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7화 (8/220)

7화 환락가의 변호사 (2)

“그러니까 제인, 당신 말은… 지금 50구역 최악의 범죄 조직 두 곳을 중재하겠다고? 평화롭게?”

요한은 얼빠진 얼굴로 제인을 바라보았다.

하긴 무리도 아니었다. 정신 나간 소리라는 생각만큼은 태일 역시 동일했으니까.

“할 수 있어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구요.”

아무리 머릿속이 꽃밭이라고 해도 바로 몇 시간 전 마피아에게 붙잡혀 험한 꼴을 당할 뻔한 주제에 어떻게 다시금 암흑가 전쟁에 개입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때, 요한이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이내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끼워 들었다.

하긴, 약혼녀가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으니, 저렇게 흥분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제인, 마로트에서 벌이던 사업이 어떤 건지 알고 있소? 범죄 조직 놈들이 뭘 두고 싸우는 건지 알고 있냐는 뜻이야.”

빤한 일이다. 놈들이 하던 짓은 소울벌룬 같은 물건의 제조와 인신매매, 장기 밀매 따위였다. 하이에나들은 그런 ‘사업’들에 손을 뻗을 것이다.

“실내 금연이에요.”

제인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요한의 떨리는 손에 끼워진 담배를 빼앗아 부러뜨리더니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일지는 나도 잘 알아요. 미친 여자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그냥 두면 50구역은 피바다가 될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태일이 기억하는 과거에도 조직 하나가 붕괴된 것을 신호탄으로 전쟁이 일어났으니까. 당시 50구역은 중앙정부가 LAPD를 해체시킬 정도로 통제 불가의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어리숙한 변호사 혼자서는 막을 수 없다.

요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주민 대피령을 진지하게 고려 중에 있소. 중앙정부에 요청을 넣었지. 50구역 주민들의 피난처를 마련해 달라고 말이야.”

듣고 있던 태일이 조용히 대답했다.

“…들어주지 않을 텐데?”

요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모처럼 입을 연 태일을 바라보았지만, 뭐라 반박하지는 못했다. 태일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요한 역시 잘 알고 있었으니까.

태일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다. 과거의 LAPD 역시 같은 요청을 보냈다. 그리고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난민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구역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까.

도리어 그런 요청을 보낸 LAPD가 정치권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게으르고 무능’한 50구역 LAPD는 해체되었다.

결과적으로 50구역 LAPD의 해체는 중앙정부의, 공화제의 붕괴를 앞당기는 결정이 되었다.

태일은 둘 사이의 논쟁에서 말 한마디 않고 있지만, 어느새 연인의 고집으로 인해 고통받는 요한에게 동정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하아…….”

제인이 토막 내 버린 담배꽁초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요한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결정했어.”

“요한?”

“당신을 이대로 둘 순 없어, 제인. 아버님께 말씀드리도록 하지.”

‘아니, 이 무슨 어린애 같은…….’

태일은 아빠에게 이르겠다는 요한의 결론에 황당해하며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제인의 표정을 본 태일은 요한이 제대로 된 패를 꺼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인의 얼굴이 충격을 받은 듯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요한, 당신!!”

“당신이 큰일을 당할 뻔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때 곧바로 당신의 아버지에게 알려야 했어.”

“요한, 만약 당신이 그런 짓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적어도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는 있겠지.”

“…….”

요한의 최후통첩과도 같은 발언에 제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조된 아이들은 걱정 말아요. 마리아 수녀님께 말씀드려 놓을 테니까. 그분께서 잘 거둬 주실 거요. 거긴 안전하겠지.”

“당신에게 이럴 권리는 없어요.”

변호사답게 제인은 권리를 운운하며 눈을 치켜떴지만, 요한은 그저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미안하오, 제인. 하지만 이 지옥에서 당신을 내보내기 위해서라면, 난 무슨 짓이라도 할 거요.”

앨리스와 지우는 둘의 심각한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지만, 태일은 어느새 흥미가 식은 상태였다.

제인이 마피아들을 찾아가 평화를 설파하든, 요한이 제인의 아버지를 찾아가 고자질하든 태일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은 곧 여길 떠날 테니까.

한편,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태일을 향해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하시오. 혹시 뭔가 떠올라서 증언할 게 있으면 더 좋고.”

아마 예의상 한 말일 것이다. 그의 눈은 당장 약혼녀의 집에서 꺼지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태일 역시 예의상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요한은 억지로 제인의 시선을 피하며 집 밖으로 나섰다.

어깨가 축 처져 방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어째서인지 더욱 상처받은 쪽은 요한 같았다.

원래 더 좋아하는 쪽이 더 아픈 법이다.

태일은 남 같지 않은 요한을 보며 주머니 속 회중시계를 움켜쥐었다.

* * *

“날 도와 줘요.”

제인은 요한이 떠나자마자 태일에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지.’

지우와 앨리스는 탁상에 올려진 알사탕을 오물거리며 태일과 제인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아마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러 온 손님을 위해 준비된 사탕일 것이다. 사탕들은 꽤 오래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수북이 쌓여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태일은 말없이 제인을 바라보았다.

“알잖아요. 그냥 두면 50구역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갈 거예요.”

이처럼 순진한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고 싶진 않을 것이다.

“…여기서 도망치는 걸 추천하지.”

가만히 제인의 말을 듣고 있던 태일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요한의 오해를 부추기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지만, 대화를 듣는 내내 하고 싶은 말이었다.

“변호사라고 했나? 당신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러니 당장 도망쳐.”

이 시기를 놓치면 50구역은 봉쇄된다. 과거, 주변 구역들은 50구역에서 마피아 간의 전쟁이 벌어지자 지역 방위군을 동원해 난민의 유입을 막았다.

간신히 탈출한 이들은 근방 용병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 나갔다.

아마 요한 역시 그런 상황을 어렴풋이 예측했기에 필사적으로 제인을 50구역에서 내보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제인은 태일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막을 수 있잖아요!”

“…….”

제인은 마치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을 만난 어린애마냥 애절하게 태일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리볼버 같은 산업 시대 유물을 들고 다니는 애송이들만 가득하다면 태일의 상대가 아닐 테니까.

그러나 태일은 현재 벌어지는 일들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소울벌룬이 유통된 암흑가 조직, 그리고 암흑가에서 벌어지는 마피아 간 전쟁, 무기력한 LAPD의 대처… 조금 다른 형태일지라도 태일은 그 모든 일들을 이미 겪어 보았다.

기분 나쁜 악몽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일련의 사태는 태일의 심리에 잠재해 있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더구나 탐욕으로 인해 변해 버린 동료들의 손에 숙청당한 태일에게 있어 제인의 선의는 그저 순진한 이상으로 비칠 뿐이었다.

당장 암흑가의 전쟁을 운 좋게 막는다 해도 이미 환상을 사용하는 샬롯처럼 능력자가 존재하고, 소울벌룬이 유통되기 시작했다면… 다른 시나리오가 있을 리 없었다. 50구역에 피가 흐르는 결론만큼은 막을 수 없다.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그쪽이야말로 날 멍청한 여자로 보지 말아요, 레지스탄츠(Resistant)!”

…뭐?

태일은 ‘레지스탄츠’라는 단어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제인의 오해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태일의 등 뒤에 조직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지우가 까드득거리를 소리를 내며 알사탕을 이빨로 부수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지스탕스?! 어쩐지… 형이 거기 사람이었구나!”

태일은 어느새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형’이라 부르는 지우를 황당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편, 그 와중에 앨리스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닌데. 아저씨는 하늘에서…….”

태일은 이들의 오해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제인이 손을 들어 태일의 발언을 막았다.

“부정할 생각 말아요. 평범한 민간인이 혼자 샬롯 일당을 제압할 수는 없어요.”

“후우…….”

레지스탕스(Resistance). 50구역의 독립을 바라는 지하조직. 이쪽 세계에서도 그런 조직은 활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태일은 내심 씁쓸함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헛짚었어.”

적어도 이쪽 세계의 레지스탕스와 태일은 완벽히 무관했다.

제인은 태일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럼 당분간 나와 함께 일해요. 조금이지만 월급도 줄 수 있어요.”

태일이 그녀의 황당한 제안에 할 말을 잃은 순간, 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나원, 정말이지 세상 물정 모르는 누나네. 누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아!”

“이 멍청이가…….”

앨리스가 그런 지우를 보며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운 듯 황급히 팔을 붙잡았지만, 지우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우리 형님이 누구 밑에서 일할 사람으로 보여? 누나가 우리 형 밑으로 들어오면 모를까!”

“…….”

지우는 마치 태일의 직속 부관이라도 되는 양 거만하게 굴었다.

왜 부끄러움은 주변인들의 몫일까. 태일은 어처구니가 없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지우는 태일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슬쩍 들어 올려 보이고 있다.

설마 자신이 칭찬이라도 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황당한 와중에 지우의 옆에 앉은 앨리스를 보니,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입 모양으로 ‘죄송해요’라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곧이어 ‘천사 아저씨’를 발음하는 입모양까지 본 태일은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싶어졌다.

한편, 제인, 이 순진한 여자는 지우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뭐, 난 그런 형태도 상관없어요. 아니, 오히려 레지스탕스와 접속할 수 있다면 그 편이 좋겠네요.”

더 이상 이 바보 같은 상황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회중시계도 찾았으니, 이제 시계의 주인인 세연을 찾아야 한다.

태일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제인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난 변호사예요. 플라토 아카데미를 수료하면서 나름 연줄도 꽤 있죠. 분명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구요.”

“아닐 거 같은데….”

이성과 합리의 상징과도 같은 변호사. 그런 직업을 가진 여자가 이상주의적 발상을 내비친 시점부터 그녀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당장 이권을 두고 충돌하려는 마피아 조직들을 상대로 ‘평화로운 중재’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상에 불과하다. 그것도 아주 위험천만한.

‘평화’를 운운하는 이상주의자들의 선택은 결국 야합(野合)이고, 더 큰 평화를 위한다며 변절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약자들은 더 철저하게 고립되었다.

전쟁에 있어 평화적인 결론, 그것은 어느 한쪽의 완벽한 궤멸뿐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제인에게 태일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여전히 한마디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50구역을 빠져나가. 여긴 이미 틀렸으니까.”

태일의 단호한 말을 들은 제인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태일이 그런 제인을 둔 채 문 쪽으로 다가가자, 앨리스와 지우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저씨!”

“형, 어디 가요?!”

“…….”

그러나 태일은 말없이 문고리를 잡았다.

“진세연.”

제인의 목소리에 태일은 행동을 멈추었다.

순간, 태일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잘못 들은 건가? 그녀의 이름이 어떻게 제인의 입에서 나온 걸까?

“레지스탕스가 아니라면, 당신은 그녀와 무슨 관계죠? 당신이 가진 회중시계, 그건 그녀의 물건이잖아요.”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제인, 그녀가 세연을 알고 있다.

태일이 마치 기계처럼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녀를 아나?”

태일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요.”

태일은 자신도 모르게 내달려 어느새 제인의 양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언제… 아니, 어디서 봤지?”

앨리스와 지우는 갑자기 흥분한 태일의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만, 정작 태일에게 어깨를 붙잡힌 제인은 침착해 보였다.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예요. 5년 전, 붉은 산에서 사라진 그녀의 물건을 어떻게 당신이 들고 있는 거죠?”

“그게 무슨…….”

태일은 제인의 양어깨에서 손을 떼고는 저도 모르게 살짝 비틀거렸다.

태일이 세연과 피의 언덕에서 처음 만난 것이 바로 5년 전이었다.

“그녀는 사라지기 전날 밤에 나에게 약속했어요, 다시 돌아오겠다고. 그러나 대신 그녀의 물건을 가진 당신이 나타났죠.”

“…….”

태일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태일의 연인이자 동지였던 세연, 그녀는 이쪽 세계의 사람이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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