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81화 (182/220)

181화 대혼돈의 대륙 (6)

“죽기로 각오라도 한 건가?”

“후후, 내가?”

메데이아가 피식 웃으며 클라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클라이드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금 당신의 힘으로는 플루톤을 손에 넣을 수 없어.”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하지 않은 말.

“당신, 지금은 나보다도 약해진 상태잖아.”

결국 그 말이 클라이드의 입에서 나왔다.

그러나 정작 메데이아는 분노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싸우는 거야.”

“…….”

“난 지금껏 전사로 살아왔고, 센트럴을 상대로 평생을 싸워 왔단다. 그러니 나약하게 죽어 갈 마음은 없어. 난 죽을 각오가 아니라…….”

힘이 남아 있는 이상 싸운다. 단지 그뿐이었다.

“싸울 각오를 한 거란다.”

클라이드는 그런 메데이아를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신의 힘이 약해진 건 어쩌면…….”

“너희들 때문이라고?”

보니와 클라이드가 합류한 이후 메데이아는 빠른 속도로 소울을 잃어 갔다.

그에 비례해서 두 사람의 힘은 빠른 속도로 강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인과성을 의심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랑켄이 합류한 직후, 클라이드는 내심 확신했다.

태일과의 전투 당시, 어째서 무한에 가까운 소울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그건 자신의 신체가 주변 모든 인간들로부터 소울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붉은 눈동자를 지닌 이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주변인의 소울을 빼앗는다.

“알고 있었나?”

“너희도 그저 짐작할 뿐이잖아.”

메데이아의 가벼운 대답에 클라이드의 말문이 막혔다.

“만약 너희가 내 소울을 빼앗고 있다 해도 그게 너희의 의지는 아니겠지. 특히 보니는 말이야. 그럴 아이가 아니니까.”

“…….”

보니는 메데이아를 ‘언니’라 불렀지만, 사실상 그녀를 어머니처럼 따랐다.

줄곧 기계처럼 딱딱하던 아이가 어째서인지 메데이아에게 딱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심지어 메데이아에게 어리광을 부리기까지 했다.

메데이아 역시 그런 보니를 귀여워하고, 진심으로 대해 주었다.

“그러니 신경 쓸 필요 없단다. 아직 센트럴과 싸울 정도의 힘은 남아 있거든.”

하지만 클라이드는 물론, 메데이아 역시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모순이다.

메데이아는 산 사람을 재물로 하여 몇 차례나 요르문간드를 부활시켰다. 또한 타인의 소울을 빼앗아 백여 년 동안 젊음과 강력한 힘을 누려 왔다.

이기심과 복수심으로 점철된 삶이었고, 비정함의 연속이었다.

그런 메데이아가 자신의 힘을 빼앗고 있는 남매를 살려 두었다.

그 이유는 메데이아 자신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나이가 든 거겠지.’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 건 그저 몸뿐만이 아니다.

이후, 얼마 동안 둘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다.

“이런…….”

거대한 순양함과 그 근방의 군단.

“꽤 준비를 철저히 한 거 같네.”

상당한 규모의 편제를 눈앞에 둔 메데이아는 나름의 방식으로 감탄했다.

쪼개진 나무 위 상공에는 거대 순양함과 그 주변을 호위하는 수십 대의 중소형 구축함들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지상에는 수만에 이르는 병력이 좌우 날개를 펼친 듯 남쪽을 향해 넓게 포진한 상태였다.

울타리와 흙벽이 넓게 형성되어 부대를 둘러싼 가운데, 셀 수 없이 많은 포대와 망루가 빈틈없이 설치되어 있다.

“이래서야 전리품을 얻긴 어렵겠는데.”

미리 남쪽에서의 무리 이동을 눈치챘을 뿐만 아니라 대응을 위한 방비까지 완벽히 마친 상태였다.

전방의 확성기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경고한다! 여기는 작전 지대로, 외부인의 진입이 허가되지 않는다. 더 다가오면 발포하겠다!”

끼이이이… 키리릭! 키리릭!

단순히 말뿐 아니라 순양함의 포대는 물론, 지상군의 총구들까지 일제히 메데이아와 클라이드를 향해 집중되었다.

“말려 봐야 소용없겠지.”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단다.”

“나 혼자 돌아가면 보니한테 혼날 것 같아서.”

메데이아는 그런 클라이드의 말에 피식 웃더니, 천천히 발을 떼었다.

한편, 클라이드는 전방 부대의 맨 앞에 선 사내를 응시하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 있군.”

대머리에 거대한 석장.

“여기서 저 개자식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또 만났군.”

닐스는 자신과 눈이 마주친 클라이드를 보며 담담히 중얼거렸다.

자신을 보며 쌍욕을 내뱉는 클라이드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연상되었다.

부관이 그런 닐스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묻는다.

“사령관님, 어떻게 할까요?”

“잠시 대기.”

“…네, 알겠습니다.”

부관은 분위기가 크게 바뀐 채 돌아온 닐스에게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담담한 말투로 ‘잠시 대기’라니.

평소 그라면 경고를 무시한 채 다가오는 둘을 보고 펄펄 뛰며 욕설을 쏟아 내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의 닐스는 너무도 조용하고 침착했다.

그 와중에 부관의 시선이 닐스의 왼손에 쥐어진 석장으로 향했다.

대체 몇 분 전에 보여 준 능력은 뭘까?

백련이 운반해 온 석장.

닐스가 그 석장으로 땅을 내려쳐 괴물 나무를 단박에 쪼개 버렸을 때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한 달을 쩔쩔맸던 문제를 단 몇 초 만에 해결해 버린 것이다.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괴담처럼 전해 오는 ‘소울웨폰’.

부관 역시 49구역 사막여우의 보물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저 과장된 소문이라 생각했다.

과학기술이 응축된 군용 무기를 압도하는 무기가 한낱 49구역 장인에 의해 제조될 수는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직접 확인한 석장의 능력은 소문 이상이었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위화감 역시 그 신비로운 석장 때문일 것이다.

한편, 부대를 향해 다가오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닐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9중대장.”

“네, 사령관님.”

저만치 떨어져 있던 중대장이 황급히 다가왔다.

“가서 한번 상대해 봐. 너희들의 실력을 보고 싶군.”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9중대원들이 전방으로 나선 바로 그 순간, 상대편에서 검은 무언가가 사방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치잇!”

클라이드의 몸을 중심으로 넓은 범위에 거대한 바람의 필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거센 바람 속에서도 빠른 속도로 불길이 번져 나갔고, 매캐한 연기가 온 사방을 메웠다.

“전부 물어뜯어 버려!”

메데이아의 지시를 들은 검은 뱀들이 온 사방으로 흩어져 진입해 들어온 병사들을 향해 달려든다.

“대응해! 각개격파당할 수 있으니 흩어지지 않도록!”

“넵! 알파팀, 이쪽으로!”

“베타팀은 날 따라와!”

바람 지대 안에 들어온 병사들은 당황한 기색 없이 침착하게 뱀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온몸이 빛나는 금속으로 변해 닥치는 대로 뱀의 목을 베어 버리는 병사.

형형색색의 탄환을 수십 발씩 쏘아 대며 주변을 초토화하는 병사.

온 사방에 빛으로 만들어진 표창을 날리며 내달리는 병사까지.

한 명, 한 명이 모두 뛰어난 기량의 능력자였고, 전투에 숙달된 자들이었다.

게다가 독립적인 성향이 짙은 보통의 능력자들과 달리 각 팀별로 손발이 잘 들어맞았다.

광범위 공격에 아군이 휘말리거나, 어설픈 능력으로 아군의 공격을 방해하는 일 따위 없다.

‘번거롭군.’

클라이드는 입술을 깨문 채 머스킷을 꺼내 들고는 날뛰는 병사들을 겨누었다.

필드 이상의 결정적 변수를 만들어야 한다.

“안 되지.”

콰쾅! 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클라이드의 주변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네 상대는 나야.”

클라이드는 살짝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앞을 막아선 하사관을 노려보았다.

처음 필드 내에 진입할 때, 지시를 내린 사내였다.

“네가 대장인가?”

“…….”

중대장은 클라이드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온몸에 화염을 둘렀다.

조그맣게 피어오른 화염이 금세 두 배, 세 배 규모로 거대하게 타오른다.

그건 그저 중대장의 힘 때문이 아니라 클라이드의 능력 때문이기도 했다.

바람과 불. 상성상 바람 쪽이 불리하다.

이미 중대장이 곳곳에 만들어낸 불꽃들은 클라이드의 필드 속에서 거대한 화마가 되어 온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어설픈 바람으로는 내 불꽃을 키울 뿐이야.”

중대장의 도발을 들은 클라이드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러나 곧이어 재미있다는 듯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지금까지는 선선한 봄바람 불과했지.”

철컥!

리볼버를 고쳐 잡고는 총구를 공중으로 향한다.

곧이어 클라이드의 몸을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개수의 돌개바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무슨 개수작을!”

위협을 감지한 중대장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콰쾅! 쾅!!

클라이드의 주변에서 다시금 연쇄적으로 폭발이 이뤄졌다.

그러나 폭발로 일어난 불꽃은 순식간에 클라이드 주변의 돌개바람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클라이드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그런 폭죽놀이 따위로 뭘 어쩌려고?”

탕!!

곧이어 공중으로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와 함께 클라이드를 중심으로 거대한 토네이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으, 으윽!!”

주변의 모든 흙과 돌멩이 따위가 토네이도를 향해 빨려 들어간다.

조금 전까지 필드 내에 번진 불길 따위는 모조리 꺼진 뒤였다.

그 와중에 중대장을 비롯한 병사들은 저마다 전투를 멈춘 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섰다.

그 거대한 바람 앞에서 30명의 부대원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부대원들의 살갗이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공중에 몸을 띄운 채 전장을 살피고 있던 메데이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클라이드가 만들어 낸 토네이도에 휩쓸리는 건 그저 상대뿐만이 아니었다.

메데이아가 소환한 그림자들 역시 토네이도 휩쓸려 잠깐 사이에 모조리 소멸했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클라이드의 능력으로 인해 정작 메데이아는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요르문간드를 풀어놓는다면 모를까, 어설픈 능력으로는 그저 힘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했다.

한편, 클라이드는 혼자 힘으로 30명의 능력자 부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건 그저 손발이 맞지 않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자신의 힘이 클라이드에 의해 압도적으로 밀리기에 나온 결과일 뿐이다.

‘이래서야 내 자리는 없구나.’

그러나 바로 그때, 상대편 진영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석장을 쥐고 있는 사내.

그의 양어깨 견장에서 은빛 별이 선명하게 빛난다.

‘저 사내… 사령관이 아닌가?!’

틀림없이 그 사내가 지휘관이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사령관이 부대원들을 대기시킨 채 그저 홀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다.

그 흔한 호위조차 없고, 무식하게 거대한 석장을 제외하면 사령관은 사실상 비무장 상태였다.

함정일 것이다.

스스로 미끼를 자처한 것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먹음직한 먹이를 그냥 둘 수 없었다.

‘사령관을 잡는다면… 이 전투는 끝이다!’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센트럴 총사령관의 목이 갖는 값어치는 순양함에도 비할 수 없었다.

결국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한 메데이아는 곧장 사령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부관은 깜짝 놀라 닐스를 막아섰다.

“물러서게.”

“지, 지금 혼자 나가시겠다는 겁니까?!”

전방에서 발생한 연쇄 폭발과 거대 토네이도.

그 아수라장을 본 병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그 웅성거림에 담긴 것은 두려움이었다.

평범한 사람 따위 순식간에 온몸이 불타거나 갈기갈기 찢겨 버릴 전장.

수천 기의 포대와 함대가 버티고 있었지만, 초자연적인 광경에 대한 공포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런 와중에 지휘관이 그 위험천만한 전장에 제 발로 들어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령관님이 당하시면 이 전쟁은 끝입니다!”

평소의 닐스에게라면 감히 꺼내지 못할 말이지만, 부관은 악을 쓰고 그를 말렸다.

“결코 나가셔서는 안 됩니다!!”

“내가 당할 거라고 보는 건가?”

“사령관님!”

부관은 황급히 뒤쪽의 장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도열해 선 고급 장교들은 이 미친 짓을 보고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표정에는 두려움과 걱정이 역력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떼지 않는다.

닐스는 늘 폭력과 권위로 부하들을 찍어 눌렀다.

그의 뜻을 막아섰다가 즉결처형당한 장교까지 있었다.

그랬기에 정작 닐스가 미친 짓을 자행하려는 이 순간에까지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제발… 사령관님! 하다못해 호위병이라도 데려가십시오. 2개 중대 이상을 동원해서…….”

부관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닐스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정작 부하에게 팔을 붙잡힌 닐스의 표정은 담담했고, 마치 도인처럼 평온해 보였다.

“부관, 나 혼자면 충분하네. 금방 다녀올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도록 해.”

“…….”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부관은 저도 모르게 손을 놓고 말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위화감은 닐스의 손에 쥐어진 석장이나, 그 석장으로 펼쳐 보인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보좌해 왔지만,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말투와 표정.

그는 자신이 아는 사령관이 아니었다.

대체 눈앞의 사내는, 사령관의 얼굴을 한 이 사내는 누구란 말인가?

탁, 탁, 탁…….

닐스는 거대한 석장을 쥔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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