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68화 (69/220)

68화 붉은 눈의 기계병단 (5)

“으으으… 쿨럭쿨럭!”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숨이 트인 장 영감이 밭은기침을 쏟아 냈다.

“하, 할아범! 정신이 좀 들어?”

정신을 차린 장 영감이 힘겹게 눈을 떴다.

“라… 라비?”

“그래, 나야! 괜찮아?”

“라비… 라비! 무사했던 거냐?!”

장 영감은 눈을 크게 뜨며 라비의 양팔을 붙잡았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할아범은 대체 여길 뭐 하러 온 거야?!”

“포트리스가… 사막여우가 나타났다고 하기에…….”

장 영감은 뒷말을 삼켰다. 대신 라비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무사하니 됐다. 네가 무사하니 됐어.”

“아직은…….”

그 순간, 담담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라비의 옆에는 코트를 입은 장발 남자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장 영감이 몸이 다시금 거세게 휘청였다. 이번에는 장 영감뿐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안심하기는 좀 이른 거 같은데…….”

땅의 흔들림과 함께 사방에서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방금까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백련은 물론, 다른 용병들 역시 얼빠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곧이어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괴, 괴물이다!!”

거대한 몸집, 제각기 다른 숫자의 팔과 다리.

그 몸체는 하나같이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와중에 로봇 몸체에 붙어 있는 머리, 그건 틀림없이 인간의 얼굴이다.

얼굴에 박힌 눈동자들은 하나같이 시뻘겋게 빛나고 있었다.

호텔 지하 쓰레기장에 거미와 같은 형태로 개조되어 있던 메타휴먼, 그 녀석과 같다.

그러나 호텔 지하의 메타휴먼에게는 어설프게 조악한 다리를 붙여 놓은 것과 달리, 모습을 드러낸 괴물들의 몸뚱어리에는 각종 무기가 장착되어 있다.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병기였다.

그 정도의 개조를 해낼 수 있는 이는 오로지 알렉세이 딘, 녀석뿐이다.

“대체 무슨 짓을…….”

태일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딘은 사실상 군단이라고 부를 만한 병력을 포트리스 근처에 숨겨 두고 있었다. 딘은 살아 있는 존재들을… 병기로 만들었다.

백여 기의 기계 병력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용병들을 응시한다.

그 눈동자를 본 용병들 중 하나가 고함을 질러 댔다.

“버, 버그… 버그다!”

철컥!

곧이어 기계병단의 다리 구동부에 설치된 총열이 용병들을 향했다.

특히 자신을 ‘버그’라 부른 용병을 향해 수십 개의 총열이 겨눠졌다.

“총 들어, 이 등신들아!”

백련조차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클론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철컥!

그러나 기계병단은 용병들이 전열을 가다듬을 틈조차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치챈 태일은 입술을 깨문 채 라비와 장 영감을 잡아끌었다.

“몸 낮춰!”

“놔, 이거!”

라비가 짜증을 내며 태일의 손을 쳐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차별적 사격이 시작되었다.

타타탕!! 탕! 콰쾅!!

“으, 으와아아악!!”

화약 냄새와 함께 사방에 피가 튄다.

잠깐 사이에 수십에 이르는 용병들이 총탄에 몸이 꿰뚫려 나자빠졌다.

아수라장 속에서 그나마 눈치가 빠른 용병들은 몸을 숨기며 총을 장전했고, 몇 놈은 대응 사격까지 시도했지만, 탄환은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몸뚱어리를 꿰뚫지 못했다.

기계병단은 견고하게 버티고 서서 사방에 폭격에 가까운 사격을 쏟아 냈다.

그 폭격 속에서 태일은 꼿꼿이 선 채 주변을 살폈다.

눈먼 탄환 몇 발이 옆을 스쳐 갔지만, 태일이 펼쳐 놓은 역장에 이른 탄은 그대로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태일을 밀어 낸 라비는 어느새 장 영감을 질질 끌다시피 해 근처 바위 뒤로 숨은 상태였다. 태일이 그쪽을 바라보자, 라비가 입 모양과 함께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 신경 끄시지!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

50구역의 지우를 생각나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아니, 지우보다 몇 배는 더 되바라졌다.

태일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 훤히 노출된 곳에 옹기종기 모인 채 벌벌 떨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히, 히이이익! 사, 살려 줘!”

장 영감과 함께 엎드리고 있던 펑크라이더, 폴 일당이었다.

어느새 전열을 갖춘 용병들이 응전하기 시작했지만, 폴 일당은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거북이마냥 목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엄폐물 하나 없이 얼굴만 땅에 박고 있는 꼴은 라비와 같은 펑크라이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심했다. 가만히 두면 오래지 않아 전원 목숨을 잃을 것이다.

태일은 천천히 폴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이.”

“다, 당신은!”

펑크라이더답게 흉측한 분장을 하고 있지만, 한눈에 봐도 겁이 많은 녀석들이었다.

그나마 용병들은 호신용 소총이나 권총이라도 들고 있지만, 펑크라이더들이 쥐고 있는 무기라고는 방망이, 쇠파이프, 뭉툭한 식칼 따위에 불과했다.

그 정도 무기로는 이 전쟁터에서 누구 하나 쓰러뜨릴 수 없다.

“살고 싶으면 빨리 튀는 게 좋아. 그렇게 엎드려 있다가는 몰살당한다.”

“으, 으흐흑…….”

폴과 부하들은 눈물 콧물 흘려 대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거친 용병이나 잔혹한 펑크라이더에 어울리는 녀석들은 아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태일은 냉정하게 쏘아붙이며 저만치 쓰러져 있는 바이크를 가리켰다. 폴 일당이 타고 온 물건일 것이다.

“몸 최대한 낮추고 바이크 쪽으로 달려. 당장 여기를 떠나란 말이야.”

태일의 말에 벌벌 떨던 폴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바짝 낮춘 채 포복하듯 바이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 대장!”

“빨리… 빨리 바이크로… 가자!”

폴의 용감한 행동에 부하들 역시 다 같이 배를 땅에 대고 바짝 엎드려 땅을 기기 시작했다.

개구리처럼 양 팔다리를 땅에 밀착시킨 채 바짝 엎드린 모습에 태일은 혀를 찼다. 그 와중에 폴의 무리를 노린 총알 몇 발이 날아들었지만, 태일의 역장에 막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일이 역장을 유지해 주는 이상 폴 일당은 무사할 것이다.

태일은 얼마간 폴 일행을 엄호하며 그들이 바이크에 가까워지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한편, 그 짧은 틈에 전투의 양상은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 더러운 것들이!! 감히… 감히!!”

그때껏 조용하던 백련이 고함을 내지르며 공중으로 떠오른다. 백련의 왼팔에서 검은 안개가 솟아오르고, 곧이어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듯 근방의 기계병의 기체를 휘감았다.

콰직! 콰차창!!

검은 안개에 뒤덮인 기체는 처참히 으스러지며 부서졌다.

기계병단을 쓰러뜨리는 데 반드시 소울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타탕! 쿵!!

“약점은 얼굴 부위야! 머리를 노려, 머리!”

얼굴 부위에 총탄이 박히자 거대한 기체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숨이 멎은 기계병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힘없이 앞으로 쓰러진다.

클론터는 말뿐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며 메타휴먼의 머리를 정확히 저격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서너 기의 기체가 클론터의 손에 쓰러졌고, 용병들 역시 사기가 올라 기계병을 향해 사격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쾅! 콰쾅!! 끼리리리릭!

기계병단은 분노에 찬 듯 화력을 쏟아부었지만, 용병들의 재빠른 움직임에 농락당해 어느 순간부터는 사실상 탄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용병을 몰아붙이던 기계병단은 도리어 각개격파당하며 밀려나기 시작했고, 전세는 빠르게 기울었다.

‘패턴이 너무 단순해.’

기계병단은 급습과 포위, 거대한 몸체라는 장점을 가졌다. 그러나 여러 이점에도 불구하고 기계병 각각은 단조로운 공격 패턴을 유지했다.

반면, 전투의 프로인 용병들은 주변의 지형지물들을 능숙하게 이용했고, 하이에나처럼 집단적이고 변칙적으로 기계병단을 몰아붙였다.

“전부… 전부 없애 버려라! 신의 뜻에 반하는 악이다!”

백련이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기계병 둘을 더 쓰러뜨렸고, 그의 두드러지는 퍼포먼스로 인해 용병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신의 뜻대로!”

“괴물들을 죽여라!”

“악마들을 없애 버려!”

그 와중에도 태일은 날아드는 총탄을 막아 낼 뿐,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다.

사실상 병기가 되어 버린 메타휴먼, 가짜 신을 숭배하는 용병.

태일은 그들이 벌이는 전투에 관심이 없었다.

태일이 개입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그때, 태일의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태일.”

알렉세이 딘, 그가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러나 태일은 딘의 모습이 본체가 아님을 알았다. 그 모습은 그저 딘의 영체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를 도와줘.”

“우리?”

딘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녀석이었다.

그랬기에 혁명군의 전담 기술자로 있을 때조차 공동체 의식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그런 딘이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태일이 의아해하던 찰나, 딘의 영체 옆으로 프랑켄이 나타났다.

녹스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프랑켄의 얼굴은 분노로 잔뜩 일그러져 있고, 손에는 AL―13이 들려 있었다.

“멈춰, 이 개자식들아!!”

프랑켄이 앞으로 내달리며 용병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AL―13에서 수십 발의 산탄이 쏟아지고, 순식간에 용병 열댓 명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태일이 눈살을 찌푸리며 딘을 노려보았다.

“딘, 너 대체……!”

“네 말이 맞아. 난 네가 기억하는 알렉세이 딘이 아니야.”

“…….”

딘의 눈동자는 여전히 붉었다.

“난 가짜일지도 모르지.”

딘은 그 눈동자를 빛내며 태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도 우리는 살고 싶어.”

알렉세이의 손이 태일의 어깨에 닿는다. 그 감촉이 태일의 어깨에 생생하게 와닿았다.

영체에는… 실체가 없다.

전장 한가운데 나타난 알렉세이 딘은 그 자신, 즉 본체였다.

* * *

포트리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래언덕.

언덕의 정상에 검붉은 바이크 한 대가 멈춰 선다. 바이크의 시동 소리도 꽤 요란한 편이지만, 근방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바이크를 멈춰 세운 남자가 천천히 헬멧을 벗는다.

그는 50구역 레지스탕스의 대원, 민호였다.

“저건 대체…….”

민호는 생각지 못한 현장의 모습에 놀란 나머지 멍하니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몸체의 병기들과 용병들이 총탄을 쏟아부으며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곳곳에 시체가 즐비한 가운데, 정체불명의 병기들이 차례로 부서지고 있었다.

한동안 전장을 살피던 그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흔들렸다.

“저건…….”

공중에 만들어진 거대한 틈새, 그리고 전쟁터 한가운데 보이는 남자.

“알렉세이?!”

5년 전, 세연이 사라지면서 모습을 감춘 알렉세이 딘. 그가 다시 나타났다.

심지어 딘의 실종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던 포트리스 역시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민호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딘을 만나야 한다. 그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5년 전, 어째서 갑자기 사라진 것인지, 어째서 다시 나타난 것인지, 다른 녀석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그리고… 다시 나타나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황급히 바이크의 시동을 건 민호는 빠른 속도로 언덕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부자연스럽게 시꺼먼 안개가 공중에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파츠츠츠― 쾅!!

푸른빛의 번개가 검은 안개를 가르며 대기를 갈랐다.

민호 역시 본 적 있는 능력이었다.

신태일, 그가 전투에 나섰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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