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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46화 (147/220)

146화 재회 (1)

후우우…….

입가에서 풍선이 크게 부풀어 오른다.

딱!

잠시 뒤, 풍선이 터지고 남은 잔해물을 입안에 넣어 질겅질겅 씹는다.

한때 히트맨 JD 역시 담배를 피웠지만, 지금은 끊었다. 히트맨에게 흔적을 남기는 행위는 금기였고, 물론 담뱃재를 남기는 것 역시 어리석은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풍선껌의 달콤함으로도 담배에 대한 욕망을 참기 어려웠다.

‘젠장…….’

JD는 달콤함이 입안에 퍼져 가는 와중에 찬찬히 무기를 정비했다.

티틱!

무의미하게 소비되는 탄피를 확인하며 눈살을 찌푸린다.

그 짧은 틈에 소비된 탄환만으로도 이미 출혈이 컸다.

그건 아마 주변에 몰려든 하이에나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타탕!! 쾅!!

이 순간에도 아마추어 히트맨들은 정신없이 총탄을 쏘아 대고 있었다.

‘이래서야… 일개 용병단만도 못하군.’

타깃이 시간 내 의회로 향하지 못하도록 성공하기만 해도 이번 작전에 참여한 히트맨은 수년 치 수입을 단박에 벌어들일 수 있다.

또한 타깃을 살해하는 데 성공하면 히트맨 일 따위 때려치우고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다.

게다가 공간 이동이 가능한 이레귤러가 참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A급 히트맨들은 물론,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몰려들었고, 졸지에 용병이 되어 타깃에 몰려들었다.

그 결과가 결국 이 꼴이다.

손발조차 맞지 않는 가운데, 눈먼 총알이나 잔뜩 날려 대며 소모전을 벌이는 것이다.

아마 정신없이 탄환을 날려 대는 아마추어들은 지금 본인들이 수개월 치 수입을 탄환에 실어 보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어쩐지 보수가 과하게 후하다 싶더니만,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들었군.’

JD는 쓴웃음을 지으며 하이퍼루프를 감싸고 있는 꽃봉오리 형태의 전류 그물망을 바라보았다.

하이퍼루프 안에서 타깃을 지키고 있는 놈들은 아웃라이어, 그중에서도 최상위급 괴물들이다.

그들은 수십 명의 히트맨들을 막아 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원을 불러들이던 이레귤러까지 제압했다.

사방에서 내리치던 번개와 참격, 그리고 신들린 회색 탄환.

고작 몇 분 사이에 수많은 히트맨들이 목숨을 잃고, 그중에는 JD와 나름의 안면이 있는 A급 히트맨들도 몇 끼어 있었다.

S급 히트맨들 중에서도 특출 난 녀석들만이 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수준의 놈들을 상대로는 JD 역시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대도 꽤 힘이 소진된 듯 반격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방어 위주로 전환했다.

눈앞의 거대한 방어막이야말로 그 증거였다.

이런 와중에 굳이 아까운 탄을 소비할 필요는 없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지.’

멍청한 아마추어들이 아낌없이 탄환을 쏟아붓는 중이고, 그런 견제구만으로도 상대는 방어를 섣불리 풀지 못할 것이다.

타깃의 제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발목을 붙잡을 수는 있을 테니 제법 괜찮은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조용히 과열된 총을 거두는 찰나, JD의 눈에 묘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뚜벅, 뚜벅, 뚜벅.

웬 양복 차림 사내가 보란 듯이 발소리까지 내 가며 흙길을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 자식은 또 뭐야?’

히트맨의 기본 중 기본은 은폐다.

이런 개활지의 경우, 최소한 수풀에 몸을 숨기거나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그건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물론 현재 아마추어 몇 놈이 위치를 훤히 드러낸 채 총탄을 날려 대고 있지만, 적어도 탁 트인 흙길에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낸 놈은 없다.

아마추어? 아니면 그저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한 민간인?

스릉!

사내가 옆구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그의 손에 들린 장검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났다.

순간, 근방 히트맨들의 사격이 멎었다.

숨어 있는 히트맨들의 시선이 검을 든 사내에게 집중되는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만은 아니었다.

‘뭐야, 이건?’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이, 오랫동안 쌓아 온 감각이 위험신호를 보내온다.

사내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사방에서 온갖 종류의 탄환이 발사되는 와중에 역사 시대에나 쓰였을 법한 검을 꺼내 든 양복사내. 그 모습은 분명 비현실적이었다.

후우…….

JD의 입가에서 다시 한 차례 풍선이 부풀어 오른다.

그 무의식적인 행동 가운데, JD의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었다.

쿵… 쿵… 쿵!

호기심? 긴장감?

아니. 이건… 겁을 먹은 거다.

우우웅…….

사내가 치켜든 검에서 언뜻 묘한 소리가 들려온다.

딱!

그리고 JD의 입가에서 풍선이 터지는 순간, 사방에 붉은빛이 드리웠다.

무심결에 하늘을 바라본 JD는 순간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입가에서 풍선껌의 잔해가 흘러나와 땅바닥에 떨어졌지만, 그조차 잊은 채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쿠쿠쿠쿠쿠쿠…….

화염에 휩싸인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잠시 사고가 멈춘 사이에 거대한 불덩이는 JD의 코앞까지 다가왔고,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살갗이 타올랐다.

그 불덩이가 지면에 닿기 직전의 순간, JD는 보았다.

양복 차림의 신사가 조금의 흔들림도, 두려움도 없는 평온한 표정으로 가만히 하이퍼루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칼은 회색이었다.

* * *

거대한 굉음에 이어 순식간에 거대한 목초지가 잠깐 사이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조금 전까지 온갖 공격이 날아들던 바로 그 장소는 움푹 파여 있고, 히트맨들은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사방에서 날아오던 공격들이 일시적으로 멈추었고, 태일 일행 역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그거… 운석 맞지?”

“우연…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뚜벅뚜벅.

운석이 떨어진 자리 근처의 흙길을 웬 신사가 걸어오고 있다.

그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일이 천천히 손을 내렸고, 하이퍼루프 주변을 감싸던 그물망이 사라졌다.

안도가 겁에 질린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뭐, 뭡니까?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요?”

태일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다들 뒤로 물러나 있어.”

타탕! 탕!

태일의 그물망이 사라진 틈을 타 잠시 공격을 멈춘 히트맨들이 다시금 공격을 가해 온다.

그러나 하이퍼루프를 향해 날아오던 탄환들은 객실 가까이에 이르러 갑자기 궤적을 바꾸어 땅으로 내리깔렸다.

쿠쿵!! 쿵!

마치 근방에 보이지 않는 중력이 작동하는 듯 주변의 지형마저 움푹 파였다.

콰콰쾅!!

사방에서 거대한 소리와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지반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로지 하이퍼루프만은 무사한 가운데, 나머지 공간은 최소 수백 배에 이르는 중력이 작동하고 있었다.

단번에 수십의 기척이 사라져 간다.

“으, 으으으윽!”

민호가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페이진은 총을 고쳐 쥔 채 비틀거리며 카츠미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지키고 섰다.

“당주, 정신 똑바로 차려.”

라이언 역시 다시금 안도와 레이놀즈를 보호하며 방어막을 펼쳤다.

그 와중에 모두의 시선은 오로지 한 사람, 태일에게 집중되었다.

오로지 태일만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한숨을 내쉰 태일이 모두를 한 차례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잠시 나갔다 와야겠어.”

주변의 히트맨은 전멸했다.

그러나 그 히트맨을 전멸시킨, 압도적인 전력의 사내가 바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 잠깐! 어딜 가려는 거야?”

카츠미의 물음에 태일은 가만히 담배를 꺼내 들었다.

“오랜 친구를 만나러.”

그 말을 끝으로 태일은 하이퍼루프 밖으로 몸을 날렸다.

* * *

충동적이고, 격정적이며,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내.

세이드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자주 벌였고, 제멋대로인 인간으로 가득한 혁명군 내에서도 독보적인 녀석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홀로 타 구역에 잠입해 관리자를 암살하는가 하면, 전쟁 전야에 아무런 보고도 없이 적진에 잠입하기도 했다.

“세이드 녀석은 너무 불안정해.”

알렉세이 딘은 예측 불가능한 일을 연달아 저지르는 세이드를 싫어했고, 세연조차도 세이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이드는 늘 증오로 가득 차 있었으며, 오로지 복수심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센트럴에 대한 증오만이 삶의 원동력이며, 센트럴을 붕괴시키는 것이야말로 삶의 이유였다.

그런 세이드는 다른 동료들과 친해지지 못했고, 대신 경애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뒤틀린 성격과 별개로 세이드의 실력만큼은 태일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태일이 번개와 빛을 다룬다면, 세이드는 중력과 어둠을 다룬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끌어들이는 어둠은 해석조차 불가능한 힘이었고, 센트럴에게도 공포, 그 자체였다.

“센트럴과 협상을 입에 담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반드시 내 손에 죽는다.”

극단적인 성격과 파괴적인 힘에 매료된 청년들이 세이드를 따랐고, 가장 위험한 곳에 그 누구보다 앞장섰다.

“센트럴 놈을 하나라도 더 죽인다. 오로지 그것만이 정의야.”

세이드의 힘과 사상은 지나칠 정도로 위험한 종류의 것이었고, 그가 가는 곳마다 많은 피가 흘렀다.

그랬기에 세이드의 배신만큼은 그 이유가 명확했다.

태일이 센트럴로부터 탈취한 엄청난 양의 소울.

태일은 그 소울을 본래의 주인, 즉 센트럴로부터 소울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했고, 배신자들은 그런 태일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마다의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무한한 생명, 엄청난 힘, 혹은 소울에 대한 권한, 그 자체.

그러나 세이드에게 있어 소울은 오로지 센트럴을 파괴할 무기였다.

센트럴의 파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

센트럴의 파괴를 막아선 태일이기에 더는 그의 동료도, 리더도 될 수 없었다.

배신의 밤,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태일을 죽이려 한 이는 바로 세이드였다.

그리고 지금, 세이드가 태일의 눈앞에 나타났다.

양복 차림의 세이드는 태일의 모습을 보자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었다.

회색 머리칼에 창백한 얼굴, 한 손에 든 장검.

모든 것이 태일의 기억과 같았지만, 눈동자만큼은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잘생긴 귀공자처럼 보이지만, 그 얼굴 뒤로는 차갑고 어두운 분노와 복수심만이 존재할 뿐이다.

“오랜만이야, 세이드.”

태일이 조용히 인사를 건넸지만, 세이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태일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반가움은 물론, 약간의 호의조차 없다.

세이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각은 어딨지?”

태일의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건네지도 않는다.

태일은 그런 세이드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여전히… 소울을 찾고 있는 거냐?”

혁명군이 센트럴로부터 탈취한, 엄청난 양의 소울.

혁명군의 최대 성과이자, 혁명군을 종말에 이르게 만든 힘.

클라이드와 다리 세이드는 여전히 그 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놔. 그리고 말해. 나머지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세이드가 히트맨들의 공격으로부터 태일을 구한 것 역시 오로지 태일이 가진 열쇠 조각 때문이었다.

째깍째깍…….

정적 속에서 품 안 회중시계의 태엽 소리가 들려온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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