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33화 (134/220)

133화 동맹 (2)

49구역.

끝도 없이 펼쳐진 황무지에 대략 1만에 이르는 50구역 병력이 집결했다.

이들은 대강 자신들을 ‘연합’이라 불렀고, 그 성의 없는 작명만큼이나 결속력도 형편없었다.

개조 차량과 바이크 따위를 제멋대로 끌고 온 연합 병력은 마피아에서부터 레지스탕스, 심지어 메타휴먼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속 인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기와 복장부터 생김새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인 이들은 도무지 ‘병사(兵士)’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았고, 그저 제멋대로 몰려든 무법자들처럼 보일 뿐이었다.

강필은 그처럼 대열조차 갖추지 않은 채 몰려든 이들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가관이군.”

오합지졸도 이런 오합지졸이 없다.

50구역 LAPD가 아무리 해이한 조직이었어도 눈앞의 무질서한 집단에 비하면 정예 병력으로 보일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는…….”

쾅!

뒤쪽에서 요란하게 추돌한 개조 차량 두 대에서 불길이 치솟자 자켄은 그만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자켄의 옆에 서 있던 지우와 앨리스가 저희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멍청이가 운전한 거지?”

“브레이크가 망가졌는지도 몰라.”

대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뜩찮은 듯 바라보고 있던 하얀 늑대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발생한 사고만 최소 수백 건이야. 사상자도 몇 나왔지, 아마?”

“그중 대부분이 저희 메타휴먼입니다. 저희에 대한 테러 행위를 막아 달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만.”

메타휴먼 가이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각 소속의 지도자들에게 말했다.

“나라고 말을 안 해 봤겠나? 그렇지만 다들 메타휴먼에 대한 감정이 워낙 좋지 못해.”

“저도 계속 타이르고 있지만, 워낙 제멋대로인 사람들이라서 쉽지 않네요.”

그나마 강필과 자켄은 가이를 달래려는 듯 둘러댔지만, 하얀 늑대는 아예 가이의 말을 못 들은 척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약 1만의 병력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건 단연코 50구역 공장 지대에서 몰려온 메타휴먼들이었다.

그러나 메타휴먼을 혐오하는 이들, 특히 레지스탕스는 의도적으로 메타휴먼에 대한 공격을 자행했고, 그로 인해 내부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여기서는 절대 우리끼리 내분이 이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네.”

“맞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상대는 꽤 놀랄 거예요.”

가이는 애써 화제를 돌리는 강필과 자켄을 따라 앞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저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군요.”

50구역 세력들이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일대 사건이다.

그러나 지금 50구역 오합지졸들의 눈앞에 센트럴의 순양함, 플루톤이 비행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지우와 앨리스는 다시금 저희끼리 만담을 펼치기 시작했다.

“크긴 진짜 크네.”

“몇 사람이나 타고 있을까?”

“글쎄, 100명?”

“우와…….”

“아냐, 아냐. 200명은 탈 수 있겠다.”

“최대 천 명이다.”

하얀 늑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두 아이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런 시선이 민망했는지, 하얀 늑대는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쿠우우우우…….

거대한 엔진 소리가 온 대지를 울린다.

그저 한 척일 뿐이다.

하지만 그 거대하고 압도적인 위용은 1만의 병력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때껏 침묵하며 가만히 순양함을 바라보고 있던 카렌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위에서 볼 때, 몰려든 우리들의 모습은 한낱 개미 떼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죠.”

“…듣기 거북하네요.”

자켄이 카렌의 말에 불퉁거리며 대꾸했지만, 그녀 역시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제국들을 무너뜨린 플루톤 앞에서 연합은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저들에게 맞설 각오를 했다는 사실이에요.”

“…….”

“그것 하나면 충분해요.”

카렌의 말이 끝나는 순간, 순양함이 천천히 착륙하기 시작했다.

“정말 같잖군.”

순양함 가판대에서 여유롭게 부채를 부치던 백련의 한쪽 입꼬리가 치켜올라 갔다.

“굳이 저런 녀석들과 대화 같은 걸 해야 하나? 이 순양함 한 척의 화력이면 저 오합지졸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백련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플루톤은 단 한 척만으로 수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제국 수도를 초토화시켜 항복을 이끌어 냈을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순양함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백련을 향해 차갑게 대꾸했다.

“난 학살자가 아닙니다.”

“후후, 이거 실례.”

백련이 부채로 입을 가린 채 히죽 웃어 보였다.

아크는 그처럼 비아냥거리는 백련을 뒤로한 채 기함 출구로 향했다.

‘멍청한 놈 같으니.’

백련은 50구역에서 집결한 오합지졸의 진짜 의미를 알지 못한다.

카렌은 마피아와 LAPD, 레지스탕스, 심지어 메타휴먼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갈등과 분열은 광대한 대륙을 통치하는 센트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무기이며, 연대와 조직된 저항은 센트럴을 와해시킬 수 있는 독이다.

만약 저 1만의 오합지졸을 향해 백련의 말처럼 화력을 쏟아붓는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날로 수백만에 이르는 50구역의 주민 전체가 들고일어날 것이며, 모든 세력이 힘을 모아 센트럴에 저항할 것이다.

제국들이 멸망하고 난 뒤에도 끝까지 저항하던 50구역의 악몽이 부활하는 것이다.

더구나 갈등이 격렬한 50구역에서 세력 간 통합이 가능하다면, 대륙 어디에서든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카렌이 집결시킨 1만의 군세가 더없이 불편했다.

“그래서… 저들을 어쩔 생각이지?”

백련이 아크를 따라오며 물었다.

“지금 필요한 건 당근입니다.”

“호오……?”

“물론 모두에게 줄 생각은 없죠.”

치이이이이이…….

플루톤의 출구가 열리며 흙먼지가 휘날리는 황무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련은 센트럴 지휘관들을 대동한 채 밖으로 나가는 아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여튼 성격 나쁜 도련님이라니까.”

카렌과 아크가 마주 선 가운데, 두 사람의 뒤로 각 군단의 대표자가 진열해 섰다.

카렌의 뒤로 마피아의 자켄, 레지스탕스의 하얀 늑대, LAPD 서장 강필, 메타휴먼 가이가 따랐고, 아크의 뒤로는 세 명의 지휘관과 백련이 나란히 서 있었다.

“오랜만이야, 누나.”

“그래.”

“솔직히 많이 놀랐어. 누나가 이렇게 50구역의 세력을 규합할 줄은 몰랐거든. 심지어 레지스탕스까지 누나 밑으로 들어왔다지? 정말 대단해.”

아크의 말에 듣고 있던 하얀 늑대가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자켄이 황급히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카렌 역시 그처럼 얕은 수작에 걸려들지 않았다.

“이 중 누구도 내 아랫사람이 아니야. 말 그대로 동맹을 맺었을 뿐이야.”

“아, 동맹……. 음, 그러니까… 메타휴먼들까지 말이지?”

아크가 카렌 뒤쪽의 가이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뭐, 어쨌든 좋아. 여기까지 왔으니 어디 한번 말해 봐, 원하는 게 뭔지. 누나도 알다시피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센트럴의 군 지휘관들이고, 우리 협상의 증인이 되어 줄 거야.”

“센트럴 오더를 취소해.”

“…그건 곤란한데.”

“아크.”

“아니, 오해하지 마. 내가 의회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는 없다는 의미였어. 누나도 알다시피 이번 일에 워낙 자금을 쏟아부어서 나 이제 진짜 개털이거든.”

아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어때? 센트럴 오더의 목적에 대해 협상하는 거야.”

“…뭐?”

뜻밖의 제안에 카렌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들어봐. 센트럴 오더는 누나도 알다시피 명확한 목표가 필요해. 특정한 전쟁이나 반란 진압같이 특별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거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이번 센트럴 오더는 50구역을 표적으로 하고 있을 텐데?”

“그래, 맞아. 하지만 그 목표는 군 총사령관과 상원의원의 협상에 따라 일부 수정할 수 있어. 군법 제58조, 작전 범위를 넓히는 건 불가하지만, 좁히는 건 가능하지.”

“아크, 너 설마……!”

카렌은 그제야 아크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번 작전의 표적은 50구역 공장 지대로 제한하겠어.”

“아크!!”

카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순간 협상 자리에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왜 그런 표정이야? 누나도 드림 코퍼레이션의 이사잖아. 우리 회사에서 공급한 메타휴먼들이 오작동으로 50구역 관리자의 명령을 듣지 않았어. 그것도 자그마치 수만에 이르는 규모이지. 그 손해가 얼마인지 누나도 모르지…….”

“입 닥쳐, 아크! 그들은 전부…….”

“로보티안이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권리를 부여할 거야. 문제는 50구역의 메타휴먼들이 캐피탈 클럽의 자산들을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거지.”

아크의 제안을 듣고 있던 가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기꺼이 공장주들의 지시에 따라 일을 지속할 의사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은 임금이 아니며, 그저 50구역에 남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가이의 말을 들은 아크의 얼굴에서 별안간 웃음기가 사라지며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

“그건 너희들이 아니라 공장주들이 결정할 사안이야, 메타휴먼. 주제를 알아야지.”

면박을 들은 가이가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선뜻 대꾸할 수 없었다.

위기에 처한 가이의 시선이 자신의 옆에 선 대표자들을 향했다.

그러나 강필도, 자켄도, 하얀 늑대도 아무 말이 없다. 그 누구도 가이의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 심지어 협상의 대표자로 나선 카렌조차도 아크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아크는 자신감이 붙은 듯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가장 큰 위협을 50구역 공장 지대 메타휴먼으로 규정했고, 빼앗긴 공장들을 돌려받을 생각이야.”

메타휴먼과 인간의 갈등.

그것은 금융 버블 이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뿌리 깊은 것이고, 결코 쉽게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크는 자신의 제안이 효과적이라고 확신했다.

이윽고 얼마간의 침묵 끝에 가면 뒤에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꽤나 흥미로운 제안이로군.”

레지스탕스의 지도자, 하얀 늑대다.

“그러니까 젊은이 말은 공장 지대의 불량품들을 모조리 치워 버리기 위해 군대를 투입할 테니, 나머지는 개입하지 말아 달라… 이건가?”

“정확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조금의 손해도 가지 않을 합리적 제안이죠.”

아크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가이는 망연한 표정으로 하얀 늑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별안간 하얀 늑대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유쾌하기까지 한 웃음이었다.

“웃기는군. 센트럴의 그 엄청난 군사력을 갖고 한다는 짓이 고작 부자들 뒤치다꺼리라는 말이지?”

하얀 늑대의 말을 들은 지휘관 하나가 성난 얼굴로 눈을 부릅떴다.

“감히 우리를 모욕하는 건가?”

“아니지. 자네가 화를 내야 하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자네 앞에 선 젊은이라네. 그의 제안이 얼마나 황당한가? 고작 공장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겠다고 대륙 전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말이잖은가.”

지휘관들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진다. 그러나 아크는 곁눈질로 그들을 바라본 뒤,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앞서 말씀드렸듯 50구역 공장 지역에 배치된 메타휴먼의 규모는 수만에 이릅니다. 잘 조직된 군대와 같죠.”

“우습군. 저희 스스로 무급으로 일하겠다고 하는 호구들이… 뭐? 군대? 차라리 솔직해지는 게 어떤가?”

하얀 늑대가 들으라는 듯 코웃음 치더니, 팔을 들어 아크를 가리켰다.

“자네들은 메타휴먼을 핑계로 군대를 진입시키려는 게 아닌가! 분명히 말해 두지. 우리는 결코 우리들의 땅에 센트럴의 군대가 진입하는 걸 두고 볼 수 없네!”

가이는 꽤나 놀란 표정으로 하얀 늑대를 바라보았고, 그건 강필과 자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보다 메타휴먼에 대해 적대적인 이들이 하얀 늑대와 레지스탕스이고, 당장 49구역에 들어오는 동안에도 메타휴먼에 대한 린치 행위가 빈번히 이루어졌다.

그런 하얀 늑대가 지금 메타휴먼들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은 아니겠죠? 이건 당신들에게 나쁠 게 없는 제안입니다. 50구역 공장 지대만을 작전지역으로 설정한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없을 텐데요.”

자켄이 부드럽게 웃으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여기서 침묵한다면, 훗날 당신들이 우리에게 총구를 돌렸을 때 우리를 위해 맞서 줄 이들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겠죠.”

“…이래서야 나만 다른 목소리를 낼 순 없겠군.”

강필마저 어깨를 으쓱이며 뜻을 같이하자, 아크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그때껏 가만히 듣고 있던 백련이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완전히 한 방 먹은 거 같은데, 도련님?”

카렌이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오로지 하나야, 야크. 센트럴 오더 따위 포기해. 네가 고집을 부린다 해도 청년당에서 반드시 명령을 철회시키겠지만.”

“후회할 거야, 누나.”

카렌과 50구역 대표자들을 노려보던 아크는 오로지 그 말만을 남긴 뒤, 뒤돌아섰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좌측 편에서 뿌옇게 이는 흙먼지가 아크의 눈에 들어왔다.

부아아아아아아!!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수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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