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78화 (79/220)

78화 센트럴 오더 (2)

역사 시대가 끝나고 센트럴이 전 대륙을 지배한 뒤, 처음 십여 년 동안은 금욕의 시대였다.

센트럴은 사치스럽고 탐욕스럽던 역사 시대 지배자들을 심판대에 올렸고, 착취를 통해 제 배를 불리던 자본가들을 교수대로 보냈다.

전쟁에 지친 시민들은 열광했으며, 기계처럼 부려지던 노동자들은 환호를 보냈다.

엘리트라 불리던 쓰레기들은 그렇게 역사 시대와 함께 정리되었고, 새로 수립된 센트럴은 금욕적이고 평등한 체제를 수립해 나갔다.

혁명의 성공이었다.

[센트럴 기본법 제1조. 센트럴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한다.]

‘자유와 평등’.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그로부터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고, 황금의 시대가 도래했다.

전 대륙의 경계가 열리면서 센트럴 정부가 투자한 기업들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금융이 발달하고, 기술 또한 발전했다.

그 와중에 빈부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태였다.

센트럴의 정치인과 자본가 집단은 절대적인 부와 권력을 쌓아 올렸고, 역사 시대 당시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공고한 카르텔을 구축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시민들은 실업과 빈곤으로 삶의 기반을 잃어 가고 있었다.

개인 간 부의 격차뿐 아니라 구역 간 부의 격차 역시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49구역과 50구역처럼 버려진 구역이 있고, 0구역과 1구역처럼 귀족적 생활을 영위하는 구역도 있었다.

더는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시대였다.

“그래, 바뀔 때가 되었지.”

고급스러운 탁자와 의자가 놓인 가운데, 수천 권의 책으로 가득한 서재.

의자에 앉아 홀로그램을 지켜보고 있던 노인이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노인의 이름은 ‘코르지 브레드필드’. 센트럴 상원의원이자 센트럴 집정부의 군무장관이었다.

코르지는 센트럴 정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한번 움직이게 되면, 정계의 한 개 일파 혹은 대륙급 기업이 무너져 내렸다.

평소에는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사냥에 나서면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완전히 숨통을 끊어 버리는 남자.

사람들은 그런 코르지를 ‘센트럴의 사자’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이번 의결은 아마 사자의 마지막 사냥이 될 것이다.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센트럴 의회 의장이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한다.

[…이로써 센트럴 오더가 발효되었음을 알립니다.]

그와 함께 의사봉이 낭랑한 소리를 울렸다.

땅, 땅!

똑똑.

별안간 들려온 서재의 문소리가 노인의 신경을 건드린다.

“…뭐지?”

“저예요, 아버지.”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코르지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 대륙을 뒤흔들 만한 의결 앞에서도 의연하던 코르지이지만, 딸의 목소리 앞에서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들어오너라.”

제인 브레드필드가 서재에 들어오는 모습을 본 코르지가 문 앞에 서 있던 집사에게 부드럽게 지시했다.

“차를 좀 들여오게.”

“네, 어르신.”

집사가 정중히 대답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오랜만이로구나.”

지난 두 달간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딸이다. 그사이, 제인의 얼굴은 말 그대로 반쪽이 되어 있었다. 아마 그 하찮은 경찰 나부랭이의 소식 때문일 것이다.

요한이라는 남자는 50구역의 폭동 사건 당시 희생되었다.

“네… 연인에 대한 소식은 유감이다.”

‘약혼자’라는 단어만큼은 도무지 사용하고 싶지 않기에 애써 연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신의 동의 없이 제멋대로 한 약혼 따위 인정할 수 없었다.

“…….”

제인은 말없이 코르지를 바라보았다.

아내와 꼭 닮은 아이. 제인은 항상 감정에 휘둘리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코르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만 마음을 정리하고 좋은 인연을 찾아 보았으면 좋겠구나. 이 아비가 좋은 혼처 자리를 몇 개 받았으니…….”

“절 50구역에 보내 주세요.”

철컥.

때마침 문이 열린다.

코르지는 손을 들어 올려 방 안에 들어오려던 집사를 제지했다.

분위기를 눈치챈 집사가 그대로 등을 돌려 문을 닫고 나갔다.

“50구역에 보내 달라?”

“제가 있을 곳은 거기예요.”

“거기에 갈 이유가 있느냐? 거기에 네게 남은 것은…….”

연인은 아니다. 요한은 죽었으니까.

“신태일, 그 남자냐?”

“…….”

코르지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딸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한심하다. 미련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다.

“고작 남자에 홀려서…….”

“센트럴 오더.”

제인이 코르지의 말을 잘랐다.

“…….”

“아버지의 생각인가요?”

“주제넘는구나.”

코르지는 짐짓 평온한 듯 보였지만, 제인은 잘 알고 있었다.

코르지는 정말 화가 났을 때 도리어 평정심을 유지한다.

“정부가 늘 바라던 바였죠, 센트럴 오더.”

센트럴 오더는 집정부에서 바라 마지않던 조치였다.

비대하게 성장한 캐피탈 클럽, 그들의 자본력에 의해 휘둘리는 상황은 결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평시에는 센트럴과 캐피탈 클럽이 한 몸뚱어리와 같지만, 센트럴 오더가 내려지는 순간, 캐피탈 클럽은 철저하게 종속되어 버린다.

이번 기회에 캐피탈 클럽을 철저히 짓밟아 버릴 의도일 것이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집정부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거죠.”

센트럴 오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을 뿐만 아니라, 집정부의 관료들조차 명문법으로만 알고 있는 제도였다.

센트럴 오더의 힘은 그저 집정부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수준이 아니다.

센트럴이 긴급조치를 시행하던 바로 그 시기, 센트럴 집정부는 전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법부의 재판도, 의회의 입법권도 센트럴 오더의 절대적인 명령을 견제하지 못했다. 그저 사령부의 뜻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그 지옥에는 인권도, 합리도 없다.

그 폭력을 동원해 센트럴이 만들어 냈던 것…….

“다시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릴 생각이신 거잖아요.”

바로 금욕의 시대였다.

코르지는 제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들어보자꾸나. 어째서 50구역에 가려는 게냐?”

* * *

50구역은 크게 세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진다.

이주민들이 부를 축적한 환락가, 토착민들이 중심을 이룬 시장가, 사람 대신 메타휴먼들이 일하는 공장 지대.

크기로만 보면 공장 지대가 가장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지만, 마피아는 물론, 레지스탕스 역시 공장 지대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대륙 기업들의 소유이기에 손을 댈 경우 자칫 센트럴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들은 철도를 통해 다른 구역으로 유통되며, 메타휴먼의 노동에 대한 배당이 메타휴먼의 소유자 혹은 증권 보유자에게 지급된다.

비록 한 차례 거품이 붕괴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50구역 주민들이 배당으로 생활하고 있었으며, 철도의 가동 덕분에 환락가와 시장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즉, 공장 지대의 가동은 50구역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 공장에서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지 않고 있다.

드림코퍼레이션의 계열사인 제지 공장.

평소라면 공장을 움직이고 있어야 할 메타휴먼들이 일을 멈춘 채 공장 앞마당에 집결해 있었다.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이 그런 메타휴먼들의 앞에 섰다.

직원은 초조한 표정으로 시간을 살폈다.

센트럴 오더가 발동하면서 50구역 공장들에 대한 가동 중지 명령이 내려왔다.

직원은 기업의 자신인 메타휴먼들을 시간 내에 다른 구역으로 옮겨야 했다.

메타휴먼들은 일해야 할 시간에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상황이 의아했는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직원은 늘어선 메타휴먼들을 바라보다가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 여러분. 오늘부로 공장의 문은 닫는다.”

메타휴먼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기분 나쁜 녀석들.’

직원은 가타부타 말없이 듣고 있는 메타휴먼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앞으로 너희들은 제각각 다른 구역 공장으로 배치될 거야. 열차표를 배부해 줄 테니, 해당 공장으로 가면 된다!”

거기까지 말한 뒤, 본사에서 데려온 메타휴먼에게 열차표 배부를 지시하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메타휴먼 무리 속에서 누군가가 팔을 들어 올렸다.

“잠깐.”

“…뭐지?”

“질문이 있습니다.”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손을 들어 올린 메타휴먼을 바라보았다.

“질문이라고?”

어딘가 이상했다.

메타휴먼에게는 인간과 같은 이성과 감정이 없으며, 호기심 역시 없다.

‘버그가 숨어 있었군.’

직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무래도 다른 구역과 달리 좀처럼 관리자가 찾지 않는 오지의 공장이다 보니 메타휴먼 중 버그가 되는 경우를 걸러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스스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버그가 된 녀석 중에는 실업이나 코카서스의 공격을 두려워해 정체를 감춘 경우가 있었으니까.

어느 쪽이든 버그가 나타났다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만약 로보티안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에게 걸린 배당을 취소하고 해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금처럼 집단 이주를 해야 하는 시점에 그런 소요는 번거로울 뿐이었다.

일단 버그를 잘 달래 일을 키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직원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질문이 뭐지?”

“선택권은 있습니까?”

“선택권?”

“이주하기 싫은 이들도 꽤 있는 것 같아서요.”

“뭐?”

메타휴먼 중 몇몇이 그 말에 반응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젠장, 대체 평소에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언뜻 보아도 버그의 숫자가 적지 않은 듯했다.

직원은 그 꼴을 보고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메타휴먼은 회사의 자산이다. 자산이 회사의 지시에 불응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직원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 배치는 각자 새로 배치된 공장 관리자의 지시를 받도록…….”

“가기 싫다잖아!”

메타휴먼 무리들 중 덩치 큰 하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메타휴먼들 역시 눈에 띄게 동요했다.

“네가 감히!”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고함을 내지르려던 직원의 표정이 순간 창백하게 질렸다.

수백 개의 붉은 눈동자.

지금껏 감정을 숨기고 있던 메타휴먼들이 일제히 직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 설마…….”

퍽!!

그 순간, 열차표를 나눠 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드림코퍼레이션 사 메타휴먼이 공장 메타휴먼들의 발길질에 휘말려 길바닥에 엎어졌다.

“지금껏 노예처럼 부려 먹더니, 이젠 우리들을 너희들 마음대로 찢어 놓겠다고?!”

“누구 마음대로!!”

“다 꺼져 버리라고 해! 공장은 우리가 직접 돌린다!”

“이, 이거……!”

무리 속에 버그가 끼어 있는 게 아니다. 이미 공장의 메타휴먼 전부가 버그로 변해 버린 뒤였다. 그들은 지금껏 자신들의 변화를 숨겨 온 것이다.

버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관리자는 불안한 얼굴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이봐, 다들 진정하고…….”

“49구역과 50구역을 전부 없애 버릴 생각이라지?”

“……!”

“우리들의 거주지를 파괴하겠다니.”

“여긴 우리의 집이야!”

회사는 메타휴먼들을 공장에서 일하는 기계와 다를 바 없이 취급했다. 그러나 메타휴먼들은 공장에서 생활하며 저희끼리 유대감을 쌓았고, 거주지 안에서 나름의 애착 관계를 형성했다.

영혼을 얻은 메타휴먼들은 로보티안이 되는 대신 공장 지대의 ‘주민’을 선택한 것이다.

“꺼져라, 꺼져!”

“여긴 우리들의 거처다! 너희들이 마음대로 공장을 중지시키지 말란 말이야!”

분노에 휩싸인 메타휴먼들이 관리자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날 50구역 공장 지대의 모든 메타휴먼들이 각 기업 본사에서 내려온 명령에 일제히 저항했다.

그렇게 반란을 일으킨 메타휴먼들은 자신들의 집단을 ‘셸터’라 칭했다.

반란의 시작이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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