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11화>
211. 준비기간 (3)
세 개의 영약은 몸속에 들어오자마자 무형의 기운으로 변환되었다.
능력치를 SS급으로 상승시킬 만큼 강대한 기운들이다.
세 개의 기운은 서로를 견제하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대치는 금방 끝났다.
<‘건강혈(健康血)’ 강대한 기운을 감지합니다!>
<기운을 흡수합니다!>
건강혈이 권능을 발현하자 세 개의 기운이 모조리 권한울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영약의 기운들도 어떻게든 버티고 저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건강혈의 권능이 훨씬 강력했다.
<‘건강혈(健康血)’이 모든 기운을 집어삼켰습니다!>
<신체가 활성화 됩니다!>
흡수된 기운은 몸 곳곳으로 퍼졌다. 손가락 끝에 있는 모세혈관에도 기운들이 가득 찼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만한 기운들을 동시에 쏟아붓는 일이다. 만약 육체가 버티지 못하면 권한울의 생명이 위험하다. 이 순간만큼은 권한울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걱정정과 달리 육신은 이 모든 기운을 순식간에 흡수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잡음도 없었다.
‘어라?’
마치 폭우가 내려도 땅이 모든 물을 흡수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부족한 감마저 있었다.
‘환골탈태의 영향인가?’
환골탈태 덕분에 권한울의 육신은 근본부터 바뀌었다. 그렇기에 저 많은 기운을 무리 없이 담아낼 수 있는 듯 했다.
새삼 권한울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기연을 얻었는지 실감했다.
‘이제부터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육신이 영약의 기운을 완벽하게 흡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니 자연스럽게 명상에 잠겼다.
* * *
명상에 몰입한 순간부터 권한울의 의식은 점차 무의식의 세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아도, 이성도,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명상에 취미가 없음에도 기이할 만큼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그렇게 명상이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권한울은 이상한 장소에 와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기껏해야 손이 닿는 거리만 보일 뿐이었다.
발에 닿는 감촉으로 보건데 바닥에는 모래가 깔려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권한울이 고민할 때였다.
별안간 어두운 공간이 밝아졌다. 저 앞에서 무언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권한울은 빛이 쏟아지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이윽고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벽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큰 벽은 아니었다.
너비는 약 2미터. 높이는 대략 3미터.
건물을 철거하다가 미처 부수지 못하고 남겨진 벽을 보는 듯 했다.
‘음?’
벽을 살피던 중에 권한울은 재미있는 것을 찾았다. 표면에 기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육망성?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규칙이 없어.’
벽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모든 구멍은 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구멍에는 보석과 비슷한 광물이 박혀 있었다. 딱 한 구멍만 빼고 말이다.
‘왜 여기만 비어 있지?’
권한울은 구멍에 박힌 보석들을 살폈다. 그러다 손을 뻗어 표면을 만졌다.
그 순간,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보석이 내뿜는 기운들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흑룡혈……?’
권한울은 다른 보석들도 만져봤다. 수라혈, 초인혈, 건강혈, 권속혈, 환수혈, 등등.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혈통의 기운들이 느껴졌다.
그제야 권한울은 깨달았다. 이 보석들의 정체가 뭔지.
‘혈통들의 근원이야…….’
권한울은 각 혈통들의 진혈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건 진실이 아니다. 권한울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진혈이 아니라 혈통의 근원들이었으니까.
권한울이 지니고 있는 그릇에 혈통의 근원이 담기면서 진혈이 발현된 것이다.
즉, 권한울이 가지고 있는 힘은 실제로 더 거대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구멍이 하나 비어 있는 거지?’
이미 권한울은 세간에 알려져 있는 혈통들은 모조리 습득했다.
그럼에도 한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아직 얻지 못한 혈통이 있다는 것.
‘반마혈이랑 비슷한 경우인가?’
악마의 왕에게서 얻은 반마혈은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혈통이었다.
아직 하나의 혈통이 더 남아 있다. 그 혈통만 얻는다면 벽의 구멍이 모두 채워진다.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거지?’
그릇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권한울은 이게 어떤 힘인지 전혀 몰랐다.
권한울의 잘못이라 볼 수는 없었다. 이 그릇을 오랫동안 소유했던 이온조차 이 그릇의 사용법만 알아냈을 뿐이니까.
‘이런 게 보인다는 것은 여기는 내 의식의 심부라는 뜻이겠군.’
명상을 하던 도중 자신도 모르게 심부로 파고든 모양이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 황량한 곳이라니.’
권한울은 모래바닥 위에 주저앉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손으로 바닥의 모래를 움켜쥐었다가 흩뿌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릇은 내 육체에 담겨 있는 게 아니었나?’
사소한 의문이 들었으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흔히 영혼과 육신은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무엇보다 명상은 신체를 관조하기에 좋은 수단이다.
‘아.’
그때, 전신이 붕 뜨는 듯한 부유감이 들었다. 권한울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권한울은 부유감에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음에도 눈앞이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 * *
“……후우.”
권한울은 긴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내면의 공간이 아닌 폐관실이 눈에 들어왔다.
권한울은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무언가 몸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먼지잖아?”
어처구니없게도 바닥에 떨어진 것들은 먼지였다. 권한울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먼지들을 쳐다봤다.
“대체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던 거야?”
권한울은 구석에 놓인 전자시계를 쳐다봤다. 시계에는 시간은 물론이고 날짜도 적혀 있었다.
“……한 달이 넘었잖아?”
권한울의 체감으로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영약은 무사히 흡수한 건가?”
몸속에서 격돌하는 기운이 없는 걸로 봐서 흡수는 무사히 끝났다.
다음으로 영약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흡수했는지 알아봐야 했다.
“상태창.”
권한울이 짧게 말하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각성자 : 권한울
근력(SS) 0.00 / 민첩(SS) 0.00 / 체력(SS) 0.00
마력(SS) 0.00 / 감각(SS) 0.00 / 정신력(SS) 0.00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권한울이 기대했던 대로 건강혈의 권능을 이용해서 영약 세 개 만으로 남아 있는 능력치를 SS급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드디어 권한울도 진정한 절대자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말이 SS급이지 혈통의 권능을 적용하면 그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미 근력 스텟이 S급일 때도 초인혈의 권능인 역발산기개세로 SS급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하지 않았던가.
“모든 능력치가 SS급이란 말이지.”
어렵게 얻은 힘, 실험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이곳은 수련을 위해서 지어진 폐관실이 아니던가.
권한울은 우선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주 살짝만 마력을 움직였을 뿐인데 해일과도 같은 힘이 몰려왔다.
양은 물론이고 질도 비교할 수 없다. 단순히 마력을 일으킨 것만으로 폐관실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전신의 마력이 손가락에 집중되었다.
마력은 용마기로 변했다. 용마기는 불꽃이 되어 타오르다가 다시 응어리졌다. 그리고 검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을 바라보는 권한울의 얼굴이 진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완성했다.”
동양에서 말하기를 강기(罡氣).
서양에서 이르기를 오러블레이드.
용어는 다르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절대무적의 창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초월자의 기예.
그 힘이 권한울의 손끝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불완전한 강기가 아니었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강기였다.
원래는 아수라왕의 힘을 빌려야만 구현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혼자 힘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아쉽네. 뭔가를 힘껏 쳐보고 싶은데.”
권한울은 입맛을 다셨다.
이 폐관실이 튼튼하게 지어져 있기는 하지만 강기를 버텨 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하는 수 없이 권한울은 강기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슬슬 나가 볼까.”
그때,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권한울은 나가려던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은 우선 한 달 동안 비어 있던 뱃속에 음식물을 집어넣는 게 급했다.
* * *
폐관실에 마련된 음식들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뒤, 권한울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인증절차를 밟으며 잠겨 있던 문을 열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하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달 만에 보는 건데. 뭐라고 말하려나.”
고직한 사람이니 아직도 이 시설에서 권한울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주하연의 딱딱한 인사를 떠올리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 이제 나오셨습니까!”
하지만 폐관실의 문이 열렸을 때, 권한울을 맞이한 사람은 주하연이 아니었다.
돌핀 사의 회장 데반 위프스였다.
“언제 나오실지 몰라서 무서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데반 위프스는 몹시 겁에 질려 있었다. 주변에 살기가 감지되지 않았음에도 얼굴은 창백하게 질리고 몸은 덜덜 떨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여기는 왜…… 하연 씨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 그게 말입니다! 일단 심호흡을 한번 하세요.”
“예?”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일단 마음을 다스리세요! 아시겠죠? 절 따라서 심호흡을 하시면서…… 후하, 후하.”
데반 위프스가 심호흡을 하는 시늉을 했다.
촌극이 따로 없었으나 권한울은 웃을 수 없었다. 데반 위프스의 반응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말씀해 주시죠.”
“자, 잠시만요!”
데반 위프스가 품에서 휴대용 술통을 꺼내서 홀짝였다. 냄새로 보아서 보통 독주가 아니었다.
“그, 그럼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데반 위프스는 술통을 모두 비우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흑천 일가에 바, 바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데반 위프스의 말이 맞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 말을 듣는 순간, 무슨 행동을 했을지 몰랐다.
“반란이라고요? 대체 누가 그딴 짓을 벌인 겁니까?”
“흐, 흑천의 부회장 권혁이 주동자라고 합니다!”
권혁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권한울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언젠가 그 인간과 충돌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설마 이런 식으로 예상이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회장님께서는 무사하십니까?”
“흑천 일가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내부사정은 아무도 모릅니다…….”
권한울은 혀를 찼다.
흑천의 본가에서, 그것도 권선우가 있는데 반란이 금방 진압되지 않았다. 상황이 나쁘다는 증거였다.
“하연 씨는요? 어디에 있는 겁니까?”
“그게…….”
데반 위프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흑천 일가에 불려갔다가 연락이 끊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