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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31화 (132/220)

131화 이야기의 결말 (5)

“아, 아아…….”

루키우스는 장의 비늘을 보며, 그 비늘을 벗고 나온 뱀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30여 년 전, 집으로 데려온 고아 소녀 메리, 그녀가 어떻게 저런 힘을 가진 걸까?

그녀가 어떻게 뱀으로 변한 장의 옆에서 아무런 위화감 없이 서 있는 걸까?

뱀이 노란 눈동자로 루키우스를 빤히 바라본다.

그렇게 뱀과 마주 보는 사이, 온 사방이 검게 물들었다.

리치 타운의 거리와 저택들도, 마틴과 태일의 모습도 사라져 간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루키우스의 눈에 보이는 건 오직 뱀으로 변한 장과 메리뿐이었다.

“메리, 너…….”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나요, 아저씨?”

깔깔거리며 웃던 메리의 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린 소녀의 형체로 변했다.

처음 루키우스가 집으로 데려왔을 당시 메리의 모습이었다.

“이 모든 건 아저씨 덕분이에요. 아저씨 덕분에 장의 곁에 있을 수 있었죠.”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메리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에서 몸을 빳빳이 치켜든 뱀을 쓰다듬는다.

“내 아들을 어떻게 한 거지?!”

루키우스가 다급히 외치는 순간, 어린아이의 모습이던 메리가 젊은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메리는 자신의 옆에서 똬리를 튼 뱀을 쓰다듬으며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당신의 아들은 정말 좋은 그릇이었어. 정말 훌륭한 자질을 가졌지.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 능력자로 태어난 아이의 운명을. 오히려 내가 미리 찾아냈기에 의미 있게 이용할 수 있었지.”

“이용…한다고?”

“장은 정말 답답한 아이였어. 그 우유부단함이 얼마나 답답하던지.”

메리가 살짝 한숨을 쉬더니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형제들을 없애 버려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몇 번이나 일러줬건만, 처음에는 들으려 하지 않더라고. 답답하긴.”

“그럴 수가! 네가 장을……?!”

“그래도 결국 이 아이가 내게 넘어온 건 당신 덕분이었어. 이 아이를 괴물이라 여기고 멀리한 건 당신이잖아?”

“아니, 난 아니야!!”

루키우스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며 부인했다.

“거짓말. 장과 나 사이에 비밀은 없었어. 장이 말했지. 그토록 사랑하던 당신의 아내가,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을 평생 용서하지 못할 거라고.”

“난 그저 장을 보호하려 했어. 그뿐이야!”

“보호? 바깥세상으로부터 격리하는 걸 보호라고 부르나? 욕망을 억누르는 게 보호야? 당신은 장을 두려워했어. 당신의 아내를 잡아먹은 이 괴물을 말이야.”

뱀이 노란 눈동자를 굴리며 루키우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노란 눈동자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심어 둔 씨앗이 뿌리내리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어. 인격이 사라져 갔고,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어 갔지. 불쌍한 장.”

메리는 뱀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장에게는 꽤 억울한 일이야.”

메리의 모습이 다시금 재로 흩어진다.

“장의 소울을 변화시킨 사람도, 그래서 당신의 아내가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람도…….”

그리고 잠시 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타났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다. 장이 태어날 당시, 아내의 출산을 도운 의사.

아내의 검게 변해 버린 몸뚱어리를 보며 무뚝뚝한 얼굴로 짧게 ‘미안하다’ 말하던 의사.

백의까지 갖춰 입은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바로 나거든.”

루키우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성을 잃고 자신조차 알아듣지 못할 괴성을 내질렀다.

눈앞의 악마를 죽여야 한다.

그녀를 죽이고 아들을, 장을 구해야 한다.

주체할 수 없는 증오감에 휩싸인 루키우스는 그녀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루키우스는 마치 늪에 빠진 듯 몸 전체가 천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그리고 곧이어 의사의 형체가 사라지면서 오로지 뱀의 노란 두 눈동자만이 남았다.

‘장…….’

루키우스는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평생을 용서하지 못한, 그런데도 차마 버릴 수 없던 아들을 향해 팔을 뻗었다.

“루키우스!!”

태일이 어깨를 붙잡고는 몇 차례나 불러 보았지만, 루키우스는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분명 숨을 쉬고 있지만,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조금의 반응도 없었다.

“포기하는 게 좋아.”

메데이아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이미 심연 속에 깊이 가라앉았거든.”

태일이 고개를 들어 메데이아를 노려보았다. 그 와중에 뱀은 몸을 빳빳이 한 채 루키우스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그보다 아직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는데. 대체 넌 누구니? 어떻게 나를 아는 거지? 왜 나를 노리지?”

태일은 그런 메데이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세연, 알렉세이 딘.”

줄곧 여유롭게 웃고 있던 메데이야의 얼굴이 별안간 차갑게 굳어졌다.

“네가 어떻게 그 이름들을 아는 거지?”

“난 그 두 사람의 친구야.”

“친구…라고?”

“그래.”

세연과 알렉세이 딘은 어째서 자신들이 100여 년 전 전쟁에서 날뛴 메데이아와 요르문간드에 대해 그처럼 잘 알고 있는지 끝끝내 말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설명을 들으며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은 어떤 방식으로든 메데이아와 요르문간드를 상대했고, 승리했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충격을 받은 듯한 메데이아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그 녀석들은, 지난 세대는 분명 폐기되었을 텐데……?!”

메데이아는 영문 모를 말을 늘어놓으며 몸을 떨다가 곧 눈을 부릅뜨고는 태일을 노려보았다.

“센트럴의 괴물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태일은 순간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대체 지금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설마 세연과 알렉세이 딘이 센트럴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던 녀석들이라는 소리를 하는 건가?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태일의 옆에서 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루키우스!”

어느새 루키우스가 뱀을 바라보며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부하들을 처형할 때 사용하던 바로 그 권총을 뱀으로 변한 아들에게 겨눈다.

그러나 정작 권총을 치켜든 루키우스의 얼굴이 이상했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듯 멍한 얼굴이었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실을 눈치챈 메데이아가 고개를 돌려 흔들림 없이 루키우스를 응시하는 뱀을 바라보았다.

“너, 아직도 의식이……?!”

뱀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이는 루키우스가 아니었다.

그건 장의 의지였다.

노란 눈동자는 오로지 루키우스가 쥔 권총의 총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죽여 달라는 듯이 대가리를 총구의 방향으로 가져다 댄다.

“어리석은 놈!”

분노한 메데이아가 뱀의 목을 움켜쥐었고, 곧이어 메데이아와 뱀의 형체가 검은 재들로 뒤덮였다.

탕!!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를 노린 루키우스의 총이 발사된다.

그러나 총알은 뒤쪽 벽에 박혀 버렸고, 메데이아와 요르문간드의 모습은 산산이 흩어졌다.

“어딜!”

파치치치…….

태일은 사방에 전류의 그물망을 펼쳐 사라진 메데이아와 요르문간드의 실체를 잡으려 했지만, 둘의 기척은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아니, 애당초 메데이아의 실체는 단 한 차례도 잡아내지 못했다. 그녀 자체가 그림자로 느껴질 정도였다.

한편, 태일의 머릿속에는 메데이아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센트럴의 괴물들…이라…….’

째깍, 째깍, 째각.

품속 회중시계 태엽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려왔다.

“헉헉… 이봐!! 괜찮아? 끄아아앗!”

때마침 도착한 민호가 태일을 향해 다가오다가 애꿎은 그물망에 걸려 감전되었다.

태일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은 뒤, 온몸이 땀에 젖은 루키우스를 부축했다.

“…장.”

가만히 중얼거리는 루키우스의 눈가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무기고 앞 초소에 몸을 기대고 있던 안드레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안드레이의 옆에서 소총을 정비하고 있던 야곱이 무심하게 대꾸한다.

“글쎄, 하지만… 뭐든 결론이 났을 거 같은데.”

리치 타운 쪽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와 갑자기 비쳐 온 빛,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번개까지.

안드레이는 그 이변들을 보며 동요했지만, 야곱은 흔들림 없는 얼굴로 안드레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믿어라. 시장님이잖냐.”

“알아, 나도 안다고. 그 양반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지.”

안드레이는 고개를 돌려 참호 주변을 엄호하고 있는 기계들… 아니, 메타휴먼들을 바라보았다.

루키우스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저런 녀석들을 설득해 데려올 수 있을까.

사실 안드레이는 오늘 밤, 형을 따라 목숨을 버릴 예정이었다. 지원 병력 없이 무기고 습격을 감행한 것도 사실상 죽음을 각오하고 벌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루키우스는 마치 그 사실을 알았던 듯 작전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고, 야곱은 LAPD 본사를 불태움과 동시에 안드레이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왔다.

심지어 나중에는 카심과 메타휴먼들이 서장의 시신까지 갖고 전투에 합류했다. 아니, 그들은 전투를 끝내 버렸다.

애당초 불가능할 것이라 여긴 무기고 점령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건가?”

“안드레이.”

안드레이 역시 알고 있었다.

루키우스의 판단은, 그의 선택은 옳다. 하지만 지금 안드레이에게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쪽은 무기고 앞에 대치한 바르코의 LAPD 정예 병력이 아닌, 자신과 함께 무기고를 지키고 있는 메타휴먼들이었다.

사실 안드레이뿐만 아니라 자경대원 대부분이 힐끔거리며 메타휴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카심이 안드레이를 향해 다가왔다.

“몸은 좀 괜찮은가?”

“…덕분에.”

서장의 시신을 매달아 무기고를 지키던 수비 병력 앞에 과시하던 카심의 모습은 아무리 아군이라 해도 소름이 끼쳤다.

“이제 한 배를 탔으니, 앞으로 잘 부탁하네.”

“…….”

카심이 악수를 권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안드레이는 물론, 야곱조차도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지하 도시 주민들은 도리어 지상 주민들보다도 메타휴먼에 대한 적대심이 높다.

그런 메타휴먼과의 연합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이번에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결국 오래갈 수 없는 동맹이다.

안드레이는 카심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저 친구들, 언제 다시 지하로 내려가는 겁니까?”

“지하로? 에너지가 남지 않은 그곳으로 말인가?”

“설마…….”

“우리는 이곳 지상에 정착할 거네. 자네들과 마찬가지로.”

카심의 말을 들은 순간, 안드레이와 야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카심은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예상한 듯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거리 저편에서 높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에게 집을! 자유를!”

“우리도 알마티의 주민이다!”

“우리는 살아 있다!!”

조금 전까지 멈춘 시위대의 구호가 다시금 들려오자, 안드레이와 야곱을 비롯한 자경대원들은 저마다 무기를 고쳐 잡았다.

카심 역시 손을 올려 신호를 보냈고, 메타휴먼들은 저마다 몸을 일으키며 LAPD 쪽을 응시했다.

그러자 잠시 뒤, LAPD를 지휘하던 바르코가 부하들을 뒤에 남겨 둔 채 홀로 무기고 쪽으로 다가왔다.

무기고 가까이 다가온 바르코가 고함을 내지른다.

“루키우스가 돌아왔다! 우리 LAPD는 더 이상 지하 도시 주민들과 싸울 의사가 없다!”

바르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쪽 LAPD 병력은 전원 보유하고 있던 무기들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자경대원들은 얼마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곧이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만세를 부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우리도 알마티의 주민이다!”

거리 저편에서 들려오는 시위대의 구호와 무기고의 함성이 뒤섞여 알마티 온 거리를 메웠다.

알마티 지하 도시는 그날 완전히 사라졌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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