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사라진 불꽃 (6)
“으, 으으…….”
머리가 지끈거리는 가운데 천천히 눈을 뜬다.
시야가 흐릿한 가운데, 어둠 속에서 침대 머리맡으로 검들이 보였다.
“여기는……?”
카츠미는 어두운 방, 침대 위에 있었다.
온몸이 저리는 와중에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잠들기 직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민호와 암살자 간의 전투가 벌어졌고, 자신은 발전소 쪽으로 달렸다.
그 직후 들려온 울음소리, 허리에 찬 사인검의 붉은빛…….
문 앞에서 사인검을 빼 들었고, 휘둘렀다.
칼집에 날을 숨긴 채 다른 검들과 함께 세워져 있는 사인검을 바라본다.
‘꿈…이었던 건가?’
아니. 꿈은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카츠미의 경험은 고작 꿈 따위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의 쾌락과 주체할 수 없는 충동,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닌 듯한 느낌, 피비린내와 붉게 물든 시야.
그 속에서 카츠미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힘에 취해 있었다.
환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마구 뒤엉켜 있고, 그 가운데 몇몇 목소리가 맴돌았다. 고통스러우며 슬프고, 달콤하되 위험한 목소리.
카츠미는 그렇게 흐릿한 기억을 더듬으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경험들 속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원인.
“사인검…….”
홀린 듯 사인검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당주도 나랑 같은 일을 겪은 모양이지?”
옆쪽 침대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이진.”
페이진 역시 이제 막 정신을 차린 듯 초췌한 얼굴로 자신의 손 위에 놓인 발터의 권총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페이진과 달리 더없이 차분해 보였다.
“장인 양반들이… 터무니없는 물건을 만들어 냈어.”
“…….”
그때, 문 쪽에서 민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가 받은 무기들은 ‘소울웨폰(Soulweapon)’이야.”
민호가 컵 두 개를 든 채 들어와 따뜻한 차가 담긴 컵을 각각 카츠미와 페이진에게 건넸다.
“몸에 이상은 없어?”
“내가 가진 사인검이 프랑켄의 것과 같은 종류라고?”
카츠미는 자신의 몸 상태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민호에게 되물었다.
프랑켄이 보유하고 있는 AL―13 역시 소울웨폰이었다. 카츠미는 소울웨폰을 그저 강한 위력의 무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인검은 그저 강한 힘을 끌어내는 무기가 아니었다.
“AL―13은 그저 보급형에 불과해.”
민호는 담담히 설명하며 품에서 단도 한 자루를 꺼내 보였다. 단도의 손잡이에는 알렉세이 딘의 이니셜, ‘A.D.’가 새겨져 있다.
민호가 가진 단도는 사라져 버린 알렉세이 딘의 무기였다.
“본래 소울웨폰은 ‘영혼이 담겨 있는’ 마도구야.”
“영혼이 담겨 있다…라.”
“…그렇군.”
카츠미와 페이진은 어렵지 않게 그 표현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그저 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수사적 표현 따위가 아니다.
무기는 분명 사용자에게 말을 걸어왔고, 정신을 잠식해 왔으며, 나름의 욕구를 가진 것처럼 힘을 탐했다. 그것은 이성을 가진 괴물이었다.
“무기에 담긴 영혼이 사용자의 힘을 끌어내 흡수하는 거야. 알렉세이 딘은 사용자가 ‘배터리’ 역할을 할 뿐이라더군.”
“미친…….”
페이진은 그 황당무계한 비유에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그건 실로 알렉세이 딘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딘이 고안한 소울웨폰은 그저 사용자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용자의 힘을 흡수해 무기 또한 스스로 완전해지고자 욕망한다.
“소울웨폰이 사용자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제대로 힘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용자는… 폭주하게 되지.”
소울웨폰은 사용자의 욕망이 가장 강해지는 시점에 소울 본질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낸다. 그 과정에서 소울웨폰은 사용자의 힘을 흡수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일시적으로 거대한 힘을 손에 넣는 대신, 몸과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릴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힘의 폭주를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사용 후 근육이 모조리 끊어지거나 정신이 파괴되어 폐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위험성 때문에 만들어진 게 AL―13 같은 보급형이야.”
소울웨폰의 불안정성과 위험성을 인지한 딘은 결국 힘의 폭주를 억제할 수 있는 보급형 소울웨폰을 제작했지만, 보급형은 본래의 소울웨폰만큼 강력한 힘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물론 그 정도 수준만으로도 충분히 보물로 꼽힐 정도의 수준이다.
그리고 민호와 카츠미, 페이진이 가진 소울웨폰은 알렉세이 딘이 추구하던 본질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발터와 막야는 그저 딘의 능력을 흠모하며 최강의 소울웨폰을 만드는 데 치중했을 뿐, 무기의 폭주와 부작용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니 행여라도 소울웨폰을 함부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 마. 강제로 힘을 폭주시키는 소울웨폰은 마약과 다르지 않아. 너희의 힘을 계속해서 끌어내려 할 거다.”
“…….”
카츠미와 페이진은 제각기 생각에 잠긴 듯 자신들의 무기를 바라보았다.
무기가 위험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기를 쥐었을 때 순간적으로 경험한 힘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소울웨폰을 소지한 이상, 그 힘에 대한 욕구를 참아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간 셋은 아무 말 없이 각자의 무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은 잠시 뒤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제인이 잔뜩 지친 기색으로 방에 들어왔다.
“두 사람, 깨어났네요? 다행이에요.”
제인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카츠미와 페이진을 향해 힘없이 웃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카츠미는 곧 자신이 잊고 있던 현실이 떠올랐다.
지상으로 올라간 루키우스와 태일, 꺼져 버린 야나르, 그리고… 암살자.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발전소는? 아니, 신태일은 함께 돌아왔나요? 센트럴 오더는 어떻게 됐죠?”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 내는 카츠미를 바라보던 제인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말을 고르던 제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곧 전쟁이 벌어질 거예요.”
* * *
한 시간 전, 야나르가 사라진 발전소 앞.
카츠미와 페이진은 민호를 비롯한 몇몇 자경대원들의 도움으로 가까운 숙소에 옮겨졌고, 제인과 레이가 루키우스의 옆을 지켰다.
발전소의 불이 꺼진 가운데, 루키우스의 지시에 따라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주민들은 말없이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해 진열했고, 자경대원들 역시 그런 주민들과 함께 묵묵히 주변을 정리했다.
쌍둥이 암살자의 손에 죽은 사망자는 총 스무 명이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신을 보며 루키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부릅뜨고 죽은 이들의 눈을 감겨 주었고, 꺾여 버린 팔과 목을 바로 하였으며, 찢어발겨져 상처가 드러난 자리에 자신의 외투를 올려놓았다.
그렇게 루키우스가 희생자들을 살피던 중 한 무리의 자경대원들이 나타났다.
“시장님!”
야곱과 그 일행들이 사내 셋을 붙잡아 끌고 오고 있었다. 루키우스 앞에 선 야곱은 고개를 숙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래, 자네도 무사했군. 다행이네.”
“시, 시장님!”
야곱의 자경대원들 손에 붙잡혀 있던 사내 하나가 코피를 줄줄 흘리며 고함을 질러 댔다.
“사, 살려 주십쇼! 저흰 그저 협박을 받고… 놈들이 죽인다 해서!”
“그뿐만이 아니겠지.”
야곱은 냉정하게 그 말을 끊었다.
“이 녀석들은 배신자입니다. 암살자들을 발전소로 안내했고, 근무를 서던 동료를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종을 울려 혼란을 불렀습니다.”
“시, 시장님… 저희는 이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발전소를 보고 싶으니 안내만 하면 된다고…….”
약간의 돈을 받고 정체불명의 사내들을 발전소로 안내했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러나 사내들은 순식간에 동료 자경대원뿐만 아니라 발전소의 인부들까지 모조리 살해했으며, 야나르를 없애 버렸다. 그런 뒤, 배신자 셋을 협박했다.
이미 사태에 휘말린 셋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망루 근처의 동료들을 살해한 뒤 종을 울렸고, 적의 지시대로 고함을 질렀다.
“익숙한 얼굴들이군.”
사정을 들은 루키우스는 배신자 셋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셋 모두 자경대원 생활을 하던 자들이고, 몇 차례는 얼굴을 본 적 있었다.
“시, 시장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발……!”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목숨만은!”
배신자들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사정했지만, 루키우스는 담담히 야곱에게 권총을 받아 들었다.
총과 탄알을 보기 힘든 지하 도시에서 총이 활용되는 경우는 단 한 가지 경우뿐이다.
그것은 지하 도시의 배신자에 대한 처형이었고, 루키우스가 직접 집행했다.
철컥!
“잘 가게.”
“시, 시장님!”
탕! 탕! 탕!
루키우스는 차가운 얼굴로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고, 아무렇지 않게 권총을 야곱에게 돌려주었다.
한때 거대 기업의 회장이었으나 이젠 지하 도시의 시장… 아니, 보스가 된 루키우스에게 살인은 그리 대단한 행위가 아니었다.
루키우스는 세 구의 시신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차갑게 명령했다.
“암살자 놈들의 시신과 함께 오물통에 던져 버려. 가족을 잃은 유족 중 원하는 자가 있다면, 이자들의 시신을 넘겨 마음껏 찢어발길 수 있도록 해.”
“…네.”
루키우스의 살벌한 지시에 제인은 물론, 레이조차도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지만, 야곱은 담담히 그 명령을 받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주민들이 몰려든 가운데 루키우스가 발전소 난간 위에 올라섰다.
“시몬, 토마, 사이먼, 마하람, 제타…….”
루키우스는 주민들이 온 거리를 매운 가운데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스무 명의 이름이 차례로 이어졌다.
가끔 몇몇 사람이 훌쩍였지만, 그 외에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지하 도시까지 밀려난 이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배를 곯다 굶어 죽거나, 질병에 걸려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기도 하며, 뒷골목에서 누군가에게 시비가 걸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 일을 숱하게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다.
그렇게 밀려나고 밀려나 가장 마지막으로 닿은 곳이 바로 지하 도시였다.
더는 쫓겨날 곳도, 도망칠 곳도 없고, 언제나 붉게 타오르는 야나르는 그런 지하 도시 주민들에게 있어 마지막 안식과도 같았다.
그러나 불은 꺼졌고, 그 불을 지키려던 이들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자신들을 지켜 주던 자경대원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어느덧 사망자들의 이름을 차례로 읊은 루키우스가 대중들이 몰려든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야나르는 꺼졌고, 다시 켜지지 않을 거다. 아니, 켤 수 없다.”
루키우스의 한마디에 주민들이 혼란에 빠져 웅성거린다.
센트럴에서 보낸 자들에 의해 발전소 내부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야나르를 다시 복구할 시간과 자금 따위 남아 있지 않았다.
미약한 손전등의 불빛이 곳곳에서 빛나며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지만, 에너지는 금세 바닥날 것이다.
바깥의 유독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방어막 역시 곧 작동을 멈출 것이다.
“야나르가 꺼진 이상, 지하 도시는 붕괴될 거다.”
센트럴 오더를 막기 위해, 의회 보수파에게 경고를 전하기 위해… 같은 명분 따위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당장 오늘을 살아가는 것조차 고민해야 할 지하 주민들에게 그런 복잡한 정치 셈법 따위, 대륙의 운명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살기 위해서…….”
루키우스는 몰려든 주민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말에 따라 어떤 결과가 닥칠지 그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
센트럴은 지하 도시의 모든 것을 빼앗아 선택지를 없애 버렸고, 지하 도시 주민들에게 남은 건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지상으로 간다.”
루키우스의 말에 주민들은 웅성거림을 멈추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