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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17화 (118/220)

117화 보니 앤 클라이드 (1)

알마티로부터 그리 떨어지지 않은 숲의 공터.

클라이드는 이끌고 온 부하들과 함께 가만히 비공정 다빈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 세계로 오기 전, 본 적이 있는 물건이다.

알렉세이 딘은 기괴하기 짝이 없는 기계들을 곧잘 만들어 냈고, 그 경이로운 능력으로 혁명군을 무장시켰다.

하지만 그처럼 엄청난 능력을 지닌 딘조차도 동생을 살려 내지는 못했다. 아니, 살려 내지 않았다.

“5년 전쯤이던가? 49구역에서 알렉세이 딘이라는 남자가 작성한 논문들이 발견됐죠. 우리 쪽 과학자들은 그것들을 분석해 놀라운 기술들을 알아냈어요.”

알렉세이 딘은 처음부터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논문들 속에는 당신의 동생을 소생시킬 수 있는 기술들도 포함되어 있더군요.”

그러고도 클라이드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크가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클라이드 역시 음흉한 도련님의 말을 순진하게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알렉세이 딘에게 그만한 기술력과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딘이 보여 준 능력은 터무니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래, 넌 처음부터 할 수 있던 거야.”

보니의 소생이 클라이드에게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 잘 알면서도 딘은 외면했다. 그 와중에 뻔뻔하게도 동료를 자칭했으며, 자신 앞에서 웃어 보였다.

다빈치 역시 그런 딘의 작품이다.

다빈치를 바라보던 클라이드가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휘이이이이…….

곧이어 그의 양손 위로 자그마한 회오리바람이 형성되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부하들이 동요하며 주춤거렸다.

“크, 클라이드 님?”

그가 펼친 기술의 범위에 속할 경우, 아군이라 해도 위험하다. 그러나 클라이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침묵하며 디빈치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제야 클라이드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부하들은 황급히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피, 피해!”

잠깐 사이에 클라이드의 양쪽에 거대한 토네이도 두 개가 형성된다.

토네이도들은 뱀이 똬리를 뜬 듯 어지러이 맴돌며 다빈치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악!!”

거대한 바람에 휩쓸린 부하 몇이 종잇장처럼 휩쓸려 토네이도 안으로 사라져 간다.

주변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날아들었고, 거대한 바위 역시도 부스러져 토네이도 안으로 휩쓸렸다.

땅이 뒤집히며 흙먼지가 온 시야를 가렸고, 토네이도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몸집을 더욱 키워 나갔다.

두 개의 토네이도가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며 다가오는 가운데에도 정작 다빈치는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그저 미세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딘이 제작한 비공정이라 해도 토네이도의 직격에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토네이도들이 다빈치에 닿기 직전, 입구가 열렸다.

치이이이이―

다빈치 안에서 세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그리고 곧 클라이드의 눈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푸른 전류를 휘감은 채 가장 선두에 선 태일, 낯익은 메타휴먼 경찰, 그리고…….

“설마……!”

클라이드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틀림없다.

캡슐을 통해 잠든 모습을 너무도 오래 보아왔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호흡하면서 태연하게 걸어 나오고 있다.

클라이드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곧이어 온 숲을 파괴할 것처럼 휘몰아치던 토네이도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대로 사라져 간다. 토네이도에 휘말려 하늘로 치솟아 오른 비산물이 온 사방에 떨어져 내렸다.

그런 와중에도 클라이드의 시선은 오로지 단 한 명, 방금 다빈치에서 모습을 드러낸 소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성질 자체가 바뀌어 기괴하게 뒤섞여 버린 돌멩이와 형질 자체가 바뀌어 버린 고목들의 흔적.

그처럼 뮤테이션 능력을 확인하고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이 숲에 와 있다는 사실도, 깨어나 그 능력을 사용한다는 사실도…….

누군가 그녀의 힘을 훔쳤거나, 교묘하게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눈부신 금발과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투명한 피부는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가 바로 지금,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다.

“보니… 정말, 보니라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클라이드는 황급히 그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알마티의 작전도, 알렉세이 딘의 비공정도, 태일과의 약속도… 전부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 모든 일은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고, 이젠 그녀가 눈앞에 있다. 그녀를 찾았다.

“보니!!”

바람이 잦아드는 가운데, 태일은 다빈치 앞에 서 있는 클라이드를 바라보며 주머니를 뒤졌다.

당연하게도 담배는 없다.

무수히 떨어지는 비산물들로 인해 주변이 뿌옇게 보였다.

“칫.”

짧게 혀를 차며 자신의 앞에 선 보니, 아니, 녹스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클라이드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녹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클라이드를 만나 뭘 어쩌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난… 녹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니야.”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딘이 그 무엇보다 좋아하던 알마티의 쿠키를 좋아하지 않는 보니, 그럼에도 기괴한 사고로 스스로를 정의 내리는 녹스.

뮤테이션 능력을 사용하여 기묘한 오브젝트를 만들어 내는 보니, 다중우주와 여행자에 대한 지식을 갖고 냉정하게 현상을 파악하는 녹스.

태일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가 대체 누구인지 여전히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 클라이드를 만나고 싶어 했다.

녹스로서 단순한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보니로서 혈육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어쩔 생각이지?”

“…….”

녹스는 태일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다빈치 밖으로 걸어 나갔다. 토네이도에 휩쓸려 엉망이 된 공터 한가운데를 당당히 걸어 나간다.

프랑켄이 그런 녹스의 뒤를 따랐고, 태일 역시 언제든 전투가 가능하도록 푸른 전류를 휘감은 가운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사이, 보니의 모습을 확인한 클라이드가 정신없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보니!!”

공터를 울리는 클라이드의 목소리는 마치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보니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클라이드 쪽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마침내 서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보니와 클라이드는 멈춰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보니, 정말… 정말 네가 맞아?”

“응.”

클라이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보니는 답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알렉세이 딘이 남겨 놓은 지식과 소울로 육체에 부족한 부분을 채웠어.”

보니가 알아듣기 힘든 말을 늘어놓았지만, 클라이드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렇게 무사히 살아 있어서…….”

그러고는 다짜고짜 허리를 숙여 보니를 껴안았다.

“나는…….”

“이제는 절대 너를 잃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킬 거다.”

“…….”

무언가 설명하려던 보니가 복잡한 얼굴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지금껏 보니가, 아니, 녹스가 단 한 번도 지어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다. 그 누구도 그녀를 이토록 절실히, 따뜻하게 품어 준 적이 없었다.

물론 보니의 기억 속에 그런 장면이 존재했지만, 그건 녹스의 것이 아니었다.

따스함과 유대감.

어쩌면 녹스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포트리스를 외로이 지키던 시절 그 무엇보다 절실히 원한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좇아 인간이 되었고, 마침내… 손에 넣었다.

마침내 완전한 인간이, 보니가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보니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두 팔로 클라이드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고마워, 오빠.”

“나야말로… 나야말로 고맙다. 이렇게 살아 있어 줘서, 정말 너무나도 고마워.”

한편, 프랑켄은 보니와 클라이드가 포옹하는 장면을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프랑켄의 눈앞에 서 있는 소녀는 녹스다.

포트리스를 지켜 주던 시스템이고, 인간의 몸을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딘의 지식을 보관하고 있는 존재였다.

“녹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무언가가 프랑켄의 발목을 붙잡았다.

풀과 나뭇가지, 진흙이 뒤섞여 넝쿨과 같은 형태를 이룬 채 프랑켄의 발목을 감싸 자신으로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곧이어 그렇게 성장한 넝쿨은 잠깐 사이에 프랑켄의 몸을 타고 올라 허리까지 완전히 감싸 버렸다.

그 모습을 본 태일이 가만히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움켜쥔다. 그러나 프랑켄은 그런 태일의 손목을 붙잡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녹스에게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막아선 이유가, 경찰들을 찢어발긴 괴물 클라이드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그러나 곧이어 프랑켄의 귀에 녹스의, 아니, 보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떠나자.”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말투였다.

클라이드는 포옹을 풀고는 보니를 바라보며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떠나서 살자.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는 곳으로… 가자.”

그런 보니의 뒷모습을 보며 프랑켄이 손을 뻗는 순간, 반대쪽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됩니다.”

어느새 검은 후드를 걸친 사내들이 클라이드의 뒤쪽에 모여 서 있었다.

클라이드와 함께 온 사내들일 터였다.

“우리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임무…….”

클라이드는 보니로부터 손을 떼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보니, 잠시만 뒤로 물러나 있을래?”

“아니. 나도 오빠랑 같이 들을게.”

클라이드는 그런 보니를 부드럽게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

“이제 임무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떠난다.”

“클라이드 님!”

“너희들을 해칠 마음은 없다. 그러니 떠나. 가서 그대로 전해. 조용히 떠날 테니, 찾지 말라고.”

“이건 배신입니다. 아십니까? 아크 님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

클라이드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더니 한 팔을 들어 보니의 눈을 가렸다.

“오빠?”

“넌 볼 필요 없는 장면이야.”

그러고는 다른 한 팔을 들어 가볍게 내리그었다.

스각!

날카롭게 날아든 무형의 바람이 클라이드를 향해 저항한 검은 후드의 몸을 가르고 지나간다. 곧이어 바람이 통과한 흔적을 따라 검은 후드의 몸에 혈선이 그어졌고, 몸뚱어리가 반으로 갈라져 쪼개졌다.

순식간에 아무렇지 않게 동료가 죽어 나가자 검은 후드들은 제각기 무기를 고쳐 잡았다.

“굳이 그래야겠어? 하긴… 이대로 돌아가도 아크가 너희들을 살려 두지 않겠지.”

부하들에게 선택의 여지 따위 없다는 사실은 클라이드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크의 성격상 클라이드를 놓아 보낸 이들은 처참히 살해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자신에 대한 저항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클라이드가 별수 없이 나머지 부하들을 처리하려는 순간, 보니가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클라이드의 팔을 내렸다.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보니가 가만히 손을 움찔거린다.

곧이어 무기를 든 부하들의 몸에 기괴한 넝쿨들이 기어올라 감싸기 시작했다. 식물도, 그렇다고 동물도 아닌 넝쿨들은 온갖 물질들로 구성되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부하들의 몸을 휘감았다.

“이, 이런……!”

“뭐야, 이건!”

단단히 뿌리내린 넝쿨들은 잠깐 사이에 부하들의 온몸을 강한 악력으로 죄어들었다.

“끄, 끄아아아!!”

뿌득… 뿌드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뒤틀리고 핏물이 튄다.

“보니, 너……!”

클라이드는 그 광경을 보며 놀란 듯 보니를 바라보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애쓸 필요 없어.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으니까.”

보니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을 찢어발긴 클라이드의 모습을.

그리고 이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마침내 자신이 손에 넣은 감정을 지킬 것이다.

“아니, 이제부터는 내가 오빠를 지켜 줄게.”

온 힘을 다해.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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