면 안 되죠. 제 플랜은 이겁니다, 형님. 졸라 고급스럽게 꾸밀 겁니다. 이거야말로 진짜 마스터의 상담소로구나 하는 느낌으로, 막 대리석에 벨벳에.”
“음. 과하지 않겠어?”
“내용이 허접하면 우스워 보일 수 있죠. 하지만 형님은 충분히 그래도 돼. 오늘 방송하는 거 보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수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 올라타서 스튜디오로 안내하더라.
그곳에서 여러 컨셉으로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케이. 일단은 이걸로 갈 건데, 나중에 야외에서 화보 제대로 찍게요. 중년 아이돌의 첫 화보, 존멋이겠죠?”
“야, 그건 좀.”
“아 됐고, 인테리어 예산이나 생각해봐요. 1억?”
“야…….”
“농담이고, 500정도 잡고 구상해볼게요. 그건 오케이?”
“……500이면 뭐.”
“크. 모아둔 돈 있는 형님이라 편하네. 은진이 처음 맡았을 때는 진짜 꽝이었는데. 어디부터 손대야 될지 참 깝깝했죠.”
그런 식으로, 대수는 툭하면 은진이를 언급했다.
불화로 결별해서 이제 만나지도 않는 사이라면서.
사실은 정말로 여자로 좋아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조금 실례되는 일이긴 하지만……
확인해보면 어떨까.
[정문의 일침]이라면 가능할 터였다.
이 녀석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도, 은진이의 생각을 확인해 작은 도움을 주는 것도.
막막하기만 했던 인방러의 길을 열어준 녀석이다.
채널을 만들고 방송을 하는 거야 혼자서도 할 수 있겠지만.
진짜 스타가 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아주고 보람이와 합방까지 잡아준 대수는, 이미 10% 이상의 역할을 해줬다.
그런 녀석에게 작은 선물을 해주는 건 어떨까.
나는 오지랖이 넓은 성격은 아니다.
그렇지만 새 기술의 가능성이 심장을 뛰게 했다.
키워드를 읽을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사실은 2exp를 더해서 레벨업을 하는 게 맞겠지만……
원래는 책을 통해 ‘진단’을 60까지 올리고, 그때쯤 레벨업해서 70으로 도약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exp를 벌게 됐다.
추가적으로 합방의 가능성을 새롭게 인지할 수 있었고.
그게 전부 다 이 대수 녀석 덕분인 것이다.
5exp로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결연하게 기술을 구입했다.
“대수야. 너 나 좀 보자.”
“응? 왜요?”
“다른 게 아니라 은진이 말인데, 상담을 좀 해줄까?”
“엥? 그 얘긴 좀……. 형님, 그냥 넘어가주십쇼.”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진대수
주제 ‘은진이’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혼전순결’ 」
……한참 굳어 있다가, 조심스레 그 단어를 읊었다.
“혼전순결?”
“엥? 엥?”
“혹시, 그것 때문이었어? 네가 거절했던 거야?”
“어, 어떻게 알았어요? 누구한테 들었어요? 안 되는데?”
“아…… 아니다.”
“아 형님! 도망치지 말고! 이거 극비인데, 대체 누가 말했지? 아 형님! 아니 이쪽으로 좀 와보시라니까?”
송은진은 혼전순결을 굳게 지키는 신조로 알려져 있다.
그 단어가 키워드라면, 예상했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은진이 쪽이 먼저 고백하고 대수 쪽에서 거절했다는 그림이 나온다.
젊은 남자애한테는 상당히 난감한 문제였을 테니까.
“아, 잡았다. 형님, 누구냐니까요? 이거 중요한 문젭니다.”
“그런 게 아냐. 네가 유도신문에 넘어온 거다. 생각해봐. 청춘남녀가 잘 협업하다가 결별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 돈 문제야 어차피 비율제였고. 너희 성격 잘 맞았던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었지.”
“……아, 그런 거구나. 에이, 당했네. 아, 비밀이에요.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씀하시면 안 돼요. 아시죠? 걔, 불쌍하잖아. 나 같은 찌질한 놈한테 고백했다 차였다니…….”
70의 ‘화술’ 덕분에 불편한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다만, 한편으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날 돕고자 애쓰는 동생의 비밀을 읽어버린 죄책감 때문에.
그리고 [정문의 일침]이 가진 한계성 때문에.
5exp가 아까운 기술은 아니다.
내담자가 민감하게 여기는 키워드를 캐치할 수 있는 기술이니, 경험치의 몇 배는 되는 보람으로 돌아올 터였다.
그렇지만 더없이 조심해서 사용해야만 할 것 같다.
내담자마다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인 까닭에.
세상엔 말로는 어떻게도 해소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알아도 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
특히 개인의 신념에 얽힌 문제는, 화술을 100까지 올린다 해도 해결할 수 없을 터였다.
잠깐 들떠 있었던 거다.
난 해결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마스터가 되고 싶은 꼰대일 뿐.
뒤늦게나마 그 사실을 깨달은 게 소득이었다.
앞으로 [정문의 일침]은 정말 신중하게 사용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진대수와 헤어졌다.
밤을 새워서 내일 바로 편집본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내게 주어진 미션은, 원룸에 방송장비를 설치해 첫 번째 생방송에 대비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기술을 사용할 순간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원룸 들렀다가 귀가하던 중에 전화를 받게 됐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의 주인공은……
2018 프리TV 버라이어티 대상에 빛나는, 송은진이었다.
예기치 못한 두 번째 합방이 시작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