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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9화 (10/220)

9화 히트맨 (1)

아이들을 데리고 환락가의 사무실을 나와 두 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달리는 사이, 태일은 눈앞에 지나치는 모든 것을 눈여겨보았다.

게릴라전을 벌이던 산과 강, 공장 지대, 그리고 몇 가지 주요 시설물들은 태일의 기억 속 50구역과 유사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UAM도, 대륙 횡단 열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산업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낡아 빠진 기차와 인간이 운전하는 차량, 신문을 펼쳐 든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태일에게 있어 가장 큰 위화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따로 있었다.

“태일 씨, 표정이 왜 그래요?”

한참 호들갑을 떨다가 지쳐 잠든 아이들을 살핀 제인이 심각한 표정의 태일을 보며 슬쩍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태일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기관사, 승무원, 택시 운전사, 그리고 오토바이 배달부, 교통경찰…….”

지금껏 지나치며 마주친 노동자들을 줄줄이 읊는다.

“그들 모두… 인간이 맞나?”

말하는 그 순간에조차 태일은 자신이 던지는 질문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전부 인간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제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태일의 질문이 어지간히 이상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그녀의 답은 태일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당연히 아니죠. 더 이상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태일은 놀란 나머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게 대체 무슨…….”

바로 그때였다.

“혹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기차에 탈 때 인사한 승무원들 중 한 명이 간식으로 가득한 수레를 끌고 지나가다 멈춰 서서는 태일을 향해 묻고 있었다.

그녀는 경계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태일에게 빙긋 웃어 보이며 친절하게 말했다.

끼리릭… 끼리릭…….

그녀에게 들리는 소리, 그것은 태엽 소리일까?

웃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는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그 상태로 마치 스캔이라도 하듯이 태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체온이 정상 수준보다 2도 가량 높고, 맥박 역시 1.2배가량 빠르게 뛰고 있네요.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을 가능성 25%, 심장질환이 있을 가능성 5%입니다. 관련해서 추천드릴 상품은…….”

“됐어요.”

태일의 옆에 있던 제인이 단호하게 승무원의 말을 끊었다.

승무원은 제인이 자신의 말을 무례하게 끊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의 불쾌함도 느끼지 않는 듯 자연스럽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 Z―rail의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호출해 주세요.”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아니니까.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완벽하게 인간, 그 자체처럼 보이는 승무원.

그녀에게 인간과 구분될 수 있는 특징은 유달리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부자연스러운 말투 정도였다.

태일은 승무원의 반응과 제인에게 방금 들은 대답을 상기하며 그 사실을 확실히 인식했다.

산업 시대 끝자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이미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존재… 그게 가능한 걸까?

“제인…….”

태일이 이 터무니없는 상황에 대해 다시금 제인에게 질문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태일의 귓가에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차의 엔진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파공음.

바람을 가르는 그 소리는 분명… 정확하게 이쪽을 향하고 있다.

“숙여!”

쨍그랑!

파캉!!

태일의 우측에 서 있던 승무원의 팔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꺄아아아악!!”

방금까지 조용하던 객실에 귀를 찢는 비명이 울렸다.

“다, 다들 고개 숙여! 절대 고개를 들면 안 돼!”

지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댄다.

앨리스를 비롯한 아이들 역시 놀란 와중에도 몸을 웅크리고는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것은 다른 승객들이었다.

객실 전체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태일은 몸을 숙인 채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바로 옆에서 저격을 당한 승무원은 팔이 박살 난 와중에도 여전히 웃는 낯으로 더듬더듬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모두 침착… 안내…….”

비정상적으로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제외하면 인간과 완전히 같은 외형이지만, 팔이 날아간 부위에서는 피 한 방울 튀지 않았다. 다만, 부서진 부위에서 붉은빛이 감돌 뿐이었다.

그러나 팔이 부서지며 튄 파편으로 인해 찢어진 그녀의 얼굴에서는 피 한 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태, 태일 씨, 방금 그 공격…….”

제인이 고개를 숙인 채 겁에 질려 말했다.

“그래, 이쪽을 노렸어.”

저격은 명백히 이쪽 좌석, 태일과 제인이 있는 곳을 노렸다.

달리는 기차를 향해 태일과 제인이 있는 위치를 노리고 이루어진 사격.

총알의 속도는 시속 3,500킬로미터가량, 기차의 속도는 시속 130킬로미터.

아무리 유능한 히트맨이라 해도 기차 밖에서 순간을 포착해 저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시도는 거의 성공할 뻔했다. 불가능한 저격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했다.

‘포착’이 아닌 ‘계산’, ‘저격’이 아닌 ‘트랩’이라면 가능하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위치를 노려 발사되도록 설계된 장치.

그렇다면 암살자는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트랩으로 처리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의 손으로 끝내기 위해서, 혹은 뒤처리를 위해서 범인은 반드시 근방에 있어야 한다.

덜컹!

그 순간, 객실의 앞뒷문이 동시에 열렸다.

“숙이고 있어.”

“태일 씨, 어디를…….”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 안내…….”

태일은 가만히 선 채 띄엄띄엄 대사를 내뱉고 있는 승무원을 살짝 밀어 냈다. 그러고는 몸을 낮춰 복도 쪽으로 나오며 앞뒤를 살폈다.

뒤쪽에서 다급하게 들어오는 기관사 차림의 남자, 앞쪽 객실에서부터 느긋한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바바리코트 차림의 남자.

마침 선글라스를 낀 바바리코트는 주머니에 넣은 손을 막 빼내려 하고 있었다.

1초.

태일은 앞쪽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파직.

손가락 끝에서 스파크가 튄다.

때마침 바바리코트의 주머니에서 권총 손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관사는 다급하게 태일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2초.

파츠츠츠.

손가락에서 쏘아진 푸른 번개가 바바리코트의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태일 대신 저격당한 승무원처럼 바바리코트의 어깨가 부서지며 저만치 떨어져 나간다.

그 와중에 놈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벗겨졌다.

선글라스가 날아간 자리에는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있었다.

그러나 태일은 이미 바바리코트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3초.

태일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기관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그의 멱살을 붙잡아 땅에 내팽개치고는 등 뒤로 팔을 꺾었다.

뿌득!

“……!”

이 순간, 기관사의 검은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신이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5할 이하의 성공률이라 예상한 첫 번째 트랩이 실패했지만, 이어진 교란 작전이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팔이 꺾인 와중에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은 채 태일을 노려보았다.

그는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에요?!”

때마침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린 제인이 깜짝 놀란 채 제압당한 기관사와 태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애당초 이 모든 일을 벌인 히트맨은 기관사로 위장한 남자 쪽이었다.

붉은 눈동자의 바바리코트 인형은 이미 행동을 멈춘 채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태일은 기관사의 적의에 찬 눈길을 그대로 받아 내며 담담히 말했다.

“대답은 당신이 해 줘야겠는데.”

기관사는 대답 대신 나머지 한 손으로 옷에 숨겨 둔 단검을 꺼내 들더니, 그대로 태일의 다리를 노렸다.

“태일 씨!”

깜짝 놀란 제인이 황급히 외쳤지만…….

파지지직.

기관사의 단검은 태일의 다리 바로 앞에서 멈췄다.

태일이 흘려보낸 전류에 감전되어 버린 기관사는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기절해 버렸다.

고개를 떨어뜨리는 기관사를 본 제인이 벌벌 떨면서 물었다.

“주, 죽인 거예요?”

태일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죽일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다. 녀석에게 캐내야 할 정보가 있으니까.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동작을 완전히 멈춰 버린 상태였던 바바리코트가 멀쩡한 나머지 한 팔을 들어 올렸다.

“젠장!”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놀란 태일이 다시금 바바리코트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파직!

탕!

태일이 쏜 번개가 바바리코트 인형의 심장부를 관통하면서 가슴팍이 뻥 뚫렸다. 그러나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놈의 사격을 막지 못했다.

바바리코트가 쏜 총알은 의식을 잃은 기관사의 머리를 관통해 버렸다.

“꺄아아아아악!!”

온 사방으로 피가 튀면서 제인이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댔다.

* * *

“죄송합니다, 고객님. Z―rail 측에서는 본 테러 행위로 인한 육체적, 심리적 손상을 완벽히 배상해 드릴 겁니다.”

열차가 긴급 정차한 뒤, 승객들은 가까운 고급 호텔로 안내되었다. 회사 측은 호텔 숙박료를 지불하면서 여행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무조건적 배상을 약속했고, 그 과정은 워낙 신속했기에 승객들 중 그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급 호텔방에 안내된 후, 줄곧 얼굴이 창백한 상태이던 제인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지우를 비롯한 아이들은 무려 다섯 개나 되는 호텔 룸 곳곳을 구경하며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한편, 태일은 또 다른 습격을 대비하여 제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괜찮나?”

“…네.”

제인의 얼굴은 부쩍 지쳐 보였다.

태일 역시 연달아 벌어진 사건들에 어지간히 당황하고 있었다.

팔자에도 없는 경호원 노릇을 시작한 지 이틀째에 숙련된 암살자의 습격을 받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최저임금을 받는 경호원이 말이다.

“분명 할멈의 추종자들이 고용한 사람들일 거야! 내가 극단에 찾아온 히트맨들을 몇 번 만나 봤는데…….”

호텔방 안에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충격에서 벗어난 지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우는 자신이 마로트에 있을 때 가끔 마주친 히트맨들에 대한 일화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샬롯의 잔당들이 히트맨을 고용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일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두목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한 조직원들이다. 그런 놈들이 통제할 수조차 없는 히트맨을 고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태일은 나름의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진짜 히트맨에 대해 잘 알았고, 히트맨의 고유의 특성은 이쪽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아마 이번 테러에서 궁극적으로 노린 대상은 태일 자신이 아닐 터였다.

“태일 씨, 고마워요. 태일 씨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제인 역시 표적이 누구였는지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의뢰자가 노린 인물은 제인이었다.

그렇게 넓은 호텔방에서 각자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철도 회사 측의 변호사가 찾아왔다.

태일과 제인의 앞에 앉은 변호사는 잘 정돈된 머리에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검은 눈의 남자였다.

“이런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매우 유감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변호사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감정 없는 말투로 첫마디를 열었다.

변호사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제인이 첫 질문을 던졌다.

“범인은 특정됐나요?”

“아직입니다, 아가씨.”

태일은 딱딱한 변호사의 답변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변호사의 ‘아가씨’라는 표현이 걸렸던 것이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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