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괴물 (2)
센트럴 제7군단 2대대 돌격대 지휘관 마커스 대위.
마커스 대위가 이끄는 돌격대는 본래 경비대로서 제로 구역의 치안을 담당했던 부대였다.
의원들의 경호에서부터 저택 보안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제로 구역 의원들의 사병처럼 운용되던 부대.
군부의 주요 장교들은 그런 경비대를 ‘귀족의 개’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무시했다.
그러나 센트럴오더가 발령된 직후, 제로 구역의 사병처럼 움직이던 경비대는 돌격대로 편제가 변경되었다.
제로 구역을 지키던 치안 부대가 별안간 최전방에 배치된 것이다.
많은 이들은 돌격대를 ‘자살 특공대’라 부르며 비웃었다.
전멸에 몇 주나 걸릴지 내기를 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투 부대로 편성된 돌격대는 놀라운 전과를 내기 시작했다.
고작 반나절 만에 서대륙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던 14구역을 점령했고, 그로부터 채 이틀이 지나기 전에 11구역과 12구역 저항군까지 소탕했다.
경호를 담당하며 테러에 대응했던 경험을 살려 은밀하게 숨은 반군 저격수들을 제거했고, 트랩과 복병에도 철저히 대응했다.
그렇게 돌격대는 철저한 군기와 최신식 무장을 바탕으로 센트럴 최강의 정예로 거듭났다.
아니, 사실 경비대 시절부터 마커스 대위의 부대는 철저히 준비되어 있었다.
언제나 외치던 구호.
‘우리야말로 센트럴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기계처럼 읊어 대던 신념.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알마티 북부 전선.
최전방에 선 마커스 대위는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마티 포대가 쉴 새 없이 불을 뿜어 대는 가운데 부하들이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
곳곳에 피어오른 모래 소용돌이 속에서 부하들의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전장 한가운데에서는 순양함을 폭파한 거신병이 마구 날뛰며 부하들을 마구 짓밟고 있었다.
상공에서는 수백 개의 낙하산이 일제히 떨어져 내렸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마구 울부짖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목소리.
찢기고, 터진 몸뚱어리에서 풍기는 피의 악취.
그건 모두 돌격대 부하들의 것이었다.
“중대장님, 더는 진입할 수 없습니다!”
마커스 대위에게 발을 절뚝이며 다가온 소대장이 가쁜 숨을 내쉬며 다급히 말했다.
“후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명령을…….”
“후퇴?”
가만히 소대장의 말을 되뇐다.
마커스 대위는 고개를 돌려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가만히 소대장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는 희생만 커질 뿐입니다!”
얼굴이 상기된 채 고함을 내지르는 소대장의 표정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도망을 치자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게 돌격대의 신조 아니었던가.
더는 ‘귀족의 개’라며 손가락질 받지 않겠다며 다짐하지 않았던가.
“작전이 잘못되었습니다, 중대장님. 이건… 이건 우리더러 죽으라는 의미란 말입니다!”
아무리 정예라 해도 돌격대에게 성벽을 향해 무조건 전진하라는 지시는 분명 비상식적이었다.
시가전에서의 경험과 전략은 개활지 공성전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다.
“사령관님의 지시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상하잖습니까! 전차들은, 포대는 왜 가만히 있는 겁니까!?”
전차도, 지원 포격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돌격대는 그저 눈에 띄는 표적이었고, 불길을 향해 달려드는 하루살이들에 불과했다.
“사령관님이……!”
“빌어먹을! 엿이나 먹으라고 하십시오! 지금 당장 후퇴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이건, 이건 개죽음이란 말입니다!!”
소대장이 목에 핏대를 올리며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런데 그 순간, 어째서인지 소대장의 키가 조금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아니, 작아지고 있었다.
“이대로면 다 죽습……!”
한창 마커스 대위를 다그치던 소대장이 별안간 말을 멈추었다.
그 또한 자신의 눈높이가 부자연스럽게 낮아지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곧이어 마커스 대위와 소대장의 시선이 동시에 소대장의 발밑으로 향했다.
“이, 이게……?”
소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의 다리가 마치 늪에 빠지기라도 한 듯 황무지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스스스스스…….
발목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허리로, 그리고 곧이어 가슴까지.
“어, 어어……!?”
소대장은 마치 물에 빠진 듯 양팔을 들고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다시 몸을 빼내려 애썼다.
그러나 발버둥 치면 칠수록 그의 몸은 깊숙이 파묻혀 들어가고 있었다.
소대장은 다급하게 손을 뻗어 마커스 대위에게 내밀었다.
“주, 중대장님……!”
그 짧은 틈에 이미 소대장은 목까지 파묻힌 상태였다.
마커스 대위가 급히 소대장을 향해 손을 내밀려는 순간, 뒤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버려 둬.”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대장의 몸뚱어리가 대지에 완전히 삼켜졌다.
소대장을 삼켜버린 황무지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런, 이런…….”
마커스 대위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센트럴의 총사령관 닐스 레오나드, 그가 마커스 대위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닐스는 보좌하는 장교도, 병력도 없이 혼자였다.
“혹시 놈이 내민 손을 잡아 주려 했나?”
“…….”
마커스 대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사령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총사령관이 어째서 최전방까지 홀로 나타난 걸까?
아니, 눈앞의 사내가 총사령관이 맞긴 한 걸까?
곧이어 닐스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눈이 좀 뻑뻑해져서 말이야.”
닐스의 팔이 천천히 올라간다.
츠츠츠츠…….
곧이어 닐스의 발밑 모래알들이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빨리 마무리 지어야겠어.”
노곤해 보이는 닐스의 얼굴이 어째서인지 마커스 대위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두렵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죽어 나가고 있는 돌격대 부하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폭발음과 등 뒤에서 불타고 있는 순양함, 전의를 상실한 채 달아나기 시작한 돌격대 소대장들.
사령관은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사령관님, 대체… 당신은…….”
마커스 대위는 무언가 물으려 했지만, 미처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즈음 닐스가 자신의 눈에서 무언가를 떼어 냈던 것이다.
쿠구구구구…….
닐스의 발밑에서 흙먼지가 일며 거대한 모래 장벽이 치솟아 오른다.
전투 첫날 보았던 사자 형상의 파도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규모의 모래 장벽.
그러나 마커스 대위는 그 와중에 눈 앞 장벽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렌즈를 벗겨 내고 마침내 드러난 닐스의 눈동자, 그건 마치 피와 같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마커스 대위의 입에서 한숨과도 같은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메타휴먼…….”
“이제야 좀 살 만하군. 눈이 좀 피로했거든.”
마침내 렌즈를 벗겨 낸 닐스는 마커스 대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많이 놀란 표정이군. 그렇지?”
군은 센트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조직이다.
그렇기에 군 내부에 ‘코카서스’와 같은 조직이 뿌리를 내렸으며, LAPD와 달리 로보티안의 입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커스 대위 역시 코카서스의 일원이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메타휴먼이……!”
돌격대는, 자신은 대체 누구를 위해서, 누구의 지휘를 받으며 싸우고 있었던가.
잠깐 사이, 마커스 대위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다음 순간, 거대한 모래 장벽이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모래 파도가 그의 시야를 뒤덮었다.
알마티 북쪽 장벽 앞의 전투가 멈추었다.
아니, 갑작스럽게 내려앉은 어둠 때문에 전투를 지속할 수 없었다.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레 뒤쪽에 거대한 모래 장벽에 집중되었다.
태양을 가릴 정도로, 알마티 장벽마저 넘을 정도로 높이 올라선 모래벽.
첫날 태일과 클라이드가 막았던 모래 파도의 몇 배는 될 정도로 거대한 장벽이 전장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센트럴 병사들도 알마티 자경단도, 50구역 마피아들도, 전장 한가운데 날뛰던 거신병과 상공의 비공정들도 전부 장벽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쿠구구구구구…….
장벽이 거대한 굉음과 함께 진동하기 시작했다.
파스스스스스…….
마치 허물어지듯, 거대한 파도처럼 장벽이 앞으로 쏟아져 내린다.
전장은 일순간 멈춰 섰고, 모래 파도는 천천히, 웅장하게 전장을 뒤덮었다.
거대한 모래 파도가 전장을 덮어 버리면서 이전까지 전장을 메웠던 소음들이 모조리 사라져 갔다.
폭발음도, 포격음도, 사격음도, 비명도, 울음도, 절규도 파도 속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 * *
“어째서… 어째서……!”
보니는 당황한 얼굴로 멈춰 선 거신병을 향해 열심히 팔을 휘저었다.
그러나 보니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거신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뿌득, 뿌드드드득!
기분 나쁜 굉음과 함께 거신병 몸체 곳곳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를 뿐이었다.
관절들이 완전히 굳어 버린 듯 꿈쩍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부품을 다시금 분리할 수조차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북쪽 전장을 덮친 거대한 모래 파도.
제아무리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해도, 그래 봐야 흐물거리는 모래에 불과하지 않은가.
모래 파도는 거대한 규모에 비해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과연 모래에 뒤덮였던 병사들 역시 파도가 잦아든 뒤,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보니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전의 모래 파도가 평범한 모래 폭풍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고부터 전장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 모, 몸이!”
흙모래에 닿은 병사들의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 갔다.
“몸이 움직이질 않아……!”
“내 다리…! 내 다리가!?”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거신병의 관절부를 틀어막은 입자들은 그대로 단단히 굳어 버렸으며, 총기들 역시 한낱 돌덩이로 변해 버려 발사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파도에 닿은 모든 이들이, 모든 물질이 마치 화석처럼 단단히 굳어 가고 있었다.
모래 파도에 닿았던 비공정 다빈치 역시 완전히 돌덩이로 변해 버렸고, 엔진에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조향 장치 고장.
엔진 장치 고장.
우측 날개 구동 불가.
“비행이… 불가능해.”
프랑켄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 비공정의 상태를 확인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와중에 보니의 시선은 다빈치가 아닌 북쪽으로 향해 있었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전장을 거니는 대머리 사내.
“괴물…….”
적은 물론 자신의 부하들까지 전부 석화시켜 버린 사령관, 닐스 레오나드.
사박, 사박.
닐스는 보니와 프랑켄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비공정 다빈치.
닐스 역시 잘 알고 있는 딘의 역작이었다.
딘이 만든 다빈치를 보는 순간, 모처럼 과거의 생각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사령관…님……!”
몸이 반쯤 굳어 버린 장교 하나가 몸을 질질 끌며 닐스에게 다가왔다.
“제,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닐스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지나쳤다.
“으, 으아아아!!”
단검을 치켜든 반군 하나가 딱딱하게 굳어 버린 다리를 질질 끌며 닐스를 향해 달려든다.
그러나 닐스는 표정 변화 없이 들고 있던 석장을 휘둘러 겁 없이 달려든 그의 복부를 내리찍었다.
“컥!!”
석장 끝에 닿은 반군의 복부가 딱딱하게 굳어지며 누런 모래로 변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악!!”
산 채로 석화되어 부스러지는 사내의 몸뚱어리를 지켜본 병사들은 겁에 질린 나머지 더는 닐스를 향해 애원하지도, 공격하지도 못했다.
센트럴군과 반군의 병사 모두가 고통스레 신음을 토해 내며 죽어 가고 있었지만, 닐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모든 것은 가짜다.
이 전장도, 자신의 신분도 모두 한낱 시뮬레이션에 불과했다.
심지어 닐스의 기억 속 추억조차 모두 부질없는 한낱 환상일 뿐.
그러나 닐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추락한 다빈치 쪽으로 향했고, 결국 그 앞에 멈춰 섰다.
그런데 정작 다빈치 앞에는 처음 보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너희는 뭐지?”
“…….”
어린 여자아이와 붉은 눈동자의 사내.
둘은 애써 두려움을 숨긴 채 닐스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몸의 떨림을 막지는 못했다.
닐스는 그런 두 사람을 보고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석장을 고쳐 잡았다.
“인형들을 조종한 게 너였구나.”
사내 쪽은 몰라도 여자아이 쪽에서 느껴지는 소울 에너지는 꽤 위험한 수준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대답 대신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스스스스… 쾅!
닐스 주변의 모래가 꿈틀거리더니 사자만 한 크기의 전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끼리리릭!
전갈이 모습을 드러내자 조금 전까지 다빈치의 몸체를 이루고 있던 강철이 뜯겨 나와 전갈의 갑각을 감싸 보호했다.
거기에 더해 집게 다리에는 날카로운 톱니가 달라붙었다.
보니의 능력으로 강철과 융합된 전갈은 마치 갑옷으로 무장한 신화 속 괴물처럼 보였다.
닐스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키메라의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석장을 움켜쥐었다.
“이래서야 더는 전갈이라고 할 수 없겠군.”
키메라는 독침과 집게 다리를 휘두르며 곧장 닐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닐스가 가볍게 석장을 휘두르자, 키메라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모래 벽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쾅! 콰쾅!
앞, 뒤, 양옆에서 솟아오른 삼각형 형태의 모래 벽.
성난 키메라의 독침과 강철 집게가 온 사방을 두들겼지만, 단단하게 구축된 벽을 부수지는 못했다.
그 사이, 삼각형 벽은 비스듬히 쓰러지며 키메라를 빈틈없이 가두었다.
“저런 괴물이라면 피라미드와 더없이 어울리지.”
키메라를 완전히 봉인한 피라미드는 빠른 속도로 압착되며 규모가 작아졌다.
그로부터 얼마간 내부에서 키메라가 마구 난리를 피웠지만, 오래지 않아 불쾌한 소리가 내부로부터 들려왔다.
뿌득, 뿌드드득!
뼈가 부스러지고, 갑각이 부서지며, 몸에 융합된 철판이 우그러진다.
그렇게 키메라의 반응은 무덤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