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D―Day (5)
“여전히… 엄청나군.”
닐스는 제자리에 선 채 자신 쪽을 향해 날아오는 두 자루의 창을 바라보았다.
그 무엇이든 관통해 철저히 파괴하는 신의 창, 아스트라페.
누가 지은 이름인지 몰라도 그처럼 적확한 단어가 또 있을까?
몇 년 전, 아스트라페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당시, 경이로움과 두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설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뒤로 물러서시면 저희가……!”
9중대장을 비롯한 부대원들이 황급히 닐스의 앞을 막아섰다.
“너희가 막아 보겠다고?”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작 너희 따위가?’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방어벽을 쳐! 사령관님을 보호해라!”
9중대원들이 나름의 대열을 갖추더니 제각기 능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콰콰쾅!!!
9중대장의 손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전장 한가운데로 옮겨 간다.
곧이어 알마티 장벽에 버금가는 높이의 거대한 불의 장벽이 들어섰다.
“흐아아아압!!!”
부대원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갖가지 속성의 장벽들이 연달아 생겨났다.
거대한 물의 방패와 끈끈한 입자의 그물막, 거울처럼 드리워진 얼음벽까지.
절대 방어를 표방하는 네 개의 장벽이 순식간에 아스트라페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지막으로 단단한 비늘과 갑각 따위로 신체 변형을 마친 중대원들이 장벽 바로 뒤에 버티고 섰다.
견고하고 화려하게 구축된 방어벽은 전쟁터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레귤러들로 이루어진 9중대.
애당초 군단에서 가장 이질적인 이들의 본래 목적은 사령관의 보호였다.
그러나 닐스는 알고 있었다.
“…제법이긴 하다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곧이어 두 개의 창이 9중대의 방어벽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쿠쿠쿵!
물의 방패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콰지지직!
그물막이 갈가리 찢기고.
쨍!!
얼음벽이 산산히 부서진다.
닐스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묵묵히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곧이어 닐스의 발밑에 균열이 일면서 지하에 숨겨 두었던 거대한 석장이 지상으로 드러났다.
닐스가 석장을 움켜쥔 바로 그 순간.
콰쾅!!
마지막 남은 불의 장벽과 두 대의 창이 맞부딪혔다.
화염과 빛, 바람이 뒤섞인 가운데 온 사방에 광풍이 몰아쳤다.
천재지변의 환경 속에서 병사들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든 광풍과 온몸이 타들어 갈 듯한 열기, 그리고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
그러나 닐스는 그 충돌의 장면을 담담히 응시했다.
거센 충돌 속에서 바람으로 만들어진 창은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그러나 그 거대한 화염조차도 빛의 창까지 막아 내지는 못했다.
쾅!
결국 불의 장벽마저 몇 갈래로 갈라지며 거대한 틈새가 생겨났다.
그 한가운데로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아스트라페가 닐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마지막 방어벽까지 뚫린 것을 확인한 중대장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몸으로라도 막아!!”
이제 전쟁터 내 모두의 시선이 똑바로 사령관의 목을 노리는 빛의 창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킹을 잃으면 나이트와 비숍, 폰들이 전부 살아 있어도 게임은 패한다.
빛의 창이 닐스의 목을 꿰뚫는 순간, 전쟁은 알마티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닐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도리어 소환한 석장을 손에 쥔 채 앞으로 나섰다.
“전부 물러서.”
“사령관님……!!”
9중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중대원들 모두가 당황한 와중에 닐스가 석장을 뻗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빛의 창을 똑바로 겨누었다.
스스스스…….
석장 끝으로 주변의 흙과 모래들이 모여들더니 잠깐 사이에 둥그런 방패가 형성되었다.
중대원들이 만들었던 방벽들에 비해 닐스가 만든 방패는 간신히 자신의 몸뚱어리만 가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다.
성벽과도 같던 방어벽으로 막지 못했던 창을 막아 내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는 방패였다.
9중대장은 저도 모르게 참혹한 결말을 그리며 눈을 감고 말았다.
한편, 닐스의 방패에서는 무언가가 압착되고 으스러지는 소리가 불쾌하게 들려왔다.
뿌득, 뿌드드득……!
방패를 이룬 것은 그저 모래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전투에서 죽어 간 병사들의 살과 뼈, 피가 마구 뒤섞인 채 으깨어져 방패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닐스의 방패는 피의 붉은 빛을 띠었다.
역사시대, 사막에서 낙타로 만들었다던 최강의 벽.
‘가죽과 뼈, 그리고 피. 그렇게 만들어진 장벽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그런 장벽이 지금 닐스의 석장 끝에서 더욱 강력하고 잔혹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었다.
무수한 죽음을 대가로 만들어 낸 붉은 장벽.
‘나를 비난한다 해도 어쩔 수 없어, 대장.’
콰콰쾅!!!!
마침내 태일이 날린 빛의 창과 닐스의 붉은 장벽이 충돌했다.
‘난 처음부터 이런 놈이었거든.’
카각! 카가가가가가각!!!
빛의 창이 거센 속도로 회전하며 닐스의 장벽을 파고든다.
그러나 닐스는 온 사방에서 모래와 사망한 병사들의 잔해를 끌어왔고, 피의 방패를 계속해서 보강했다.
빛은 점차 기세가 줄어 갔지만, 피의 장벽은 더욱 단단해져 간다.
닐스의 주변에는 아스트라페의 빛을 감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더 많은 피가, 더 많은 죽음이 빛을 삼켜나갔다.
츠츠츠츠…
그렇게 아스트라페는 피의 장벽을 뚫지 못한 채 스러졌다.
아스트라페가 사라지면서 흙먼지가 가라앉는다.
닐스는 석장을 거두며 비공정 위에서 서 있는 태일을 바라보았다.
아스트라페를 사용하고 난 뒤, 시전자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사실상 전장에서 태일의 역할은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다.
“이게… 대장의 한계야.”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비열한 수법이라도 기꺼이 사용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동료의 시신을 방패로 사용해야 하며, 악마와도 거래해야 한다.
‘만약 대장에게 더 많은 소울 에너지가 있었다면, 고작 이정도로 막지 못했겠지.’
태일은 이상론자였기에 타인의 소울을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대장이 나를 의심했다면,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겠지.’
태일은 사람을 믿었기에 자신과 같은 첩자를 신뢰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는 건, 당연한 거야.”
닐스는 냉정하게 중얼거리며 석장을 치켜올렸다.
“전부 죽여라!!!”
고요 속에서 울리는 사령관의 목소리.
“와아아아아아!!!”
“쏴라!!!”
사기가 오른 군단의 함성 소리가 온 사방에 울린다.
곧이어 아스트라페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에 놓였던 전투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메타휴먼들로 이루어진 알마티 선발대는 이미 기세가 꺾인 채 발이 묶여 있었다.
“놈들을 포위해!”
요르문간드의 습격으로 인해 위축되었던 좌측 진영 돌격대가 알마티 선발대의 측면을 향해 돌진한다.
알마티 선발대는 당장이라도 괴멸될 듯 보였고, 가장 위협적이었던 태일은 조금 전의 일격으로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
“오늘 저녁 식사는 알마티에서 먹는다!”
속전속결.
기세를 잡은 이상, 단번에 몰아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닐스의 귓가에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 * *
전선의 최전방.
끼릭― 철컥! 끼릭― 철컥! 끼릭― 철컥!
정면에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쇳소리.
알마티 성벽 아래에서부터 뿌연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뭐야, 저건!?”
닐스의 활약에 고무되어 알마티 선발대를 밀어붙이던 막스의 눈에 묘한 광경이 비쳤다.
태엽과 철판, 나사와 볼트, 파이프와 강화유리.
온갖 부품과 소재들이 제멋대로 뒤섞인 것들, 무생물 키메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거미같이 생긴 녀석, 접시처럼 생겨 데굴데굴 구르는 녀석, 어설프게 만들어진 두 다리로 위태롭게 걸어오는 녀석까지.
애초에 제대로 된 설계와 계획, 규칙조차 없이 만들어진 몰골이었다.
“어디서 저런 것들이……!?”
문득 막스는 공중에 부유하고 있던 순양함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중에 부양한 채 마구 분해되던 순양함.
막스는 그렇게 생겨난 부품들이 알마티 장벽 쪽으로 모여들던 장면을 기억해 냈다.
그 재료들로 잠깐 사이에 이처럼 많은 인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수천에 이르는 인형의 규모에 순간 당황했지만, 그 면면을 살핀 막스는 코웃음을 쳤다.
“하, 이건 또 무슨 장난질인지 모르겠군.”
그도 그럴 것이 인형들은 그럴듯한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저 머릿수만 많을 뿐, 어설프게 만들어진 깡통 로봇에 불과하다.
“전부 부숴 버려! 무기조차 없는 고철들이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몸뚱어리의 철제 인형들.
탕! 타탕!! 쾅!!
이어진 포격 속에서 인형들의 몸뚱어리가 부서져 나갔고, 바퀴나 톱니바퀴들이 분해되어 사방에 나뒹굴었다.
그러나 그렇게 몸뚱어리가 부서져도 놈들은 멈추지 않았다.
끼릭― 끼리리릭―
걷고 또 걷는다.
키리리리리… 키릭!
구르거나, 기거나, 몸체를 질질 끄는 녀석도 있다.
“뭐야! 멈추질 않잖아!?”
“머, 머리! 머리를 날려 봐!”
“젠장, 저걸 봐! 머리가 어딘지 넌 알겠냐?”
알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머리나 두뇌가 없는 꼭두각시이니까.
그 와중에 포격으로 인해 부서진 부품들은 저희끼리 뭉쳐져 또 다른 인형을 만들어 냈다.
부수어도 부서지지 않는 불사의 인형.
자아 분열하며 그 수를 점차 늘려 가는 ‘기계 좀비’.
곧이어 수천에 이르는 좀비들이 전장 한가운데로 난입해 들어왔다.
인형들은 강철로 된 몸뚱어리를 마구 휘두르며 병사들을 덮쳤다.
묵직한 철근을, 톱날을, 날카로운 쇳조각을 병사들의 몸에 쑤셔 박는다.
“우와아아아악!!!”
“내 다, 다리가!!”
“끄아아아악!! 떨어져! 떨어지란 말이야!!”
그 기괴하고 무식한 공격에 놀란 병사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버렸다.
수백 발의 총탄도, 날붙이도 놈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콰콰쾅!!
“포, 폭탄! 폭탄을 준비해!!”
방법은 오로지 하나.
아예 잿더미로 만들어 파편조차 남기지 않는 것뿐이었다.
기계인형들의 난입에 놀란 건 센트럴 측 병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이던 알마티의 메타휴먼들 역시 갑자기 난입한 기계인형들의 전투에 당황한 나머지 얼어붙고 말았다.
철제 몸뚱어리를 지닌 가운데 병사들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인형들.
이성도, 지성도 없이 그저 공격 의지만으로 내달리는 좀비들.
몸체 절반이 부서진 가운데 메타휴먼들을 이끌던 리더 탱크는 그런 인형들을 보며 생각했다.
‘난… 우리는… 과연 저것들과 다른가?’
알마티 지하에서 수십, 수백 번의 치료… 아니, 개조를 거쳐 강철의 몸을 갖게 된 메타휴먼들의 겉모습은 순양함의 부품들이 뒤섞여 만들어진 기계인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메타휴먼과 기계인형은 거의 다르지 않았다.
붉게 빛나는 눈동자를 제외하고.
* * *
‘코카서스’, 그것은 역사시대의 흔적 중 가장 비밀스럽게 계승된 이름이었다.
하얀 피부의 우월한 제국민을 의미하던 ‘코케이시언(Caucasian)’, 그 명칭은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코카서스는 피의 순수성, 종족의 순수성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순수성을 간직한 자들만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으며, 진정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기에 코카서스는 노예로 전락한 대륙민을 경멸했고, 인간의 순수성을 훼손한 메타휴먼을 증오했다.
“간만이군.”
그리고 지금 코카서스의 리더인 ‘크리스토퍼 마인’ 앞의 홀로그램에는 메타휴먼을 만든 당사자, 아크가 떠올라 있었다.
“반갑습니다, 장군님.”
아크는 지난 몇 년 동안 코카서스의 가장 큰 적이었다.
모두가 그의 천재성에 대해 찬탄했지만, 코카서스의 입장에서 그는 저주받은 괴물을 제조한 프랑켄슈타인 박사일 뿐이었다.
그러나 코르지의 실종 직후, 코카서스는 그토록 증오하던 아크와 손을 잡았다.
물론 동맹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해묵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마인은 불필요한 인사 대신 곧바로 용무를 물었다.
“알마티에서의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아크 역시 곧장 본론을 꺼낸다.
“알마티로의 합류를 서둘러 주십시오.”
“닐스의 군단이 알마티를 공격하기로 되어 있지 않았던가?”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알마티 전투가 시작된 지 이미 12시간은 넘게 지났을 것이다.
“설마 그 닐스가 알마티를 무너뜨리지 못한 건가?”
순양함 5척과 여러 전투로 단련된 강력한 병력.
심지어 사령관 닐스는 이미 동부와 서부에서 반군을 연달아 무너뜨리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그런 닐스가 작은 도시 알마티를 어쩌지 못한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크는 고개를 내저으며 조용히 답했다.
“…반군이 알마티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마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반군? 그런 오합지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누구도 감히 구시대의 종말을,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막을 수는 없다.
“장군님, 우리가 원하는 세계의 도래를 위해서는 서둘러 알마티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아크는 언제나 능글맞은 웃음과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마인의 속을 뒤집어놓곤 했다.
그러나 지금 아크의 얼굴에는 한 줌의 웃음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인은 그런 아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함대가 아직 모두 집결하진 않았네만…….”
마인이 지휘하는 코카서스 군단은 이틀 전부터 포르투나 함대와의 연락이 끊어지자, 줄곧 그의 행적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알마티의 점령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점에 탐욕스러운 늙은이 하나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포르투나의 순양함들을 제외하더라도 마인 휘하에는 두 척의 순양함과 오천의 병력이 있었다.
그 정도로도 알마티 점령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서두르면 내일 아침 즈음에는 알마티에 도착할 수 있을 거네.”
아크는 그런 마인의 결단에 감사하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