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80화 (181/220)

180화 대혼돈의 대륙 (5)

“저, 저기 옆에 오는 놈들… 9중대입니다.”

“…….”

“전부 강력한 이레귤러예요. 바로 맞붙는 건 위험합니다.”

백련이 다급히 말했지만, 정작 닐스는 도인처럼 평온한 눈으로 다가오는 병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가까워질 무렵, 닐스가 조용히 지시했다.

“시야를 가리도록 해.”

“대체 무슨……!”

“지금 당장.”

백련은 입술을 깨물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곧이어 백련을 중심으로 온 사방에 뿌연 안개를 깔렸다.

“이게 무슨 짓이지?”

닐스를 호위하던 9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정도면 적대행위라고 봐도 되겠지.”

이어진 9중대장의 목소리에 백련은 눈을 질끈 감았다.

30명으로 구성된 9중대는 백련에게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능력자도 아닌 닐스 사령관에게 절절매며 어쩔 줄 몰라 한 이유, 그건 늘 그의 곁을 지키는 9중대 때문이었다.

“굳이 살려 둘 필요도 없겠군. 둘 다 없애 버려.”

멀리서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백련은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기척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어설픈 눈속임용 안개 따위로 이레귤러 정예병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얼굴이 벌게진 백련은 자신 옆에 선 닐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젠장! 이제 어쩔… 어?!”

보이지 않는다.

그 무거운 석장을 들고 있던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백련을 향해 온 사방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이런 젠장!!”

백련은 근처 바위를 향해 헐레벌떡 내달리기 시작했다.

“건방진 놈.”

닐스는 장군 의전용 차에서 내리며 혀를 찼다.

뿌연 안개로 인해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두려움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짜증이 치밀었다.

감히 자신과 9중대를 상대로 싸울 생각을 했단 말인가.

게다가 고작 둘이서 말이다.

아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차 안에 계시는 편이…….”

“됐어. 나더러 겁쟁이처럼 숨어 있으라는 건가? 고작 두 사람이 무서워서?”

닐스는 9중대장을 바라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바토리 일족의 후예인 9중대장의 왼팔은 이미 화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화염에 서부 레지스탕스와 센트럴 허수아비 의원들이 여럿 죽어 나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안개 속에서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감하군. 아니, 무모한 건가?”

탁, 탁…….

석장이 땅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백련의 옆에 서 있던 대머리 군인이 안개 속에서 사령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사령관님, 잠시 물러나 주십시오.”

“아까부터 자네답지 않군. 왜 그렇게 겁을 먹는 거지?”

“…….”

9중대장은 주먹을 움켜쥔 채 사령관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잠시 뒤, 안개 속에서 나타난 인물의 모습을 본 중대장은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쪽이 사령관 닐스 레오나드인가?”

상대가 담담히 묻는다.

“너, 너는……!”

닐스 사령관은 경악한 얼굴로 석장을 쥔 사내를 바라보았다.

자신과 꼭 닮은 얼굴. 아니, 완전히 같은 얼굴.

“지금부터는 내가 당신을 대신하도록 하지.”

“이런 미친!!”

닐스는 욕설을 내뱉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뭘 보고 있어?! 당장 저 가짜 놈을 없애 버려! 죽여!”

어떻게 자신과 꼭 닮은 인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인지,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도플갱어를 만난 닐스는 본능적으로 상대를 죽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이어 9중대장의 몸에서 폭발하듯 쏟아져 나온 불길이 석장을 든 사내의 몸을 뒤덮었다.

뼈와 살을 비롯해 사내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기세로 거대하게 타오른다.

불길과 제법 떨어져 있는 닐스조차 뜨거운 열기로 인해 불길을 똑바로 응시할 수조차 없었다.

‘아크, 이 자식. 대체 어디서 저런 가짜를……!’

닐스는 옷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어쨌든 아크의 정신 나간 음모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9중대장의 지독한 업화 속에서 멀쩡히 살아 나온 이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그러나 정작 9중대장의 얼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사령관님, 차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대체……!”

“상대도 능력자입니다.”

불꽃이 사그라지는 가운데, 자신과 꼭 닮은 가짜 사령관의 모습이 보인다.

고통으로 끔찍한 비명을 질러야 할 그는 정작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불길 속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쁘지 않은 힘이군.”

“어딜……!”

9중대장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내를 보고 곧장 손가락을 튕겼다.

펑! 퍼펑!

손가락을 튕기는 그 리듬에 따라 연달아 폭발이 일어난다.

그와 함께 줄곧 가만히 서 있던 사내의 몸이 부서졌다. 불타 녹거나 찢기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부스러진다’.

“설마!”

사그라진 불속에 있는 것은 부서진 석상이었다.

“이번 것도 꽤 괜찮았어.”

주변 땅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함께 주변 대지가 융기하며 거대한 주먹들이 뻗어 올랐다.

“으아아악!!”

“흩어져! 빨리!”

안개 속으로 진입해 들어간 9중대원들의 비명과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중대장은 자신의 온몸을 화염으로 감싸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습을 드러내!”

그러나 여전히 사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대신 온 땅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울렸다.

“자네의 패배는 약하기 때문이 아니야.”

쿠쿠쿠쿠…….

온 사방에서 돌과 흙 따위로 정교하게 빚어진 손들이 몰려온다.

하나의 불꽃이 된 중대장은 사방에 화살 형태의 불꽃을 쏘아 대며 손들을 마구 부수었지만, 상대에게는 조금의 대미지도 주지 못했다.

부수고 또 부수어도 황무지에 흙과 돌은 무한하다.

그리고 그 재료들을 빚어내는 소울 역시 마르지 않는다.

결국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중대장의 몸은 주먹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거대한 손에 붙잡힌 중대장은 무력한 반딧불이일 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잠깐 사이에 최대 전력이 허무하게 당하는 꼴을 본 닐스 사령관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차 문을 열었다.

황급히 뒷좌석에 몸을 싣는다.

도망쳐야 한다.

당장 돌아가서 전 부대를 동원해 자신과 닮은 괴물을 없애야 한다.

“운전병, 빨리 출발해!”

“…….”

“야, 이 새끼야! 뭐 해! 빨리 밟으란 말 안 들…….”

닐스는 운전석 쪽을 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파사사삭.

온몸이 석화된 듯 돌로 변해 버린 운전병의 몸이 부서진다.

“우, 우와아아아!!”

얼굴이 파랗게 질려 허겁지겁 차 밖으로 뛰쳐나온 닐스는 베레모와 권총조차 잃어버린 채 마구 내달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그의 발이 마치 늪에 빠진 듯 땅속에 파묻혔다.

“으, 으윽!! 사, 살려 줘!”

모래 지옥에 빠지기라도 한 듯 온몸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닐스 앞으로 자신과 같은 얼굴의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가라앉아 가는 닐스를 바라보았다.

“살려 줘! 제발, 제발!”

“이렇게 되어 유감이네.”

“어째서… 어떻게……!”

“자네의 부대는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닐스가 눈을 부릅떴다.

처음부터였다.

아크는 이 모든 것을 계획했으리라.

언젠가부터 갑자기 자신에게 전폭적인 지원이 들어온 것도, 최단 시간에 사령관의 자리에 오른 것도… 모두 이날을 위한 것이었다.

결국 그가 이룬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닐스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채 이마를 미친 듯이 땅에 박아 댔다.

이미 가슴까지 땅에 파묻혔고, 곧 목까지 잠길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산 채로 땅속에 파묻힐 것이다.

“아크, 이 개 같은 자식아!!”

닐스는 목청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그게 대륙의 사령관 닐스 레오나드의 최후였다. 더불어 새로운 사령관 닐스 레오나드의 탄생이었다.

안개가 걷힌다.

“쿨럭!”

중대장은 땅에 엎드린 채 연신 기침을 토해 냈다.

소란스럽던 주변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사방에서 치솟은 주먹들은 물론, 자신의 몸을 움켜쥔 손까지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9중대 부하들 역시 뭔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제각기 주저앉아 있었다.

부대원들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사망자는 물론, 부상자조차 없다.

그 와중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이만 일어나지.”

닐스가 석장을 든 채 지프차 앞에 서 있었다.

‘사령관이 아니다.’

진짜 사령관은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대장은 곧 자신에게는 그것을 입증할 힘이 없음을 알았다.

‘누구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겠지.’

중대원들은 이미 비치적거리며 일어나 집결하고 있었다.

누가 능력을 발휘했는지조차 모른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그 와중에 사령관의 얼굴을 한 사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지시를 내렸다.

“더는 볼일이 없어. 다시 부대로 돌아간다.”

그러더니 천천히 중대장 앞으로 다가왔다.

“자네가 보기에 나는 누구지?”

그의 목소리와 태도는 조금도 강압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느껴지는 압박감은 사실상 협박과 다름없었다.

이 자리에서 사령관의 얼굴을 한 그에게 맞선다면, 자신은 물론, 자칫 부하들까지 몰살당할 수도 있다. 눈앞의 괴물에게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힘이 있었다.

결국 마음을 굳힌 중대장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사령관님이십니다.”

사내는, 아니, 사령관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유능한 부하가 있어 마음에 드는군. 그런 의미에서…….”

그러고는 살짝 손을 들어 지프차 운전석을 가리킨다.

“운전 좀 해 주겠나?”

조금 전에 벌어진 ‘자그마한 소요’에서 공식적인 손실은 운전병 단 한 명뿐이었다.

“남쪽 손님들을 맞아들이기 전에 자네에게 들을 이야기들이 많겠군.”

사령관의 명령에 중대장은 말없이 운전석에 올랐다.

때마침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백련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자, 잠깐! 저도 데려가십시오!”

* * *

“…잠깐. 멈춰.”

메데이아의 한마디에 차가 멈춰 섰다.

차 안에는 어느새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클라이드가 찡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방금 그건…….”

전방에서 잠깐이지만 터무니없는 양의 소울이 느껴졌다.

순양함 한 척조차 지켜 내지 못한 채 쩔쩔매던 무능한 병력이다.

그런 병력이 모인 곳에 그처럼 강대한 힘이 느껴지는 것은 부자연스러웠다.

“어, 언니… 저기!”

보니가 놀란 목소리로 전방의 나무를 가리켰다.

쿠구구구구구…….

순양함을 옥죄고 있던, 거대한 괴물 나무.

그 나무가 좌우로 쪼개지며 쓰러지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나무가 갈라진 가운데, 순양함의 거대한 날개가 좌우로 펼쳐진다.

차 밖의 신도들 역시 저마다 기도와 걸음을 멈추고는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한발 늦은 거 같은데.”

순양함이 다시 발동을 시작한 모습을 본 클라이드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만 돌아가지. 어차피 빼앗기에는 이미 늦어 버린 거 같은데.”

“아니.”

메데이아 고개를 저으며 고도를 높이는 순양함을 노려보았다.

“직접 확인해야겠어.”

무언가 이변이 발생했다.

조금 전까지 부대 근방에 풀어놓은 그림자 뱀들이 일제히 사라져 버렸고, 정보 역시 완전히 끊어졌다.

“프랑켄, 비공정은 어떻게 됐지?”

“무인 상태로 따라오고 있습니다.”

프랑켄이 타고 온 딘의 비공정 다빈치는 스텔스 상태로 부대 근방을 비행하고 있었다.

보니와 클라이드를 차례로 바라본다.

만약의 경우, 두 사람만큼은 비공정을 이용해 무사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메데이아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멈춰 선 차 문을 열었다.

“나 혼자 다녀와야겠구나. 너희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렴.”

“언니!”

“너무 무모해.”

“후후후후, 지금 날 걱정하는 거니? 이 나를?”

메데이아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강하단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러나 메데이아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이제 요르문간드조차 통제하지 못한다.

센트럴과 싸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지금 그녀를 지배한 것은 조바심이었다.

“금방 올 테니, 여기서 잠자코 보고 있으렴.”

“그럼 내가 따라가지.”

클라이드가 잠자코 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

“네가?”

메데이아가 의외라는 듯 되묻자, 클라이드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동생이 걱정하니까.”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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