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213화 (214/220)

213화 인공심장에 깃든 영혼 (1)

카심에게는 몇 가지 별칭이 있었다.

‘아카데미 수석 졸업생’, ‘알마티 최연소 책임 공학자’ 그리고 ‘기계심장 공학자’.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의 그는 평생을 기계에 미쳐 살았다.

기계 팔과 기계 다리 등 인체에 연결할 수 있는 장비를 처음으로 제작한 이도, 역사시대 직후 사라졌던 바이크를 복원해 낸 이도 다름 아닌 카심이었다.

동료 연구원들은 카심의 업적에 박수를 보내면서 그의 집착에 혀를 내둘렀다.

‘저 인간, 분명 심장도 볼트랑 너트로 만들어져 있을 거야.’

평생 기계에 미쳐 살았던 카심은 약 5년 전, 놀라운 존재와 마주했다.

인간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심지어 인간의 감정까지 이해하는 놀라운 존재, 메타휴먼.

사람들은 메타휴먼을 두고 ‘기계’라 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발명되어 인간을 위해 움직이는 인공체였으니, 응당 기계라 불러 마땅한 존재였다.

하지만 정작 기계에 미쳐 살던 카심이 보기에 메타휴먼은 분명 기계와 다른 존재였다.

기계에게는 감정이 없다.

기계에게는 영혼이 없다.

그러나 카심이 목격한 메타휴먼은 감정과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철학적이거나, 정치적인 감상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 결론이었다.

“사람들은 날 미쳤다고 했지. 기계 전문가인 나에게 기계에 대해 잘 모른다며 손가락질했단 말이야.”

그래서 카심은 메타휴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숭고한 의지나, 메타휴먼에 대한 선의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과학자로서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기였지. 너희들이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어. 그저 그뿐이었다.”

그 사이 로보티안 법이 제정되었고, 메타휴먼 중 일부의 시민권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여전히 메타휴먼을 기계로 여겼다.

아니, 기계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건 차라리 광기였다.

결국 카심은 메타휴먼이 집단 폐기되는 광기 속에서 지하 쓰레기장으로 내려갔다.

고연봉의 공학자라는 직업도, 명예도 모조리 내버린 채 부서져 버린 메타휴먼들을 수리하고, 그들을 연구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카심은 진심으로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 덥수룩해진 수염, 지상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쓰레기…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차라리 너희를 모르는 편이 나았어.”

카심은 증명 과정에서 메타휴먼들을 깊이 이해했다.

버려진 메타휴먼들에게 기계 팔, 기계 다리를 달아 주면서 그들이 아픔과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다.

메타휴먼들은 쓰레기더미 속에 살아가면서 생존 방식을 학습했고, 역할을 분담했으며, 서로를 배려했다.

가끔 서로 싸우기도 했고, 인간을 두려워하며 경계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갔다.

더러 유머를 구사하는 녀석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의 인공 심장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젠 그들을 보내야 할 때가 왔다.

키리리릭.

메타휴먼들의 선두에 선 탱크가 가만히 고개를 숙여 카심을 빤히 바라보았다.

탱크 역시 카심의 중얼거림을 들었지만,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카심은 그런 탱크와 그 뒤쪽에 도열해 선 이들을 바라보며 목을 가다듬었다.

“모두 이미 들었을 겁니다.”

확성기를 거친 목소리가 넓은 광장에 울린다.

“우리의 계획대로 된다면 여러분의 신체 기능은 완전히 멈출 겁니다.”

카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왔다.

알마티 성문 앞 광장에 선 메타휴먼의 붉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카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좋은 일이에요.”

알마티 지하에 버려졌던 이들, 50구역 공장 지대에서 온 이들, 셸터의 포트리스를 지키던 이들 모두 말없이 카심의 말을 듣고 있다.

“여러분들의 영혼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겁니다. 더 이상 인공 몸뚱어리에 갇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채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때였다.

“우리는 죽는 겁니까?”

50구역에서 온 메타휴먼들의 리더, 가이가 조용히 물었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주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부분의 메타휴먼들은 바로 그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처음으로 감정을 깨닫는다.

카심은 그런 가이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평소 과격한 말을 서슴없이 쏟아 내던 카심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진지한 학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카심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난 철학자나 생물학자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요. 하지만 만약 방금 말한 ‘죽음’이 기계의 ‘폐기’를 뜻하는 거라면…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겪게 될 일은 폐기 따위가 아니에요.”

가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 질문했다.

“오늘이 지난 뒤에도 친구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미안하지만, 난 대답해 줄 수 없습니다.”

“…….”

“하지만 유사한 사례는 알고 있지요.”

다른 세계에서 넘어와 메타휴먼의 성격을 띠고 있던 사람들.

세연, 닐스 레오나드, 알렉세이 딘, 클라이드 바토리.

카심 역시 그들의 사연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영혼과 영혼 사이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순간, 메타휴먼들 사이에 약한 웅성거림이 일었다.

“…물론 여기에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카심은 잠시 망설였다.

눈앞 메타휴먼들에게는 지금 사태에 그 어떤 책임도, 잘못도 없다.

그들이 대륙민들의 소울에너지를 추출한 것은 애당초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끔찍한 무기로 만들어졌다 한들, 존재 자체만으로 죄가 된다고 감히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다들 조용!”

지금부터 내뱉을 말들은 협상장에 나간 다섯 사람과 논의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의 상태를 원한다면, 영혼의 해방을 원하지 않는다면 선택지는 있습니다.”

웅성이던 메타휴먼들의 시선이 다시금 카심에게 집중되었다.

“성 밖을 포위한 메타휴먼들과 함께하면 됩니다. 성안에 있는 모두를 제압하고, 드림코퍼레이션에 복종한다면 여러분은 지금의 상태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소름 끼치는 정적이 맴돌았다.

침묵을 깬 이는 홀로 멀찌감치 서 있던 최초의 로보티안, 프랑켄이었다.

“그 말, 진심입니까?”

“물론 여러분들이 그 길을 택한다면 가장 먼저 살해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나, 카심일 겁니다.”

오로지 인간의 영혼을 착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생명체 메타휴먼.

결국 카심 역시 그런 메타휴먼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메타휴먼의 두려움에 공감했기에 카심은 메타휴먼들에게 다른 선택지를 알려 주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메타휴먼들은 저마다 나름의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그 무기들이 어느 쪽을 향할지는 오롯이 그들 자신의 몫이었다.

곧이어 메타휴먼들이 저희끼리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키리리릭… 키릭.

어수선한 와중에 탱크가 조용히 카심의 곁에 와서 선다.

“탱크……?”

“지…킵…니다.”

망가진 기계 성대에서 띄엄띄엄 흘러나오는 목소리.

만약 다른 메타휴먼들이 카심을 공격해 올 경우, 탱크는 기꺼이 카심을 위해 싸울 것이다.

“나도 함께하지, 친구.”

프랑켄이 자신의 소총을 고쳐 잡으며 카심의 곁에 와서 섰고, 말없이 지켜보던 보니 역시 프랑켄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렇게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방송 기기를 통해 루키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륙민들은 모두 듣고 있소? 듣고 있다면 지금 당장 무기를 드시오!”

격앙된 그의 목소리가 온 알마티를 쩌렁쩌렁 울린다.

“대륙민을 전부 노예로 만들어 버리려는 미치광이에 맞섭시다!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미래란 없을 거요!”

그리고 마침내 카심 앞에 서 있던 메타휴먼들 역시 일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소란하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팔과 다리, 미약하게 뛰는 심장, 몽롱한 정신.

살아 있는지 자각하기조차 힘든 가운데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히 세이드의 몸뚱어리는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였다.

양팔과 양다리는 십자가에 단단히 박혀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알마티인가.’

시야가 흐릿한 가운데 알마티에서 쏟아져 나오는 군세가 보였다.

온갖 무장을 갖춘 기계병단과 메타휴먼들이 선두에 서서 전차처럼 돌진해 오고 있다.

알마티 자경단원들 역시 구식 소총을 쥔 채 정면으로 돌격 중이었다.

도검이나 권총 따위로 무장한 마피아와 레지스탕스들이 우회하여 센트럴 진영 좌우를 노리고 달려든다.

낡고 헤진 LAPD 복장의 반군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으며, 바이크를 탄 펑크라이더들이 무질서하게 사방을 휘젓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셸터의 포트리스가 순양함을 향해 포격을 쏟아 내는 중이었고, 딘이 만든 비공정들이 상공에서 알마티 군세를 엄호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건 총공격이었다.

그러나 센트럴 진영에서는 알마티 군세를 요격하기 위해 다가가는 부대가 없었다.

‘꿈…인가?’

현실일 리 없다.

저렇게 거대한 군세가 센트럴을 향해 일방적으로 공격해 오는 장면이 현실에서 가능할 리 없었다.

과거 혁명군이 기세를 떨칠 당시에도 저렇게 거대한 병력이 모인 적은 없었다.

곧이어 십자가 아래쪽에서 비명과 고함이 들려왔다.

“마, 막아!! 배신자들을 막아라!”

“배신자는 저쪽이다! 인류의 배신자를 처단하라!!”

“메타휴먼들을 전부 부숴 버려라!!”

깡통처럼 곳곳에서 부서지고 있는 센트럴 메타휴먼들.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있는 센트럴 병사들.

혼란 속에서 센트럴 장교들은 자신들의 순양함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렸고, 충혈된 눈으로 메타휴먼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아니, 그들은 더 이상 센트럴의 병력이 아니었다.

‘꿈이… 아니구나.’

생생하게 들려오는 고함 소리.

“9중대 몇 놈이 달아났다! 찾아! 그 저주받은 놈들을 전부 없애 버려!!”

“반란이다! 막아라! 으아아악!!!”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 그리고 피비린내.

그 모든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전부 현실이라고.

센트럴이 무너지고 있다고.

세이드는 기력이 다한 와중에도 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흐, 흐흐흐… 흐흐흐흐흐하하하…….”

평생을 증오했던 센트럴, 모든 것을 빼앗아 갔던 센트럴.

마지막까지 자신을 이용했던 센트럴.

그 거대한 괴물이 마침내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도 잠시, 세이드는 곧이어 짐승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흐흐흐흐흐흑!!”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센트럴 부대들을 보면서, 불타오르는 센트럴 순양함을 보면서, 속절없이 부서지는 메타휴먼들을 보면서, 달아나는 센트럴 병사들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허무하게 죽어 간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어리석게 이용당하던 자신의 모습이 비참했다.

지상에 함께할 수 없음에 비통했다.

말랐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잃었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저씨!! 세이드 아저씨!!”

제니, 그녀의 목소리였다.

“내가 가고 있어! 내가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새까맣게 충돌하는 군세 속에서 악착같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 * *

콰쾅!!

북쪽 전선에 배치되어 있던 센트럴의 마지막 포대가 마침내 폭파했다.

그 많던 센트럴 병력 중 알마티를 막아서는 이들은 없었다.

상당수의 부대가 ‘같은 편’을 자처했고, 앞장서서 센트럴 메타휴먼과 플루톤을 공격했다.

그나마 센트럴의 편에서 싸우던 병사 대부분은 달아나기 바빴다.

그러나 그런 승리 속에서도 카심은 웃을 수 없었다.

“탱크, 잠시만.”

카심을 어깨에 앉힌 채 내달리던 탱크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카심을 따라 주변을 둘러본다.

끼리릭, 키릭… 쿵!

셸터의 기계병 하나가 한창 센트럴 병기들을 부수다가 갑자기 멈춰서 버린다.

바로 옆에 50구역 공장지대 메타휴먼 셋이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지하 쓰레기장에서 오랫동안 함께해 왔던 메타휴먼들 역시 대부분 기능을 정지한 채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모두… 떠나는구나…….”

카심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그렇게 멈춰 선 메타휴먼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누구 하나 자신의 기능 정지를 막기 위해 카심을 공격하지 않았다.

기능이 정지된 뒤 그들의 영혼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깨어날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건 사실상 죽음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타휴먼들은 기꺼이 센트럴을 향해 진격했다.

어쩌면 자신들의 생을 유지시켜 줄지도 모를 센트럴 병사들을 공격했다.

멈춰 서 버린 센트럴 메타휴먼들의 잔해를 밟고 나아갔다.

그리고 이젠 대부분의 메타휴먼들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탱크…….”

키리릭.

탱크의 고개가 자신의 어깨 위 카심에게 향한다.

그 눈의 붉은빛이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나는…….”

“고마웠습니다.”

또렷한 한마디.

기계 성대가 망가진 뒤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진짜 탱크의 목소리.

“나의 친구, 카심.”

그 한 마디를 끝으로 탱크의 눈에 남아 있던 붉은빛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탱…크…….”

카심은 완전히 멈춰 버린 탱크의 몸체를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마구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폭발음으로 인해 그런 카심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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