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대혼돈의 대륙 (7)
“사, 사령관님?”
“혼자 나가시는 거야?”
“괜찮은 건가?”
뒤쪽에서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지만, 닐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찬찬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클라이드’, 동생을 찾기 위해 혁명군에 합류한 사내.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인물이지만, 여린 구석이 있고 정에 약했다.
그렇기에 클라이드가 태일을 배신하도록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닐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철저히 이용했고, 결국은 센트럴에 넘겨 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금 만났다.
‘지독한 악연이구나.’
닐스는 거대하게 일어난 토네이도를 보며 자신이 직접 나서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닐스를 살해하든, 반대로 살해당하든 결국 자신의 손으로 끝맺어야 하는 인연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파스스스스스…….
거대한 검은 그림자들이 온 사방을 뒤덮었다.
닐스는 순식간에 어둠 속에 갇혀 버렸고, 그 속에서 불길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쉬익… 쉬익!
시이이이이…….
뱀의 혀가 날름거린다.
미끈거리는 움직임으로 주변 흙을 쓸고 지나간다.
잠시 걸음을 멈춘 닐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날 방해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후후후, 사령관님, 겁이 없으시네요.”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몸소 나서다니, 정말 대단한 용기예요. 반할 뻔했어.”
어둠 속에서 웬 여인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닐스는 그런 여인을 노려보며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석장을 움켜쥐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도망쳐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지.”
“…….”
잠시간의 침묵.
곧이어 사방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의 간드러진 목소리 대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별 미친놈 다 보겠군. 당장 없애 버려!”
곧이어 온 사방에서 거대한 뱀들이 닐스를 향해 덮쳐 왔다. 수십, 수백 마리의 뱀들이 뒤엉킨 채 닐스의 온몸을 물어뜯을 기세로 다가온다.
“유감이군.”
천천히 눈을 뜬다.
그러고는 석장을 들어 올렸다.
쿵!!
그와 함께 온 땅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흔들리던 땅이 갈라지며 거대한 틈새가 곳곳에 만들어진다.
닐스를 향해 달려들던 뱀들이 마구 몸부림치다가 그 틈새에 빠져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악착같이 닐스를 향해 달려들던 뱀들은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흙더미에 파묻히거나 어딘가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에 짓눌려 으깨졌다.
“네놈이……!”
분노에 찬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삭!
줄곧 어둡던 공간 속에 균열이 생기면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바깥의 빛이 비쳐 들어왔고, 그 가운데 뱀의 그림자들이 사라져 갔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자, 주변 풍경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경악한 얼굴의 메데이아가 닐스를 바라보고 있다.
“말도… 안 돼.”
홀로 나선 사령관을 보며 수군거리던 병사 중 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 지진과 낙석 따위로 소란하던 대지는 어느새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상태였다.
“이게 끝인가?”
“천만에!”
메데이아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와 거대한 뱀의 형상을 이룬다.
그렇게 만들어진 뱀은 곧장 닐스를 집어삼킬 듯 달려들었다.
“시시한 눈속임이군.”
닐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석장을 휘둘렀고, 거대한 흙의 장벽이 솟아올라 뱀의 형상을 막아 냈다.
콰쾅!!
벽에 충돌한 뱀의 형상은 몇 차례나 방향을 틀어 닐스를 노렸지만, 그때마다 형성된 흙의 장벽이 연신 뱀을 막아 냈다.
그렇게 수십 차례의 충돌 끝에 뱀의 검은 형체는 더 이상 알아볼 수조차 없이 뭉개졌다.
메데이아는 입을 다문 채 괴물과도 같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힘과 힘의 충돌, 그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닐스는 터무니없는 순발력으로 순식간에 수십 개의 장벽을 만들어 냈고, 일정 범위에서 동시에 전혀 다른 성질의 필드를 몇 개나 중첩해 깔았다.
그 어떤 능력자도 이처럼 많은 능력을 동시에 지속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네놈, 대체 뭐지?”
“보다시피 이 부대를 이끄는 사령관이라네.”
“개소리.”
센트럴에서 이레귤러는 결코 군의 장성 자리까지 오를 수 없다.
닐스의 뒤쪽에 있는 병사와 장교들 역시 놀란 눈으로 지금 이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네 부하들도 몰랐던 거군, 네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숨긴 건가?”
“조금 달라.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쪽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거든.”
영문 모를 말을 늘어놓은 닐스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석장을 들어 올렸다.
“시간 낭비는 이 정도로 하지.”
쿵!
닐스가 석장을 내려치자, 거대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땅이 울린다.
쩌저저저저…….
메데이아의 발밑 땅이 갈라지면서 마치 거대한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듯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메데이아는 곧장 공중으로 몸을 띄우며 검은 안개를 쏟아냈다.
그사이, 사방에 흩어진 돌과 흙들이 다시금 뭉쳐지며 거대한 주먹의 형상들을 갖추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먹들이 공중의 메데이아를 붙잡기 위해 덮쳐 온다.
“어딜!”
쾅!! 콰쾅!!
채찍과 같은 형상의 검은 안개가 메데이아를 향해 달려드는 주먹들을 사정없이 부수었다.
거대한 크기에 비해 주먹들은 너무나도 쉽게 부서졌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파괴 행위일 뿐이었다.
부서져 흩어진 흙과 자갈은 다시금 뭉쳐져 형상을 갖추었고, 쉴 새 없이 메데이아를 몰아쳤다.
“하아… 하아…….”
메데이아는 결국 무의미한 채찍질을 멈춘 뒤, 우악스러운 주먹들을 피해 높이 날아올랐다.
어느새 힘이 거의 바닥나 있고,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지쳐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닐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고, 그의 힘 역시 바닥을 보일 줄 몰랐다.
미끼 따위가 아니다.
닐스는 처음부터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계산으로 나선 것이었다.
“괴물 같은 자식!”
땅에서 솟아올라온 돌들이 총알처럼 메데이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메데이아는 검은 안개를 두른 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파편들을 쳐 내기 시작했다.
“으윽!”
핏! 피핏! 팍!
미처 완전히 막아 내지 못한 공격들이 메데이아의 뺨을 스쳤고, 옆구리와 팔, 어깨를 때렸다.
바로 그때, 닐스는 메데이아에게 흥미가 완전히 가신 듯 클라이드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멈춰!”
메데이아의 외침에도 닐스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닐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퍽!
어깨에 주먹만 한 바위가 부딪쳤고, 이어 복부 쪽에도 묵직한 통증이 이어졌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오로지 닐스를 바라보며 목 놓아 외쳤다.
“멈추란 말이다!”
닐스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클라이드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메데이아의 몸뚱어리가 하릴없이 추락했다.
아니, 스스로 추락을 택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아니, 도망칠 수 없다.
조롱당하며 비참하게 끝장나는 일 또한 결코 없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가운데, 가만히 손을 내뻗었다.
바로 앞에서 검은 구슬이 형성되어 마구 요동친다.
‘장 베르코프’라 불리던 청년으로 빚어낸 괴물.
“날뛰거라.”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전력이자 가장 큰 죄악.
이젠 통제할 수 없게 된 그 힘을 해방시켰다.
“…요르문간드.”
* * *
“쿨럭!”
“살아 있었나.”
중대장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입가의 피를 닦아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바람의 장벽이 둘러쳐진 가운데, 중대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바깥의 소리도,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완벽히 분리된 아공간.
간단하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괴물과 맞섰으니, 패배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쓰러진 부하들은 미동조차 없다.
“끝장이군.”
센트럴은 이번 패배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죽여라.”
클라이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고개 숙인 중대장을 내려다보았다.
“각 군단의 9중대, 이른바 ‘노예 병사’. 그게 너희들이겠지.”
“…….”
죄를 지은 이레귤러 중 가족이 있는 자들은 입대를 종용받는다.
아니, 애당초 센트럴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강력한 이레귤러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강제로 입대시켜 병사로 사용했다.
그것은 가족을 인질로 한 협박이었다.
협박의 결과, 이레귤러 병사는 국가의 노예이자 장군들의 사병이 된다.
온갖 지저분한 임무들을 수행해야 했지만, 9중대원들은 수용소의 가족들을 위해 몸을 던졌다.
패배를 당하거나 반란에 가담할 시 가족들은 모두 처형될 터였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너희 중대원들 모두 무사하다.”
클라이드는 혁명군에서 몇 차례나 9중대와 싸워 보았기에 그들의 절실함을 잘 알고 있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중대원들을 바라보던 클라이드가 조용히 말했다.
“이대로 도망치든, 자살하든, 가족들을 탈출시키든 너희가 알아서 선택해.”
“우릴… 동정하는 건가?”
“공감하는 거다.”
클라이드는 이미 가족을 센트럴에게 잃은 경험이 있었다.
“너희의 가족들은 그저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게 아니야. 온갖 실험의 대상이 되어 있을 거다.”
보니가 그랬듯이.
중대장의 얼굴에 충격이 떠올랐다.
“…그러니 더 이상 미련한 짓 그만둬.”
클라이드는 조용히 바람의 장벽을 거두었다.
분리되었던 공간이 다시금 이어 붙으며 다시금 전장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본 클라이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저건……!”
콰쾅!! 쾅! 쾅!
땅 곳곳이 갈라져 있고, 군단 함포들의 포격이 이어진다.
심지어 순양함의 포대 역시 쉴 새 없이 불을 내뿜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진지 주변을 요새처럼 두르고 있던 울타리들이 무너진 상태였고, 병사들은 고함을 꽥꽥 질러 댔다.
“쏴! 쏘란 말이야!”
“또 온다!!”
꼬리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진지를 휩쓸며 연달아 폭발이 일어난다.
쾅! 콰콰쾅!!
불길과 매캐한 연기 속에서 날뛰고 있는 건 언뜻 전설 속의 용이 연상될 정도로 거대한 뱀이었다.
지금껏 메데이아가 보여 준 적 없는 상식 밖의 괴물, 그러나 그 이름만큼은 알고 있었다.
‘저게 바로 그 요르문간드인가?’
수천수만 발의 총탄과 포탄도, 순양함의 레이저도, 심지어 닐스의 능력조차도 요르문간드의 두터운 비늘을 뚫지 못했다.
스스스스스!!!
쾅!
요르문간드의 몸부림에 진지는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요르문간드는 고개를 들어 순양함을 노렸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규격 외 마수.
하지만 그 움직임은 그저 날것의 짐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략이나 계산도 없이 그저 마구 몸부림칠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꼬리 부분에 묵직한 바위가 여럿 쌓여 붙잡힌 상태였고, 포탄들은 눈이나 벌어진 입 등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메데이아는 어디지?’
저만한 마수를 소환해 냈다면 메데이아 본인 역시 무사할 리 없었다.
그렇게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중 이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산발이 된 백발에 온 피부가 주름으로 뒤덮인 노인은 메데이아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클라이드는 황급히 달려가 비틀거리는 노인을 부축했다.
“이 꼴이 대체……!”
“후, 후후…….”
사라진 이빨들, 탁해진 눈, 반쯤 빠져 버린 머리카락.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그녀 앞에서 클라이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메데이아는 그렇게 늙어 버린 모습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여기까지…인 거 같구나.”
파스스스…….
메데이아의 온몸에서 하얀 먼지가 휘날린다.
아니, 몸 자체가 부스러지고 있었다.
“메데이아!”
“알마티로… 가렴…….”
그녀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재가 클라이드의 주변을 맴돈다.
클라이드의 몸뚱어리는 마지막 한숨까지도, 그 자그마한 영혼까지도 게걸스럽게 흡수하고 있었다.
“센트럴을 막으려면… 알마티로… 가야 해…….”
“나, 나는……!”
“너의 탓도, 보니의 탓도 아니…다.”
“…….”
곧이어 메데이아의 다리가 부스러졌고, 팔이 축 처졌다.
빠른 속도로 스러져 가는 메데이아를 본 클라이드는 결국 이를 악물고 등을 돌렸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니, 자신이 곁에 있다면 메데이아는 더욱 빠른 속도로 붕괴될 뿐이다.
“가…거라.”
메데이아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를 따라 49구역에 들어온 신도들과 보니, 프랑켄이 아직 근처에 남아 있다.
결국 클라이드는 완전히 죽어 가는 메데이아 쪽을 바라보지 못한 채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는 여전히 요란한 포격음과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편, 멀어지는 클라이드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메데이아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마지막 말을 읊조렸다.
“나의 아들딸아…….”
그 말을 끝으로 메데이아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백여 년 동안 센트럴을 상대로 싸워 온 수배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연명해 온 마녀.
그런 여인의 최후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