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14화>
214. 방해 (1)
흑천의 공방.
사시사철 용광로가 들끓고 쇠를 두들기는 소리로 가득한 이곳이 이틀째 조용했다.
권혁이 본가를 점령한 이후, 따로 헌터들을 보내서 공방의 모든 일정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으으으으음.”
불이 꺼진 공방.
명장 박태식은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만들어야 할 물건들이 산더미 같은데. 저 빌어먹을 것들은 대체 언제 물러나는 거야.”
박태식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장인이 박태식을 말렸다.
“명장님! 말조심하세요! 헌터들이 귀가 얼마나 밝은데요! 함부로 욕하셨다가 큰일을 당하면 어쩌시려고요.”
“말조심하라고? 그랬다가는 저 썅놈의 새끼들이 내 말을 듣고 날 죽이는 것보다 내가 먼저 화병으로 속이 터져서 죽을 거다!”
“명장님, 저희들을 봐서라도 제발…….”
장인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박태식이야 쌓아 놓은 위상과 실력이 있으니 함부로 하지 못하겠지만 다른 장인들은 다르다.
흑천에 소속되어 있는 만큼 실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것이다.
“젠장.”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박태식은 자신의 성질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죽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다른 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려는 건가.”
문득 박태식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친우라고 할 수 있는 권선우는 연락이 없다. 권혁의 수하들은 흑천의 핵심 시설을 모두 점령했다.
만약 정말로 흑천의 주인이 바뀐다면 박태식은 더 이상 흑천에 남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흑천에 남아서 철을 두들긴 이유는 흑천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권선우와의 인연 때문이었으니까.
“권혁, 그놈 밑에서는 뭘 만들고 싶지 않단 말이지.”
박태식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버럭 화를 냈다.
“권한울 그놈은 대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때였다. 방대한 마력이 공방 전체를 짓누른 것은.
기감에 둔감한 장인들조차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이었다. 소름이 끼치고 온몸이 떨려올 정도였다.
“며, 명장님?”
박태식은 황급히 공방 밖으로 나갔다.
평소라면 안에 들어가서 대기하라고 으름장을 놓던 헌터들의 경고가 들려오지 않는다.
모든 헌터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박태식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대체 저건 뭐지?”
구름을 휘감은 폭풍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폭풍이 지나온 자리에는 먹구름과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스킬은 많다. 하지만 저렇게 주변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스킬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늘을 일그러트리던 폭풍이 박태식이 있는 공방 앞으로 덜어졌다. 수분이 섞인 바람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후우.”
폭풍이 사라지자 네 사람이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을 보자마자 박태식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명장님, 한 달 만에 뵙네요.”
권한울이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 * *
“권한울……?”
장인은 헌터와 달리 직접 싸우지 않기에 기감이 둔하다.
하지만 장인은 헌터에 맞는 장비를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사람을 파악하는 안목을 갖추고 있다.
명장이라 불리는 박태식의 경우에는 특히나 그 안목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진 것이냐?”
한 달 만에 만난 권한울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과거의 권한울도 강하기는 했지만 부족한 점이 더러 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권한울은 그런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족했던 것들이 전부 채워져 있음은 물론 전체적인 기량도 높아져 있었다.
“몸에 좋은 음식 먹고 푹 잤더니 이렇게 됐네요.”
권한울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박태식 명장의 입 꼬리가 살짝 휘었다.
“부탁드렸던 장비를 받으려고 왔습니다. 완성은 됐나요?”
“날 뭘로보고…… 이미 옛저넉에 완성시켜 놨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대가 되네요. 조금 이따 보러 가죠.”
그리 말한 뒤, 권한울은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자신을 향해 적의를 보이고 있는 헌터들이 보였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받을 것도 없습니다.”
헌터 중 한 명이 말했다.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감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저 지켜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스무 명에 가까운 헌터들이 있었으나 어느 한 명 권한울에게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대로 물러나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서로 좋게 끝날 것 같은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부회장님께 공방의 사수를 명령받았으니까요.”
헌터가 무기를 꺼내들었다. 다른 헌터들도 똑같이 행동했다.
“으, 으으, 흑기대랑 싸우게 되다니.”
“오자마자 싸움이라니 무섭네요.”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흑암대 역시 무기를 들고 흑기대원들을 노려봤다.
전투는 피할 수 없다. 권한울은 짧게 혀를 찼다.
“어쩔 수 없죠. 그러면…….”
별안간 권한울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이제 기억이 나는군요. 당신들 전원 흑기대죠?”
권혁의 장남 권찬성이 이끌던 부대로 한때 흑천을 대표하는 유명대였다.
다만, 권한울이 놀란 것은 저들이 흑기대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흑기대를 맡고 있는 사람은 권지석으로 알고 있는데. 왜 보이지 않는 거죠?”
권혁의 차남이자 권찬성의 동생.
권찬성이 권한울을 죽이기 위해서 블라가 가문을 공격했을 당시, 권한울은 권찬성을 이기고 그를 백치상태로 만들었다.
이후, 흑기대는 권지석이 이끌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는 권지석이 보이질 않았다.
“전(前) 대장님 말씀입니까? 그분께서는 실종되신지 오래입니다.”
“실종이라고요?”
“권혁 님께 불려 가신 이후, 없어지셨죠. 그 이후, 제가 흑기대를 맡게 되었습니다.”
헌터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3대 흑기대 대장, 권만식이라고 합니다.”
권한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권만식의 인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권지석이 실종되었다는 말이 묘하게 불길하게 들려왔다.
“권지석이 실종되었다면…… 권찬성은 어떻게 되었죠?”
“그분께서는 권지석 님보다 먼저 실종되셨습니다.”
“권찬성이요?”
“그나저나 언제까지 물어보실 생각이십니까?”
권만식의 살기가 짙어졌다. 권한울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어코 싸우겠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저들이 흑기대원이라면 전투 외에 다른 방법이 있었다.
블라가 가문에서 권찬성을 죽인 이후, 권한울은 흑기대원들의 기억을 봉인해 놓았다.
당시에는 권한울이 권찬성을 이겼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했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마침 다른 방법이 떠올랐네요.”
권한울은 권속혈의 권능을 이끌어냈다. 흑기대원들의 머릿속에 봉인되어 있던 기억들을 모조리 풀어놓았다.
그 직후, 흑기대원들의 표정이 몽롱하게 변했다. 이내 표정이 구겨지며 경악했다.
“어…… 어어…… 어어어엇!”
흑기대원들 전원이 비명을 질러댔다. 무기를 떨구고 바닥에 주저앉는 이도 있었다.
“궈, 권한울이다!”
“다, 당신이 우, 우리 대장님을! 그분을!”
“으, 으아아악!”
흑기대원들은 모두 큰 충격에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이래도 아직 저랑 싸울 생각입니까?”
그들을 향해 권한울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흑기대원들이 하나둘 권한울을 노려봤다.
“용서 못 한다…….”
“감히 우리 대장님을…….”
“네놈이 전부 망쳐 놨어……!”
처음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섬뜩한 살기가 밀려왔다. 흑기대원들은 전원 무기를 움켜잡았다.
“……어라?”
권한울은 잠시 당황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전의를 꺾고자 했던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죽여 주마!”
3대 흑기대 대장 권만식이 먼저 달려들었다. 흑천의 혈족답게 맨주먹이었다.
권만식의 직선으로 뻗은 주먹이 권한울의 안면을 강타하려 했다.
그 직전, 권한울의 손이 사라졌다.
권만식의 안면이 으깨지며 저 멀리 날아갔다. 달려오던 흑기대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주춤했다.
“바, 방금 뭐야?”
“어떻게 공격한 거지? 하나도 안 보였어.”
한때 흑천을 대표하는 부대였던 만큼 흑기대원들의 실력은 세계랭커 중에서도 더블넘버링의 하위권에 필적할 만큼 대단했다.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누구 한 명 권한울의 공격을 보지 못했다.
“으, 으으…….”
게다가 겨우 한 대밖에 맞지 않음에도 권만식은 정신을 차리질 못하고 있었다.
권한울과 흑기대원들 사이에는 그 정도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물러서지 마!”
“그래, 대장님의 원한을 갚아야지!”
흑기대원들이 다시 분노를 불사르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권한울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안 죽였는데도 저러네.”
권한울은 권찬성을 백치로 만들었을 뿐, 죽이지 않았다. 게다가 먼저 목숨을 노린 사람은 권찬성이었다. 이 정도로 심한 원망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기어코 벌주를 선택한 건 당신들입니다.”
권한울의 눈앞에 여의주가 나타났다.
그런데 여의주의 모습이 다른 이들과는 많이 달랐다.
옥빛, 혹은 백색을 띄는 여의주와 달리 권한울이 만들어낸 것은 묵빛이었다.
묵빛 여의주는 깊고 어두운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권능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발현합니다.>
여의보주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흑기원들도 여의보주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을 향해 권한울이 검지손가락을 땅바닥으로 내리그엇다.
그 순간, 흑기대원들의 몸이 땅에 처박혔다. 단순이 머리를 땅에 박은 정도가 아니었다. 커다란 물체에 짓눌린 것처럼 온몸이 땅바닥을 뚫고 파고들었다.
“컥!”
“크어억!”
예기치 못한 공격에 흑기대원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것도 잠시,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두 손으로 땅바닥을 밀어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일어나기는커녕 더더욱 아래로 파고들었다.
“아, 이걸로는 부족한가?”
권한울이 손바닥으로 허공을 움켜잡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흑기대원들의 몸에 있던 마력이 모조리 사라졌다.
“엇?”
더더욱 예기치 못한 사태에 흑기대원들은 당혹해했다.
마력이 사라지자 더 이상 압력에 버틸 수가 없었다. 흑기대원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신음소리만 냈다.
권한울이 뒤를 돌아보자 흑암대와 장인들이 보였다. 모두 경악한 얼굴로 권한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요?”
권한울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빨리 저 사람들 포박 않고.”
그 말을 들은 장인들이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향해 권한울이 덧붙였다.
“아, 그냥은 안 되고 헌터 전용 구속구로 묶어 놓으세요.”
다음으로 권한울은 박태식을 돌아봤다.
“그럼 명장님, 장비 보러 가죠.”
박태식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