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20화 (121/220)

120화 혁명의 시작 (2)

“…대장!”

“그래, 보고 있다.”

LAPD 알마티 본부 뒤쪽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야곱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님 말씀대로군.”

도시 동쪽과 서쪽에서 불길이 오르자 서장이 직접 병력을 모으기 시작했고, 일대 소란이 일었다.

야곱과 부하들은 본부 근처에서 대기하며 내부에 일어난 혼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겠지? 직접 충돌은 최대한 피한다.”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각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는 루키우스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당연한 노릇이었다. 알마티 도심에 잠입해 들어온 자경대원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무장 상태 역시 LAPD에 비해 조악하다. 만약 LAPD가 제대로 전열을 갖춘다면, 고작 지하 도시의 자경대 따위는 순식간에 쓸려나갈 것이다.

게다가 LAPD의 기능이 마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하 도시 주민들이 지상에 올라온다면, 자칫 끔찍한 학살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루키우스에게 나름의 계획이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것이 어떤 대책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에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대장……!”

부하의 목소리에 야곱은 슬쩍 고개를 돌려 본부 앞쪽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서장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본부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케인, 기계공원 쪽으로 가. 바르코, 너희 팀은 아덴 거리로 가라. 가서 거동 수상자들은 전부 잡아들여!”

“네!!”

꽤 많은 수의 경찰들이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 부산히 움직였다.

“우리는 무기고로 갈 거다. LAPD가 아닌 녀석들을 발견할 시, 저항하면 그 자리에서 사살해도 좋다!”

“네!!”

본부 앞쪽에서 들려오는 서장의 지시를 들은 요셉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무기고 쪽으로는 안드레이가 향하고 있다. 자칫 서장의 병력과 직접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결코 무기고를 공략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다들 준비해.”

야곱의 지시에 따라 부하들이 저마다 무기와 휘발유 통을 꺼내 들었다.

야곱은 무전기를 꺼내 조용히 물었다.

“내부에 남은 인원은?”

[1층부터 3층까지 각 층에 당직자 두 명씩, 4층에는 한 명입니다.]

총 일곱 명.

그러나 상대는 빔 소드와 레이저건으로 무장한 상태일 게 분명했다.

“지금부터는 속도전이야. 최대한 조용히, 빠른 속도로 본부를 장악한다.”

거리에서 서장을 비롯한 경찰 병력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야곱은 고개를 끄덕여 작전의 시작을 알렸고, 그와 동시에 부하들은 날렵하게 파이프를 타고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텅 빈 LAPD 본부를 불태운다 해도 그저 혼란을 가중시켜 시간을 벌 수 있을 뿐, LAPD 자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시장님, 뭐가 됐든 서둘러 주셔야 합니다.’

야곱은 입술을 깨문 채 권총을 움켜쥐었다.

* * *

야나르가 사라져 버린 알마티 지하.

두 남자가 방독면을 쓴 채 지하 도시 바깥의 쓰레기 더미를 누비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붉은 눈동자들이 반짝거린다.

키릭, 키리릭!

개조된 메타휴먼들의 집게 손과 개조된 팔다리에서 불쾌한 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메타휴먼들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름의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공격하거나 막아서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 역시 메타휴먼들의 눈빛과 소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둘은 쓰레기 더미 속, 마치 동굴처럼 생긴 공간에 도착했다.

언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동굴에는 온갖 철제 부품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노란 전구 불빛이 위태롭게 깜박거렸다.

치지지지지…….

언뜻 쓰레기처럼 보이는 철제 부품들은 동굴 입구에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막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퉁! 퉁! 퉁!

두 사람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무언가 두들기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둘이 방독면을 벗자 비로소 망치 소리가 멈추었다.

“두 사람이라…….”

“오랜만이네.”

“…루키우스.”

동굴 안에 있던 노인은 망치를 내려놓고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하얗게 센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온 얼굴을 빈틈없이 메운 주름은 노인의 고된 세월을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노인은 루키우스와 그 옆에서 방독면을 벗은 사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레이, 자네도 왔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느 쪽이든 곧 날 찾아올 거라 생각은 했다만.”

노인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상자를 꺼내 와 걸터앉았다.

“설마 둘이 함께 올 줄은 몰랐네.”

루키우스는 느긋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빠르게 말을 이었다.

“카심, 지하 도시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알고 있을 테지?”

“글쎄…….”

“야나르가 꺼졌어. 센트럴은 지하 도시를 없앨 생각이네.”

“아, 그런가?”

알마티 지하의 쓰레기장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카심은 루키우스가 들려준 상황에 별 흥미가 없는 듯 무심히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자네에게 공급되는 에너지도 끊어질 거네.”

“그렇군.”

루키우스는 너무나 태연히 대꾸하는 카심을 보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제법 오래 알아 왔건만, 눈앞 괴팍한 노인의 속내만큼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그의 기술과 지식이 건재하다. 그건 쓰레기 더미의 메타휴먼들과 문 앞 조악한 기기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도와주게.”

“허허허, 시장님께서 이런 늙은이한테 도움받을 게 뭐 있다고.”

카심은 기어코 의뭉을 떨며 말을 빙빙 돌릴 뿐이었다.

그때, 줄곧 침묵하고 있던 레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 용무를 말씀드리죠. 어르신과 거래하러 왔습니다. 평소처럼.”

“그래그래, 이번에는 어떤 녀석이 필요하신가? 이번에 꽤 다양한 기구를 탑재해 보았지. 마음에 들 거라고.”

카심이 이번에는 흥미를 보이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전부.”

레이의 한마디에 카심의 입이 멈춘다.

“용도가 뭐지?”

“굳이 아셔야 합니까?”

카심의 얼굴에서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루키우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메타휴먼들과 함께 지상에 올라갈 거네. 이제 지하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게 됐어.”

“생명체라…….”

카심이 루키우스의 말을 곱씹더니, 루키우스와 레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녀석들이 전부 지상에 올라간다면, 거기에서는 무슨 역할을 맡게 되나?”

“이보게, 카심.”

“총알받이로 세울 생각인가? LAPD 놈들과 맞서는 병기로라도 사용하려는가?”

“…….”

“레이, 자네의 생각도 같은가? 정말 그러려고 온 게야?”

루키우스와 레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카심을 바라보았다.

메타휴먼 역시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다. 그러니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메타휴먼은 LAPD와 맞서 싸워야 했고, 병기가 되어 주민들을 지켜야만 했다.

“내가 지금껏 자네들 두 사람과 거래를 한 이유가 뭔지 아는가?”

카심이 살기등등한 눈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적어도 자네들은 메타휴먼을 ‘생명체’라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레이는 호위 병력과 비서를 비롯한 자신의 조직 구성원 전부를 카심에게 구한 메타휴먼으로 채웠다.

이미 오래전 추적기가 꺼져 버림받은 메타휴먼들은 충실한 부하가 되어 주었다.

메타휴먼은 암흑가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도리어 경계가 느슨해지는 일이 잦았고, 충실하게 레이의 임무 수행을 도왔다.

레이는 자신의 원칙대로 메타휴먼들에게 나름의 대가를 지급했으며, 이성을 갖게 된 부하들에게는 로보티안의 권리를 보장해 주었다.

남들이 보기에 선뜻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지만, 암흑가를 살아가는 변호사 레이에게 있어 인간은 결코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차라리 모든 인간의 배척을 받는 메타휴먼이야말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이들이고, 실제로 메타휴먼이 레이를 배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레이는 지금껏 믿음직한 부하들을 제공해 온 카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가 메타휴먼을 사들여 고용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만한 쓸모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키우스는 지하로 밀려난 주민들을 위해 벽을 쌓았다.

외부 유독가스와 냄새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메타휴먼을 주민들로부터 분리하는 역할도 겸했다.

지하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 메타휴먼들은 루키우스와의 비밀 계약에 따라 충실하게 지하 분리수거의 역할을 담당했고, 지하 도시를 지탱하는 중요 노동력으로 기능했다.

제아무리 지하로 밀려난 주민들이라 해도 지상에서 쉴 틈 없이 쏟아져 내리는 쓰레기 더미를 정리하고 처리하려는 이는 없다. 그처럼 지하에서도 가장 지저분한 일을 메타휴먼이 도맡아 한 것이다.

그 대가로 루키우스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에너지와 식량 등 자원들을 제공했다.

메타휴먼의 입장에서는 루키우스가 살아갈 길을 마련해 준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금껏 루키우스의 행동들은 메타휴먼을 위한 조치들이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네. 메타휴먼들은 지하 도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존재였어. 그렇기에 난 그들에게 필요한 걸 제공한 거야.”

메타휴먼에 대한 인간적 온정.

설사 그런 동정심이 있다 한들 결과적으로 그런 감정은 메타휴먼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동물보호단체가 존재한다 해도 동물들은 빠른 속도로 멸종해 갈 뿐이고, 구호단체가 늘어난다 해도 빈민들의 삶이 급격히 좋아지는 일 또한 없다.

“쓸모를 인정받은 존재만이 존속할 수 있는 거네. 그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

“…….”

루키우스의 말에 카심은 흰 수염을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정작 루키우스의 말은 그 자신에게도 아픈 말이었다.

지하 도시가 어떤 곳인가.

쓸모를 인정받지 못한 인간들이 밀려난 끝에 도달한 장소이다. 이젠 최소한의 생존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해 센트럴로부터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와중에도 루키우스는 지하에서 ‘존재의 가치’를 입에 올린 것이다.

“어르신도 함께 가시지요. 메타휴먼들은, 제 부하들은 여전히 어르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카심은 지난 5년 동안 알마티 지하 쓰레기장에 처박혀 매일같이 수많은 메타휴먼들을 수리하고 개조했다.

한때 드림 코퍼레이션의 유명 기술자였던 그는 금융버블 사태 당시 드림 코퍼레이션 본사가 알마티를 떠난 뒤에도 알마티에 남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발로 지하에 내려와 버림받은 메타휴먼들을 위해 망치를 들었다.

루키우스는 물론, 레이 역시 카심에게 정확히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가 그 누구보다 메타휴먼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이해하고 있었다.

즉, 카심 또한 지하의 메타휴먼들이 어둠 속에 버려진 채 사라지길 바라지 않을 터였다.

“메타휴먼들 역시 지상으로 가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하네. 버림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하기만 한다면, 난 기꺼이 그들의 자리를 마련할 거야. 다른 이들이 손가락질한다 해도 말이네.”

“…약속하게.”

카심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치를 입증하기만 한다면 지상에 자리를 내주겠다는 그 말, 반드시 지키란 말이야.”

“물론이네. 나 역시… 아니, 지하 주민들 모두 똑같은 이유로 지상에 오르는 거라네.”

루키우스의 대답을 들은 카심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랫동안 쓰지 않은 방독면을 들어 올렸다.

“아마도 오늘은 꽤 긴 밤이 되겠군.”

카심이 동굴 밖으로 나서자, 쓰레기 더미 곳곳의 붉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방독면을 쓴 카심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다 함께 지상으로 갈 거다.”

작지만 단단한 노인의 목소리가 쓰레기장 곳곳에 울린다.

곧이어 온 사방에서 거대한 기계 팔들과 프로펠러 따위가 어지럽게 돌기 시작했다.

무수한 기계음 속에서 붉은 눈동자들이 어지럽게 빛나고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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