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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41화 (42/220)

41화 환락의 밤, 배신의 낮 (5)

“끄으으으…….”

박 계장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동시에 온몸의 핏줄들이 당장에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솟아올랐다.

은퇴를 앞으로 수개월 앞둔 박 계장에게는 사실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그가 경감으로 승진해 계장 자리에 앉을 수 있던 것은 그저 아무도 원하지 않는 50구역 LAPD에서의 근무를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바라는 게 한 가지 있다면… 그건 은퇴 후에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50구역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원했다.

“나는… 아… 아아…….”

뿌득!

살점이 찢어지면서 팔과 어깨, 다리의 근육이 비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 와중에 귓가로 선배와 후배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뒤섞여 들려왔다.

“마피아의 끄나풀, 허수아비 경찰관, 50구역의 썩은 물, LAPD의 기생충…….”

50구역의 고아원에서 태어나 어렵게 경찰이 된 그는 다른 동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50구역의 근무가 길어지면서 수많은 오명을 얻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도박에 미쳐 모든 재산을 탕진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생, 마피아 조직원이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간 고아원 친구들에 비하면 박 계장의 삶은 그럭저럭 훌륭한 편이었으니까.

꽈지지지직!!

경찰복이 전부 찢어지며 상의 주머니에 넣어 둔 사진 한 장이 떨어졌다.

“여보…….”

그의 삶의 이유.

“지수야…….”

아내와 딸.

그 와중에 다른 경찰의 팔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고 있는 코헨의 모습이 보였다.

코헨은 은퇴 후 박 계장의 드림코퍼레이션 취업과 이주를 약속했다.

딸의 사진을 보고는 연예인도 충분히 가능하겠다면서 기획사에 연결해 주겠다고도 말했다.

알고 있다. 딸이… 지수가 그렇게까지 미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쇠구슬 몇 개가 그런 코헨의 머리통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퍽! 퍼퍽!! 퍽!!

박 계장은 마치 곰의 발바닥마냥 비대해진 손을 뻗어 코헨을 향해 날아드는 쇠구슬들을 막았다.

철판으로 된 캐비닛마저 종이처럼 꿰뚫던 쇠구슬이건만, 변이된 박 계장의 피부를 뚫지는 못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으, 으아아앗!”

한편, 자신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박 계장의 거대한 팔을 본 코헨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동그라졌다.

박 계장은 벌벌 떠는 코헨을 바라보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코헨은 박 계장이 자신을 해하려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식은땀까지 흘리며 정신없이 외쳤다.

“바, 바, 박 계장!!”

“약속…….”

박 계장의 목소리에 이미 본래의 음성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굵고도 음산했다.

“딸아이를… 아내를…….”

다행히도 의사소통은 어떻게든 가능했다.

“지키지! 약속을 지키겠어! 정말이야!!”

박 계장의 말을 알아들은 코헨이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박 계장은 그런 코헨을 얼마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편, 코헨이 주삿바늘을 꽂아 넣은 다른 경찰들 역시 박 계장처럼 고통스러운 변이를 거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그들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이성을 잃어 갔다.

변이를 마쳐 온몸이 회색으로 변한 경위 하나가 바로 옆에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이순철 경장을 집어 들더니, 저만치 던져 버렸다.

강필과 장량이 있는 쪽이 아닌, 전혀 엉뚱한 방향이었다.

목뼈가 꺾인 이순철 경장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주변에서 공포에 질린 비명과 고함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지만, 지금의 박 계장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퍽!

박 계장은 그저 코헨을 향해 날아드는 구슬들을 기민하게 막아 낼 뿐이었다.

“자, 잘했어. 바로 그거요, 박 계장!!”

코헨이 반색하며 외쳤다.

거대한 크기에 비해 민첩하기 이를 데 없는 몸. 그런 박 계장의 몸에서는 마치 증기기관차처럼 녹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박 계장의 몸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날개가 돋아나 사무실 공중에 떠오른 동료 경관의 모습이 보였다.

* * *

“대체 이게…….”

강필은 할 말을 잃은 채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압의 막바지, 사실상 전세는 거의 기운 상태였다.

이미 대부분의 경찰들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고, 반란을 부추긴 코헨은 달아나려는 기색이었다.

항복을 권하기만 한다면 모든 일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사이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분명 쓰러뜨린 경찰들 몇몇의 몸에서 이변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은 박 계장이었다.

정체 모를 초록색 안개와 비명 소리. 그 속에서 야수처럼 몸집이 커진 모습의 괴물이 나타났다.

다른 몇몇 경찰들의 몸에서도 제각기 이변이 나타났다.

회색 비늘이 뒤덮이는가 하면, 몸 곳곳에서 흉측하게 가시 같은 게 뻗어 나오기도 했다.

“선배, 이게 대체?!”

장량이 당황한 얼굴로 강필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죄다 이레귤러였다고?’

50구역의 경찰 기록은 이미 전부 확인했지만, 이레귤러로 보고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뒤늦게 특성이 개화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한꺼번에 발현한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되지 않았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강필은 양팔을 지휘자처럼 어지러이 흔들며 쥐새끼처럼 도망가려 하는 코헨을 향해 쇠구슬을 집중시켰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이변의 뒤편에는 분명 코헨, 그가 있을 터였다.

코헨을 노리고 수십 개의 구슬들이 사방으로 날아들었다.

타탕!! 탕!!

그러나 괴물로 변해 버린 박 계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여 쇠구슬들을 전부 막아 냈다.

“젠장!”

터무니없는 그의 방어력에 놀라던 중 장량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저, 저기!”

장량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강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회색 비늘로 뒤덮인 칼 경위가 막내, 이순철 경장의 몸뚱어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저 새끼가… 야, 이 새끼야! 안 내려놔?!”

칼 경위가 무슨 짓을 벌이려 하는지 알아차린 강필이 목소리를 높였다.

장량이 그런 칼 경위를 노려보며 그물과 같은 소울의 망을 펼쳤다.

구슬들이 뭉쳐 거대한 판을 형성했다.

그러나 괴물로 변한 칼 경위는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이순철 경장을 냅다 던져 버렸다.

강필이나 장량이 아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안 돼!!”

짐짓 자신들을 향해 집어 던질 거라 예상한 강필과 장량은 그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고 말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장량이 공중에서라도 붙잡아 보고자 손을 바닥에 댄 채 소울의 실을 뻗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진의 형성이 늦었다.

결국 이순철 경장을 구할 수는 없었다.

퍽!!

내던져진 그의 목이 힘없이 꺾이며 아무렇게나 나뒹군다.

회색 비늘로 덮여 괴물이 된 경찰이 의식을 잃은 제 동료를, 아군을 아무런 이유 없이 공격해 살해해 버린 것이다.

이미 놈은 피아 식별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곧이어 변이가 된 다른 놈들 역시 주변의 경찰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 우와아아악!!”

“괴, 괴, 괴물이다!!”

변이하지 않은 경찰들은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도망쳤다.

겁에 질린 그들에게 강필과 장량을 사로잡는 일 따위는 이미 관심 밖이었다.

“거기 너희들, 이쪽으로 와! 이쪽으로!!”

강필과 장량의 목표 역시 더는 반란 진압이 아니었다.

둘은 자신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던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앞쪽으로 내달렸다.

“도망쳐!! 저쪽으로! 출입문 쪽으로 달려!”

강필은 쇠구슬을 이용해 괴물로 변한 이들을 어지러이 교란했고, 장량은 사무실 곳곳에 갖가지 진을 만들어 괴물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방해했다.

변이한 괴물들은 비정상적인 괴력으로 둘의 능력을 버텨 냈고, 목적 없이 마구 날뛰었다.

좁은 사무실에는 꽤 많은 부상자들이 있고, 대부분은 강필이 다리를 관통시켜 쓰러뜨린 이들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질질 끌며 문 쪽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그런 그들의 몸부림이 도리어 괴물들을 자극한 것 같았다.

날개가 돋아나 공중에 떠오른 녀석 하나가 허우적거리며 도망치던 경찰 하나를 낚아챘다. 흉측한 깃털들로 온몸이 휩싸인 그에게는 이미 인간의 모습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고, 누구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강필은 놈을 향해 쇠구슬 수십 개를 날리며 주변 경찰들을 향해 고함을 질러 댔다.

“다들 은폐물을 찾아! 숨어! 놈들의 눈에 띄지 말란 말이야!”

도망치는 것은 무리다. 아니, 도망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놈들의 눈에 띄어 희생이 커질 뿐이었다.

사무실 안의 녹색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지켜야 하는 이들이 늘어난 가운데, 강필과 장량의 손은 어지러워졌다.

바로 그때, 하늘로 날아오른 괴물의 머리 위로 시퍼런 번개가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쾅!!

“끄르아아아아아악!!”

끔찍한 괴성과 함께 놈이 추락하고, 붙잡힌 경찰 역시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다.

곧이어 사방에 푸른빛의 번개가 퍼져 나가며 괴물들을 뒤덮었다.

온갖 비명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그 와중에 태일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태일의 온몸에서 푸른 스파크가 어지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코헨, 저놈부터 잡는다.”

파지지지지―

경찰들의 몸에 주입된 것은 틀림없이 악마의 비약, RSB였다.

그것도 이전 테러 사건에서 셸터가 사용한 것보다 훨씬 강력한 형태였다.

태일의 얼굴에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 * *

박 계장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개를 돌려 코헨을 바라보았다.

코헨은 박 계장이 자신의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시선에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 그런 코헨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박 계장은 힘겹게 입을 열어 어눌하게 다시 한번 말했다.

“도망…쳐. 약속을… 지켜…….”

그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의 메아리마냥 웅장하게 울렸다.

“그, 그래! 알겠어, 알겠다고!!”

코헨은 이 다급한 와중에도 약속을 강조하는 박 계장을 바라보며 짜증 내듯 대꾸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파치치치치치치치치!!

사방으로 푸른빛의 스파크가 번져 나갔다.

곧이어 사무실 전체에 굉음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악!!”

“크라아아아아아아아아!!”

고함 소리, 비명 소리… 그것은 하나같이 변이된 이들의 것이었다.

쿵!!

사무실 천장으로 날아오른 괴물의 몸뚱어리가 추락해 아무렇게나 나뒹군다.

“비, 빌어먹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코헨이 황급히 출입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저 새끼 잡아!!”

어지러운 고함 소리와 함께 쇠구슬들이 일제히 코헨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벽에서 뽑혀 나온 실들이 박 계장의 양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완벽히 무방비인 상태.

이대로라면 코헨은 죽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 딸은… 50구역에 남겨진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신이시여.’

이 와중에도 박 계장은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신이 있다면…….’

“크와아아아아아!!”

‘이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를.’

박 계장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녹색 안개가 사방을 뒤덮었다.

동시에 그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던 하얀 실들이 허무하게 끊어진다.

녹색 안개 속에 갇힌 쇠구슬들은 마치 물에 잠기기라도 한 듯 천천히 가라앉았다.

박 계장은 다시금 몸을 움직여 코헨의 뒤를 막아섰다.

코헨도 그런 박 계장의 분전에 놀랐는지, 넋이 나간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다, 당신!”

“달…려…….”

코헨을 무사히 살려 보내야 한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드림코퍼레이션에서 아내와 딸을 보호해 줄 것이다. 딸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다.

바로 그때, 모든 괴물들을 쓰러뜨린 푸른 빛줄기가 녹색 안개를 뚫고 날아들었다.

막을 수 없다. 피할 수 없다.

최후를 앞둔 박 계장은 마지막으로 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렇게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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