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15화>
215. 방해 (2)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개인공방.
권한울은 그곳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옷을 입고 있었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트렌치코트에 노턱 스타일의 정장바지.
흑천의 시조 권현문이 사용했던 가뭇뫼를 개량해서 만들어낸 장비 ‘저녁하늘’이었다.
“어떠냐? 마음에 드냐?”
옆에서 박태식이 물었다. 권한울은 넥타이를 매며 말했다.
“예, 마음에 쏙 듭니다.”
“흥, 당연한 소리를.”
말과 달리 박태식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사실 ‘저녁하늘’에는 대단한 기능이 없다. 그저 튼튼할 뿐이고, 단지 사용자의 능력을 증폭시켜 줄 뿐이지. 과거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빠르게 발전한 분야는 제작 파트였다.
던전에서 발견된 유물을 가공하거나 몬스터에게서 얻은 재료들을 가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그렇기에 초창기의 장비와 현재의 장비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내게 똑같은 재료를 준다고 해도 나는 ‘저녁하늘’처럼 만들어 냈을 거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재료의 출처가 흑룡이며, 사용자가 흑천의 혈족이기 때문이지.”
금방 이해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인 말이었다.
“용은 여의주를 이용해서 권능을 발휘하는 몬스터다. 그렇기에 육신 자체에는 특별한 능력이 없지. 여의주의 힘을 받아들이고 증폭시키기 위한 그릇일 뿐이지.”
“맞는 말씀입니다.”
“용에게서 얻은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잡다한 기능을 넣어서는 안 돼. 기본에 충실해야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박태식은 목이 타는지 물을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어 나갔다.
“이 장비를 착용했을 시, 모든 신체능력의 상승률은 거의 1.5배에 달한다. 흑룡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입으면 상승률은 거의 2배에 달하지.”
본래 헌터 업계에서는 전체적인 상승률이 50%만 되어도 최상급 장비로 취급을 받는다.
‘저녁하늘’의 상승률인 2배는 전무후무한 수치라고 할 수 있었다.
“각종 내성은 물론 방호력도 뛰어나지. 내가 장담하는데. 어떤 유물을 가지고 와도 저녁하늘에 생체기 하나 낼 수 없을 거다. 그야말로 의복의 형태를 한 요새인 셈이지.”
평소에는 과묵하던 박태식이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 그만큼 ‘저녁하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보였다.
“이 장비에 대한 설명은 이쯤하기로 하고…… 다음은 이거다.”
박태식이 어떤 물건을 꺼내서 내밀었다.
얼핏 보기에는 가죽 장갑이었으나 군데군데 다른 점이 많았다.
손등과 손가락 마디에 해당하는 부위들이 돌멩이처럼 울퉁불퉁했던 것이다.
“네가 부탁했던 너클 장갑이다. 아수라 무기를 녹여서 만든 철판에 칠색조의 가죽을 덧대서 제작했지.”
권한울은 장갑을 손에 착용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놀랍게도 맨손인 것처럼 손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아수라 무기 자체가 원체 괴물 같은 놈이라 따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 이 자체로도 괴물 같이 뛰어난 무기니까.”
권한울은 시험 삼아서 너클 장갑에 마력을 주입했다.
솜이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너클 장갑은 대량의 마력을 순식간에 흡수했다.
검은 오러가 너클 장갑을 둘러쌌다. 무척 깨끗하고 깔끔한 오러였다.
마력의 반응도, 전이도, 그리고 구현도 모든 부분에서 지금까지 사용했던 어떤 장비보다 뛰어났다.
“명장님, 감사합니다.”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지. 장인이 된 몸으로 이렇게 좋은 장비들을 직접 만질 기회를 줬으니까.”
권한울은 박태식과 함께 공방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이미 흑암대 세 명이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어, 한울이 나왔다.”
가장 먼저 권후돈이 권한울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메이홍과 가엘 가르시안도 권한울을 돌아봤다.
세 명 모두 처음에 공방에 도착했을 때와는 차림새가 달랐다. 새로운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전부 공방의 장인들이 새롭게 내놓은 물건들이었다. 장인들이 꽁꽁 감추고 있었던 만큼 장비들의 성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 본가로 갈 예정이냐?”
“예, 부회장님을 막으러 가야죠.”
박태식의 물음에 권한울이 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박태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본가에는 부회장님 휘하의 부대인 흑소대가 있잖습니까.”
흑소대(黑燒隊).
흑천대의 위명에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흑천대 못지않게 강한 저력을 가지고 있는 부대다. 아니, 최근의 전적을 보면 오히려 흑천대보다 뛰어난 활약을 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흑소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잔학성 때문이다.
흑소대는 한 번 맡은 임무는 희생을 치러서라도 완수시키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흑천의 부대와 비교했을 때, 많은 부분에서 이질적이었다.
“내가 걱정하는 건 흑소대가 아니다.”
“예?”
“지금 본가에는…… 괴물이 있다.”
뜬금없는 말에 권한울은 의문을 표했다. 갑자기 괴물이라니?
“유명대가 본가를 지원하러 왔다가 전멸한 건 알고 있겠지?”
“예, 들었습니다.”
“그 유명대원 중 한 명이 여기까지 도망을 친 적이 있다. 장인 중 한 명이 숨겨 줬지만 금방 들통이 나서 흑기대 놈들이 강제로 끌려갔지.”
그걸 못 막은 게 못내 화가 나는지 박태식은 인상을 구겼다.
“그런데 그 대원이 장인에게 이렇게 말했네. 본가에는 괴물이 있다고 말이야. 심지어 그 괴물 한 마리에게 모든 유명대가 전멸을 했다더군.”
괴물이라는 말은 비유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유명대원은 그런 뜻으로 괴물이라는 용어를 쓴 게 아닌 듯했다.
“그 괴물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권혁은 정도를 모르는 남자다. 어떤 짓을 저질렀을지 모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권한울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본가까지는 어떻게 갈 생각이냐? 차라도 빌려 주랴?”
“아, 괜찮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거든요.”
그 말에 흑암대 세 명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애원하는 듯한 얼굴로 권한울을 바라봤다.
“하, 한울아? 설마 또 그걸 쓰려고?”
“대장님, 그냥 뛰어가면 안 될까요?”
“저도 뛰어가고 싶습니다…….”
세 명의 반응에 권한울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왜요? 이편이 더 빠르지 않나요?”
“그건 그런데…….”
권후돈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 아니, 많이 어지럽더라…….”
“맞아요. 속이 울렁거려서 하마터면 토할 뻔했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는지. 세 사람이 불만을 토로했다. 권한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는 멀쩡했잖아요?”
“그건 흑기대가 있으니까 멀쩡한 척을 한 거지…….”
“적한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권한울의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근데 올 때는 거리가 멀어서 힘들었지만 여기서 본가까지는 금방이니까 괜찮을 거예요.”
하지만 이내 다시 얼굴이 어두워졌다.
세 사람은 다시 항변하려 했으나 권한울이 마력을 일으키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들이닥친 폭풍이 네 사람을 본가로 날려 보냈다.
* * *
하늘을 날던 폭풍이 급격히 꺾이더니 땅 위로 낙하했다.
폭풍이 소멸하며 강풍이 불었다. 그 속에서 네 명이 몸을 일으켰다.
“우웨에엑!”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만 몸을 일으키고 나머지 세 명은 배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이게 그렇게 어지럽나?”
권하울은 흑암대 세 명을 보며 어리둥절하게 생각했다.
흑암대원들은 원망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권한울을 바라봤다.
“거리가 짧아서 버틸 만하지 않았어?”
“그거랑 상관없는 거 같아…….”
권후돈이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에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왔나 했더니. 달갑지 않은 손님들이 오셨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과 흑암대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서른 명 가까이 되는 헌터들이 일행을 둘러싸고 있었다.
많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 섬뜩할 정도로 강대했다.
“그 대단하다는 흑소대가 이렇게 친히 환대를 해 주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권한울의 말에 헌터 중 한 명이 입가를 비틀었다. 붉은 머리가 인생적인 여성 헌터였다.
여자의 몸이었으나 이 자리에 있는 어떤 남자보다 덩치가 컸다.
대체 어떤 훈련을 거친 것인지 근육 때문에 옷이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흑소대의 부대장 권문주라고 한다.”
권문주는 주먹을 매만지며 앞으로 나왔다. 손가락 마디마다 돌덩어리 같은 굳은살이 붙어 있었다.
“배반자의 아들놈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듣던 대로 아주 뻔뻔한 낯짝이구나.”
배반자의 아들.
오랜만에 들어보는 멸칭에 권한울은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뭐가 웃기지?”
“그런 식으로 불린 게 오랜만이라서요.”
“오랜만? 하긴, 그럴 만하군. 요즘 흑천의 젊은 것들은 전부 널 우러러보기 바쁘니까. 하여간 넋 빠진 놈들이야.”
못마땅하다는 듯 권문주가 혀를 찼다.
“그래봤자 가문을 배신하고 도망친 배반자의 자식일 뿐인데 말이지.”
“오랜만에 들어서 재미있었는데. 자꾸 들으니까 기분이 별로네요.”
“기분이 별로야? 그럼 떠들지 말고 직접 행동으로 보이지 그래?”
권문주가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 순간, 권한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독한 살기와 위압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권한울의 기세에 노출된 흑소대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
겨우 살기 따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피한 것이다. 부끄럽고 한심한 행동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들이 무슨 생각으로 내 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흑소대가 강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권한울은 이미 절대자의 반열에 들었다.
지금 권한울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다섯 명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권혁의 명령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도 우습게 보였나?”
어느새 권한울의 말투가 반말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만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시간이 없으니 단숨에 끝내주지.”
권한울이 마력을 일으켰다. 강대한 기운이 폭풍처럼 퍼져나갔다.
흑소대원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권문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가 다 덤벼들어도 너 한 명을 이기기 힘들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
“알면서도 내 앞을 막았다 이건가?”
“왜냐하면 이쪽도 나름 방법이 있거든.”
권문주가 헛기침을 하더니 흑소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라! 나는 간부들과 함께 권한울을 맡겠다. 나머지는 흑암대원들을 붙잡아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흑소대원들이 움직였다. 많은 숫자의 흑소대원들이 흑암대 세 명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하찮군. 기껏 생각해 낸 수가 겨우 이딴 건가?”
권한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순간, 권문주가 조소를 지었다.
“물론 하나 더 있지.”
그때였다.
권문주의 뒤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마치 포탄을 발사한 것처럼 쏘아진 무언가가 권한울을 강타했다.
권한울은 반사적으로 주먹으로 공격을 막아 냈다. 몸이 밀려나가며 두 발이 땅바닥에 길쭉한 고랑을 만들어 냈다.
“……빠르군.”
권한울조차 피하기는커녕 막는 게 고작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권한울은 내심 놀라며 자신을 공격한 물체를 쳐다봤다.
그 순간, 권한울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괴물이었다.
외형으로 봐서는 사람이었으나 한쪽 팔이 괴물처럼 변이해 있었다. 몹시 크고, 검은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흉악한 발톱이 자라나 있었다.
몸 곳곳에는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비늘의 크기가 제각각이라서 어린 아이가 억지로 붙여 놓은 것 같았다.
“유명대를 전멸시켰다는 괴물이 그쪽인 모양이지?”
괴인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탓에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날 방해하며 좋은 꼴을 못 볼…….”
“권한울.”
그 순간,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쇠로 긁는 것 같이 쇠약해진 목소리. 하지만 미약하게 남아 있는 어조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못 보던 사이에 믿기 힘들 만큼 강해졌어.”
괴인의 목소리를 들으면 들을 수 록 확신이 강해졌다. 권한울은 괴인을 노려보며 물었다.
“……권찬성?”
그 말에 괴인이 가면을 벗었다.
두 눈동자가 파충류처럼 변이되어 있는 권찬성의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