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붕괴 (2)
“흐, 흐으으으…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카를로스는 날뛰는 테러리스트들과 경호원들의 전투 속에서 몸을 바짝 숙인 채 포복하듯 마구 기어 문 쪽으로 향했다.
그사이 꿈을 꾸는 건지 의심하면서 몇 번이나 볼을 꼬집었다. 아픈 걸로 보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곁눈질로 열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의원님…….”
유키는 무사히 탈출했을까?
그는 이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 갑자기 화장실을 가겠다며 대회장을 나가 버렸다.
“이왕이면 나도 데려가시지. 흐흑…….”
경황이 없는 중에도 원망을 쏟아 내며 악착같이 기었다.
하다못해 경호원이라도 데려왔다면 지금보다는 안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도는 자신의 곁에 사람이 따르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고, 카를로스조차 따돌리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이번만큼은 그런 태도가 유키의 목숨을 건진 셈이지만, 카를로스만큼은 홀로 버려지고 말았다.
“후우… 후우… 조금만 더…….”
어찌 되었든 전투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누구 하나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카를로스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긴 당연한 일이다.
고귀하신 의원님들이 땅을 기어 다닐 리 없…….
“…조안 의원님?”
바로 옆에 자신처럼 땅에 온몸을 밀착시킨 채 기고 있는 조안의 모습이 보였다.
의기양양하게 경호 책임자의 뺨을 올려붙였던 조안이다. 보수당 내에서도 허리를 숙일 줄 모르며, 오만하기로 소문난 그였다.
하지만 늘 목이 뻣뻣하던 그가 지금은 온몸을 바짝 움츠리고 있었다.
발소리나 고함이 가까워지면 죽은 듯 멈춰 있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움직이는 치밀함까지… 그야말로 숙련된 움직임이었다.
경호원과 보좌관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이 와중에 아는 얼굴을 만난 게 반가워 황급히 그를 향해 기어갔다.
“의, 의원님……!”
조안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카를로스를 보더니,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입 앞으로 가져다 댔다.
“쉬잇!”
그러고는 손을 저어 보인다.
‘오지 마, 저리 꺼져.’
세상에, 이 어두운 와중에도 그 입 모양만큼은 어째서인지 선명히 보인다.
하긴 이 와중에 누굴 믿겠는가.
테러리스트의 두목으로 보이는 녀석은 분명 약속했다. 의원을 살해한 자는 밖으로 내보내 주겠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 약속을 끌어낸 당사자가 조안 본인인지도 몰랐다.
실제로 평소 갑질을 당하던 보좌관 몇이 자신이 모시던 의원을 살해했고, 테러리스트들은 제 주인을 넘긴 보좌관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조안 역시 보좌관들에게 그리 평판이 좋은 인물이 아니었으니 카를로스 역시 믿지 못할 것이다.
카를로스는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죽은 척하는 조안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바로 그때였다.
쿵! 쿠쿵!
의사당 곳곳에서 돌무더기가 떨어져 내린다.
카를로스는 허겁지겁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렇게 고개를 파묻고 있던 중에 갑자기 하반신 쪽에 감각이 사라졌다.
뻐걱.
아래쪽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뒤, 고개를 든 카를로스가 벌벌 떨며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거대한 돌기둥에 깔린 자신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끄, 끄아아아아악!!”
자신의 다리를 본 바로 그 순간, 지금껏 느껴 본 적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상반신을 마구 버둥거렸지만, 돌기둥의 무게로 인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더한 공포가 덜컥 밀려왔다.
기둥이 무너졌을 정도이니, 이제 곧 의사당은 붕괴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영락없이 잔해 속에 매몰되어 죽고 만다.
정신이 번쩍 든 카를로스는 고통 속에서도 온몸을 버둥거리며 고함을 질러 댔다.
“사, 살려 주세요!! 사람 살려요!!”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빠져나가려던 카를로스는 이제 누구라도 자신을 구해 주길 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카를로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비명 소리와 날붙이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제발, 제발 살려 줘! 악!!”
그 와중에 누군가 카를로스의 손을 밟고 지나간다.
우악스럽게 밟힌 손을 매만지며 울상이던 와중에 저만치서 이쪽을 바라보는 조안 의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의, 의원님! 제 다리에 기둥 좀……!”
다급히 그를 부르자 카를로스를 보고 있던 조안이 황급히 시선을 돌린 뒤 문 쪽으로 기어간다.
카를로스는 그런 조안의 뒤통수에 대고 악다구니를 썼다.
“의원님?! 야, 인마!!”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달려온 사내가 카를로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조안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안은 황급히 고개를 파묻고 움직임을 멈추었지만, 사내는 비릿하게 웃으며 단검을 휘둘러 그대로 조안의 뒷목에 찔러 넣었다.
“커억!!”
조안의 몸이 파르르 떨리더니, 곧 그 움직임마저 완전히 멈추었다.
그 꼴을 본 카를로스는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이 조안을 부른 탓에 테러리스트를 불러들이고 말았다.
조안을 살해한 사내는 슬쩍 시선을 돌려 카를로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낮은 말투로 비웃듯 말한다.
“불쌍하게 됐군.”
그뿐이었다.
카를로스를 공격하지도, 돕지도 않았다.
그제야 카를로스는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깨달았다.
‘틀렸어. 살아날 수 없어.’
운 좋게 유력 가문의 집사가 되었고, 거기서도 인정을 받아 의원이 된 도련님의 보좌관 자리까지 꿰찼다.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잘만 하면 의회 의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때나마 그런 꿈을 꾸었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의 끝이 이 꼴이다.
그처럼 열심히, 남들보다 잠도 줄여 가며 살아온 결말이 이처럼 허무한 죽음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자 고통 때문인지, 억울함 때문인지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젠장…….”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으럇차!”
쿠구구…….
다리를 짓누르고 있던 기둥이 천천히 들린다.
“이봐, 괜찮아?”
웬 목소리가 들려온다.
근육질의 남자가 기둥을 붙잡고 조금이나마 들어 올린 상태였다.
“아, 아아…….”
“빨리 나와! 오래는 못 버텨.”
정신이 번쩍 든 카를로스는 다시금 다리를 질질 끌며 악착같이 기기 시작했다.
쿵!
카를로스가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근육질 남자가 다시금 기둥을 내려놓았다.
잠시 뒤, 사내의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이진, 뭐 하는 거야?”
“아, 여기 사람이 깔려 있어서.”
가만 보니 안도 의원이 데려온, 기괴한 차림의 사절단들이었다.
“고, 고맙…습니다……!”
눈물범벅이 되어 더듬거리는 카를로스의 곁으로 안도가 비틀거리며 다가온다.
안도의 얼굴에는 눈물과 함께 누구 것인지 모를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의, 의원님…….”
안도는 카를로스의 팔을 붙잡고 부축하며 조용히 말했다.
“…살아남읍시다.”
그것은 카를로스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살아야 해요.”
* * *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기척이 사라져 간다.
난리 통 속에서 세이든을 따르는 테러리스트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살해하고 있었다.
의사당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했지만, 테러리스트들은 그저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태일은 그런 혼돈 속에서도 단 한 사람, 세이든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파츠츠츠! 쾅!!
어둠 속 램프의 불빛이 만들어 낸 그림자가 마치 태일을 집어삼킬 듯 내달린다.
그 흔적을 따라 바닥에 이어 붙여 둔 석판들에 쩍쩍 금이 갔다.
쾅!!
전류를 두른 발을 굴러 바닥을 부수어 그림자의 전진을 막는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태일의 앞, 뒤, 양옆에 볼링공 크기의 검은 구체들이 포위하듯 만들어졌다.
“치잇!”
구체들이 태일을 노리고 마구 날아든다.
구체들은 태일이 만들어 낸 전류를 빨아들이듯 흡수했다. 심지어 세이드의 중력장으로 인해 태일의 움직임이 둔해진 상태였다.
결국 회피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태일이 양팔을 벌렸다.
파츠츠츠츠!
사방에 전류의 장막이 펼쳐지고, 검은 구체들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세이드가 필드를 펼친 태일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고작 그것밖에 안 되나? 그 대단한 신태일이?”
태일은 의기양양하게 웃는 세이드를 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너희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세이드 역시 클라이드처럼 소울의 제한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에너지에 밑바닥이 없는 듯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여러 개의 기술을 동시에 사용하기까지 했다.
신체에 부담이 갈 정도의 힘을 연달아 쏟아 낸 것이다.
특히 동시에 다수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왼손으로 글을 쓰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조각을 하는 것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세이드의 얼굴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급하게 방어를 위한 자기장 필드를 펼쳤지만, 태일의 소울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줄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가 탈취한 힘을 사용하자고 말이야. 그때, 네가 고집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우린 일찌감치 이런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어.”
세이드가 부드럽게 말하며 태일에게 다가왔다.
“대체 어디까지 떨어진 거냐, 너…….”
“난 말이야, ‘정의’를 위해서 전부를 걸었어.”
태일이 쳐 놓은 장막 앞까지 다가온 세이드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대륙민 절반의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센트럴을 무너뜨릴 생각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태일의 머릿속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태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이 ‘정의’라 여긴 적이 없었다.
혁명군을 이끌며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던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던가.
그 무게는 언제나 묵직하게 남아 있었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괴물은 달랐다.
세이드는 정의를 입에 담으며 수많은 희생을, 죽음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태일의 눈에 세이드는 그저 복수에 미쳐 날뛰는 악마일 뿐이었다.
그대로 한쪽 손을 뒤로 내뻗는다.
파츠츠츠츠츠!
태일의 손끝에 날카로운 번개의 창, ‘아스트라페’가 형성되었다.
창을 형성한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어 나간다.
자그마한 스파크에 닿은 대리석들은 순식간에 부스러져 시꺼먼 먼지로 변해 버렸다.
수천수만의 번개를 응축시킨 신의 병기, 아스트라페.
그러나 정작 세이드는 아스트라페 창끝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날… 죽이려고? 네가?”
“그래.”
‘대륙민 절반의 목숨.’
세이드는 이미 목적을 잊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센트럴을 무너뜨리고 싶어 했는지조차 잊었다.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되겠다던 사내는 자신이 사냥하려 한 괴물보다 더 흉측한 괴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태일은 그 괴물이 성장하는 데 일조한 사람으로서, 그 괴물의 한때 친구였던 사람으로서 괴물의 폭주를 막아야 했다.
일시에 전류의 장막이 사라지며, 아니, 전류의 장막마저도 흡수해 버린 아스트라페가 세이드의 목을 겨누고 날아든다.
그러나 세이드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번개의 창끝을 보고도 조금의 움직임조차 없었다.
창끝의 열기에 세이드의 눈동자를 덮고 있던 특수 렌즈가 녹아 사라진다.
줄곧 검은색이던 그의 눈동자가 비로소 붉은색을 드러냈다.
“세이드!!”
그렇게 창끝이 세이드를 향하는 바로 그 순간.
회색 머리칼의 여인이 태일과 세이드의 사이로 날아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여인이 양팔을 벌려 아스트라페의 창끝을 막아선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모습을 본 태일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열린다.
“배신자.”
“…제니?!”
누구보다 잘 웃고 선하던 아이.
사람들의 죽음에, 희생에 진심으로 눈물 흘릴 수 있던 아이.
배신의 밤, 그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배신자들의 정보를 알려 주던 아이.
그런 제니가 지금 경멸 섞인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대륙민 절반의 목숨을 희생시키겠다는 괴물의 앞을 가로막은 채.
아스트라페를 막아선 제니의 얼굴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흐… 흐하하하하하하하!!”
세이드의 광소가 온 의사당에 울린다.
태일의 몸을 감싸고 있던 전류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스트라페도, 전류의 필드도 전부 거둬들였다.
마지막 순간, 태일은 공격을 제 손으로 멈추었다.
그리고…….
“어째…서……?”
태일의 복부에는 제니가 찔러 넣은 단도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넌 정말이지, 한심한 녀석이야.”
세이드가 천천히 태일 앞으로 다가온다.
“능력자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냉혹하고 잔인한 주제에 순진한 척하는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무르지. 어설픈 소매치기 꼬맹이마저 모른 척 놓아 보낼 정도로 말이야.”
“쿨럭, 세이드… 너… 제니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세이드가 가만히 태일의 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저 아이는 널 기억하지 못해.”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거대한 운석이 의사당의 천장을 완전히 박살 내며 대회장을 덮쳤다.
콰콰쾅!!!
매캐한 연기와 불빛, 떨어져 내리는 돌무더기 속에서 세이드와 제니를 비롯한 테러리스트들의 뒤편으로 검은 아공간이 형성된다.
“잘 가라, 친구.”
세이드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천천히 뒷걸음질 쳐 아공간 속으로 사라져 갔다.
곧이어 의사당의 천장과 벽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태일의 시야 역시 완전히 어둠에 잠기고 말았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