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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70화 (71/220)

70화 붉은 눈의 기계병단 (7)

“고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엉망이 됐네.”

태일은 팔다리가 완전히 부서진 채 머리와 몸뚱어리만 남은 프랑켄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2주 전, 프랑켄은 캐피탈 클럽이 고용한 용병들에게 양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 뒤, 기껏 새로 마련한 팔다리는 다시금 처참히 부서진 상태였다.

“잔소리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퉁명스러운 프랑켄의 대꾸에 태일은 피식 웃었다.

“이제야 좀 사람 같네.”

태일의 말에 프랑켄의 표정이 살짝 흔들린다.

“우리는…….”

프랑켄이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로보티안들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프랑켄 역시 정당하게 시민권을 취득해 LAPD로 임용되었지만, 같은 경찰들조차도 프랑켄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마 프랑켄을 인간으로, 나아가 동료로 여겨 주던 유리와 요한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프랑켄에게 있어 동지는 같은 버그들뿐이었다.

프랑켄이 잠시 말을 멈춘 가운데, 태일이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일전에 단둘이 있을 때 한 얘기, 기억하나?”

프랑켄은 기차역에서 드림코퍼레이션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을 암살하려 했고, 태일이 그걸 막았다.

그리고 당시 프랑켄은 태일에게 경고했다.

“메타휴먼은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겁니다.”

자신 역시 결국은 메타휴먼이면서 메타휴먼의 위험성을 말했다.

“별로 관심 없는 줄 알았습니다만.”

“그땐 그랬지.”

태일에게 있어 이쪽 세계 누군가의 신념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한때 동료였던 알렉세이 딘이 메타휴먼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딘은 메타휴먼들로 구성된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메타휴먼에 대한 얘기,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

이젠 태일에게 있어 꽤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태일은 팔다리가 전부 부서진 상황에서 배짱 좋게 조건을 거는 프랑켄을 힐끗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태일의 발길질에 저만치 날아가 나뒹군 백련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이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 듯 백련의 얼굴에서는 충격과 분노,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넌… 뭐냐?”

평범한 이들은 감히 자신이 겹겹이 펼쳐 놓은 안개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대기를 채운 검은 안개는 평범한 인간의 몸에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백련의 안개는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며 근방을 전부 미로로 만들어 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태일은 아무렇지 않게 뚫고 들어왔다.

심지어 백련은 누군가가 공간 안에 들어올 때 응당 느껴져야 할 안개의 흔들림조차 포착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나, 이해할 수 없는 힘을 보여 주는 남자.

그런 태일을 바라보는 백련의 눈에 당혹감이 떠올라 있었다.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지? 아니, 애당초 넌…….”

그러나 태일은 백련의 말을 끊으며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이만 물러나. 그편이 좋을 거야.”

태일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이 그저 약간의 피로감만 있을 뿐이었다.

“감히……!”

태일의 말을 들은 백련이 이를 악물고는 허리를 폈다. 곧이어 백련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신에게 덤벼들고도 살기를 바라나?”

태일과 프랑켄의 주변 곳곳에서 백련의 형체가 드리워진다.

태일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들을 리가 없나…….”

한편, 그림자처럼 사방에 솟아난 백련의 형체들이 천천히 태일과 프랑켄 쪽으로 몰려들었다.

“깨달아라, 배교자여!”

사방에 둘러선 형체들이 번갈아 가며 입을 열었고, 백련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신에게 반하는 자, 뼈조차 남기지 못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 백련의 목소리가 울려 대는 가운데, 태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켄을 내려다보았다. 프랑켄 역시 백련은 안중에 없는 듯 그저 태일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태일은 그런 프랑켄을 향해 짧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잠시 누워 있어.”

그러고는 가만히 안개 속 백련의 형체들을 바라보았다.

안개는 곧 백련, 그 자체와도 같고, 분신들 역시 하나하나가 백련이 가진 소울의 일부다.

“네가 뿜어내는 그 안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나?”

백련의 형체들은 태일의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일제히 시꺼먼 안개를 내뿜었다.

역사 시대 말기, 검은 안개는 수많은 인간의 폐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순도 높은 안개는 독가스와 같고, 도시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끈끈한 오염 물질과 엉겨 붙은 물안개, 스모그.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거였어.”

스모그는 산업 발전을 위한 에너지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진 찌꺼기였다.

파지직!

태일의 몸에서 푸른 전류가 튀었다.

곧이어 태일의 모습이 사라지며 한 줄기의 번개가 내리쳤다. 시꺼먼 안개 속에서 형성된 번개는 리히텐베르크 무늬를 선명히 그리며 뻗어 나간다.

“이게 무슨!!”

경악에 찬 백련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그러자 그에 응답하듯 태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이라고 했나?”

이어 사방에 번개가 내리치고, 거대한 전류의 장막이 연출되었다.

“고작 그 정도를 가지고 말이지.”

번개의 뒤에는 응당 천둥이 따른다.

한때 인간은 번개를 ‘신’으로 섬겼다. 인류가 고안한 최고신의 무기였고, 징벌의 도구였다.

콰콰콰쾅!!

백련의 검은 형체들은 이미 사방에서 떨어진 낙뢰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버린 뒤고, 주변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안개 역시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로 뒤덮인 공간을 찢어발기듯 번개가 내리치는 광경. 그 속에서 프랑켄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꼼짝할 팔다리조차 없기에 도망도 칠 수 없다.

그저 괴물들의 전투를 구경하며 자신의 무력함을 체감할 뿐이었다.

― 백련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없앨 수 있도록 도울 것.

프랑켄이 태일에게 내건 조건이었다.

* * *

“젠장,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홀로그램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페이진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태일과 라비가 갑자기 사라지고 오래 지나지 않아 딘과 프랑켄까지 포트리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사이, 홀로그램을 통해 비치는 전황은 시시각각 변해 갔다.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등장하며 용병들이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곧이어 용병들이 반격을 시작하며 괴물들이 밀려났고, 프랑켄과 딘이 개입하면서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태일은 백련과 맞붙은 듯했지만, 검은 안개와 푸른 번개가 뒤섞인 가운데 전투의 양상은 알 수 없었다.

페이진은 딘의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영체를 바라보았다.

영체는 딘이 포트리스 밖으로 나가 버린 직후, 갑자기 나타났다.

눈, 코, 입 없이 인간의 형상을 한 영체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카츠미와 페이진은 깜짝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총을 쏠 뻔했다.

[난 ‘녹스’. 잘 부탁해.]

그러나 녹스는 포트리스 전체의 방송 장비를 통해 천진하게 자신을 소개한 뒤, 별다른 행동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봐, 너. 설명 좀 해 봐!”

페이진의 질문에 녹스가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설명?]

카츠미 역시 영체, 녹스를 바라보았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용병들을 이끄는 자는 누구야?”

초자연적인 힘으로 태일과 결전을 벌이고 있는 남자.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카츠미와 페이진은 기가 질린 상태였다.

[습격자의 이름은 백련. 나이 미상. 5년 전부터 용병단 ‘와이트(Wight)’의 우두머리이자 코카서스의 간부로 활동 중.]

“코카서스? 그 버그 사냥꾼들?!”

카츠미가 눈살을 찌푸린 채 가만히 중얼거렸다.

센트럴에서 고용한 용병들이라고 여겼지만, 만약 코카서스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럼 저 용병들, 로보티안을 사냥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건가?”

그제야 용병들과 맞붙은 괴물들의 정체를 깨달은 카츠미가 나지막이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개조된 로보티안들,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코카서스를 향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버그라 불려 오던 로보티안들의 복수였다.

한편, 페이진은 도리어 안도한 것 같았다.

“좋아, 일단 놈들이 우리를 쫓는 건 아니라는 뜻이잖아. 당주, 이건 우리가 개입할 이유가 없는 싸움이야.”

맞는 말이었다. 카츠미 일행에게는 전투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최대한 빠르게 49구역을 빠져나가 Z―rail 본사로 향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녹스의 목소리가 방 전체를 메웠다.

[의뢰 넘버 SSS―7822. 50구역을 빠져나온 이들을 모두 없앨 것. 총 5명.]

“지금 무슨……!”

[약 세 시간 전, 다크 웹에 올라온 의뢰야.]

“젠장, 우리 움직임이 다 파악이 되고 있었다는 건가?”

페이진이 욕설을 내뱉으며 원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러나 카츠미는 이상함을 눈치채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섯 명?”

50구역을 나선 이는 자신과 신태일, 페이진, 프랑켄까지 단 네 명뿐이었다.

바로 그때, 홀로그램 끝자락에서 검붉은 바이크 한 대가 나타났다.

두두두두두!

갑자기 나타난 바이크 한 대가 그대로 전장 한가운데로 내달린다.

바이크를 본 용병 몇이 고개를 기웃대며 다가갔다.

바이크는 49구역 펑크라이더들의 전유물이다. 그렇기에 의문의 바이크를 보고도 용병들은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어이, 넌 뭐냐?! 어디서 온 애송이야?”

용병 하나가 팔까지 들어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타앙!

사격음과 함께 바이크를 향해 팔을 들어 흔들던 용병의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저, 적이다!!”

엄청난 속도의 바이크에 탄 채로 이마를 명중시키는 라이더의 사격술에 기겁한 용병들이 허겁지겁 엄폐물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자신이 살해한 용병의 시신 앞에 바이크를 멈춰 세운 라이더는 거침없이 용병들을 향해 사격을 가하며 알렉세이 딘을 향해 다가갔다.

쿠구구구구…….

딘에게 다가가던 라이더가 갑자기 균형을 잃은 채 휘청이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숨어 있던 라비와 장 영감은 물론, 버그와 용병들까지도 전부 균형을 잃은 채 비틀거렸다.

“뭐, 뭐야 또?!”

이번의 진동은 지진 때문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쓰러져 버린 버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알렉세이 딘. 용병들에 의해 부서진 버그의 잔해물들이, 그 고철 조각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악!!”

“몸 낮춰! 죽는다!! 죽는다고!”

몇몇 용병들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비산물에 머리가 깨지고, 그나마 눈치 빠른 몇몇은 황급히 제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저, 저게 뭐야…….”

홀로그램 영상을 바라보고 있던 카츠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딘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는 사방에서 모여든 조각들로 만들어진 거인이 서 있다.

골렘(Golem).

할 말을 잃은 카츠미와 페이진의 귓가에 녹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미우르고스, 제작자의 능력이야.]

* * *

전장에 발을 들여 알렉세이를 향해 다가가던 민호는 거센 강풍과 사방에 날아드는 쇳조각들로 인해 제대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부서진 바위와 철근 따위가 딘을 향해 어지럽게 날아든다.

쿵! 쿠쿵! 쿵!

그렇게 모여든 오브젝트들은 일종의 블록처럼 딘의 팔과 다리에 달라붙었다.

딘의 몸은 어느새 단단한 갑주에 가려 보이지 않고, 엉성하게 형성된 몸체와 팔, 다리가 천천히 거대한 몸뚱어리를 일으켰다.

“빌어먹을…….”

민호는 그 거대한 몸체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틀림없이 알렉세이 딘의 힘이다.

하지만 딘은 결코 전장의 한복판에서 골렘을 만들어 직접 전투에 나설 사람이 아니었다.

“알렉세이, 당신 대체!”

골렘의 거대한 주먹이 용병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으, 으아아아아!!”

“쏴! 쏴라!!”

깜짝 놀란 용병들이 골렘을 향해 총을 난사하지만, 총알들로는 결코 골렘의 몸체를 뚫을 수 없었다.

쾅!! 콰콰쾅!

골렘의 팔이 거대하게 땅을 쓸어 내자 용병들의 몸뚱어리가 짓이겨지고, 잠깐 사이에 수십의 용병들은 다진 고기가 되어 버렸다.

버그들은 사기가 오른 듯 골렘을 엄호하며 용병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전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울었다.

이젠 일방적인 학살… 아니, 복수의 시간일 뿐이다.

“사, 살려 줘!”

“신이시여! 제발 저를!”

붉은 눈의 기계병단은 더 이상 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도망치는 용병들을 집게발로 붙잡아 말 그대로 찢어발겼다. 온 사방이 용병들의 피로 물들었다.

그 끔찍한 광경 속에서 민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면 내 손에 죽는다!!”

클론터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면서 실제로 도망치는 용병 몇의 머리를 날려 버렸지만, 겁에 질린 용병들의 탈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멀미가 날 정도의 흔들림 속에서도 클론터는 미친 듯이 내달려 골렘의 주변을 맴돌았다.

약점이 없을 리 없다. 괴물에게도 반드시 약점이 있다.

약한 부분, 놈의 심장부를 부수면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길 수 있다. 골렘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하지만 그렇게 부산하게 내달리던 클론터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었다.

검은 안개가 걷혀간다.

“아니야…….”

골렘의 등장에도 침착하던 클론터였다.

“그럴 리가 없어…….”

비틀거리며 골렘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신이시여…….”

클론터가 무의식중에 신을 찾았다.

신은 절대적이다.

신은 죽음마저도 지배한다.

신은 그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는다.

신은 분명 약속했다.

“하늘의 과업을 모두 마치는 날, 내 직접 너의 누이를 되살려 줄 것이다.”

천천히 걷히기 시작한 안개 속.

클론터는 똑똑히 보았다.

지금껏 그가 신이라 믿어 온 남자, 백련이 장발 남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클론터가 그런 백련의 모습을 보고 울부짖는 찰나, 골렘의 주먹이 클론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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