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02화 (103/220)

102화 지하 도시의 망령 (6)

알마티 외곽의 숲속.

‘또… 시작이야.’

잠시 진정되었던 두통이 다시금 심해졌다.

태일이 떠난 직후부터 녹스는 계속해서 영문 모를 두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떠한 단어나 상황에 따라 발작적으로 일어나는 두통.

뇌의 동기화 문제이거나 심장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애당초 누군가의 몸에 다른 존재의 정신을 융합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실험이고, 어떤 부작용이 발발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프랑켄은 그런 녹스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뇌파 통제 장비를 가져오기 위해 비공정에 간 참이었다.

“어른들은 어디에 있니? 네 오빠라든지, 아니면…….”

녹스는 한 손을 이마에 올린 채 찡그린 얼굴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올려다보았다.

하필 홀로 남겨져 있던 녹스를 숲속에 들어온 발터와 막야가 발견한 것이다.

“이 꼬맹이, 로보티안이잖아. 로보티안에게 가족이 어딨어?”

“여보!”

“왜?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옥신각신하는 노부부 앞에서 녹스는 두통 때문에 뭐라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어째서……!’

아마 두통이 심해진 것은 눈앞의 두 사람 때문인 듯싶었다.

오빠… 가족… 그들이 내뱉는 단어들이 녹스의 머리를 마구 찔러 온다.

마치 몸속에 숨어 있던 누군가의 영혼이 발작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널… 꼭… 지킬 거야.’

‘오빠만 믿어… 괜찮아…….’

녹스가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온다.

마치 전파가 약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불확실하고, 잡음이 섞여 있었다.

“으… 으으…….”

“얘야, 괜찮니?”

녹스의 신음 소리를 들은 막야가 무릎을 굽혀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녹스는 자신에게 손을 뻗는 막야의 손을 밀어냈다.

마치 겁에 질린 고양이가 털을 빳빳이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듯, 녹스 역시 뒤로 물러서며 막야와 발터를 노려보았다.

“건들지 마. 저리… 떨어져.”

불안정한 신체와 정신의 융합.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녹스 그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그 부작용이 위험천만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도망…쳐.”

“얘야, 정신 좀 차려 봐. 이를 어째?”

발터와 막야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모른 채 녹스의 상태만을 살피고 있었다.

츠츠츠츠츠…

사방의 흙먼지와 나뭇가지, 돌멩이 따위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녹스의 소울은 알렉세이 딘으로부터 기인했기에 딘이 가진 ‘제작자의 힘’을 품고 있다.

그리고 지금, 녹스의 능력은 당장에라도 폭주할 듯 불안정했다.

“저리… 꺼지란… 말이야.”

바로 그때, 녹스의 뒤쪽에서 프랑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들, 누구지?”

철컥.

노부부 앞에 모습을 드러낸 프랑켄은 소총를 고쳐 잡으며 둘을 노려보았다.

그 와중에 녹스의 시선은 프랑켄의 옆구리에 끼워진 물건에 닿았다.

‘글레이프니르(Gleipnir)’, 정신을 안정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조절 장비였다.

“프랑켄, 그걸 빨리…….”

그러나 프랑켄은 녹스의 말을 듣지 못한 채 노부부를 노려보았다.

“당신들, 녹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잠깐, 오해예요. 우리는 그저…….”

막야가 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녹스는 그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들어줄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두통이 점차 심해지며 주변의 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왔다.

“일전에 한 번 포트리스에 찾아온 적 있던 사람들이야.”

두 장인이 놀란 얼굴로 녹스를 바라보았다.

두 장인이 녹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녹스는 그저 포트리스를 관리하는 ‘시스템’에 불과했으니까.

어쨌든 녹스는 두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녹스는 프랑켄을 돌아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 둘은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야.”

지금 그 위험한 것은 노부부가 아니라 바로 녹스, 자신이다.

더는 소울의 폭주를 막을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녹스는 프랑켄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까 빨리, 글레이프니르를 내 머리에……!”

그러나 녹스는 말을 끝맺지 못했고, 그대로 제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녹스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하고, 안색은 아예 흙빛이 되어 있었다.

“녹스!!”

프랑켄의 목소리.

당황한 노부부의 얼굴.

그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머릿속에 온갖 기억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불타는 도시.

매캐한 연기.

아우성치는 사람들.

보니를 꼭 안아 주는 여인.

‘보니, 귀여운 공주님. 괜찮아. 괜찮으니까… 울지 마렴.’

고함을 내지르는 남성.

‘여보, 도망쳐! 절대 잡히면 안 돼!’

‘클라이드, 동생을 지켜야 한다. 알겠니? 절대 동생의 손을 놓치면 안 돼.’

‘여보!’

‘나도 같이 싸울 거예요.’

어지러운 비명 소리와 총소리.

그리고…….

‘보니, 손 꼭 잡아. 다 괜찮을 거야. 오빠만 믿어. 알겠지?’

동생을 위로하는 소년의 목소리. 하지만 정작 소년의 목소리 역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삐이… 삐이…….

‘바이탈 사인이 불안정하잖아! DX7을 투여해 봐.’

‘쯧, 이런 표본을 구하는 게 쉬운 줄 알아? 조심히 다뤄!’

흰 가운을 걸친 박사들은 아이를 사람으로 다루지 않았다.

온몸에 주삿바늘이 꽂혔다.

피가 모조리 뽑히고, 눈물까지 전부 쏟아 낸 나머지 몸뚱어리는 바싹 말라 버렸다.

저항할 힘을 잃어버린 가운데, 마음대로 죽을 수조차 없다.

그렇게 모든 희망을 놓아 버린 채 캡슐 속에서 옅은 숨을 유지했다.

수십, 수백 가지의 약물이 몸에 들어오는 가운데, 아무런 감정 없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보인다.

그건 실험실의 모르모트를 보는 눈동자였다.

‘실험은 성공이야.’

‘대단하군요.’

박사들의 웃음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삐이이이이이이!

사이렌의 날카로운 소리.

‘폭주했어! 놈을 막아!’

‘으아아아아아아!!’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

쨍그랑! 쾅!

플라스크를 비롯한 온갖 도구들이 부서지고, 벽면이 통째로 부서진다.

조금 전까지 만족스레 웃고 있던 박사들의 몸이 갈가리 찢겨 피로 물든다.

그리고 피 바람의 한가운데, 비쩍 마른 금발 소년이 다가온다.

‘내가 너를… 지킬 거야.’

소년의 얼굴이 똑바로 보인 그 순간, 기억이 끊어졌다.

* * *

“녹스, 괜찮아?”

천천히 눈을 뜬다.

녹스의 머리에는 글레이프니르가 씌워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 듯 나무 몇 그루가 뿌리째 뽑혀 있고, 일부 파편들은 산산조각이 나 있다.

녹스의 소울이 폭주하면서 모든 것이 제멋대로 휘날린 모양이었다.

노부부는 잔뜩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지만,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내가 사고를 친 모양이네.”

“그래.”

결과적으로 태일은 옳았다.

이런 사태가 도시 한가운데에서 벌어졌다면, 최소 몇 명 정도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들어오던 감정들이 잦아들고 냉정이 찾아왔다.

폭주하던 소울이 안정되면서 생각이 정리되었다.

프랑켄이 한숨을 내쉰 뒤,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겠어.”

한바탕의 폭주로 난리통이 벌어졌으니, 곧 알마티에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이들이 몰려올 터였다.

녹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발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네 정체가 뭐냐? 대체 어떻게 박사님의 능력을……?!”

“내가 누구냐고?”

파편화되어 떠오르는 기억들은 틀림없이 ‘보니’라는 여자아이의 것이었다.

하지만 쏟아져 들어온 기억 속에서 느껴진 슬픔과 분노, 그리고 공포… 그런 감정들은 분명 녹스, 자신의 것이었다.

결코 만들어지거나 조작된 감정이 아니다.

보니가 가진 기억은 곧 자신의 기억이고, 보니가 느낀 감정은 곧 자신의 감정이었다.

‘오빠’라는 명칭에 반응하는 자신은 녹스이면서… 보니다.

* * *

지하 도시의 대로.

클라이드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태일을 향해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네 동생 보니가 이 도시 근방에 있다고, 클라이드.”

클라이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클라이드는 보니를 살리겠다는 실낱같은 희망 하나만으로 기꺼이 배신자가 되었다.

낯선 세계에서 깨어난 직후, 보니를 찾기 위해 기꺼이 악마가 되었다.

“거짓말하지 마. 보니가 왜 이곳에……!”

그러나 클라이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터질 듯 쏟아져 나오던 바람의 소울이 거짓말처럼 잦아들면서 주변의 바람 소리가 멎었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 혹시라도 보니가 이 도시에 있다면, 결코 힘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일이었다.

쏴아아아…….

클라이드가 일으킨 토네이도의 기세가 줄어들면서 한데 휩쓸려 분쇄된 온갖 잔해들이 비처럼 사방에 뿌려졌다.

그런 가운데 함께 가려져 있던 시야가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디지?”

클라이드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태일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 몇 채가 무너지고, 대로 한가운데가 휩쓸려 깊게 파였지만, 다행히 토네이도에 휘말린 사람은 없었다.

주변의 상황을 확인한 태일이 번개의 소울을 완전히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흥분한 클라이드가 곧장 태일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어디냐고, 이 새끼야! 말해!”

클라이드에게는 태일의 행동을 참고 기다려 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자신이 속은 것인지 알아야 했다.

“보니를 돌려 드리죠. 물론 소생시켜서.”

분명 약속을 받았다. 이번 일을 마무리 짓는다면, 클라이드는 보니를 돌려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 보니가 알마티 근처에 있을 리 없었다.

“네게 보니를 만날 자격이 있나?”

태일의 목소리가 클라이드의 심장에 박혔다.

“뭐…라고?!”

“네가 사용한 소울 중 보니의 소울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어?”

“개소리 지껄이지 마.”

클라이드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악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타인의 소울을 모조리 빼앗아야 한다면 빼앗는다. 도시를 부숴야 한다면 부순다.

보니를 되찾을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보니는 지금 그 누구보다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어.”

“보호? 누가? 센트럴이?”

태일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클라이드를 바라보았다.

“보니는 버려진 병동의 창고에서 발견되었어. 그렇게 발견된 보니의 캡슐은 포트리스로 옮겨졌고, 며칠 전까지 그곳에 있었다.”

“거짓말이야.”

“진심으로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냐?”

태일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클라이드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클라이드는 신태일이라는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태일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신념을 지켜 냈고, 언제나 정면 돌파를 택했다.

자신이 속을지언정 남을 속이지 않으며, 자신이 배신당할지언정 남을 배신하는 일은 없다.

당장 클라이드 자신조차 그런 태일의 의리와 성품 때문에 그를 따랐고, 같은 이유로 그를 배신했다.

“증명해 봐.”

“앞으로 정확히 24시간 뒤, 알마티의 정문 앞으로 와. 그럼 네 동생을 만나게 해 주지.”

클라이드는 흔들림 없는 태일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클라이드는 그런 태일을 진심으로 존경했고, 동경했다.

태일처럼 되고 싶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 내고, 적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는 태일의 모습을 질투했다.

그러나 이젠 전부 옛 기억일 뿐이다.

혁명은 실패했고, 모든 것은 무너졌다. 자신이 직접 무너뜨렸다.

이제 ‘클라이드’라는 껍데기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은 ‘보니’였다.

가만히 태일을 바라보던 클라이드가 내뱉듯 말했다.

“약속은 꼭 지켜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알마티는 피바다가 되어 버릴 거다.”

클라이드는 그 말 한마디만을 남긴 채 그대로 태일을 지나쳐 갔다.

“어딜!”

철컥!

태일의 일행처럼 보이는 세 사람이 클라이드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그냥 보내 줘.”

태일의 말에 셋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무기를 거두었다.

어차피 세 사람의 허접한 실력으로는 클라이드에게 조금의 상처도 낼 수 없다.

그러나 클라이드는 셋의 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부러움… 아니, 어쩌면 질투다.

어쩌면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태일의 옆을 지킬 수도 있었다.

“대장은 여전히 인기가 좋네.”

클라이드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거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잠시 뒤, 클라이드는 한 줄기 바람과 함께 지하 도시에서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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