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202화 (203/220)

202화 동토의 지원군 (3)

― 현 시간부로 드림코퍼레이션의 모든 자산… 회수… 치지직… 메타휴먼들의 모든 권리는 드림코퍼레이션에 귀속… 치지지지… 권리 또한 더는 인정되지 않는다.

“빌어먹을…….”

동쪽 성벽에서 전해 온 통신.

그리고 바로 그 방향에서 드리워진 그림자.

부정확한 통신과 순양함의 그림자는 단 한 가지를 의미했다.

‘적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안드레이는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바뀔 건 없다.

애당초 동쪽 성벽으로 지원을 보내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안드레이와 바르코는 각각 자경단, LAPD를 이끌며 서쪽 성벽으로 몰려오는 센트럴 군을 막아 내고 있었다.

아니, 눈앞의 병력을 막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콰쾅!! 쾅!!

매캐한 연기로 인해 눈이 맵고, 목이 시큰거린다.

서쪽 성벽 중앙에 올라선 안드레이는 그런 와중에도 악착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쏴, 쏘란 말이야!”

“우리 집과 마을이……!”

자경단원 몇몇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센트럴의 폭격기들은 포대나 성벽, 자경단이 아닌 도심을 노렸다.

알마티 시내에는 부모가, 연인이, 자식이 있다.

센트럴 군에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은 민간인들이었지만,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센트럴 수비 병력의 시선이 분산되었고, 방어 역시 느슨해졌다.

그 틈새를 노린 센트럴 병력이 개미 떼처럼 성벽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연신 뒤를 돌아보는 자경단원의 멱살을 붙잡고는 마구 흔들어 댔다.

“야, 이 새끼야!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뒤가 아니라 앞을 보란 말이야! 전부 죽일 거야?”

“대, 대장… 가족이…….”

“살아 있다!”

알지 못한다.

그의 가족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아니, 애초에 녀석의 가족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안드레이는 악을 썼다.

“전부 살아 있다고! 저 정도로는 죽지 않아!”

그건 안드레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와 인연을 맺어 온 이들 역시 알마티 시내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그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 살아 있을 거라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

“알마티가 점령되면, 알마티가 무너지면 다 죽는다! 알아!?”

센트럴 군은 서부 반란을 진압한 뒤, 민간인을 비롯한 모두를 학살했다.

알마티에 이루어질 보복이 그보다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핏발 선 안드레이의 눈을 바라보던 자경단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총을 고쳐 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콰콰쾅!!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발밑이 무너져 내렸다.

지이이이이잉…….

이명(耳鳴)과 함께 주변의 비명도, 폭발음도 들리지 않는다.

온몸이 타 버릴 것만 같은 열기, 희뿌옇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코를 찌르는 하수구의 악취.

퍼퍽! 퍽!

안드레이의 몸뚱어리가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돌무더기에 몇 차례나 부딪혔고, 어깨와 복부에서 비명조차 지르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거센 충격 뒤, 간신히 정신 줄을 붙잡은 안드레이가 애써 온몸을 꿈틀거렸다.

질퍽한 하수구 진흙탕 속에서 몸부림치며 눈을 떠 보니 바로 옆에 허리가 꺾여 버린 사내의 공허한 얼굴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쿨럭!!”

겨우 몸을 일으킨 그의 시야에 무너져 내린 성벽이 보였다.

조금 전 포를 발사한 순양함의 거대한 포대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봐! 괜찮아!? 제기랄……!!”

성벽 위쪽에서 바르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안드레이는 자신의 생존을 알리려 했지만, 전방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그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성벽이 무너졌다! 저길 노려!!”

센트럴 쪽 장교의 명령에 이어 최소 수천에 이르는 병사들이 무너진 성벽 틈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끝이군. 나도 곧 가오, 형님.’

안드레이는 가만히 자신의 무기를 고쳐 잡았다.

지하도시를 벗어난 날부터, 형 시몬이 죽던 날부터 안드레이는 늘 죽음을 각오한 채 살았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역시 없었다.

“대장, 뭘 그리 비장한 얼굴이오?”

“혼자 멋진 척은 다 하지. 하여튼.”

근처에서 함께 추락하여 몸을 추스른 병사들이 안드레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대략 수십 명에 이르는 동료들.

이곳으로 몰려오는 수천의 센트럴 군을 보고도 등 돌려 달아나지 않는 멍청이들.

“바보 같은 놈들…….”

“같이 싸웁시다.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테니.”

콰쾅!! 쿠구구구구…….

근처에 거대한 진동과 함께 먼지가 피어오른다.

바르코의 LAPD 부대가 조금이라도 센트럴의 진격을 막기 위해 포격이라도 가한 것일까.

안드레이는 주변 동료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최후의 지시를 내렸다.

“엄폐물을 찾아서 산개해. 사격 준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최후까지 싸운다.

안드레이는 성벽 잔해물 뒤로 가만히 몸을 낮춘 채 전방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곧 나타날 센트럴 병사들에 대비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센트럴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쿠구구구구…….

땅은 계속해서 진동하고 있었고, 안드레이 쪽으로 총알 한 발 날아들지 않았다.

무너진 성벽을 향해 몰려들던 센트럴 병사들의 고함과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뭐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때, 안드레이의 통신기에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긴 셸터(Shelter). 다들 무사한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코드명.

안드레이는 그 와중에도 의아한 얼굴로 통신기를 살폈다.

전쟁터에서 듣기에는 지나치게 유쾌한 목소리였다.

― 제군들, 지금부터 우리도 전투에 참전하겠다. 모쪼록 너무 놀라지 말길 바란다.

쿠구구구구…….

곧이어 전방에서 거대한 소음과 함께 땅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벽 위 바르코의 포격 때문일까?

아니, 포격 따위가 아니었다.

알마티가 가진 그 어떤 포대로도 센트럴군의 발목을 이처럼 오래 잡아 둘 수 없다.

곧이어 먼지 속에서 거대한 형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콰쾅!!!

강력한 철갑으로 무장한 거인들.

철컥! 철컥! 철컥!

황무지에 파묻혀 있던 거인들이 지상으로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부터, 어떻게 지하에 그런 것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대체 이 거인들은 뭐란 말인가?

땅을 뚫고 나와 모습을 드러낸 거인들은 센트럴 군 쪽을 향해 서 있었다.

키릭!

거인들의 어깨와 팔에 장착되어 있던 포구들이 일제히 불을 내뿜는다.

콰쾅!! 쾅!!

장벽을 향해 몰려들던 센트럴 군을 향해 일제히 포격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악!!”

전방에서 센트럴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안드레이는 멍하니 거인들의 등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서쪽 성벽 위에서 아래쪽 상황을 내려다보던 바르코는 입을 쩍 벌린 채 얼마간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못했다.

갑자기 나타난 거인들과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센트럴 병력.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거인들이 누구이기에 자신들을 돕는지 알 수 없었다.

애당초 땅 밑에서 왜 갑자기 거인들이 튀어나온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바르코는 거인들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메타휴먼들이라고……?’

그렇게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바르코.”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바르코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서, 선배!?”

LAPD의 사냥개, 강필.

50구역 서장으로 부임했던 ‘LAPD의 전설’이 바르코 앞에 서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일단 놈들부터 해치우고 나서 말이야.”

곧이어 강필의 주변에 떠 있던 쇠구슬들이 성벽 아래 센트럴 군을 향해 섬광처럼 쏘아졌다.

* * *

“오랜만이야, 녹스. 아니, 이젠 ‘보니’인가? 프랑켄, 너도 여기 있었군.”

“오랜만입니다.”

프랑켄은 다빈치 조종대를 잡은 채 태연히 대꾸했지만 보니는 아니었다.

보니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앞에 나타난 알렉세이 딘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알렉세이 딘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보다시피 도우러 왔어.”

“…….”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보니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직 능력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지?”

보니는 대답하지 않은 채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순간에도 보니가 만든 기계인형들이 북쪽에서 몰려오는 센트럴 병사들과 맞서고 있었다.

부서지고, 또 부서지더라도 살아 움직이는 좀비들.

“비효율적이야.”

수많은 기계인형의 통제는 보니의 정신력을 터무니없이 갉아먹었고, 시스템 녹스의 계산 능력 또한 아늑히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이제 기계인형들은 그저 지성 없이 살아 있는 센트럴 병사를 향해 달려들고, 깔아뭉개고, 때릴 뿐이었다.

“저래서야 일반 병사만도 못하지.”

센트럴 병사들은 사실상 허수아비와 다를 바 없어진 인형들을 짓밟으며 북쪽 성벽에 몰려들었다.

클라이드가 거대한 폭풍우를 활용해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병들을 막아 냈지만, 점차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보니, 네 능력은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야.”

딘이 고개를 내젓더니 조용히 말했다.

“뭐, 나도 한때는 너처럼 비효율적으로 능력을 사용했지만.”

“잔소리를 하려거든……!”

“잘 봐 둬.”

딘이 씩 웃더니 살며시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곧이어 보니가 통제하던 기계인형들이 저마다 행동을 멈추었다.

땅을 뒹굴거나 센트럴 병사들의 발뒤꿈치를 물고 있던 톱니들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곧이어 그 부품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이야!?”

놀란 보니가 클라이드를 향해 외쳤지만, 클라이드는 여유롭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볼트와 너트, 톱니와 톱니, 판과 블록들이 저마다 짝을 찾아 꼼꼼히 다듬어졌다.

끼릭, 끼리리릭, 딸깍… 철컥!

필요에 따라 구부러지고, 다듬어지고, 접합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제작되고 있었다.

온갖 물질을 다루는 보니와 유사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운용.

딘의 능력은 ‘융합’이 아닌 ‘조립’이었다.

마치 하나의 공정을 수십 배 빠른 속도로 보는 것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그 찰나의 순간, 전장에서 총소리가 멎었다.

전투에 나섰던 센트럴 병사들은 물론 북쪽 성벽을 방어하던 알마티 방어군 역시 놀란 눈으로 전쟁터 한가운데 만들어지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채 3분도 지나지 않아 전쟁터 한가운데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거신병이 완성되었다.

키릭, 키리릭!

어설픈 인형이나 기괴한 좀비가 아니었다.

거신병은 처음부터 그런 생명체가 존재하기라도 했던 듯 유연하게 관절부를 가동했다.

몸을 일으킨 거신병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팔을 들어 올린다.

“양보다는 질.”

지이이이이이이이이잉……!!!

거신병의 팔에 거대한 에너지가 몰려든다.

“확실한 컨셉.”

거대한 빛의 형태로 한 방향을 향해 쏘아진다.

콰콰쾅!!!

곧이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센트럴 군의 순양함 한 대가 꿰뚫렸다.

“명확한 목표.”

거신병의 공격으로 구멍이 뚫린 순양함은 곧이어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켰고, 함선에 실려 있던 장비들과 포대 역시 일제히 불길에 휩싸였다.

북쪽 전장에 내려앉은 침묵.

성벽을 향해 달려들던 센트럴 병사들도, 성벽 위에서 센트럴 군을 막던 알마티 군도 멍하니 불타는 순양함을 바라볼 뿐이었다.

“제대로 된 메이커(Maker)가 되려면 그 정도는 생각해 두는 게 좋아.”

알렉세이 딘은 보니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보니가 뭐라 대꾸하려는 순간, 딘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조금 전, 순식간에 순양함 한 대를 부숴 버린 거신병은 조종사를 잃어버린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조종대를 잡고 있던 프랑켄이 놀란 듯 탄성을 내질렀다.

“이게 대체……!?”

다빈치가 비행 중이던 알마티 북쪽 상공 곳곳에 수십 기의 비행체가 고도를 낮춰 내려앉기 시작했다.

“딘, 이 미친 자식…….”

클라이드는 이마를 감싸 쥔 채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알렉세이 딘은 예전부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혁명군에 속해 있었지만, 혁명군과 거리를 두었고, 뭐든 제멋대로였다.

천재적인 두뇌로 놀라운 무기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변덕스럽기 그지없어 자신이 제조한 무기를 제멋대로 부숴 버리기도 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게 분명했지만, 전투에 나서지 않았고 철저하게 기술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했다.

이쪽 세계의 딘도 마찬가지였다.

포트리스에 처박혀 ‘사막여우’라 불리며 괴상한 발명에 심취한 괴짜.

세이드처럼 센트럴에 적극적으로 맞서지도, 그렇다고 자신처럼 센트럴에 협력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딘이 갑자기 영문 모를 통신과 함께 전장에 개입한 것이다.

곧이어 통신기에서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현 시간부로 동부 연합도 전투에 참전하겠다.

‘동부 연합?’

49구역 전투에서 닐스가 이끄는 센트럴군에 의해 사실상 괴멸당한 조직.

그 조직의 이름이 들려오자, 클라이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그리고 곧이어 상공에 비공정 수십 대가 스텔스 모드를 해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홀로 상공을 날며 센트럴 군을 교란하던 다빈치의 주변이 금세 비행체들로 가득 메워졌다.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놀란 센트럴 병사들이 공중을 올려다본 그 순간, 비공정에서 낙하 장비를 갖춘 이들이 일제히 강하하기 시작했다.

전장 한가운데 시꺼멓게 내려오는 수백 개의 낙하산, 그리고 그 와중에 쏘아진 총탄들이 센트럴 병력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한눈에 보아도 훈련된 군사라기보다 무법자에 가까운 차림새.

마피아와 LAPD, 용병 따위로 이루어진 동토(東土)의 지원군이 전장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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