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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52화 (53/220)

52화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3)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 대장은 민호에게 쉽사리 출동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함정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

대장은 민호를 말리지 않았지만, 등을 떠밀 수도 없었다.

정보를 손에 넣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첩보원들이 고물 컴퓨터로 드림코퍼레이션 동부 지부의 해킹에 성공한 것이다. 서버에는 50구역 방주에 대한 정보가 있고, 의원들의 일정 정보까지 입력되어 있었다.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

시기 또한 절묘했다. 의원들의 모임이 이뤄지는 바로 그 시점에 LAPD가 무너졌다는 첩보가 들어왔고, 마피아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지금 이 순간, 경찰력은 마비되었고, 드림코퍼레이션 이사들이 데려온 병력 역시 분산될 터였다.

이게 과연 다 우연일까?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대장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끼가 너무나도 달콤했다.

“지금껏 의원들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원들이 희생되었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

이미 정탐을 나간 대원들이 방주로 지명된 지역 근방에서 의원들의 것이라 추정되는 차량과 놈들의 경호 병력을 포착했다. 레지스탕스의 1급 표적, 50구역 의원들을 잡을 기회였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지워진 역사 가운데 선명하게 남아 계승된 기억, 그것은 다름 아닌 배신의 기억이었다.

방주에서 항쟁하던 저항군들은 다름 아닌 내부의 배신자에 의해 종말을 맞았다.

다섯 명의 배신자는 방주의 지도부를 살해했고, 방주의 위치를 센트럴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50구역의 대표자, 의회의원의 자리를 얻었다.

지금 의석을 차지하고 앉은 다섯은 바로 그 배신자들의 자손이었다.

놈들은 제각기 철도 사업, 사채 사업 따위에 손을 댔고, 마피아와도 암묵적으로 선이 닿아 있었다. 독점과 착취로 부를 축적하고, 악독하게 레지스탕스를 사냥했다.

놈들이야말로 50구역을 좀먹는 벌레들이었다.

결국 대장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함정이라고 느껴진다면 곧바로 철수해야 한다. 기회는 또 올 게야.”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대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민호는 함정이 있더라도 강행 돌파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의원들을 없애려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신태일을 포섭하는 건 어떻겠나?”

민호는 그와 함께 작전을 수행한 일이 있고, 팀원으로 참여한 도영은 태일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태일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이번 작전의 성공률은 분명 올라갈 터였다.

그러나 민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명목상으로는 그자도 마피아 보스이니, 이번 전투에 휘말렸을 겁니다. 그리고 아직은… 그자를 믿을 수 없습니다.”

결국 대장의 입에서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 * *

민호는 가만히 팀원들의 주변을 둘러싼 메타휴먼들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양복 차림이던 놈들은 어느새 나노 갑주와 기능성 화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메타휴먼들의 무장은 최소 B급 이레귤러 대응 수준으로 맞춰져 있다.

구식 소총 따위로는 놈들의 갑주조차 뚫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팀원들을 함정에 몰아넣은 놈은 항복 권유조차 하지 않았다. 붙잡아 레지스탕스의 정체를 알아내겠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첩자가 있던 건가.’

누가 조종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LAPD와 같은 공식 조직은 아닐 것이다.

놈들이 바라는 것은 방주 내 인원의 완전 몰살이고, 다만, 의회의원들의 살해에 레지스탕스의 손을 빌렸을 뿐이다.

레지스탕스는 완전히 그의 손에 놀아났다.

“…미안하다.”

민호가 팀원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뿐이었다.

사실 방주에 진입하는 시점부터 함정임을 알 수 있는 신호는 너무나도 많았다.

멈춰 있는 CCTV, 작동하지 않는 센서, 멈춰 선 패트롤, 의원들이 죽어 나가는 순간에조차 움직이지 않던 메타휴먼들.

알면서도 지나쳤다. 해킹에 성공한 팀원들이 방주의 내부 시스템도 마비시킨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특히 로비에 진입한 뒤에는 공포에 질린 의원들의 표정이, 원수들의 피가 합리적인 사고와 경계심을 마비시켰다.

“괜찮아요, 형. 형이 아니었으면 저 새끼들을 잡을 수 있었겠어요?”

도영이 미련이 없다는 듯 웃으며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게. 여한은 없지. 안 그래?”

“후후, 그렇고말고. 1급 표적을 한꺼번에 다섯이나 잡았으니, 오늘이야말로 축제지!”

도영 외의 나머지 두 명 팀원 역시 밝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총알이 놈들의 갑주를 뚫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발버둥은 칠 것이다. 그게 바로 레지스탕스니까.

키릭!

“온다!”

타타탕!!

레지스탕스 대원들의 총들이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당연하게도 총알들은 메타휴먼을 단 한 기도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메타휴먼들은 총을 발사하지 않았다.

“침입자 포착, 위험도 높음, 지원 필요…….”

갑자기 포위망을 구축한 메타휴먼 중 전면의 둘이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더니, 총구를 뒤쪽으로 돌렸다.

지원군? 그럴 리는 없다.

대장은 분명 추가 인원 파견은 없다고 말했다.

설사 추가 병력이 온다 해도 지금 메타휴먼들의 무장을 이겨 낼 수 있는 장비는 레지스탕스 내에 없었다.

“이게 무슨……?!”

민호가 뒤쪽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려는 찰나, 눈앞에서 푸른빛이 번쩍였다.

파츠츠츠츠!!

사방에 푸른 전류가 퍼져 나가며 메타휴먼들의 몸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단단하던 메타휴먼들의 갑주에 쩍쩍 금이 가고, 총열 끝이 휘었다.

곧이어 감전된 듯 삐걱거리던 메타휴먼들의 몸에 불꽃이 일었다.

그 와중에 민호는 코트를 갖춰 입은 장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 당신이 어떻게……?!”

신태일은 입에 담배를 문 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번에도 담배에 불은 없다.

그는 가면을 쓰고 있는 팀원들을 쭉 훑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직원이 일을 땡땡이치고 여기 있다기에 한 번 와 봤지. 그런데 이거야…….”

총을 늘어뜨린 팀원들 모두 흰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누가 우리 직원인지 알 수가 없군.”

민호의 옆에 서 있던 도영이 태일을 바라보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사, 사장님?”

변조된 목소리가 가면을 통해 흘러나온다.

“아, 거기 있었군.”

태일은 짧게 혀를 차더니, 도영의 앞으로 다가왔다.

딱!

“아야!”

그러고는 가면 위로 드러난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너 인마, 영업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땡땡이야? 네가 혼자는 힘들다고 징징대서 사람 한 명 더 뽑았잖아.”

“제, 제가 언제 징징댔어요?! 마피아 보스나 경찰들이 들락거리니까 사장님도 가게 좀 지키고 있으라고…….”

“시끄럽고, 땡땡이는 안 돼. 가게 나온 지 벌써 세 시간 정도 됐지? 하루 치는 월급에서 깔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 오늘 같은 날은 손님도 없었을 텐데 치사하게……!”

“손님이 없으니까 더더욱 아껴야지.”

민호를 비롯한 다른 팀원 둘은 도무지 상황과 어울리지 두 사람의 만담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 많은 병력을 구워 버린 태일의 능력과 지나치게 평범한 대화.

그 부조화에 팀원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그나마 정신을 차린 민호가 태일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뭐, 우연히.”

태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더니, 갑자기 시선을 구석진 곳의 천장 쪽으로 돌렸다.

“그보다… 거기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양반, 잠시 얘기 좀 할까?”

깜짝 놀란 팀원들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뒤, 태일이 주시하고 있던 빈 허공에서 빛줄기가 쏘아지며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곧 선글라스를 낀 청년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구현되었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고, 마치 연예인처럼 잘생긴 얼굴이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청년이 태일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역시나 눈치채셨군요. 감탄했습니다.”

“뭐냐, 넌?”

비딱한 태일의 말투에도 청년의 미소는 여전했다.

“이런,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드림코퍼레이션의 이사, ‘아크 텔로스’라고 합니다.”

아크 텔로스는 드림코퍼레이션의 후계자 후보이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경영진 남매 중 한 명이었다.

전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인 만큼 그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민호를 비롯한 팀원들은 적잖이 놀라 움찔거렸지만, 태일의 얼굴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취미가 꽤나 고약한 것 같은데… 대체 몇 사람이 당신 손에 놀아난 거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아크가 빙긋 웃으며 짐짓 모르쇠를 놓자, 태일은 담배를 땅에 던지며 짧게 혀를 찼다.

“LAPD, 마피아, 레지스탕스까지 전부 갖고 놀았지. 당신 눈에는 모두가 장기 말로 보이나?”

“후후, 그럴 리가요.”

아크는 태일의 말이 우스운지 쿡쿡거리다가 웃음 섞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장기 말로 쓰기에는 전부 가치가 너무 떨어지죠.”

“이 자식이!”

민호가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섰지만, 태일이 팔을 들어 올려 그런 민호를 제지했다.

어차피 지금 눈앞에 있는 아크는 스텔스 모드의 드론이 쏘아 비춘 홀로그램 영상일 뿐이다.

그런 놈을 향해 총을 휘갈겨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아크는 흥분한 민호를 보고 피식 웃더니, 가벼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도 예상과는 다른 결론이 나왔습니다. 원래는 좀처럼 없는 일인데… 최근에는 제 예상이 자꾸 빗나가더군요.”

“…….”

“그리고 그렇게 빗나간 예측의 뒤에는 어김없이 당신이 있었죠, 신태일 씨.”

“유감이군.”

태일이 아크를 쏘아보며 성의 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아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밝은 목소리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가 직접 개입한 만큼 목표는 달성했어요.”

태일이 말없이 사방에 쓰러져 있는 의원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아크가, 드림코퍼레이션이 만들고자 한 그림은 ‘의원들의 살해’였다.

센트럴의 허수아비이자 인간쓰레기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에게는 ‘상징성’이 있었다.

마피아 간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50구역, 마비된 LAPD, 레지스탕스에 의한 의원 암살 사건.

센트럴이 군을 투입할 명분으로 이 이상의 그림은 없었다.

“50구역을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모양이군.”

“과연 거기까지…….”

“아니지. 정확히는 센트럴을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이었던가?”

그 순간, 아크의 표정이 돌연 딱딱하게 굳어졌다.

“…….”

지금껏 사춘기 소년처럼 흥분해 떠들던 아크가 돌연 입을 닫고는 태일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곧이어 아크가 무겁게 내리깐 목소리로 짧게 물었다.

“당신, 뭐지?”

“알잖아?”

태일이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술집 주인.”

파지직!!

태일의 손끝에서 고압 전류 한 줄기가 쏘아져 스텔스 모드로 숨어 있던 드론을 관통했다.

드론의 추락과 함께 아크의 홀로그램 역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동안 민호를 비롯한 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일 역시 말없이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로비 내부를 둘러보았다.

의원들의 시신, 곳곳의 피탄 흔적, 메타휴먼의 잔해물 등으로 인해 로비는 엉망이었다.

‘방주라…….’

태일은 완전히 변해 버린 방주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50구역 방주, 다른 세계에서 이곳은 혁명군의 본부였다.

이쪽 세계에서도 배신은 일어났고, 방주는 놈들의 손에 떨어졌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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