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74화 (75/220)

74화 천재의 클론 (2)

수천 장에 이르는 서류 뭉치에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형태의 표로 가득했다.

가장 윗단에는 몇 개의 범주들이 적혀 있고, 아래에는 온갖 숫자들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다.

코드명, 생산성, 가격, 배당.

수만 혹은 수십만에 이르는 상품에 대한 정보가 나열된 가운데, 딘은 코드명을 살폈다.

AAAK―0072, AAD―009…….

캡슐에서 들려오던 소리를 생각한다.

[코드네임 AD―002.]

이어 수많은 캡슐 속에 들어 있던 이들을 떠올린다.

그 무수한 캡슐 속 존재마다 고유의 코드네임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난, 인간이 아닌 건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뿐이었다.

딘에게는 자신의 정체가 그리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다른 이들과 달리 어째서 자신은 이곳에 홀로 남겨졌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창고에는 보고서 외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는 없었다.

잠깐 생각하던 딘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천천히 창고의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잠겨 있다.

주변을 둘러보던 딘은 망가진 집기들을 바라보았다.

‘스프링, 도르래, 파이프… 철판…….’

어째서인지 알 수 있었다. 창고에 버려진 집기들을 그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

손을 뻗자 부품들이 딘을 향해 모여들었다.

딘은 그리 놀라는 기색 없이 부품들을 자신의 팔에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철그럭… 끼기기긱… 끼릭

녹슨 부품들이 딘의 오른팔에 달라붙었고, 유리 조각들이 그 사이사이를 메웠다.

“윽!”

재료의 날카로운 부분들이 딘의 살점을 찔렀다.

아직 힘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재료들의 상태 역시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러나 딘은 고통 속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팔을 설계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다.

도르래를 이용해 팔의 관절부를 강화하고, 어설프게나마 집게를 제작해 팔 끝에 이어 붙였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제법 그럴듯한 기계 팔이 완성되어 있었다.

끼긱! 끼이익!

섬세하게 주조되지 않은 재료들이 접합된 탓에 약간의 움직임으로도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렇게 완성된 임시 팔은 창고의 문을 부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키릭…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창고의 문이 부서지고, 동시에 임시로 만든 기계 팔 역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방을 나가기 직전, 고개를 돌려 천장 쪽을 바라보니, 카메라가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누군가가 렌즈 뒤편에서 그를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이 부서지고 딘이 나가려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경고음도, 다른 누군가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딘은 부서진 팔의 잔해를 버려 둔 채 창고를 빠져나와 텅 빈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뚜벅, 뚜벅, 뚜벅…….

복도에는 수십 개의 방이 줄지어 있었다. 방마다 안에서 미세한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딘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만 걸었다.

그렇게 계속 걸으며 생각했다.

‘여기는 뭘 하는 곳이지?’

경매장이나 판매장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깔끔했다. 손님은커녕 상품을 관리하고 지켜야 할 업자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창고?

굳이 이렇게 많은 방을 가질 이유가 없다. 무언가를 유통하기 위한 곳이라면 보다 개방적으로 설계하여 효율적으로 상품을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복도를 걷던 찰나.

철컥!

갑자기 복도 앞쪽의 방 하나가 열렸다.

딘은 저도 모르게 움찔한 뒤, 열린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털털털털…….

방 안에서 나온 것은 사람이 아니라 바퀴 달린 로봇이었다.

로봇은 웬 침대를 끌고 나오는 중이었다.

“…잠깐!”

딘의 목소리에 로봇이 멈춰 선다.

끼리릭.

딘은 급히 로봇이 끌고 나온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침대에는 웬 남자가 누워 있었다.

다리 한쪽이 없고, 가슴 부위는 개조된 듯 철제로 이루어져 있다. 남자는 눈을 부릅뜬 채 숨이 멎어 있었다. 남자의 눈동자는 붉은색이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누구이기에…….”

부서진 다리도, 가슴 부위도 인위적인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의도적으로 잡아 뜯고 둔기로 내려친 흔적이었다.

그나마 인간의 형태를 유지한 몸체를 보니, 곳곳의 핏줄이 터져 있고, 근육도 끊어져 있다.

딘이 남자의 상태를 살피는 와중에 로봇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드네임 KON―8891, 구동을 중지한 모델입니다.]

‘모델’이라는 단어에 순간 딘의 손이 움찔거린다.

인간이 아닌 존재, ‘상품’들에 대해 기록된 표를 떠올렸다.

“뭘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거지?”

[명령 FFK―19235. 13구역 투기장으로 폐기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 사이로 단어 하나만큼은 확실히 이해했다.

“폐기… 명령?”

딘의 눈동자가 떨렸다.

아직 의식을 찾은 지 오래 지나지 않고, 기억조차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이기에 이 남자는 사망 선고가 아닌 폐기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죽은 남자의 얼굴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게 과연 인간이 아닌 존재가, 생명이 아닌 존재가 가질 수 있는 표정인가?

침묵하는 딘을 뒤로한 채 로봇은 침대를 끌고 복도 밖으로 나갔다.

로봇이 나가 버린 뒤, 딘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 피 묻은 붕대와 몇 가지 약품들이 남아 있지만, 애당초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고통을 줄이는 진통제와 아예 고통을 잊게 만드는 마약 따위가 전부였다.

“설마 여긴…….”

천천히 밖으로 나가 복도 곳곳의 문들을 차례로 열어젖힌다.

끼이익.

딘이 머무르던 곳과 달리 문들은 잠겨 있지 않았다.

첫 번째 방, 몸 절반이 타 버린 채 누워있는 이.

두 번째 방, 머리 아래가 모조리 로봇으로 개조된 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이.

세 번째 방, 양팔이 잘리고 복부에 구멍이 뚫린 채 간신히 숨만 몰아쉬고 있는 이.

방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혹은 이미 끊어진 메타휴먼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복도를 걸으며 들은 미세한 소음은 그들이 죽어 가는 소리였다.

딘이 눈을 뜬 건물은 폐기를 기다리는 메타휴먼이 마지막으로 머무르는 장소, 인형 병동이었다.

* * *

딘이 인형 병동에서 눈을 뜬 지 약 2주가 지났다.

그사이, 몇 대의 트럭이 수십 기의 망가진 메타휴먼들을 수송해 왔지만, 따로 찾아오는 이는 없었다.

단지 메타휴먼의 시신을 운반하고 소각하는 로봇들만 바퀴를 굴려 이동해 다닐 뿐이었다.

지난 2주간 딘은 거의 잠들지 않았다.

건물 곳곳을 뒤져 쓸 만한 부품들을 모았고, 이미 숨이 끊어진 메타휴먼들의 잔해에서 쓸 만한 파츠를 분리해 냈다.

그렇게 모은 재료들로 죽기 직전의 메타휴먼들의 몸을 개조했고, 수십 명을 살려 냈다.

그러나 살려 낸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딘은 의사가 아닌 기술자이기에 망가진 신체를 치유해 줄 수 없었고, 다만 개조로 신체 기능을 일부 대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인형 병동 내에 구해 낼 수 있는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박…사님…….”

“…….”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애당초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음을.

그렇지만 죽어 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딘은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꼈다.

“고맙…습니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메타휴먼은 고마움을 표했다.

끝끝내 자신을 살려 내지 못한 딘에게 원망 한마디 하는 법이 없었다.

메타휴먼들은 인간을 동경했고, 인간을 증오했으며, 동시에 인간을 사랑했다.

“우리가… 애당초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박사님.”

인간이 되고 싶어 했고…….

“어째서 멋대로 우리를 만들고… 멋대로 우리를 버리는 걸까요? 왜?”

자신을 부순 인간을 원망했으며…….

“보고 싶어요… 친구를, 한번만 더.”

자신과 함께한 인간을 사랑했다.

“미안하다.”

딘은 또다시 살리지 못한 생명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나의 장기로… 내 파츠들로… 다른 동료들을…….”

그렇게 숨이 끊어진 이 앞에서 딘은 한동안 고개를 숙였다.

덜컥!

오래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방문이 열리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사님, FU―891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간호사가 네 개의 다리를 부산히 놀려 방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딘이 최초로 살려 낸 조수였다.

“지금 곧 혈관의 파이프들을 대체하고 관절 구동부를 교체해야…….”

딘에게 다가오던 간호사는 숨이 끊어진 이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죄송해요.”

바퀴 로봇이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괜찮아.”

딘은 다시금 몸을 일으키고는 시선을 돌렸다.

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 친구의 파츠 중 쓸 만한 부분을 분리하도록 해. 특히 인공 심장과 어깨 관절부는 따로 잘 보관해 둬.”

딘은 죽은 이의 시신마저 헤집어야 하는 상황에 모멸감과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 끔찍한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당장 죽어 가는 이들이 가득한 병동에서 그런 고민은 사치에 불과했다.

[알겠습니다.]

인형 병동의 로봇들은 순순히 딘의 지시에 따라 주었다.

로봇과 달리 감정을 느끼고 사고력을 가진 간호사는 딘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박사님…….”

“괜찮아. 아까 FU―891이라고 했나? 빨리 가자.”

딘은 애써 슬픔을 감춘 채 발걸음을 옮겼다.

2주 사이, 딘은 환자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대개 유언 비슷한 말을 남긴다. 그들이 남기는 이야기란 보통 스스로에 대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메타휴먼에게는 이성과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하지 못하며, 그저 명령에 복종할 뿐이다.

그러나 그중 일부는 스스로 존재를 자각했고, 이성과 감정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마치 인형이 영혼을 갖게 된 것과 같았다.

보통 그러한 변화의 계기는 공포나 슬픔 등 극단적 감정이었다.

“내 옆에서 일하던 KO―2212, 그 친구의 팔이 기계에 끼어 분쇄되었을 때, 처음 공포를 느꼈어요. 난… 난 그 기계 근처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충격적 경험을 계기로 인형은 영혼을 갖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감정을 표현했다.

관리자들은 이상 징후를 보이는 메타휴먼들을 두고 ‘불량품’이니 ‘버그’니 불러 댔다.

메타휴먼이 드러내는 감정이나 인간적인 면모를 그저 ‘흉내’라 여겼다.

관리자들은 메타휴먼의 이상 현상을 파악하고도 그 사실을 무시한 채 기존과 같이 노예로 부렸다.

소유주들에게 돌아갈 배당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메타휴먼은 쉴 틈 없이 일해야만 했다.

이상 징후를 보이는 메타휴먼이 하나둘 늘어갔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메타휴먼은 기계이자 노예에 불과했고, 영혼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3년 전, 50구역 LAPD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 경찰 연인의 죽음 앞에 절규하는 메타휴먼.

― 사랑하던 연인의 죽음으로 인해 감정에 눈을 뜬 인형.

― 철학자와 과학자의 대담 : 고통과 분노를 느끼는 메타휴먼, F―2020.

F―2020의 사연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학자들이 앞다투어 F―2020이 느끼는 감정의 숭고함을 찬양했다.

인권 단체가 나서서 F―2020의 시민권을 옹호했으며, 개혁파 의원들이 거기에 동조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의회는 이성을 가진 메타휴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법안, ‘로보티안법’을 제정했다.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과 같은 권리를 부여받은 존재.

신―시민, ‘로보티안(Robotian)’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F―2020은 유일한 로보티안이 아니었다.

불량품이라 치부되던 메타휴먼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전 구역에서 재판이 시작되고, 법정에서는 이들의 시민권을 모조리 인정해 주었다.

판사의 판결과 함께 수많은 메타휴먼들은 시민, ‘로보티안’이 되었다.

그 어떤 권력자나 관리자도 센트럴의 법 위에 있지 않기에 이 갑작스러운 사태를 막지 못했다.

시민권을 인정받은 로보티안들은 의회를 점거하며 법을 폐지하려는 의원들의 진입을 막았다.

“나는 로보티안이에요, 로보티안. 인간과 평등한…….”

그렇게 지옥이 시작되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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