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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37화 (38/220)

37화 환락의 밤, 배신의 낮 (1)

“지금… 사장님의 초대를 거절하신 겁니까?”

코헨은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태일이 사장의 초대를 거절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한편, 강필과 장량, 심지어 바텐더까지도 태일의 대답에 꽤 놀란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태일은 내심 드림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의 존재감에 대해 감탄했다. 하지만 태일은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가볍게 말했다.

“내가 워낙 바빠서 말이야. 사장이 직접 바에 찾아온다면 칵테일 한 잔 정도는 대접할 의향이 있어.”

물론 칵테일 값은 두둑이 받아 내겠지만 말이다.

태일의 대답에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코헨의 얼굴이 슬슬 기괴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찌그러진 얼굴에서 기분 나쁜 광소가 쏟아졌다.

“쿡… 큭, 큭큭… 크하하하!! 이런, 이런,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군요.”

깍듯하던 태도를 버린 코헨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는 태일을 노려보았다.

“당신, 후회할 겁니다. 신의 손길을 거부한 자는 반드시 운명의 버림을 받는 법이죠.”

“신? 운명?”

태일은 스스로를 ‘수석 연구원’이라 소개한 코헨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애당초 세속화된 자본가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었다.

“드럭(Drug)인가 뭔가 하는 회사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나, 당신? 내 기억에 종교 단체에서 온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 와중에 은근슬쩍 꿈[Dream]을 마약[Drug]으로 바꿔 부르며 비꼬는 태일의 말투에 코헨의 얼굴에서 웃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태일의 뒤편에 있던 강필이 한술 더 떠서 들으란 듯 중얼거렸다.

“사실 별 차이가 없긴 하지.”

이제 코헨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아예 창백해진 상태였다.

다섯 명의 근육질 경호원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당장에라도 권총을 빼 들 것 같은 기세였고, 장량과 이순철 경장 역시 팽팽하게 긴장한 얼굴로 상황을 살폈다.

그렇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얼마간 이어진 끝에 간신히 진정한 코헨이 강필을 향해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렇게 주제를 모르니 50구역 LAPD가 이 모양 이 꼴인 겁니다, 서장.”

“코헨 씨!”

장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말을 제지하려 했지만, 경호원 하나가 어깨를 붙잡으며 끼어들지 말라는 듯 위협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부임하자마자 쓸데없이 분란을 초래하더니,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사이에 귀중한 자산까지 분실했다지? 더구나 당신의 허술한 호위 때문에 제 친애하는 동료가 목숨을 잃었죠. 당신같이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이 우리의 세금을…….”

펑!!

고삐 풀린 코헨의 악담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강필의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작은 쇠구슬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치 총알처럼 코헨의 귀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크아아악!!”

코헨이 귀를 감싸 잡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어허, 저격수가 숨어 있나 본데… 여기 계속 있다가는 아무래도 신상이 위험하지 않겠소?”

강필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쇠를 놓았지만, 코헨을 포함한 전부가 그의 짓임을 모를 수 없었다.

“이 자식!!”

코헨의 경호원들이 고함을 내지르더니, 권총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나 갑자기 몸이 마비된 듯 동작을 멈춰 버렸다.

“크으윽!”

장량을 중심으로 바닥에 무색의 필드(Field)가 펼쳐졌다.

필드에서 뽑아져 나온 소울의 끈들이 경호원들의 온몸을 단단히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봉인한 상태였다.

“…감히 어딜 나서나.”

장량은 조금 전 자신을 제지한 경호원의 어깨를 붙잡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이… 괴물 같은!!”

갑작스러운 경찰들의 무력행사에 당황한 코헨은 핏발 선 눈으로 태일과 강필, 장량을 노려보았다.

“똑똑히 기억해 둬! 결국 모든 것은 정해져 있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캐피탈 클럽이 개입한 이상 너희 따위는……!”

퍽!

다시금 공중에서 날아든 구슬이 그대로 직각으로 내리꽂히며 뾰족하게 솟은 코헨의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비스듬히 파고든 구슬이 몇 센티미터만 더 가까이 떨어졌으면 남성으로서 중요한 부위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흐으윽!!”

몸에 상처가 남지 않았음에도 공포에 질린 코헨은 더 이상 저주를 퍼붓지 못했다.

한편, 태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의 무력행사를 지켜보았다. 대놓고 힘을 사용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경찰보다는 차라리 마피아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하긴 이 정도 막가파는 되어야 마피아들과의 전면전이라는 미친 짓도 가능할 것이다.

잠시 뒤, 코헨과 경호원들은 마치 달아나듯 황급히 레미제라블을 빠져나갔고, 멍청히 서 있다가 장량의 눈짓을 본 이순철 경장이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나갔다.

“어쩌자고 그러셨습니까?”

“…소울은 자네도 썼잖아.”

“경호원들이 총을 꺼내 들었다면 선배가 ‘정당방위’로 죽여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일부러 노린 거 아닙니까?”

“…….”

부정하지 않는 강필을 바라보는 장량의 눈이 싸늘했다.

태일은 경찰 같은 마피아… 아니, 마피아 같은 경찰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맥주 한 잔 줄까?”

“근무시간에 술은…….”

“한 잔 정도야 괜찮겠지.”

장량이 그런 강필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똑똑!

때마침 누군가 바의 문을 두드리더니 조심스럽게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혹 부하들이 왔나 싶어 고개를 돌린 장량이 문 앞 손님을 보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꼬마야, 여긴 미성년자 출입 금지…….”

“내 손님이야.”

태일이 장량의 말을 끊더니 문 앞으로 다가간다.

근무시간에 바에서 맥주를 주문하는 경찰서장, 술집을 찾아온 꼬맹이… 무엇 하나 정상적인 모습이 없었다.

* * *

삐걱삐걱.

망가져 버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양팔이 완전히 박살 나 버린 탓에 균형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비치적거리며 어떻게든 앞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크윽…….”

무기질의 몸뚱어리에서 느껴질 리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DCS 저널의 논문에 따르면, 로보티안이 느끼는 고통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굳이 자연과학적 접근이 아니더라도 영혼이 없는, 그래서 살아 있지도 않은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탕!!

“큭!!”

그렇다면 지금 프랑켄이 느끼는 고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등에 총알이 박히며 몸이 부서져 내렸다.

프랑켄은 비틀거리며 옆의 샛길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조금만 더…….”

어떻게든 환락가까지 도착했지만, 입구에 들어선 직후 추격자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신태일, 그는 레미제라블에 있을 터였다. 그에게 가서 놈들에 대해 알려야 했다.

자신을 회수하겠다면서 파견한 연구원이나 수사 요청 따위는 전부 맥거핀에 불과하다.

드림코퍼레이션은 이미 50구역의 폐기를 결정했다. 그들에게 있어 50구역은 수많은 메타휴먼들처럼 언제든 폐기해 버릴 수 있는 불량품에 불과했다.

그리고… 50구역을 구할 수 있는 이는 이제 신태일, 그 남자뿐이었다.

타탕!!

허벅지가 부서지며 프랑켄의 몸뚱어리가 그대로 앞으로 기울어졌다.

“…크윽!”

더는 추격자를 떨쳐 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신태일에게 닿을 수 없다.

자명한 현실 앞에서도 프랑켄은 몸을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려 했다.

“허억, 허억, 허억…….”

논문에서 이 거친 숨결도, 지친 표정도 전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던가?

프랑켄은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없기에 그 진위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느끼는 고통은 오롯이 프랑켄 자신의 것이었다.

뒤쪽에서 붉은 눈동자의 추격자 셋이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간격을 좁혀 오기 시작했다.

철컥!

프랑켄을 완전히 끝장낼 마지막 탄환 한 발이 장전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골목 반대편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여성의 구둣발 소리다.

골목 반대편에서 나타난 붉은 구두가 프랑켄의 코앞에 멈춰 섰다.

웬 여인의 등장에 추격자들은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여인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가게 반경 10미터에서는 무기 소지를 금한다…….”

프랑켄은 우산을 한 손에 움켜쥔 채 나타난 붉은 구두의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프랑켄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프랑켄이 처음 50구역 LAPD에 발령을 받았을 때, 요한은 환락가 입구의 가게 한 곳을 가리키며 경고했다.

“똑똑히 기억해 둬. 저 가게 근처에서 장난으로라도 무기를 꺼내 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LAPD가 아니라 마피아 놈들조차도 저 가게만큼은 건드리지 못해.”

요한이 가리킨 가게는 환락가와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옷가게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게의 주인 때문이었다.

가게의 주인, 자켄이 프랑켄을 노리는 추격자들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꽤 오래된 규칙인데, 요새 들어 많이들 잊어버린 것 같아.”

추격자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고는 프랑켄이 아닌 마담을 향해 겨누었다.

놈들은 붉은 눈동자를 한 살인 기계에 불과하다. 명령을 집행할 뿐인 놈들에게 환락가의 규칙 따위는 입력되어 있지 않았다.

“내 지붕 밑에서…….”

마담이 천천히 우산을 들어 올리더니, 우산 끝으로 추격자들을 가리켰다.

“피를 볼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사람뿐이야.”

탕! 탕! 탕!!

추격자들의 총이 제각기 불을 내뿜는다.

총알이 어느새 펼쳐진 우산을 꿰뚫었지만, 그 뒤편으로는 누구의 피도 튀지 않았다.

프랑켄은 우산이 펼쳐지는 바로 그 순간, 붉은 구두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자연스레 총구가 위쪽으로 향한다.

동시에 추격자들의 눈에 검을 횡으로 내리긋는 마담의 모습이 비쳤다. 그러나 그런 마담의 모습을 보고도 추격자들은 어째서인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아니, 당기지 못한 것이었다.

어느새 추격자들의 몸에 새겨진 검흔이 선명해진다.

툭! 툭! 툭!

추격자 셋의 몸뚱어리가 마담의 검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갈라져 땅에 떨어졌다.

마담이 마치 바람을 타고 내려오듯 부드럽게 착지하더니, 몸뚱어리가 양단된 추격자들 앞으로 다가갔다.

차가운 눈동자로 움찔거리는 추격자들을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금 중얼거렸다.

“나이가 든다는 건… 슬픈 거구나.”

곧이어 지붕 위에서 두 명의 여무사가 착지하더니, 마담의 앞에 부복했다.

무사들의 한 손에는 제각기 붉은 눈동자의 머리통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프랑켄을 추적해 온 추격자들의 머리였다.

“나머지 둘은?”

“…곤이 추격 중입니다.”

보고를 들은 마담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서서 천천히 구멍 난 우산 쪽으로 다가왔다.

“납치당한 LAPD 메타휴먼이 내 가게 앞에서 나타났다라…….”

펼쳐져 있던 우산을 들어 올리자 프랑켄의 모습이 보였다. 그새 버둥거리며 몇 보 정도 멀어져 있었다.

양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건만,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었다.

또각, 또각.

마담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프랑켄의 몸뚱어리에 구두 굽을 박아 넣었다.

“큭!”

“어딜 가는 거지?”

“나를… 보내… 줘야 합니다.”

“고집을 부리는군. 그래, 인정해. 자못… 인간 같이 보여.”

차가운 마담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동정심도 없었다. 프랑켄을 당장 사살하지 않은 것은 그저 그녀의 변덕일 뿐이었다.

가게 앞에서 총이 발사되었고, 그것은 곧 ‘자켄’이라는 이름에 대한 도전이었다.

총을 발사한 놈, 그리고 발사하게 만든 놈 모두를 없애야 한다.

점차 빛이 바래 가는 옛 기억을 젊은 후배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라도 규칙은 철저히 집행해야 한다.

“잘 가라.”

마담이 마지막 일격을 위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담의 검이 프랑켄의 목 위로 떨어지기 직전, 프랑켄이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50구역이… 무너질 겁니다. 나는… 신태일에게…….”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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