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12화>
212. 아버지와 아들 (1)
권한울이 눈을 뜨기 약 이틀 전.
흑천의 부회장 권혁은 아버지 권선우의 부름을 받고 본가를 방문했다.
“아버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권혁은 문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주하연의 얼굴이 보였다.
“응? 하연이 아니냐.”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하연은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권혁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울이 옆에만 찰싹 붙어 있던 애가 본가에는 무슨 일이냐?”
“내가 불렀다.”
안쪽에서 권선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권선우는 탁자 앞에 앉아 서류를 읽고 있었다.
“하연이에게 직접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어서 잠시 오라고 했다.”
“그러셨군요.”
권혁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권선우가 따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저는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잠깐 기다려라.”
본인이 불렀음에도 권선우는 좀처럼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권혁은 묵묵히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아, 하연아. 나도 차 한 잔만 주렴.”
주하연이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는 모습을 보고 권혁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그러나 권혁의 말을 권선우가 가로막았다.
“먼 길을 온 자식한테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앞으로 1시간 뒤에 출장을 나가야 한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마.”
권선우는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섬뜩한 눈빛으로 권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째서 이온과 손을 잡은 것이냐.”
* * *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라.”
권선우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단순히 이온과 관계를 맺은 것을 넘어서 이온을 통해 메이 가문에 정보를 흘리거나 명우를 공격하도록 종용했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다.”
“이런 설마 거기까지 들통이 났을 줄은 몰랐습니다.”
권혁은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들어올렸다.
“잘 숨긴다고 숨긴 것 같은데. 건방진 생각이었나 봅니다. 하긴, 아버지의 이목을 완전히 가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적과 손을 잡은 이유가 무엇이냐. 설마 몰랐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한 번 아버지의 명령으로 소탕작전을 펼친 적도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는 놈이 이딴 짓을 벌였단 말이냐?”
권선우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이온은 권한울을, 가문의 혈족을 건드렸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대죄를 저질렀지. 그걸 알면서도 이온과 손을 잡은 이유가 무엇이냐.”
“우선 한 가지 정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권혁이 검지를 삐죽 세우며 말했다.
“저는 이온과 손을 잡은 적이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린 적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이온과 함께 명우를 공격한 네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된 사실은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권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죄를 추궁당하고 있음에도 여유로워 보였다.
“제 생각보다 훨씬 쓸 만한 놈들이더군요. 굉장히 요긴하게 써먹었습니다.”
“말 돌리지 말고 대답이나 해라. 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딴 짓을 저지른 것이냐.”
권선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권혁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걸 굳이 지금 말씀드려야 합니까? 어차피 차차 알게 되실 텐데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권선우가 주하연에게 시선을 보냈다. 주하연은 인터폰을 누른 뒤 말했다.
“회장님의 명령입니다. 들어오세요.”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권선우의 호위대가 들어왔다.
회장의 호위를 맡고 있는 만큼 대원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무척 강렬했다.
“저놈을 포박해서 감옥에 가둬라. 나중에 직접 추궁하도록 하겠다.”
호위대는 짧게 목례를 한 뒤, 권혁에게 다가갔다. 호위대가 권혁의 팔을 움켜쥐려던 찰나였다.
“하하핫.”
별안간 권혁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웃기지?”
“아, 죄송합니다. 옛날에 들은 격언이 떠올라서요.”
권혁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귀가 어두워지고 눈이 침침해지는 법이라고 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는 그러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것도 아니더군요.”
별안간 집무실의 창문이 깨지며 괴한들이 난입했다.
괴한들은 곧바로 달려와 호위대들을 공격했다. 호위대는 괴한들의 공격을 막느라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호위대를 밀어낸 괴한들은 권혁을 지키듯이 주위에 섰다.
그들의 얼굴은 본 권선우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출입을 허가한 적이 없는 흑소대(黑燒隊)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이냐.”
“흑소대뿐만이 아닙니다.”
권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곳곳에서 폭발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폭발음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권선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권선우의 기감은 본가 전체를 집어삼킬 만큼 넓고 방대하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본가가 공격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의 기감이라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파악하셨겠지요.”
“네놈…….”
“유럽과 아프리카 쪽에 있는 성명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본가의 전력으로도 막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권선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군요. 하긴 지금까지 아버지께서는 흑천을 완벽하게 통제 해오셨으니까요.”
권혁은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이미 옛날부터 그룹의 적지 않은 지분이 제 손에 들어온지 오래입니다. 이제 흑천은 당신만의 왕국이 아니란 말입니다.”
* * *
“아버지께서 절 부르셨을 때 직감했습니다.”
권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일으킨 기세가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퍼져 나갔다.
“드디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을 결행할 날이 왔다고요.”
“결국 반역을 저지르는구나.”
“반역? 저는 세대교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이놈이…….”
“그리고 제게 자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원하는 바가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시키라고. 그래서 가치를 증명하라고. 저는 배운 대로 했을 뿐입니다.”
권선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반대로 권혁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이런다고 네놈이 흑천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더냐. 반대로 많은 이들이 너에게 등을 돌릴 게다.”
“상관없습니다.”
“뭐라고?”
“제가 가지지 못할 바에는 부숴 버려야지요. 그래야 그 잔해를 이용해서 저만의 새로운 흑천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섬뜩한 말을 지껄이면서도 권혁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왜요.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아버지께서는 이미 한울이에게 모든 걸 물려주기로 결심하지 않으셨습니까.”
“네놈이 부순다고 부서질 흑천이 아니다.”
“아뇨. 이미 흑천은 부서지고 있습니다. 이미 권명우 숙부님과 권미가 전투불능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은 권선우, 권혁과 더불어서 흑천 그룹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제가 괜히 메이 가문이 권명우 숙부님을 공격하도록 만든 게 아닙니다. 이날을 위해서죠.”
“혈족에게 손을 대다니.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권혁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돌아올 수 없다뇨? 돌아올 필요가 없지요. 다 부서버리고 새로운 흑천을 만들면 되는데.”
대뜸 권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흑소대는 들어라. 아직 아버지와의 대화가 끝나지 않았으니 물러나도록 해라.”
권혁의 명령이 떨어지자 말자 흑소대원들이 호위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호위대의 멱살을 붙잡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제 조용해졌군요. 그럼 아버지, 또 물어보실 게 남아 계십니까?”
“아니, 없다.”
권선우가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겉보기에는 왜소한 체격의 노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몸을 완전히 일으킨 순간, 권선우가 내뿜은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이제부터는 대화가 아니라 처벌의 시간이니 말이다.”
“이거 영광이군요. 아버지께서 직접 저를 상대해 주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권격이 권혁을 후려쳤다.
그 순간, 저택의 반이 박살이 났다. 권혁의 몸은 저택을 모조리 부수고 1층 바닥에 처박혔다.
“퉷.”
바닥에 처박힌 권혁이 입에서 피를 뱉었다.
“아버지의 의기상인(意氣傷人)은 언제 봐도 무시무시하군요.”
“그러는 네놈은 잘난듯이 떠든 것치고는 별 거 없구나.”
권혁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눈앞에 권선우가 도착해 있었다.
“이제부터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진지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권혁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권선우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갔다.
보이지 않는 권격이 또 다시 권혁을 후려쳤다. 그때, 권혁이 용투기를 일으켰다.
용투기가 권혁의 몸을 둘러싸며 권격을 막아 냈다. 권격은 용투기를 뚫지 못한 채 허공에서 소멸했다.
“아버지, 의기상인은 아랫것들한테나 먹히는 기술 아닙니까.”
권혁이 어깨를 풀며 말했다.
“진지하게 절 죽이고 싶으시다면 좀 더 제대로 덤비시지요.”
그 말에 권선우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용투기의 검은 불길이 주먹과 몸을 휘감았다.
“하연이 거기 있느냐.”
“네, 회장님.”
잔해 속에서 주하연이 고개를 내밀었다. 권선우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선우이 움직였다. 권혁도 땅을 박찼다.
두 사람의 몸이 사라졌다. 일순간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하지만 적막함은 잠시뿐이었다. 두 사람이 충돌하는 순간, 굉음과 용투기가 터져나갔다.
충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연달아 벌어졌다.
“아버지의 실력은 여전하군요!”
두 사람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대화소리만이 두 사람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줬다.
“어릴 때 저는 영영 아버지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권혁은 감개무량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럴수록 굉음의 더욱 커져 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아버지와 대등한 수준까지…….”
그 순간, 말소리가 끊겼다. 무언가 땅에 처박혔다.
피투성이가 된 권혁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하, 하하핫.”
그것도 잠시 권혁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이렇게까지 격차가 날 줄이야. 역시 아버지는 강하십니다.”
권혁은 입에서 피를 뱉어 냈다. 격차를 느꼈음에도 권혁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도 슬슬 한계에 도달하셨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그 순간, 권선우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그 피를 닦아내며 권선우가 물었다.
“……언제부터 눈치 챈 것이냐.”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마음의 병이 원인이라던데.”
“네놈이 그걸 알아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
“천이가 죽었을 무렵이죠?”
그 순간, 권선우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그 아이의 죽음이 그리도 충격적이셨습니까?”
“닥쳐라.”
“그게 아니면 용서하겠다는 말을 건넸음에도 잠적해버린 천이가 그리도 원망스러우셨습니까?”
“닥치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처럼 정점에 이른 사람이 그깟 일로 내상을 입다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
권선우의 몸에서 마력이 폭주했다. 막강한 기운이 권선우를 둘러쌌다.
그와 동시에 권선우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거대해지더니 전신에 비늘이 뒤덮였다.
한 마리의 용이 지상을 내려다봤다. 넓은 그림자가 세상에 드러워졌다.
-네놈…….
용으로 변한 권선우가 권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짓이겨서 한줌의 핏물로 만들어 주마.
권선우가 살기를 일으켰다. 용이 내뿜는 살기는 그 자체로 흉기였다. 화살의 다발이 온 세상에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으하하핫…….”
그 살기를 온몸으로 받아 내면서도 권혁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버지! 그리도 제가 증오스러우십니까? 화신체를 꺼내들어서까지 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권혁의 웃음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권혁은 소리 없이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좋습니다. 자식이 된 도리로서 아버지의 분노를 모두 받아들여야겠죠. 하지만 이대로는 장소가 좋지 않군요.”
권혁이 무언가를 바닥에 던졌다. 토마토 크기의 작은 금고였다.
금고는 땅바닥을 몇 번 구르더니 딸칵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렀다.
그 순간, 빛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 * *
빛이 사라졌을 때, 권선우와 권혁은 더 이상 본가에 있지 않았다.
모래가 가득하고 저 멀리에서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사막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사금옥(沙擒獄)이라는 유물입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권선우를 향해 권혁이 말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매중제일검이 지니고 있던 유물입니다. 비고에 있던 걸 제가 가져왔죠. 유물 안에 있는 밀폐차원에 사람을 감금하는 유물입니다.”
권혁이 양팔을 펼쳤다. 그에 맞춰서 모래바람이 휘몰아쳤다.
“우리 둘의 싸움을 위해서 준비한 곳입니다. 여기라면 둘 다 마음껏 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이건 전투가 아니다. 네놈의 처형식이지!
권선우가 권혁을 향해 꼬리를 내리치려 했다.
그때, 권혁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방금 전, 권선우가 마력을 일으켰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본 권선우가 믿기 힘들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네놈…… 설마?
권혁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전신의 근육이 부풀어오르고 뼈가 자라났다. 입고 있던 옷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길쭉한 몸체가 하늘 높이 뻗어 나갔다. 거대한 손과 발이 땅을 짚고 몸을 지탱했다.
-흐하하하핫!
두 번째로 나타난 용, 아니 권혁이 광소를 터트렸다.
-화신체가 된다는 건 이런 기분이었군요! 이렇게 기분을 아버지 혼자서만 즐기고 계시다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권혁은 광소를 멈추고 권명우를 쳐다봤다.
-제가 이온과 접촉한 목적이 궁금하다 하셨죠?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 힘, 이 전능한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죠.
권명우와 권미가 없다 한들 권선우를 죽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권선우야 말로 흑천의 진짜 전력이니까. 권선우를 상대하기 위해서 권혁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럼 아버지. 결판을 내 봅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용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