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201화 (202/220)

201화 동토의 지원군 (2)

알마티 LAPD와 장인들이 합심해 만든 포대와 장비들은 센트럴의 공습을 막아 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자원과 비용 대부분을 동부 지역 개척에 사용하면서 군용 장비 정비에 소홀했고, 포탄 역시 부족했다.

미리 폭격을 준비해 거리를 비우고 대피소를 마련해 민간인들을 대피시켜 놓았지만, 폭격이 계속된다면 민간인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했다.

그러나 태일은 뒤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폭격에 흔들려 부대가 동요하고 분산된다면, 정면에서 진격해 오는 적병을 막아 낼 수 없다.

만약 지상 전투에 동부 전선이 밀린다면 알마티는 무너질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았기에 카심과 탱크 역시 뒤쪽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을 애써 무시한 채 정면의 전차 부대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포격 준비!”

카심의 지시와 함께 메타휴먼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겨누었다.

짧은 시간에 발터와 막야가 제조해 공급한 총기와 대포의 총구가 일제히 전차 부대를 향한다.

“대기.”

카심의 시선은 미리 알마티 동부 개척지에 심어 둔 말뚝에 고정되어 있었다.

철갑으로 무장한 전차는 빠른 속도로 진격해 왔고, 단번에 말뚝을 지나쳐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해 들어왔다.

“발사!!”

그와 동시에 고막을 찢는 굉음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리고, 시꺼먼 연기가 사방을 뒤덮는다.

발터가 개발한 수류탄이 전차들의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연쇄 폭발을 일으켰고, 막야가 직접 제련한 강철로 만들어진 작살 수백 개가 전차들의 포대와 캐터필러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래식 무기들은 전차의 철갑을 뚫지 못했고, 전차 부대는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왔다.

그 모습을 본 태일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너무 무리하지 말게.”

카심의 염려에 태일은 그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탱크를 비롯해 전차 수준의 무장을 갖춘 메타휴먼들이 태일의 옆에 버티고 섰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겠어.”

태일은 굳게 버티고 선 순양함을 바라보며 곧장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극도로 불리한 조건에서, 모든 것이 열세인 환경에서 전투를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법.

그건 사실 간단하다.

“사령관부터 잡는다.”

어느새 푸른빛의 스파크가 태일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전열을 유지해라. 겁먹을 필요 없어!”

동부 전선 전차 부대의 지휘를 맡은 대대장 도널드 중령은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제의 전투는 그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괴물 뱀에 의해 전차 수십 대가 파손되었고, 이어진 메타휴먼 돌격대에 더 많은 전차를 잃었다.

그로 인해 제7군단 전차 부대는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그러나 이번 전투는 달랐다.

알마티는 저희 손으로 성벽을 허물었고, 숲을 정리해 개활지로 만들었다.

전차에 최적화된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게다가 메타휴먼으로 편성된 알마티 부대의 포격은 전차 부대의 화력과 방어력에 비해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전차 부대의 힘을 똑똑히 보여 줘!”

순양함과 비공정, 전투 드론이 개발된 이후 기갑부대의 전략적 가치는 늘 과소평가되었다.

그러나 전차 부대는 정밀 타격과 거점 점령에 있어 강점이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도심에 폭격을 가하더라도 오로지 폭격만으로는 땅 한 뼘조차 점령할 수 없다.

결국 전쟁을 마무리 짓고, 점령을 마무리 짓는 건 기갑부대와 보병들이다.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캐터필러들이 알마티를 향해 회전하기 시작했다.

“속도를 더 높여! 틈을 주지 마라!”

“선배, 진격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자칫 잘못해서 전방이 당하기라도 한다면…….”

도널드 중령의 옆에 있던 작전참모가 흥분한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니, 이번 전투는 우리 전차 부대가 책임져야 해. 시간이 제일 중요하단 말이야.”

중소형급 비공정을 운영하는 동기들에 비해 진급이 뒤처진 도널드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전차 부대의 역량을 과시할 생각이었다.

“포격 시작해!”

통신기를 통해 도널드의 목소리가 퍼져 나간다.

쾅! 콰쾅!! 쾅!

그와 함께 마침내 전차들의 포구가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발음과 메타휴먼들의 진영 곳곳에 균열이 일었다.

알마티 측에서 대응 포격이 이어졌지만, 전차 부대의 돌격 속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부 짓밟아 버려!”

동부의 방어벽을 무너뜨린 뒤, 곧장 시가지로 진입해 시청과 공장 등 기반 시설을 장악하면 전투는 곧바로 끝난다.

알마티 상공에서 벌어지는 폭격 따위로는 도시 자체를 완전히 점령하거나, 전투를 종결시킬 수 없다.

그건 오로지 기갑부대의 역할이었다.

특히 이번 전투에서는 동부 전선, 도널드의 전차 부대가 가장 먼저 알마티 시청을 점령할 터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끼리리릭!! 끼릭!!

불길한 쇳소리와 함께 전방의 전차들이 일제히 멈춰 서기 시작했다.

쿵! 쿠쿵!!

돌격하던 전차들이 전방에 멈춰 선 전차와 충돌하거나, 뒤엉켜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뭐, 뭐야!?”

후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널드가 깜짝 놀라 고개를 빼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지뢰라도 매설된 건가?”

“전방 부대와 통신이 끊어졌습니다! 전차가 움직이지 않는 걸로 보아 전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연료는 충분히 준비해 뒀잖아?”

콰쾅!!

최전방에 있던 전차들이 멈춰선 가운데, 전장 곳곳에서 불길한 굉음이 들려왔다.

전차 간 통신망이 마비된 가운데, 제대로 된 상황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고, 그 사이 기세가 오른 알마티 방어 병력의 포격이 계속되었다.

“이런 미친!”

어느새 앞 열 전차에서부터 차례로 격파되기 시작했고, 도널드 중령이 위치한 지프차 근방 전차까지 완전히 멈춰 섰다.

곧이어 도널드 중령의 눈에 푸르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멈춰선 전차의 차체를 완전히 뒤덮은 무언가.

파칫! 파치치칙!

“뭐야, 저건… 전류!?”

미세하게 튀는 스파크를 바라보던 도널드 중령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곧이어 어제 목격했던 광경이 떠올랐다.

거대한 창의 형태를 띠고 있던 번개가 온갖 물질로 만들어진 장벽을 차례로 꿰뚫던 바로 그 광경.

워낙 비현실적이었기에 보고도 믿지 못했다.

심지어 당시 그 창을 만들어 낸 건, 특정 병기가 아니라 이레귤러… 즉, 인간이라고 했다.

“설마…….”

멈춰 선 전차의 뒤편에서 장발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도널드 중령이 탄 지프차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프차 쪽을 바라보았다.

“찾았군.”

곧이어 사내의 왼팔에서 푸른빛의 칼날이 만들어졌다.

그 어떤 능력으로도 막아 내지 못했던 빛의 창.

그것과 닮은 형태의 칼날이 정확히 이쪽을 노리고 있었다.

“서, 선배……!”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운전병과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작전참모가 도널드 중령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도널드 중령의 입에서 말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후진.”

도망.

그 결정을 이해한 작전참모가 경악한 얼굴로 도널드 중령의 팔을 붙잡았다.

“아, 안 됩니다, 선배!”

수백 대에 이르는 전차가 투입되었고, 그중 상당수가 전쟁터 한가운데 멈춰 서 있었다.

부대 전체가 위기에 빠진 상황이었고, 타개를 위해 빠른 판단과 대응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휘관이 달아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작전참모가 급히 도널드 중령을 설득하려 했지만, 곧이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운전병을 다그쳤다.

“뭐 해, 이 새끼야!! 밟아!! 밟으란 말이야!”

“네, 넵!!”

당황한 운전병이 황급히 대답하며 곧장 지프차의 방향을 돌렸다.

차체가 거세게 흔들린다.

그런 가운데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작전참모가 황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님, 보고라도…! 지금 상황의 보고라도 상부에 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도널드 중령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작전참모를 노려보았다.

“이 새끼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대가리가 잡히면 전부 끝인 거 몰라? 보고 같은 건 일단 여길 탈출하고 나서……!”

쾅!!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차체가 마구 흔들렸다.

차창 밖에 푸른빛이 번쩍였고, 차가 전복된 듯 타는 냄새가 풍겨 왔다.

그렇게 거세게 흔들리는 차 안에서 도널드 중령의 몸뚱어리가 힘없이 내팽개쳐졌고, 차 천정에 머리를 몇 차례나 부딪혔다.

빠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작전참모의 머리가 도널드 중령의 가슴팍에 거세게 부딪혔다.

눈앞이 하얗게 된 가운데, 통증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으, 으으…….”

잠시 뒤, 머리를 감싸 쥔 채 눈을 떠 보니, 기절한 작전참모와 운전병의 모습이 보였다.

“젠장……!”

이 와중에도 숨 막힐 듯 텁텁한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온몸이 타 버릴 것처럼 뜨거웠다.

일단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안도한 도널드 중령은 상황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바로 순간, 창밖에서 시퍼런 빛이 번쩍이며 다시금 지프차 차체가 마구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쾅! 콰쾅!

“으으윽!!”

거세게 흔들리는 차체 안에서 머리를 감싸 쥔 가운데 바깥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치지지지지지지지지…….

하늘 높이 솟아오른 푸른 불길, 그리고 그 불길을 타고 오르는 용처럼 선명하게 빛나는 스파크들.

모든 것을 태워 버릴 듯 뜨거운 열기가 온 사방을 메우고 있었다.

그처럼 지옥 같은 현장에는 조금 전까지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다가오던 태일과 닐스의 9중대원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넋을 잃고 그 대치 상황을 바라보는 찰나, 지프차의 흔들림이 멈추었다.

곧이어 누군가 지프차 창문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무사하십니까?”

“으, 으앗!!”

“너무 놀라지 마십쇼, 대대장님. 모시러 왔습니다.”

뚱한 표정의 사내가 곧장 전복된 지프차의 문을 잡아 뜯었다.

어떻게 된 악력인지, 그저 한 손으로 방탄 차량의 잠긴 문을 마치 종잇장 구기듯이 내던져 버렸다.

그 역시 9중대 이레귤러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겁에 질린 도널드 중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 *

끼이이익!! 콰직!! 콰지지직!

탱크를 비롯해 돌격대로 편성된 메타휴먼들은 태일이 필드를 펼치며 멈춰 세운 센트럴 전차들을 차례로 부수고 있었다.

그건 사실상 전투라기보다 전차 해체 작업과 다를 바 없었고, 마치 공정의 작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전차의 포대를 꺾어 다시는 포를 쏘지 못하게 만들고, 캐터필러를 파괴해 기동을 막으며, 연료를 누출시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것만으로도 전차들은 손쉽게 무력화되었다.

“으, 으악! 사, 살려 줘!!”

한편, 전차를 무력화시키는 메타휴먼들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이 전차를 탈출해 황급히 달아났다.

그러나 메타휴먼들은 병사들의 뒤를 쫒거나,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전차들을 파괴해 나갈 뿐이었다.

콰쾅!!

수십 대의 전차를 해체했을 무렵, 태일이 사령관을 잡겠다며 달려갔던 방향에서 거대한 불꽃이 일었다.

푸른 불꽃과 번개가 뒤엉켜 마치 용이 승천하는 듯한 형상을 자아냈고, 굉음과 함께 온 땅이 흔들렸다.

한창 작업 중이던 메타휴먼들의 시선이 잠시 그쪽으로 집중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금 고개를 돌린 채 묵묵히 전차들의 해체 작업을 계속했다.

‘저건 우리의 역할이 아니야.’

태일과 그의 동료들은 번개를 쏘아 대거나 바람을 일으키고, 고철로 병사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모두가 그들처럼 전장을 뒤흔들 정도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탱크를 비롯한 메타휴먼은 태일처럼 거대한 힘을 갖지 못했지만, 대신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태일이 알마티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것처럼, 탱크 역시 동료들과 함께 싸우기로 결심했다.

‘너희가 인간인 걸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고? 그야 간단하지. 너희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잖아.’

어제 탱크와 만났던 세연은 그렇게 말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메타휴먼.

자신들을 학대하는 인간들이 무서워 도망친 메타휴먼.

메타휴먼들은 그런 자신들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인간임을 입증했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증거는 그리 대단할 게 없었지만, 그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 삐이이이이…….

한창 전차를 해체하던 메타휴먼들의 분주하던 손이 다시금 멈추었다.

묘한 사이렌 소리와 어두운 그림자.

― 아아, 들리나, 제군들?

온 사방에 울리는 목소리.

― 한창 바쁜 중 미안하네만, ‘드림코퍼레이션’의 의뢰를 받아 할 일을 하러 왔네.

익숙하고도 혐오스러운 기업의 이름이 전쟁터에 울린다.

곧이어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자신의 용무를 읊어 대기 시작했다.

― 현 시간부로 드림코퍼레이션의 모든 자산을 회수한다. 메타휴먼들의 모든 권리는 드림코퍼레이션에 귀속되며, 로보티안의 권리 또한 더는 인정되지 않는다.

저건 대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그 누구도 탱크를, 메타휴먼 동료들을 소유할 수 없다.

그들은 알마티의 시민이었으며,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 본 지시에 불응하는 불량품은 ‘코카서스’가 폐기하도록 한다. 이상.

방송이 종료될 때 즈음, 전장은 완전히 그림자에 가려진 뒤였다.

어느새 동쪽에서 나타난 두 척의 순양함이 탱크를 향해, 알마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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