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41화 (142/220)

141화 새벽 열차 (1)

부우우우우우―

알마티 역전, 요란한 기적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깼다.

50구역의 기차역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역전에는 커다란 물류 창고와 기계들이 즐비했다.

페이진은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한 듯 곳곳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와, 대체 저건 뭐야? 엄청 큰데?”

“촌놈처럼 굴지 마, 페이진.”

“아니, 당주도 신기하지 않아? 저거 좀 보라고.”

“하아…….”

카츠미는 그런 페이진이 부끄러운 듯 슬슬 거리를 두었고, 민호는 아예 모른 척하고 있었다,

역전 입구 앞에 이르자 제인과 레이, 루키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 여기예요!”

“카심은 오지 않은 겁니까?”

“일찌감치 장벽 밖으로 나갔네. 어제 자네 얘기를 듣고 가만있을 수가 없던 모양이야.”

지난밤, 태일은 카심과 루키우스를 찾아가 프랑켄이 모은 메타휴먼들에 관해 알려 주었다.

영혼을 갖고도, 감정을 느끼면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노예 생활을 감수해 온 메타휴먼들.

카심은 당시 태일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번이나 한숨을 토해 냈고, 급기야 눈물까지 보였다.

“그들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일단 카심이 돌아오거든 얘기해 봐야지. 하지만 전처럼 노예로 부릴 생각은 없네.”

루키우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멀리 장벽 쪽을 바라보았다.

메타휴먼에 대한 문제는 그 뿌리가 너무 깊고,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로보티안으로서 권리를 인정한다 해도 당장 장벽 공사에서 그들의 임금을 부담할 여력이 없다.

뿐만 아니라, 알마티 주민들의 적대감으로 말미암아 도시 내 테러가 연쇄적으로 자행될 가능성마저 있었다.

지금 루키우스에게 있어 메타휴먼 조직의 등장은 마음 아픈 이야기이기에 앞서 정치적인 폭탄과도 같았다.

“…일단 가지.”

루키우스는 애써 골치 아픈 문제를 잊으려는 듯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역사 시대 이후, 알마티는 제법 오랫동안 무역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동대륙과 서대륙을 연결했다. 그런 시대의 흔적들은 역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대한 규모에 비해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

과거와 달리 외부인의 발길과 물류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철로 절반가량은 폐쇄된 상태였다.

태일이 말없이 그런 역 내부를 살피는 사이, 민호를 비롯한 세 사람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정말 엄청나군.”

“그러게. 내부까지 이 정도 규모라니…….”

줄곧 페이진을 제지하던 카츠미조차 거대한 역의 규모에 놀란 시선 둘 곳을 몰랐다.

제인이 그런 카츠미를 보고 빙긋 웃으며 설명했다.

“예전에는 이 안에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어요. 전 대륙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거든요.”

“그랬지. 그때만 해도 알마티는 참으로… 멋진 곳이었어.”

루키우스 역시 감회가 새로운 듯 낡은 역의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때, 정차한 열차들을 살피던 페이진이 유달리 눈에 띄는 황금빛 열차들을 가리켰다.

“저건 뭐지? 이제껏 보아 오던 열차랑 다른데. 전시라도 해 놓은 건가?”

“아, 저게 바로 자네들이 타고 갈 열차네.”

“어엉?!”

“저게 말입니까?”

루키우스의 말에 페이진뿐만 아니라 민호, 카츠미 역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루키우스가 준비한 열차는 투박한 여타 열차들과 달리 황금색으로 도금된 채 부드러운 유선형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래쪽에는 바퀴가 없었다.

“저게 열차라고?”

키리리릭―

곧이어 황금색 열차의 철로를 중심으로 투명한 막이 원형으로 둘러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철로 터널은 언뜻 보기에는 거대한 캡슐처럼 보였다.

민호와 카츠미, 페이진은 그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태일에게는 꽤 낯익은 광경이었다.

“하이퍼루프(Hyperloop)로군요.”

“자네가 그걸 어떻게?!”

“들은 적 있습니다.”

“그 명칭은 센트럴에서도 고위층만 알고 있을 텐데…….”

“…….”

어디 들었을 뿐인가. 여러 번 타 본 적도 있었다.

초고속을 자랑하는 하이퍼루프는 태일이 살던 세계에서 이미 보편화된 기술이었고, 딘의 표현에 따르면 그조차도 ‘구닥다리 수레’에 불과했다.

“이미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왜 증기기관차 따위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겁니까?”

태일의 물음에 루키우스는 음울한 얼굴로 하이퍼루프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하 도시로 내려가기 훨씬 전에 하이퍼루프의 개발이 완료되었지. 하지만 센트럴은 이 열차의 사용을 제한했네.”

하이퍼루프는 Z―rail에서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 손에 넣은 기술력이었다.

센트럴 역시 루키우스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제법 많은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정작 하이퍼루프가 완성되자, 센트럴은 갖가지 핑계를 대며 열차의 사용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온갖 안전상의 문제를 이유로 허가를 미루었고, 동대륙에 인프라를 구축하려 들자 투자금 회수를 운운하며 막아섰다.

“어떻게든 운영권과 기술 탈취만은 막아 냈지만…….”

“회사에서 쫓겨난 거군요.”

“그래. 결국 계기는 하이퍼루프였지.”

장의 고발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센트럴은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루키우스를 제거하려 했고, 결국 루키우스는 지하로 쫓겨났다.

이후, 센트럴은 하이퍼루프의 운행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제한했다.

“하이퍼루프는 센트럴에서 허가한 지역에서만 운행이 가능하네.”

“기술을 통제하고 있다는 거군요.”

그저 열차뿐만이 아니었다.

알마티 LAPD가 레이저 장비를 사용할 때 50구역에서는 라이플이나 리볼버 따위를 사용했고, 증기기관차가 동대륙을 누비는 사이 센트럴에서는 하이퍼루프가 달렸다.

센트럴은 기술들을 독점했고, 이미 대륙 내 기술 격차는 같은 시대라 볼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그때껏 태일과 루키우스 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제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센트럴에서는 동대륙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죠.”

“야만인이라니!”

카츠미가 얼굴을 붉히자, 제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알아요. 부당한 얘기죠. 하지만 저 역시 어릴 적부터 동대륙을 위험하고 끔찍한 땅이라고 들어 왔어요.”

“…….”

동대륙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주민들에게는 무능하고 게으르다는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동대륙을 그렇게 만든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50구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째서 마피아가 될 수밖에 없는가.

49구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째서 펑크 라이더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센트럴에 의해 모든 자원을 빼앗기고, 자생력을 잃어버린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애당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웃긴 이야기로군.”

민호가 차갑게 굳은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제인이 진지한 얼굴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센트럴 오더가 발령된다면 그나마 동대륙 주민들이 만들어 온 기반들을 전부 잃게 될 거예요. 그리고 알마티 역시 지난 이틀 사이 손에 넣은 자유를 잃겠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카츠미가 제인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센트럴 의회의 청년당은 왜 우리를 돕는 거죠?”

카츠미는 의회에서 누군가가 센트럴 오더를 취소하기 위해, 50구역의 파괴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 한 번쯤은 비행을 저질러요. 그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다르지 않죠.”

“설마…….”

“그래요. 일탈을 즐기기 위해 찾는 곳이 바로 50구역 환락가죠.”

답답한 센트럴에서 탈출한 아이들은 나름의 일탈을 저지르기 위해 동대륙을, 50구역 환락가를 찾는다.

그처럼 동대륙을 찾아온 ‘도련님’들이야말로 환락가의 주된 고객이었다.

“센트럴의 젊은 유력가들은 동대륙을 싫어하지 않아요. 아니, 도리어 친근하게 여기죠.”

전쟁을 모르는 센트럴 청년들에게 동대륙은 두렵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유흥을 즐길 수 있는 땅, 꽤나 자유로운 곳일 뿐이었다.

“…….”

“물론 순수한 선의는 아니에요. 그 사람들도 그저 권력을 얻기 위해 싸울 뿐이죠.”

청년당은 평화를 위해 센트럴 오더를 막으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부모 세대가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해 정치적 행동에 나선 것에 불과했다.

센트럴 오더로 인해 50구역이 완전히 박살 난다 해도 그들은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자들에게 전쟁을 막을 힘이 있다는 거라네.”

루키우스의 말에 태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출발 준비를 마친 하이퍼루프의 문이 열린다.

“떠날 시간이네요.”

제인이 태일에게 다가와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명함 뒷면에는 휘갈겨진 글씨로 무언가 쓰여 있었다.

“미리 얘기해 뒀으니, 그쪽에서 먼저 당신을 찾아올 거예요.”

“고맙군.”

“행운을 빌어요.”

제인에 이어 레이가 평소답지 않게 쭈뼛거리며 태일 앞으로 다가왔다.

“크흠…….”

민호, 카츠미, 페이진은 태일을 통해 어젯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에 굳은 표정으로 그런 레이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정작 레이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어제는… 미안했어. 생각해 보니 내 말이 너무… 지나쳤어.”

평소와 다른 레이의 모습에 태일은 빙긋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어지간히 놀란 듯 레이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괜찮아, 틀린 말도 아닌데.”

“…무사하길 바란다. 이건 진심이야.”

“너도 꽤 까다로운 의뢰를 맡은 것 같은데, 무사히 마치길 바라.”

태일의 말에 레이 역시 희미하게 웃었다.

이어 루키우스가 태일에게 다가왔다.

“자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맡기는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하네.”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루키우스의 눈에는 많은 뜻이 숨어 있었다.

“고마웠네, 에너지 광장에서 날 구해 준 것도, 그리고…….”

루키우스는 지난 이틀간 리치 타운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극단적으로 말을 아꼈다. 루키우스의 측근들 중 그 누구도 리치 타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리치 타운에서도.”

루키우스가 힘겹게 끝맺자, 태일은 대답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자, 빨리 타! 뭐 하는 거야?!”

“꼴통, 굳이 인사를 방해해야겠어?”

“아, 내가 뭘! 혹시라도 우리만 태우고 출발할까 봐 그러지! 그리고 첫째, 너! 왜 자꾸 날더러 꼴통이래?”

“다들 조용히 좀 해.”

태일은 세 사람의 만담을 들으며 천천히 하이퍼루프에 들어섰다.

태일 일행이 탑승하자, 하이퍼루프의 문이 조용히 닫힌다.

증기기관차와 달리 하이퍼루프에는 그 어떤 소음도 없었다.

바퀴 없이 비스듬히 공중에 떠오른 열차가 천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태일은 창문을 통해 루키우스와 제인, 레이를 바라보다가 품속의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째깍, 째깍, 째깍…….

세연이 지금의 태일을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아마 분명 기분 좋게 웃어 줄 것이다.

세연은 늘 태일이 사람들과 함께하길 바랐으니까.

하이퍼루프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면서 알마티 시가지가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제인은 태일 일행을 태운 하이퍼루프가 떠나고도 제법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도 출발해야 해.”

레이의 목소리에 제인은 비로소 시선을 돌려 초라한 증기기관차를 바라보았다.

50구역까지 달릴 증기기관차는 센트럴로 향하는 하이퍼루프에 비하면 고철 덩어리로 보일 정도였다.

“제인 양.”

루키우스가 열차에 오르려는 제인을 보며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50구역에 가서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보수당의 당수 코르지 브레드필드의 딸.

센츠럴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남자의 핏줄이 어째서인지 자신을 도왔고, 이제는 50구역으로 향하려 한다.

제인은 루키우스를 보며 담담히 대답했다.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요.”

“솔직히 제인 양이 직접 의회에 가서 설득해 주길 바랐소.”

어찌 보면 당연한 기대였다.

제인 개인의 역량과 별개로 그녀가 가진 지위는 분명 의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질 테니까.

그러나 루키우스의 은근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의회로 향하지 않았다.

“…….”

제인이 침묵하자, 레이가 대신 입을 열었다.

“루키우스 씨, 말씀은 이해합니다만, 제인에게도 나름의 생각이…….”

“이건 센트럴 오더보다 중요한 일이에요.”

제인의 단호한 목소리가 시끄러운 기적 소리 속에서도 또렷이 울렸다.

곧이어 제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메타휴먼이 어디에서, 왜 왔는지 알고 있나요?”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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