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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95화 (196/220)

195화 D―Day (2)

쾅!! 콰쾅!!

알마티의 포위를 위해 배치된 전차들과 포대가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눈! 눈을 노려!”

“뭉치지 말고 흩어져!”

병사들 역시 저마다 아우성을 치며 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눈먼 총알에 불과했다.

잠깐 사이에 수천 발에 이르는 총탄들이 소모되었고, 소란은 커져만 갔다.

‘가관이군.’

전쟁의 시작, 전초전(前哨戰).

기선 제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첫 전투다.

첫 전투의 진행 양상에 따라 양측의 사기가 결정되고, 전쟁의 승패를 가름한다.

닐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첫 전투의 시작을 신중하게 조율했다.

상대방에게 절망감을 심어 줌과 더불어 전쟁 자체를 포기할 정도의 압도적인 전초전을 연출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첫 전투는 닐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엉뚱한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우, 우와아악!! 피해!”

“꼬리를 조심해라!”

고작 저주받은 뱀 따위가 군단을 덮치며 제멋대로 전투를 시작해 버린 것이다.

요르문간드는 최후를 각오하기라도 한 듯 날뛰었다.

닐스가 배치해 둔 병력을 거대한 몸뚱어리로 마구 깔아뭉갰고, 온 사방에 꼬리를 내리치며 포대와 전차들을 부쉈다.

그와 동시에 머리를 치켜든 채 주변의 무인 드론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채 내던졌다.

거대한 표적인 만큼 놈의 비늘에 수십 발의 총탄이 박혔지만, 그럴수록 더 거세게 공격해올 뿐,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쾅! 콰쾅!

채찍처럼 날아든 꼬리에 직격당한 전차들이 연달아 부서지며 폭발했다.

“물러서지 마! 똑바로 조준하란 말이야!”

“드론들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조종해!”

다급히 지시를 내리는 장교들의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그러나 정작 겁에 질린 병사 몇몇이 벌써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었다.

부대 전체가 고작 뱀 따위를 어쩌지 못해 허둥거리는 꼬락서니는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심지어 놈은 49구역에서 메데이아와의 전투 당시 군단을 공격했다가 중상을 입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쓸모 있는 놈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군.’

닐스는 가만히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돌려 알마티 장벽 쪽을 바라봤다.

과연 이 꼴을 보며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연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일까?

하긴, 지휘관인 자신이 보기에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니, 실컷 비웃고 있겠지.

하지만 어차피 일회용 소모품에 불과한 병사들이었다.

애당초 기대조차 없었으니 화를 낼 이유조차 없지 않은가.

물론 사령관 행세를 하고 있으니 그냥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9중대장.”

“예, 사령관님.”

“너희가 처치해.”

그나마 군단에서 쓸모 있는 놈들이라면, 역시 능력자로 구성된 9중대 정도일까.

9중대장은 고개를 숙여 보인 뒤, 곧장 부하들과 함께 요르문간드를 향해 나아갔다.

중대장의 양팔에는 어느새 붉은 화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한편, 부관은 불안한 눈으로 닐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써 구축한 진영이 무너지고, 병사들이 연달아 쓰러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닐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사령관님, 피해가 자꾸 커지고 있습니다. 차라리 병사들을 물리고 9중대가 싸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사상자가 무수히 발생하는 가운데에도 상황을 관조하는 닐스의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부자연스러웠다.

부관은 오랫동안 닐스 레오나드를 보필했기에 누구보다 그의 괴팍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성격대로라면 지금의 상황에 길길이 날뛰면서 욕설을 퍼부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닐스는 병사들의 피해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예……?”

“만약 자네가 알마티 수비를 맡았다면 어떻겠나? 상대 진영이 뱀 한 마리에 놀아나는 모습을 보며 어떤 판단을 내릴까?”

끼이이이이…….

“아마 지금이 기회라 여길 거야.”

알마티 북쪽 장벽 한가운데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알마티에서 쏟아져 나온 병사들이 닐스의 군단을 향해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나름 시선을 끌지 않으려 애쓰는 듯 함성을 지르거나 기세를 올리지 않는다.

“마오 대령.”

“예, 사령관님.”

알마티 부대의 움직임을 확인한 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부관이 급히 대답했다.

“플루톤 2호기를 발진시켜. 겁 없이 달려오는 놈들 전부 쓸어버리고 곧장 알마티 장벽을 무너뜨리도록 해.”

“며,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부관이 허겁지겁 순양함으로 달려가는 사이, 닐스는 진격해 오는 알마티 부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관을 비롯해 참모라 불리는 멍청이들은 알마티 점령을 쉬운 작전으로 여겼다.

장벽 앞에 주둔하면서 부대를 배치하고 포대를 설치하겠다는 닐스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모든 일이 시간 낭비라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닐스는 알마티가 얼마나 지독한 요새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혁명군’이라는 신분을 연기하면서 알마티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투들을 직접 경험했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파치치치…….

진격해 오는 부대 사이사이의 거미줄처럼 촘촘히 펼쳐진 푸른 스파크.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알기 힘든 능력이지만, 닐스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부대원 주변에 둘러쳐져 총탄들을 막아 줄 뿐 아니라 적들의 진입을 막는 필드.

‘결국 여기서 다시 만나네.’

아직 태일의 모습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알마티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터무니없이 강력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오합지졸 부하들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멍청이는 태일 이외에 없을 테니까.

‘…대장.’

어쩌면 닐스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가장 그리웠던 이는 다름 아닌 태일이었다.

― 좋아, 자네 말대로 이쪽으로는 포격이 날아들지 않는군. 하늘이 도왔어.

통신기를 통해 카심의 흥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심은 자신도 함께 나가겠다며 한사코 고집을 부렸지만, 안드레이와 바르코, 태일까지 막아서자 마지못해 물러섰다.

― 탱크,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드릴, 이번에 새로 달아 뒀으니까 성능은 내가 보장한다.

그 대신 카심은 통신기를 통해 열심히 떠들어 댔다.

― 코만도한테 장착해 놓은 폭탄은 특히 조심해야 해! 폭발 범위가 꽤 넓으니까, 던지자마자 거리 두는 거 잊지 말고.

― 카심…….

― 아, 캐터필러에 기름칠은 해 뒀지만, 수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캐터필러 기동력을 너무 믿는 건 위험해. 가능하다면 상대 탱크에서 괜찮은 부품이라도 가져오면…….

― 카심!

― 왜? 뭐 도울 거라도 있나?

― 꼭 필요한 내용만 전달해요! 시끄럽단 말이야!

제니의 바락 대드는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쨍쨍거리며 울렸다.

― 이, 이 버릇없는 꼬맹이가……!

― 싸우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그래도 다행이라면, 통신기의 수다 덕분에 모두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 듯했다.

태일은 메타휴먼 탱크의 캐터필러 위에 간이로 설치된 의자에 앉은 채 센트럴 군단의 상황을 주시했다.

요르문간드는 필사적으로 놈들을 공격하는 중이었고, 그 덕분에 센트럴 군의 포격이 일제히 그쪽으로 몰렸다.

그로 인해 적 부대는 알마티 쪽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 이건 기회야. 빠른 속도로 놈들의 순양함부터 무력화시키자고!

카심의 흥분한 목소리가 다시금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태일과 제니, 메타휴먼들로 구성된 알마티 선발대는 다섯 척의 순양함 중 하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기습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태일은 작전이 그처럼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센트럴 군단을 이끄는 사령관 ‘닐스 레오나드’.

그는 태일이 아는 가장 뛰어난 전략가였으니까.

특히 혁명군 간부였던 닐스, 그는 49구역과 같은 황무지 전투에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태일은 애써 넓은 범위에 필드를 펼친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 뭐, 뭐야? 지진인가!?

제니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땅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쿵! 쿠쿵!

― 아니. 지진 같은 게 아니야.

땅 전방 곳곳이 움푹 파이며 개미지옥처럼 거대한 구멍들이 형성됐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흙과 돌들이 거대한 주먹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거인의 주먹.

혁명군 간부 시절의 닐스가 선보인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주먹들이 온 사방에서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태일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문 채 고함을 내질렀다.

“온다!!”

곧이어 온 사방으로 주먹이 유성우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얇게 쳐져 있던 스파크 필드들이 연달아 찢겨 나갔다.

잠깐 사이에 수십 명에 이르는 메타휴먼들이 주먹에 깔려 박살 났고, 그나마 첫 공격을 피한 메타휴먼 상당수가 구덩이에 빠져 전복당했다.

한편, 모래 주먹은 땅을 다지기라도 하듯 땅을 연거푸 내려찍어 댔고, 그 가운데 뿌연 모래 먼지로 인해 시야까지 가려졌다.

― 으와아아아!! 닐스, 이 새끼가!!

― 지, 지원 포격을 준비할 테니까 조금만 버텨!

경악에 찬 제니의 비명 소리에 이어 포대를 담당한 바르코의 목소리가 긴급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태일은 황급히 무전기를 집어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포격은 안 돼!

― 왜 그러나?

태일은 의아해하는 바르코의 반응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이마를 감싸 쥐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알마티 수비병 대부분은 전투에 익숙하지 못했다.

도시의 치안을 맡은 LAPD 역시 레이저건과 빔소드와 같은 병기를 다룰 뿐, 포격과 전쟁, 전략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는 게 없었다.

― 시야가 불분명해서 아군을 맞출 위험성이 높아. 게다가 능력으로 만든 주먹은 부순다 해도 금세 새로 만들어지니 포탄 낭비일 뿐이야.

― …젠장.

스피커를 통해 당황한 바르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럼 어쩌잔 말이지? 지금 장벽 위에서 자네들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게다가 저 거대한 뱀도…….

바로 그때였다.

키샤샤사사사사사사!!!

센트럴 군단 방향에서 비명에 가까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공중에 거대한 불길이 솟았다.

불길 속 거대한 뱀, 요르문간드가 온몸을 뒤틀면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이런……!”

모래 주먹을 피하면서 그 모습을 본 태일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요르문간드는 명백히 한계에 이르러 있었고, 오래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죽어 가는 와중에 요르문간드는 알마티 장벽 쪽을 바라보았다.

요르문간드는 메데이아라는 술자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는 생명체.

그러나 지금 전쟁터에 메데이아는 보이지 않았고, 요르문간드는 오롯이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 장벽을 바라보는 요르문간드의 모습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질 여유조차 없었다.

― 오빠, 이대로 녀석이 쓰러져 버리면 모든 포격이 이쪽으로 집중될 거야!

― 맞는 말이네. 이대로면 부대 피해만 커질 뿐이야. 후퇴하는 편이 낫겠어!

― 아니, 지금은 안 돼. 타이밍이 좋지 않아.

전투의 분위기가 한번 뒤집힌 이상, 섣부른 후퇴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낳는다.

태일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상대편에 있는 닐스 역시 모를 리 없었다.

쿠구구구!

곧이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다섯 요새 중 하나가 천천히 이륙하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휠이 어지럽게 돌면서 수백 대의 드론이 주변을 호위한다.

순양함의 발진과 동시에 알마티 부대를 공격하던 모래 주먹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흙먼지 또한 가라앉았다.

그로 인해 태일의 알마티 선발대가 또렷이 노출되었다.

키리릭… 키릭!

선발대를 향해 순양함의 포대가 집중됐다.

“흩어져! 전부 산개해!!”

태일의 고함 소리와 함께 순양함의 포대들이 불을 내뿜었다.

‘늦었다!’

수백, 수천의 탄환.

황급히 전류로 얽어낸 방어벽을 만들었지만, 그 모두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알마티 선발대를 향해 포격이 쏟아지는 바로 그 순간,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요르문간드가 순양함 포대 바로 앞을 막아섰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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