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01화 (102/220)

101화 지하 도시의 망령 (5)

갑작스러운 총성에 방금까지 소란스럽던 지하 도시 길가가 순간 고요해졌다.

자경단 대장의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방금 뭐야? 발사…된 거야?”

지상에서 총기류는 싸구려 구식 무기로 취급되어 사라졌고, 지하 도시에서는 구식 총기조차도 비싼 물건이기에 모습을 감추었다.

가끔 지상에서 버려진 총기를 멋으로 들고 다니는 머저리가 있지만, 충분한 총알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지하 도시에서 총이 발사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아니, 지하 도시의 젊은이들은 총소리 자체를 처음 듣는 경우가 많았다.

“방금 그 굉음, 총소리 맞지?”

“뭐야, 대체? 어떻게 저 고철 덩어리가 총기를 갖고 있는 거지?”

주민들의 시선이 머스킷을 쥔 클라이드와 그를 막아선 태일에게 집중되었다.

클라이드가 머스킷을 든 순간, 태일이 달려들어 붙잡아 방향을 틀었고, 덕분에 총구는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일도 발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빠르네, 대장.”

클라이드가 짐짓 놀란 시늉을 했지만, 그 입꼬리는 비죽 올라가 있었다.

총성이 울렸음에도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태일은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클라이드 너, 전부 죽일 셈이야?”

“필요하다면.”

스톰벨트(Stormbelt).

총알 없는 머스킷의 총성은 거대한 토네이도를 부른다.

곧이어 클라이드와 태일을 중심으로 미세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깨달은 태일이 목소리를 높였다.

“민호, 카츠미, 페이진!”

시선을 클라이드의 붉은 눈동자에 맞춘 채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을 대피시켜. 지금 당장!”

곧이어 태일의 발밑에서부터 푸른 스파크가 피어나며 사방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파츠츠츠츠츠!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온다.

“뭐야, 이건?”

“바람? 어디서 부는 거지?”

총성 소리에 놀라 굳어 있던 자경단원들과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다.

철저하게 지상과 격리되어 모든 것이 고인 채 흐르지 않는 지하 도시.

공기마저 고여 있는 지하 도시에서는 바람 따위 존재할 수 없다.

파치치치치…….

그 와중에 거리 한가운데 서 있던 태일과 클라이드를 중심으로 거대한 전류가 흘러나와 원형 필드를 이룬다.

침침한 먼지 속에서 푸른 스파크가 선명히 빛나고, 그렇게 펼쳐진 전류의 필드 안쪽에서 돌개바람이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저게 대체 뭐야?!”

휘이이이이이!

고작 몇 초 사이에 몸집을 키워 낸 토네이도가 지하 도시의 천장에 닿는다.

주민들이 내던진 쓰레기들이 사방에서 떠올라 토네이도에 집어삼켜지는 가운데, 필드를 형성한 스파크가 토네이도를 포위하듯 어지러이 둘러쌌다.

마치 똬리를 튼 뱀처럼 스파크와 토네이도가 어지러이 뒤엉킨 형상에 주민들은 완전히 넋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놀랍게도 토네이도 바로 앞에 있건만 주민들에게 느껴지는 바람은 선선하게만 느껴졌고, 푸른 스파크로 번쩍이는 토네이도의 모습은 경이롭게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태일과 클라이드의 모습은 먼지와 바람, 스파크에 가려져 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세 사람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장관’의 위험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너희들, 아까 들었어?”

카츠미가 민호와 페이진을 향해 묻는다.

방금 태일은 셋에게 주민의 대피를 지시했다.

“들었어. 그 자식, 감히 우리한테 명령이나 내리고 말이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건 아무리 봐도 위험하다.”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누구 하나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전류의 장막 안에 갇힌 토네이도는 필드 외부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당장은 그 위험성을 체감할 수 없었다.

용처럼 번개를 휘감은 채 솟아오르는 토네이도의 모습은 화려한 빛을 내뿜으며 도리어 주민을 끌어모을 뿐이었다.

“예쁘다!”

어린 남매가 탄성을 내지르며 토네이도 앞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스파크에 휩싸인 토네이도는 점차 그 규모를 키워 가고, 필드 역시 점차 넓어지고 있었다.

필드 안에서는 돌도, 쓰레기도 모조리 갈려 나가고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페이진이 자경단 대장을 가리키며 민호를 바라보았다.

“젠장, 첫째! 가서 저 녀석 뺨이라도 한 대 날려!”

당장 움직여야 할 자경단 대장은 입을 헤벌린 채 멍하니 토네이도를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이름은 첫째가 아니야, 꼴통!”

민호는 그렇게 쏘아붙인 뒤 자경단 대장에게 달려갔고, 페이진은 서둘러 품속의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바로 그때, 카츠미가 입술을 깨문 채 토네이도 근처 폐건물 쪽으로 내달렸다.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 페이진이 고함을 내질렀다.

“다, 당주!”

카츠미는 전류 필드 바로 앞에 있는 어린 남매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남매는 필드가 넓어져 자신들의 발밑까지 닿은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폐건물의 처마 밑에서 토네이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토네이도를 붙잡아 두고 있던 전류의 필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남매가 서 있던 폐건물이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

콰직! 콰쾅!!

곧이어 영역에 들어간 폐건물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더니, 먼지가 되어 토네이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매와 카츠미의 모습 또한 먼지에 뒤덮여 버렸다.

그 모습을 본 페이진이 충혈된 눈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카츠미!!”

그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든 주민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으아아아아아아앙!!”

그때, 무너져 버린 폐건물 잔해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남매를 품에 안은 카츠미가 기침을 토해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쿨럭쿨럭… 괜찮아, 얘들아. 괜찮아. 간발의… 차였어.”

만약 아주 조금만 늦었다면 토네이도에 휩쓸려 먼지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페이진은 이 와중에도 남매를 걱정하는 카츠미에게 달려가 고함을 내질렀다.

“미쳤어?! 그런 위험한 짓을! 젠장,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

50구역 마피아들의 당주, 카츠미가 방금 눈 깜짝할 사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광경을 코앞에서 목격한 페이진은 반쯤 정신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카츠미가 울고 있는 남매를 달래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잊지 않았어. 내가 네 당주라는 걸 말이야, 페이진.”

“빌어먹을, 알면 좀……!”

콰쾅!!

토네이도에 휘말린 다른 건물 한 채가 또다시 무너져 내린다. 곧이어 마치 도미노처럼 근방의 건물들이 휩쓸려 부서지기 시작했다.

페이진은 할 말을 삼킨 채 주변을 살폈다.

토네이도에 휘말린 건물들이 연달아 박살 나는 모습을 본 주민들은 그제야 위험성을 깨닫고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심지어 상황을 통제해야 할 자경단 대장마저 상황에 압도된 나머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이, 이레귤러?!”

민호가 그런 자경단 대장의 어깨를 붙잡았다.

“뭘 가만히 보고 있는 거요? 당장 사람들을 대피시켜요! 위험하단 말입니다!”

“당신들… 뭐요? 대체 왜 이곳에 온…….”

“칫, 답답하긴! 지금 그게 중요해?”

페이진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채 입만 뻐끔거리는 대장을 향해 한심하다는 듯 쏘아붙인 뒤, 리볼버를 들어 올려 허공을 겨누었다.

탕!!

토네이도와 번개가 만들어 낸 소음 속에서도 페이진의 사격음은 주민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여긴 위험하다! 당장 토네이도로부터 멀리 도망쳐! 거리로 숨어들든, 집으로 들어가든 여기서 벗어나란 말이야!”

“자경단원들은 대피를 돕도록 해요! 아이들과 노인들부터!”

카츠미는 넋이 나가 버린 대장을 대신하여 자경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토네이도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단원들은 카츠미의 말대로 아이들과 노인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곧이어 토네이도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이들과 도망치려는 이들이 뒤엉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카츠미를 비롯한 세 사람은 소란 속에서도 침착하게 길을 확보해 주민들을 대피시켰고, 그사이 정신을 차린 자경대 대장이 탈출을 지휘했다.

“천천히 가도 괜찮으니까 밀지 마! 거기 당신, 차례를 지켜!”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구경거리 아니야!”

“가서 사람들에게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전해! 어린애들부터 챙겨!”

얼마간 소란이 이어졌지만, 도로가 파괴되고 건물 두어 채가 더 박살 나자 거리는 금세 비어 버렸다.

하지만 주민들이 모두 흩어진 뒤에도 민호와 카츠미, 페이진은 자리를 지키고 서서 토네이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전히 태일과 클라이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게 정말 인간의 힘이라고?”

“하, 난 이런 녀석들과 싸우려고 했던 거군.”

민호와 카츠미, 페이진은 눈앞의 초자연적 광경에 압도된 채 각자의 무기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압도적인 능력자 사이의 전투.

그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아늑히 초월해 있었고, 그저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 이외에 세 사람의 역할은 없었다.

* * *

“꼴사납게 됐어, 대장.”

“…….”

토네이도는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만, 정작 그 중심부는 한없이 고요하다.

태풍의 눈에서 태일과 클라이드는 서로를 노려본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바깥에서는 클라이드가 만들어 낸 토네이도는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하고, 태일은 필드를 형성해 토네이도의 폭주를 막아 내고 있었다.

“대장이… 왜 이렇게 약해진 걸까?”

클라이드는 그 엄청난 토네이도를 일으키고도 여유롭게 말을 이어 갔다.

“아니, 내가 강해진 거겠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온몸이 식은땀에 젖은 태일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클라이드의 힘이라면 태일 역시 잘 알고 있고, 그 약점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클라이드가 만들어 낸 토네이도는 강력하지만,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단 한 번의 능력으로 엄청난 범위를 초토화시킬 수 있지만, 그 엄청난 힘만큼이나 토네이도의 형성과 유지에 소모되는 소울의 양은 막대했다.

그러나 지금 클라이드가 사용하는 토네이도는 규모뿐만 아니라 지속 시간 역시 괴물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대장은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이쪽 세계는 말이지, 먹음직스러운 만찬과도 같아. 원하는 만큼 소울을 맘껏 조달할 수 있거든.”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야. 무한대의 소울.”

“클라이드, 너 설마……!”

“대장도 한 번 느껴 봐, 이 힘을 말이야.”

콰콰쾅!

곧이어 토네이도의 범위가 넓어지며 태일과 클라이드가 서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그사이, 토네이도의 강도는 몇 배나 강력해졌고, 태일이 만들어 놓은 필드의 막이 점차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크윽!”

푸른 스파크로 꿰어 낸 그물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바람의 소울에 반해, 태일의 소울은 이미 점차 바닥을 보여 가고 있었다.

그러나 클라이드가 말한 무한한 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건 네 힘이 아니잖아, 클라이드!”

태일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인류 역사의 시작을 알린 제1의 에너지 불, 역사 시대의 엄청난 발전을 이끈 제2의 에너지 석유, 그리고 역사 시대를 끝장내 버린 제3의 에너지 ‘소울’.

제3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원료는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개개인에게 속한 에너지, 소울을 끝없이 사용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타인의 영혼을, 타인의 수명을 그만큼 빼앗아 오는 것.

“클라이드,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잊은 거냐? 대체 어디까지 떨어져 버린 거야!”

센트럴은 이후 전 대륙민들의 소울을 독점하려 했고, 인민을 한낱 배터리로 취급했다.

소울이 화폐로 거래되면서 대륙민들은 집과 식량을 얻는 대가로 혹은 세금으로 자신의 영혼을 헌납했다.

결국 대부분의 대륙민들은 가축처럼 사육되다가 지배자들에게 에너지를 빼앗긴 채 말라 죽어 가는 상황에 놓였다.

―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것이다.

그것은 당시 태일을 비롯한 혁명군의 구호였다.

혁명군은 빼앗긴 소울 에너지를 되찾기 위해 싸웠다.

당시 함께 싸우던 클라이드가 지금 엄청난 양의 소울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타인의 영혼을 빼앗은 대가였고, 타락의 증거였다.

“대장은 너무 순진해.”

클라이드가 천천히 태일을 향해 다가온다.

“힘에는 그에 맞는 책임이 따르는 거야.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리지 않은 이들에게 이건 너무 과분한 힘이란 말이야.”

“…….”

“대장, 사람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배자를 만나는 거야. 순순히 자신의 소울을 내놓은 자들에게 이 에너지를 누릴 자격이 있나?”

“네 동생은 어떻지?”

태일의 한마디에 시종일관 담담하던 클라이드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대답해 봐, 클라이드. 그 오랜 시간 캡슐 속에 있던 네 동생에게도… 자격이 없었나?”

클라이드가 혁명군에 몸담은 이유, 클라이드가 센트럴과 싸운 이유, 그리고 클라이드가 태일을 배신한 이유.

그건 바로 클라이드의 모든 것, 그의 동생인 ‘보니’ 때문이었다.

보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클라이드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신태일, 네가 감히 내 동생을 입에 담아?!”

클라이드는 실험체로 전락한 동생을 구해 내기 위해 센트럴의 실험실에 홀로 침입해 들어가는 미친 짓을 저지른 사내였다.

클라이드는 설사 전 대륙민을 적으로 돌릴지라도 자신의 여동생 한 명만큼은 지켜 낼 사내였다.

태일이 아는 클라이드라면, 그는 결코 동생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리고 태일은 이미 클라이드의 동생 보니를 만났다.

“네 동생이 지금 이 근처에 있어.”

순간, 클라이드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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