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4화 (4/200)

# 4

2장 - 상담사와 인방 (3)

한국 인방(인터넷방송)의 역사는 프리TV와 함께했다.

그 전이라고 스트리밍 사이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중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최초로 동시시청자 10만 명을 달성한 것도, 예능방송과 제휴해 인방과 TV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도, 프리TV의 업적.

그 서비스를 제외하면 인방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

물론 현재를 논하자면 좀 얘기가 다르고.

해외에서 건너온 트위치와 유튜브가 이젠 굳건해졌다.

그렇기에 ‘인방 삼국지’의 형세.

총 시청자나 총 방송은 1인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지만, 방송당 시청자로 따지면 오히려 한참 밀리는 추세다.

그게 ‘프리월드’ 입장에서 예기치 못한 위기는 아니었다.

다만 초기대응에서 의견이 많이 갈렸던 거다.

성장세가 둔화됐어도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는 축이 절반, 신규 프로젝트로 주력사업을 옮겨야 한다는 축도 절반.

개중에 전자 쪽이 승리했다.

나는 조심스레 후자 의견에 동조했었다.

대표가 실적이나 내고 말하라며 빈정댔었지.

제대로 예산 떼어준 적도 없는 주제에.

그렇다고 내가 인방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멍청한 갑질로 스타 BJ들 다 뺏긴 상황에서 거대자본을 이겨낼 방법이 없으리라 판단했을 뿐.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2020년 들어서 신규 프로젝트에 올인한 게 그래서였지.

어찌됐건 인방러들에게나 시청자들에게나 좋은 시대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서비스의 질이 개선되니까.

한 플랫폼에서 좋아하는 스트리머를 모두 볼 수 없다는 점은 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요즘이야 스마트폰 세상이니 상관없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방송창 앞에서 딸에게 설명해줬다.

내가 ‘설명충’이어서 그런 건 아니고.

시청자들이 들어올 때까지 뭔가 떠들긴 해야 했기에.

직업탐색이라는 의미에도 꽤 어울릴 거다.

정말로 크리에이터가 되겠다고 하면 고민이 되겠지만……

지금 잘 들어두면 학교에서 발표할 때 도움이 되겠지.

“이제는 유튜브도 모바일 규제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하니까, 조만간 경쟁이 더 격화될 거야. 승자는 유튜브일 거고.”

“근데 트위치가 더 크다는 애들도 있던데.”

“세계 점유율은 압도적이지만, 유튜브가 모바일 라이브에 제약을 걸고 있어서 그래. 유튜브는 거의 모든 스마트폰 유저를 확보하고 있어. 그 대중성이 라이브에서도 금세 1인자로 올라서게 만들 거야.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많긴 하겠지만.”

“그럼 프리TV는 인제 망하는 거야?”

“그건 모르겠지만…… 아, 시청자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 뒤로 하나 둘 시청자가 붙었다.

재미없는 소리나 하고 있는데도 나가는 사람이 드물더라.

그렇게 5분쯤 지나자 열 명이 시청하는 방이 됐다.

“와! 열 명이야 아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ㅋㅋㅋ」

「진짜 아빠랑딸이에여?」

“예. 친아빠입니다.”

“저 아빠 안 닮았어요?”

「아니 아빠가 동안이셔서ㅎㅎ」

「몇살이에요?」

“저 중1이요!”

“저는 마흔일곱입니다.”

「??」

「ㄹㅇ?」

소소한 소통으로 ‘10따리’ 방송이 유지된다.

첫 방송인데 그 정도를 끌어들였다면 괜찮은 성과.

그 이유야, 흔치 않은 부녀의 합동방송인 까닭이겠지.

물론 가족이 나온다고 무조건 잘되라는 법은 없는데……

지수는,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참 귀여운 소녀다.

지 엄마를 빼닮았으니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큼한 외모다.

그리고 나도……

민망한 얘기긴 하지만, 꽤 사랑받고 있다.

「형님 이서준닮음ㅎㅎ」

“아, 고맙습니다.”

“땡큐요! 우리 가족이 좀 우월한 유전자예요.”

「아저씨 연예인아니에여?」

“회사 다니다가 얼마 전에 퇴직했습니다. 백수예요.”

「노후대책으로 인방?ㅋㅋㅋ」

“그건 아니고, 이건 제 딸 컨텐츠예요. 학교 수행평가요.”

“저 이거 직업탐색 하는 거예요. 저 인방 잘할 거 같아요?”

「ㅋㅋㅋㅋ귀여워요」

「학생 공부열심히해야지~」

100따리 1000따리 넘어가면 종종 관종들도 들어오는 게 인방의 단점이지만, 신인들 방에서는 그런 일이 잘 없다.

걔들이 관종이라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으니까.

관심 받을 유명한 스트리머와 많은 시청자들이 필요한 거.

덕분에 편안하게 컨텐츠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방제 보시면, 고민상담 방이라고 돼 있잖아요? 저희가 40대와 10대 시점에서 소통방송을 해보려고 해요. 혹시 고민거리 있으신 분?”

“고민 고민!”

「ㅎㅎㅎ」

「연애상담도 돼여?」

“연애상담은…… 너, 연애 해본 적 없지?”

“나 있는데?”

“뭐?”

“초4 때 남친 있었는데. 몰랐어?”

「ㅋㅋㅋㅋㅋ형님레알당황했네」

“어…… 몰랐네. 어떤 애였어?”

“아 몰라. 지금은 헤어졌지. 옛날얘기야.”

「아저씨 요즘은 초딩때 다 연애해요」

「아 ㅈㅅ 국딩때」

연애상담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얘깃거리다.

상반된 시점에서 분석해주면 또 꽤 흥미롭지.

다만, 그게 튜토리얼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 튜토리얼 3 ‘상담을 통해 내담자를 변화시켜봐요’ 」

지금 받은 퀘스트의 중점은 ‘변화’ 쪽.

당장 인방 보다가 새로운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테니, 그걸로 튜토리얼이 달성되는지를 확인할 순 없을 터였다.

애초에 면대면이 아니라서 제대로 된 상담도 아니고.

그런 거야 중요치 않은 부분이었다.

오늘 방송은 성장이 아니라 딸을 위해서니까.

몇몇 고민에 또 썰을 풀고 나자, 마침내 20명이 달성됐다.

“많이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방송 재밌죠?”

「ㅎㅎㅎ재미는모르겠는데」

「계속보게되네여」

「아저씨 목소리 좋아여~」

「형님 썰풀때멋있음ㅋㅋㅋㅋ」

그쯤에서 살짝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긴 했다.

이 좋은 반응들은 단지 향상된 외모의 힘일까?

「 기술 : [인자한 웃음] [차분한 음성] 」

저 메시지 속의 기술들이 작동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자동으로 사용돼서 시청자들이 흐뭇하게 봐주고 있는 걸까?

혹시 그게 아니라 용처를 선택해야 되는 거라면.

어디 한번…… 집중해서 쳐다보면?

「 [인자한 웃음]을 사용합니다 > 내담자 23인

내담자 8인이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내담자 6인이 긍정적으로 반응합니다. 」

……어? 이거 설마?

「와」

「오빠」

「형님 왤케멋있음ㅋㅋㅋㅋ 연예인하세여」

「오빠라고할래.. 마흔일곱아니죠.. 아니라고해죠요」

잠깐만.

기술을 직접 사용해야 하는 거라는 발견에도 의미가 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담자 23인.

그 메시지는, 이 방송이 NBSC에 상담소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그런 생각으로 잠시 멍해져 있을 때였다.

예고도 없이, 세 번째 튜토리얼이 완료됐다.

「 튜토리얼 3 ‘상담을 통해 내담자를 변화시켜봐요’ 완료!

10exp와 [아련한 눈빛]을 지급해드렸어요.

정말로?

누군가가 내 상담을 통해 변화했다는 건가?

「와 칼답왔어!!」

「?」

「오빠 저여」

「아까추천해주신 멘트 쳐봤는데여」

「칼답왔어여 ㅎㅎㅎ」

“와…… 언니 축하해요! 예쁜 사랑 하세요!”

「ㅋㅋㅋㅋ벌써부터 그렇게까지」

「생각이되네여ㅋㅋㅋㅋㅋㅋㅋ」

「ㅎㅎ축하드림」

「머릿속에선 이미 결혼하고있음ㅎㅎㅎㅎㅎㅎ」

「오빠짱짱짱!♥」

그 소통은 곁눈질로만 살펴야 했다.

허공의 메시지 쪽에 집중하느라고.

「 모든 튜토리얼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상담사’님의 자유의지로 최고의 ‘상담사’를 향해 나아가봐요.

튜토리얼은 끝났지만, NBSC는 당신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 레벨업 시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exp로 상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 기술 상점이 개방됩니다.

* 특성 상점이 개방됩니다.

* 퀘스트 달성시 1exp가 지급됩니다.

‘경청은 상담사를 성장시켜요’ (174/100000)

‘더욱 많은 내담자를 만나봐요’ (23/1000)

‘내담자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1/10) 」

십만 건의 경청, 천 건의 상담, 열 건의 성공 퀘스트.

일상 속에서는 쉽게 이루기 힘든 미션들이다.

하루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돼있고, 개중에 상담이라는 목적을 갖고 다가오는 내담자는 극히 드물 테니까.

그 어려운 미션들이 각각 1exp짜리라고 한다.

과연 튜토리얼 때와는 격이 달라진 난이도.

더 이상은 급격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그중 상당량을 채웠다.

고작 40분 남짓한 시간 동안, 174건의 채팅 속 이야기를 봤고, 23명의 유저들과 만났고, 한 명을 행복해지게 했다.

인터넷방송이 아니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으리라.

아무래도 나는……

갈림길 위에 서게 된 것 같다.

*

“아, 짱나. 쫌만 더 했으면 100명 됐을 텐데. 그치 아빠?”

방송을 끄자마자, 딸이 발을 구르며 투덜거렸다.

친구들과 약속한 시간이 딱 1시간이었던 까닭에 한창 잘되는 상황에서 방송을 접어야 했던 것.

그렇지만 정말 100명에 다다르려면 몇 시간이 더 필요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40명에서 100명 가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아.”

“구래? 왜? 나중에는 더 빨리 붙는 거 아냐?”

“신인 스트리머들 방 구경하는 ‘고인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 한정된 파이 속에선 100명도 쉽지 않지.”

“그런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100따리 되는데?”

“꾸준히 방송하면서 단골을 만들어야지. 그 사람들이 스트리머의 팬이 되면, 움짤 만들거나 글을 써서 입소문을 내줘. 거기서 반응이 나오면 빠르게 커질 수 있지. 물론 스트리머 본인이 홍보하러 다닐 수도 있고. 방송분량을 재밌게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게 주된 방법이야.”

“아하…… 아빠, 나 이따 그거 다시 말해줘. 나 배고파.”

“그래. 엄마한테 맛있는 밥 해주세요 하러 가자.”

“아 뭐래. 내가 애긴 줄 아나.”

말은 톡 쏘듯이 하지만 입이 웃고 있었다.

최고시청자 41명을 기록한 방송에 흡족했던 모양.

중간중간 스마트폰 보면서 웃었던 거 생각해보면, 아마 친구들 중에서 상위권의 기록을 낸 것 같았다.

그러니 현실 퀘스트는 훌륭하게 성공한 셈인데.

그 이상으로 큰 걸 얻어서 얼떨떨하다.

「 ‘경청은 상담사를 성장시켜요’ (345/100000)

‘더욱 많은 내담자를 만나봐요’ (48/1000)

‘내담자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1/10) 」

최고시청자는 41명이었지만, 도중에 나간 사람이 없지는 않아서 최종적인 기록은 48명이 됐다.

그들이 작성한 채팅의 개수가 400개를 좀 넘었는데……

ㅎㅎ ㅋㅋ 같은 의미 없는 채팅은 노카운트인 것 같더라.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NBSC의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찾았다.

인방에서 다수에게 가벼운 상담을 해주는 것이야말로 빠르게 exp를 벌어 레벨업을 하는 지름길일 터.

그렇지만 그 선택이 쉽지는 않았다.

마흔일곱의 인방러라니.

노후의 취미 같은 부업이라 하더라도, 아무래도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왔어? 앉아. 밥 거의 다 됐어.”

아내는 이미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중간까지 문지방에서 지켜보다가 없어져서 쉬나보다 했는데, 평소 식사시간 맞추려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

감사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자, 딸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사소하지만 꽤 감동적인 일이었다.

요 몇 년 동안 늘 맞은편 대각선에만 앉았던 아이라서.

사실 그렇게 같이 식사하는 날조차 많지 않았지만.

“아빠 아빠. 근데 있잖아, 나 유튜버 진짜 잘할 것 같지?”

“어…… 너 진심으로 하고 싶은 거야?”

“하면 좋지. 좋지 않아? 공부 빡세게 안 해도 되고.”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야. 단순히 예쁜 외모만 갖고 방송하는 애들도 있긴 하지만, 그러면 거의 롱런을 못 하거든.”

“그러면? 뭐 해야 되는데?”

“좋은 컨텐츠를 개발해야지. 매일 방송 모니터링하고 연구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컨텐츠를 내놓는 거야. 방송인들하고 똑같다고 보면 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쉽고 재밌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냐.”

“……아 모르겠다. 근데 재밌었는데. 아빠랑 해서 그런가?”

그 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하면, 좀 우스울까.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근데 아빠, 나 멋있는 일 하고 싶단 말이야. 막 빛나는 거 있잖아. 회사원 그런 거 싫어. 완전 후져.”

“……후지다니.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게 그 회사원들이야.”

“아니 아는데, 근데 노잼이야. 후진 거 하기 싫어.”

“유튜버라고 해서 그렇게 좋기만 한 건 아니야. 역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야. 핑크빛 꿈으로 이쪽 업계 왔다가 만신창이가 돼서 나간 애들이 정말 많아. 아빠가 일하면서 얼마나 많이 봤는데. 너 그렇게 될까봐 걱정하는 거야.”

“당신은 왜 그런 소리를 해? 애가 뭐 벌써부터 직업 정한대? 어렸을 때는 다 이것저것 꿈도 꾸고 그러는 거지.”

아내의 말이 좀 의외였다.

당연히 공부나 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공부는 해야 되는데.”

“참나, 웃기셔. 그 좋은 공부 열심히 한 애가 큰 게 당신 아냐? 당신은 그래서 어땠는데? 행복했어?”

“행복……한데. 당신처럼 예쁜 아내도 만나고, 지수처럼 착한 딸도 낳고. 행복하지 그럼.”

“아이고, 그러셔? 말은 잘해요 진짜. 자, 먹어.”

사실을 말하자면, 그동안의 삶이 그리 행복하진 않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땐 딸애 말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기를 꿈꿨었다.

그렇지만 실패가 두려워 사회가 장려하는 길을 좇았다.

그리하여 경영진에 휘둘리는 직장인이 됐다.

저녁이 있는 삶조차 포기하고 매달렸지만 결국은 버림받고 말았던, 늘 물러서기만 하는, 후진 회사원.

나는 지금도 후진을 고민하고 있다.

난이도가 높아진 NBSC는 접고 멀쩡한 직업을 찾아보자는.

그렇지만…… 그게 정말 멋진 사람의 길일까.

식사를 마칠 때쯤에,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이제 후진은 그만 하자고.

NBSC와 함께,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전진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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