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09화>
209. 준비기간 (1)
권한울은 여의보주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렸다.
손에 쥐고 있으면 느껴졌다. 여의보주 안에 담겨 있는 거대한 힘이 말이다.
“흑룡의 권능이라…….”
흑천의 시조 권현문은 흑룡을 사냥함으로써 그 힘을 손에 넣었다.
그 당시 나타난 흑룡은 위험성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고 강력한 존재였다고 한다. 그런 흑룡을 사냥한 권현문은 아마도 절대자조차 초월한 존재일 것이다.
다만, 권한울이 감히 추측하기로는 거기에는 아마 약간의 비밀이 있을 것이다.
이전에 권한울은 그릇에 담긴 악마의 기억을 보았다. 차원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악마는 힘이 크게 약해지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그 결과 지나가던 아제트 헤르메스에게 너무나도 쉽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권현문도 그런 행운을 얻었을지 모른다.
“확실한 건 아무도 모르지만.”
진실은 차치하더라도 이 여의보주가 어마어마한 물건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장도 대단한 물건이야.”
권한울은 여의보주를 챙긴 뒤, 정장을 다시 한번 더 살펴봤다.
흑룡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로 제작된 정장은 굉장히 튼튼하고 착용 시 얻을 수 있는 능력도 많았다.
“하지만 아쉬운 걸. 흑룡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겨우 이 정도 성능이라는 게.”
설명에는 대명장 박무명이 만들었다고 적혀 있었으나 그런 것치고는 성능이 다소 아쉬웠다.
<가뭇뫼>
-품질 : ???
-설명 : 대명장 박무명이 제작한 희대의 걸작. 흑룡의 비늘과 가죽, 힘줄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제작되었다.
-능력
1. 전체 능력치 30% 상승
2.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충격을 50% 상쇄.
3. 충격을 흡수한 후, 방출 가능.
좋게 말하면 간단하지만 강력하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단순한 효과들이다.
“좀 더 소재의 힘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권한울은 장인은 아니지만 진(眞) 흑룡혈의 소유자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었다. 흑룡이 가진 힘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 정장이 만들어진 것은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초창기다.
아무래도 현재와 비교하면 제작자들의 능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번 개량을 해야겠는데…….”
이런 엄청난 물건을 과연 누가 손댈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권한울은 자신의 멍청함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세상 최고의 장인이 흑천 일가에 있지 않았던가.
권한울은 모든 물건을 챙긴 뒤, 흑천비고를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하연이 권한울을 맞이했다.
“권한울 님, 필요한 물건은 찾으셨습니까?”
“찾고말고요.”
권한울이 굉장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연 씨, 돌아가기 전에 한 곳만 더 들리죠.”
“또 어디를 가시려구요?”
주하연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권한울이 즉시 대답했다.
“공방에 볼일이 있어서요.”
* * *
오랜만에 찾아온 공방은 여전히 열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이 멍청한 놈아! 화로에 열기가 낮잖아! 빨리 화정석을 더 집어넣지 못해!”
그 한가운데에서 박태식 명장은 다른 장인들을 향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인마! 그게 얼마나 비싼 재료인데. 그렇게 허비하고 있어! 자꾸 이런 식으로 일할 거면 보조부터 다시 배워!”
한참을 소리치던 박태식 명장의 눈에 권한울과 주하연이 들어왔다.
“명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
“누가 이 시간에 외부인을 공방에 들여보냈어!”
인사를 하려는 찰나, 불쾌함에 가득한 박태식 호통이 떨어졌다.
“제, 제가 열어 드렸습니다. 명장님을 뵈어야 한다고 해서…….”
“네가 여기 주인이냐? 왜 멋대로 행동해!”
“하지만 그…… 권한울 님이시잖습니까? 그런 분이 부타하시는 어떻게…….”
박태식 명장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닥치고 당장 쫓아내! 일하는데 방해된다!”
한껏 혼난 장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권한울에게 달려왔다. 연신 사과하는 그에게 권한울은 괜찮다고 말했다.
“제가 실수를 했네요. 그럼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권한울과 주하연은 공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온 권한울이 쓴웃음을 지으며 주하연에게 말했다.
“잊고 있었네요. 박태식 명장님이 이런 분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처음 박태식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권지석이 권위로 밀어붙여서 장비제작을 맡기려 했으나 박태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장인들은 다 저렇게 고집불…… 아니, 자아가 확고하신가요?”
“그럴 리가요. 박태식 님이 유별나신 겁니다.”
“역시나.”
그렇다고 안 좋게 볼 수도 없었다.
박태식은 그 전설적인 무기인 멸천검을 제작한 세계최고의 장인이 아니던가.
주하연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공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따라와라.”
박태식 명장은 한 마디를 툭 내뱉고 걸음을 옮겼다. 권한울과 주하연은 그 뒤를 따라갔다.
박태식 명장이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곳은 개인공방이었다.
개인공방에 들어온 박태식 명장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권한울에게 물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거냐?”
“장비의 개량을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개량?”
권한울은 아공간을 열어서 거뭇뫼를 꺼내서 내밀었다.
“이 정장의 성능이 다소 아쉬워서요.”
“…….”
정장을 꺼낸 순간부터 박태식 명장은 말이 없어졌다.
조심스럽게 정장을 받은 뒤, 이리저리 살피다가 권한울에게 물었다.
“이걸…… 대체 어디서 발견한 것이냐?”
“흑천비고에 있었습니다.”
권한울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대답에 박태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흑천비고에 이런 게 있었다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저는 좀 특별하잖습니까.”
권한울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러자 박태식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너는 진혈이었지.”
박태식은 그 뒤로도 계속 정장을 바라봤다.
문득 박태식이 물었다.
“이 장비를 제작하신 박무명이 어떤 분이신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내 조상님이시다.”
예상치 못한 고백에 권한울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 내가 막 망치를 들었을 때, 조부님께서 말씀해 주셨지. 우리 집안의 시작이 되는 조상님이 계시다고 말이다.”
박태식은 정장을 곱게 접은 뒤,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걸 개량해 달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좋아. 그 부탁을 들어주마. 무엇보다 후손으로서 조상님께서 이렇게 한심한 작품을 남기셨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으니 말이다.”
권한울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조상의 작품조차 한심하다고 말하다니 박태식다웠다.
“아, 그리고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뭐냐?”
권한울은 또 아공간을 열어서 여섯 개의 무기들을 꺼냈다.
그 무기를 본 박태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너 인마…… 그, 그건 또 어디서 구한 거냐……?”
“이번에 메이 가문의 비고에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것들도 제가 원하는 대로 개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 이걸 개조해 달라고?”
박태식은 떨리는 눈으로 여섯 개의 무기를 바라봤다.
“제 특기는 권법이라 이렇게 많은 무기를 쓸 일이 없어서요. 그래서 저한테 맞게 바꾸려고 합니다.”
박태식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권한울을 바라봤다.
“이렇게 완벽한 무기들을 개조해 달라니…… 그런 정신 나간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그러는 명장님의 눈빛도 정상은 아니십니다.”
권한울의 말대로 박태식의 눈동자는 무언가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으하! 그거야 당연하지! 이렇게 좋은 소재를 맡기는데. 기뻐하지 않을 장인이 어디에 있겠느냐!”
박태식은 무기들을 챙기며 말했다.
“기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장비 제작은 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이 반이 넘는다. 이 물건들은 전부 소재가 좋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박태식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달만 기다려라!”
* * *
박태식 명장과의 면담을 끝마친 뒤, 권한울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주하연과는 도중에 헤어졌다. 그녀도 따로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택에 도착하자 집사와 사용인들이 권한울을 맞이했다.
집사는 권한울이 건넨 외투를 받으며 말했다.
“권한울 님 앞으로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물건이요?”
전혀 생뚱맞은 소리에 권한울은 눈동자만 깜빡거렸다.
“어디서 왔나요?”
“바벨 가문과 블라가 가문에서 왔습니다.”
“……아.”
그 둘이 선물을 왜 보냈는지 한참을 고민하던 권한울은 이내 떠올렸다.
“어디에 있죠?”
“지하실로 옮겨 놓았습니다. 다만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어서 검사원들이 위험요소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권한울은 집사의 걱정에 괜찮다고 답한 뒤,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서야 집사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바벨 가문에서 보내온 것은 커다란 강철 상자였다. 그것도 경계선이 전혀 없이 통짜 철로 되어 있었다.
권한울은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어떻게 여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대체 어떻게 열라는 거지?”
권한울이 의아하게 여기며 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였다.
<1차 인증 절차를 시행합니다.>
<마력의 성향을 파악 중.>
<‘권한울’ 확인되었습니다.>
상자에 가로로 길쭉한 선이 그어지더니 뚜껑이 열렸다.
안에는 또 다른 상자가 놓여 있었다. 권한울이 그 상자에 손을 얹자 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2차 인증 절차를 시행합니다.>
<대상의 형상을 파악 중>
<‘권한울’ 확인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권한울은 몇 번이고 인증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고 나서야 가장 심부에 있는 물건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해야 하나?”
권한울은 궁시렁거리며 상자에 담겨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소마(Soma)>
-품질 : 레전더리(SSS+)
-설명 : 신들이 마셨다는 고대의 음료. 지금은 사라진 신성한 나무에서 얻은 즙을 가공해서 만든다고 한다. 복용자에게 특별한 힘을 선사한다.
-능력
1. 한 가지 능력치를 SS급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
2. 모든 스킬의 위력이 10% 증가된다.
3. 모든 신체능력이 30% 활성화가 된다.
“……철저할 이유가 있네.”
흑천 일가와 더불어서 드래곤의 혈통을 잇고 있는 바벨 가문.
바벨 가문의 가주 달리아 바벨이 약속했던 SS급 영약이 드디어 권한울의 손에 들어왔다.
“근데 블라가 가문에서 온 물건은 어디에 있지?”
지하실을 살피던 권한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실의 천장에 배가 불룩 튀어 나온 뚱뚱한 박쥐가 권한울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넌 또 뭐야?”
권한울이 어이가 없어서 물었으나 박쥐는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게 블라가 가문에서 보낸 물건은 아니겠지?”
권한울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갑자기 박쥐가 몸을 휙 돌렸다. 그러자 등에 달려 있는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권한울은 손을 뻗어 편지를 잡아들었다.
-시조님!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그동안 시조님을 못 뵈어서 소녀는 하루하루가 지옥을 사는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카탈리나 블라가가 보낸 게 맞군.”
첫 소절부터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권한울은 꾹 참고 편지를 읽어 나갔다.
-다짜고짜 동물을 보내서 당황하셨죠? 그건 제가 키우는 몬스터랍니다. 뱃속에 물건을 담아 둘 수 있어서 무언가를 전할 때 유용하죠.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물건을 뺏을 수 있기 때문에 나름의 안전장치도 해놨죠. 허튼 수작을 부리면 뱃속에 있는 내용물이 모두 녹아서 사라진답니다!
-물건을 확인하시려면 가문의 방식을 사용하시면 돼요!
가문의 방식이라니?
권한울은 의문을 가진 채 남은 구절을 읽어갔다.
-그럼 편지는 여기서 끝마치겠습니다. 소녀는 시조님을 다시 뵐 그날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추신 : 그런데 바벨 가문의 그 주책맞은 여자는 왜 권한울 님께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거죠?
어째서일까. 추신을 읽는데 오한이 드는 것은.
권한울은 편지를 대충 접어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박쥐를 한참동안 노려봤다.
“빨리 내놔.”
한번 협박을 해 봤으나 박쥐는 고개를 홱 돌릴 뿐이었다.
“가문의 방식이라…….”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권한울은 권속혈의 권능을 발현했다.
권한울의 눈동자가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박쥐의 얼굴이 몽롱하게 풀렸다.
박쥐가 몇 번 헛구역질을 하더니 비닐에 쌓여 있는 물체를 내뱉었다.
“윽.”
권한울은 점액으로 뒤덮인 비닐을 걷어 낸 뒤, 안에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선도복숭아>
-품질 : 레전더리(SSS+)
-설명 : 신선의 세계에서만 재배할 수 있다는 천상의 과실. 섭취할 시, 불로불사를 얻는다고 한다.
-능력
1. 한 가지 능력치를 SS급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
2. 체력과 마력이 총량이 30% 상승.
3. 재생력 및 생명력이 60% 상승.
“이야…… 진짜 구해 왔네.”
현재 블라가 가문은 정착지를 잃고 떠도는 신세다. 그런 와중에 SS급 영약을 손에 넣다니.
카탈리나 블라가의 수완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SS급 영약이 세 개…….”
현재 권한울이 보유한 SS급 능력치는 정신력 하나뿐이다.
이 세 개를 섭취함으로서 SS급 능력을 네 개로 늘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SS급 영약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걸로 끝내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건강혈을 이용해서 이 영약들의 효능을 증폭시키면 뭔가 나올 거 같은데.”
권한울은 영약을 만지작거리다 아공간에 도로 집어넣었다.
복잡한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권한울은 스마트폰을 꺼내 주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연 씨, 미안해요. 혹시 바쁜데 방해한 건 아니죠?”
스마트폰 너머로 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은 작게 웃은 뒤 말했다.
“안전하게 영약을 섭취할 만한 장소가 필요해서요.”
주하연은 권한울에게 구체적인 조건을 물었다. 그걸 상담하느라 통화시간이 길어졌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참 뒤에야 통화가 끊어졌다. 권한울은 영약을 아공간에 집어넣고 지하실을 나섰다.
그로부터 3일 뒤.
권한울은 주하연이 섭외한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