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5화 (6/220)

5화 인형극단 (3)

3층, 티켓 박스.

태일의 주변은 깨진 맥주병과 피다 만 담배꽁초, 산산조각 나 버린 당구대로 인해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쾅!

태일의 머리 옆으로 도끼가 날아와 뒤쪽 다트판에 깊숙이 박혔다.

타타타탕!!

이어 수십 발의 총탄이 태일을 향해 발사되었고…….

“죽어!!”

포커 카드가 놓여진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놈이 나이프를 꼬나 쥔 채 달려들었다.

그러나 태일은 앞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숫자를 셀 뿐이었다.

나이프를 찔러 넣으려던 놈의 관자놀이에 치사량의 전류를 흘려 넣는다.

“컥!!”

“…31.”

총탄을 튕겨 내며 총을 쏘아 대는 세 놈의 심장에 번개를 관통시킨다.

쿵!

“32, 33, 34.”

도끼를 날린 뒤, 너클을 끼고 달려드는 놈의 팔과 가슴을 스파크로 양단한다.

“35.”

“사… 살려 줘.”

여섯 명의 남자가 구석의 방에서 튀어나와 발가벗은 채 벌벌 떨며 무릎을 꿇었다.

태일은 대답 대신 놈들이 나온 방 안쪽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은 듯 보이는 여자들이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파지지지지직!!

“우와아아아악!!”

‘…41.’

짐승을 살려 둘 이유는 없다.

태일은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 의식 잃은 여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세 명의 여자 중 둘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이미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그러나 금발의 여자 한 명은 그나마 미약하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파직.

“크윽…….”

약한 전류로 심장을 마사지하자, 간신히 깨어난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일을 바라보았다.

“이, 이건……!”

정신을 차린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몸을 황급히 이불로 감쌌다.

하지만 곧 자신의 옆에 죽어 있는 다른 여자들을 보고는 입을 감싸 쥐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공포와 더불어 슬픔이 떠올랐다.

“아, 아아…….”

“여기서 나가. 당장.”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그녀를 향해 태일이 조용히 말했다.

“곧 건물이 완전히 날아갈 거야. 밖에 나가면 애들이 있을 테니, 데리고 최대한 멀리 피해.”

여자가 당황한 와중에 태일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일일이 대꾸할 시간이 없다.

“빨리.”

“아, 알겠어요.”

그녀는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인 뒤 맨발로 황급히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2층에 만들어 놓은 리펄서 볼(Repulsor Ball)이 건물 전체를 날려 버릴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태일은 부쩍 느려진 반응속도를 느끼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시야가 흐릿하고, 약간의 어지러움마저 느껴졌다.

‘SB 때문인가?’

아니, 흡입한 양은 미량이었다.

그보다는… 피로감일 것이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온 힘을 다해 배신자들과 싸웠고, 이어 영문 모를 세계에 떨어져 암흑가 쓰레기들을 상대로 연달아 힘을 쏟아부었다.

쉴 틈 없이 힘을 사용했으니,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파직.

‘젠장…….’

방전 상태에 다다른 전류를 본 태일은 한숨을 내쉰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껏 50여 명의 조직원들을 해치웠지만, 피라미들일 뿐이다.

소울벌룬을 생산한 악마, 장기를 매매하고 사람을 죽여 전시해 둔 괴물, 여자를 납치해 노리개로 삼은 쓰레기.

태일은 이런 일을 저지른 우두머리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둘 생각이었다.

정의감? 화풀이? 혹은 그저 방향 잃은 분노?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직 건물이 날아가기까지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 * *

“역시나 그 악마 같은 년과 한편이 분명해. 제 발로 여기까지 온 거야.”

음산하고 어두운 목소리.

“그래, 네 말이 맞아. 붙잡아서 살과 뼈를 분리하자. 그러고 나서 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전부 빼내는 거야.”

높고 과장된 목소리.

“3층까지 전부 당해 버린 모양이네.”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이어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여튼 무능한 놈들이라니까! 진즉에 전부 갈아 치웠어야 했어. 안 그래, 오빠?”

“맞아, 샬롯.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래. 우리가 직접 놈을 붙잡아서 손톱을 하나씩, 하나씩 뽑자. 그러면 순순히 불 거야.”

“동감이야.”

태일은 두 목소리의 만담을 들으며 4층에 올랐다.

삐걱, 삐걱.

계단을 오를 때마다 불안하게 삐걱거린다.

어느새 아래에서부터 불길이 빠른 속도로 번져 올라오고 있었다.

4층에 오른 태일의 눈에 넓게 펼쳐진 공간이 들어왔다.

문 같은 것도 없이 넓게 개방되어 있지만, 공간은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고급 카펫이 깔리고 수십 개의 은촛대가 사방을 밝힌 가운데 분리된 두 개의 공간에 각각의 명칭을 새긴 현판이 보인다.

‘기사의 방’.

오른쪽, 푸른색 벽지로 치장된 공간.

벽면에는 사브르(Sabre)를 비롯한 온갖 검들이 걸려 있고, 중세 귀족이 착용했을 법한 넓은 챙의 모자와 망토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구석에는 중세 기사가 사용했을 법한 철제 갑옷이 비치되어 있다.

‘공녀의 방’.

좌측, 붉은색 벽지로 꾸며진 공간.

귀족 여성이 입었을 법한 드레스와 거울, 화장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온갖 보석들로 장식된 가운데, 두 귀족 남녀의 초상화가 커다랗게 걸려 있다.

그리고 4층의 정중앙, 두 방의 경계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홀로 서 있었다.

“왔구나?”

새하얗게 분칠하고 입술을 붉게 칠한 얼굴, 눈 밑의 점까지.

뒤쪽 초상화에 걸린 바로 그 얼굴이다.

언뜻 굉장한 미녀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장식도 그녀의 잔혹성을 숨기지는 못했다.

“오빠, 어때? 내가 할까?”

여자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어딘가에서 낮고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샬롯. 내가 할게.”

태일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찰나, 여자가 씩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가면을 얼굴에 썼다.

태일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경악한 나머지 눈을 부릅떴다.

스스스스스스스스.

가면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여자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얼굴을 완전히 가린 가면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여인의 몸을 잠식해 간다.

자신의 몸집보다 더 큰 동물을 삼키는 보아뱀처럼 가면이 여자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몸이 흡수되고 있는 여자는 마치 자발적으로 그 침식을 받아들이듯 양팔을 넓게 벌리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몇 초가 흐른 뒤, 여자의 온몸을 차지한 가면이 찰흙 반죽처럼 변화하기 시작했다.

눈과 코, 입, 머리털 등이 제 형체를 갖추어 간다.

미남형의 얼굴에 붉은 눈동자, 금발 머리까지… 영락없는 20대 청년의 모습.

그에 더해 옷차림까지 거짓말처럼 턱시도로 바뀌었다.

뒤쪽 초상화에 그려진 바로 그 남자의 모습이었다.

태일은 지금껏 본 적 없는 광경에 역겨움을 느끼며 짓씹듯 말했다.

“…괴물이군.”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이제 건물이 무너질 때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태일은 대답 대신 놈의 머리를 노리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태일의 손가락 끝에서 번개는커녕 자그마한 스파크조차 튀지 않았다.

“이건…….”

살짝 당황한 태일을 본 남자가 히죽 웃어 보였다.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지?”

“…….”

그러더니 남자가 마치 지휘라도 하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벽에 걸려 있던 사브르와 대검, 촛대 따위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태일을 향해 정신없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태일은 급히 몸을 날려 피하면서 고급 카펫의 위를 뒹굴었다.

쾅! 콰쾅!

직후, 태일을 노리고 날아든 갖가지 물건들이 카펫에 내팽개쳐졌다.

사브르를 포함한 칼들이 바닥에 꽂혔고, 은촛대들은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간신히 공격을 피해 낸 태일을 바라보며 남자가 히죽 웃어 보였다.

“이 공간에 들어온 이상 넌 끝이야.”

그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웃음이 떠올랐다.

바로 그때.

째깍째깍.

순간적으로 태일의 귀에 회중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거짓말처럼 멎어 버렸다.

태일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고는 피가 나도록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곧이어 온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

2층에 설치해 둔 리펄서 볼의 폭발 진동이 느껴진다.

그렇게 공간 전체가 흔들리는 와중에 지금껏 자신만만해하던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단순히 표정을 찡그린 게 아니었다.

얼굴 자체가 마치 불에 녹은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아암히이이이이!!”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태일의 귀에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어어어!!”

바로 코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태일은 이를 악물고 팔에 전류를 감았다.

그러고는 마치 유리처럼 깨지기 시작한 빈 허공으로 팔을 내뻗었다.

퍽!

손끝에서부터 묵직하고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진다.

그것은 분명 가죽을 찢고 살점을 파고드는 감촉이었다.

2층에서 시작된 폭발로 인해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와중에 태일의 눈에 보이던 모든 것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사의 방도, 공녀의 방도, 두 방에 장식되어 있던 온갖 사치품과 고급 카펫까지도… 모든 것이 마치 조각난 유리처럼 깨어져 먼지처럼 사라져 갔다.

화려한 허울이 벗겨지면서 시꺼먼 연기와 사방으로 비산한 먼지가 4층을 뒤덮었다.

곧이어 닳아빠진 화장대와 사방에 뒹구는 술병들, 더러운 침구류 따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 뒤쪽에 걸려 있던 두 남녀의 초상화만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그나마 유리에는 금이 가고, 더러운 거미줄이 덕지덕지 쳐져 있지만.

파지지지.

“쿨럭!”

태일은 가만히 자신의 눈앞에 선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류에 뒤덮인 태일의 팔이 옆구리를 관통한 가운데, 여인이 든 단도는 태일의 목울대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모든 것은 한낱 연극이고 환상이었다.

물건들이 떠오른 적도, 태일이 카펫 위를 구른 적도 없었다.

태일은 4층에 오른 직후, 줄곧 가만히 서 있었다.

“네놈…….”

앞서 본 미인의 모습 역시 간데없었다.

온몸이 부패해 버린 노파가 피를 머금은 채 태일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뒤쪽으로 술병과 함께 나뒹구는 플라스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SB를 잔뜩 들이켜 완전히 폭주해 버린 그녀는 태일마저 속여 넘길 만큼 뛰어난 환상을 선보였다.

하지만 리펄서 볼의 진동으로 인해 균열이 생겨났고, 태일은 순간적으로 환상에 감추어진 회중시계의 존재를 인식했다.

덕분에 태일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각할 수 있었다.

만약 태일이 단 몇 초만 늦게 환상에서 깨어났다면, 노파의 단검에 목이 꿰뚫렸을 것이다.

“쿨럭, 끄으으윽…….”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노파는 단검을 놓친 채 피를 토하며 뒷걸음질 쳤다.

썩어문드러져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 밑의 작은 점 하나.

초상화에 그려진, 환상 속에서 본 미인은 분명 눈앞의 노파일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괴물로 변해 버린 그녀에게 값싼 동정을 건넬 생각은 없었다.

눈앞에 추한 노파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최악의 범죄자일 뿐이니까.

“네가 마신 그 약의 제조법을 어떻게 손에 넣었지?”

태일의 물음에 노파가 피를 머금은 채 비틀린 웃음을 지어보였다.

“…킥, 킥킥… 신께서… 내게 주셨지…….”

살기로 번뜩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광인의 그것이었다.

콰드드드드득!

어느새 마룻바닥이 부풀어 오르며 리펄서 볼의 폭발이 공간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태일은 광기 들린 듯 웃어 대는 노파를 노려보다가 그대로 4층의 창문 쪽으로 내달렸다.

노파는 태일이 창문 밖으로 탈출하는 그 순간까지도 뒤틀린 웃음을 토해 냈다.

“킥킥킥… 키히히히히…….”

쿵!

건물 전체를 뒤덮은 불꽃이 노파의 주변을 감싼다.

더불어 폭발에 의한 흔들림으로 방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쨍그랑!

벽에 걸려 있던 초상화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며 금 가 있던 유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피 웅덩이 속에서 광기 어린 웃음을 토해 내던 노파의 시선이 부서진 액자에 멈추었다.

웃음을 멈춘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샬롯, 우리를 무시하는 놈들은 죄다 껍질을 벗겨 버리자. 부모님을 살해하고 우리를 쫓아낸 놈들. 그 모두에게 복수할 날이 분명히 올 거야.”

복수를 꿈꾸던 몰락 귀족가의 남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는 그저 추한 노파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오빠…….”

바로 그 순간, 건물이 폭파했고, 노파의 썩은 몸뚱어리마저 완전히 산화되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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