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200화>
200. 붕괴 (2)
거인의 주먹은 모든 것을 분쇄했다.
바닥만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닌, 벽과 천장까지 모조리 가루가 되었다.
박살 난 잔해들이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어딘지 모를 방에 떨어졌다.
<반(半) 화신체를 해제합니다.>
권능이 풀리자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환골탈태 덕분에 모든 혈통이 강화되기는 했으나 반(半) 화신체를 두 번이나 사용하는 것은 역시나 버거운 일이었다.
<‘건강혈(健康血)’이 급격한 체력저하를 감지합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모든 혈통이 잠들 정도로 지치지는 않았다.
권한울은 잠시 잔해에 걸터앉고 체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잔해를 바라봤다. 저기 어딘가에 배철민의 시체가 파묻혀 있을 것이다.
파낼 생각은 없었다. 이곳이 그의 무덤인 셈이었다.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부모님에 대한 복수를 해야 했다. 배 씨 가문을 책임 져야 했다. 너무 할 일이 많았다.
권한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배철민 덕분에 해방된 강철대는 처음에는 희희낙락했다.
꿈에 그리던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기뻐서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자유의 몸이 된 것도 아니다. 자신들을 노예로 부려먹던 흑천에게 복수할 기회까지 생겼다.
“……어디로 가야 하지?”
문제는 그들이 길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비고의 내부가 미로처럼 복잡한데다 탐지 스킬이 통하지 않는 탓에 흑천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야, 박형식. 어떻게 좀 해 봐. 너 같은 병신 새기가 길도 못 찾으면 어떻게 해.”
“귀머거리냐? 말했잖아. 탐지 스킬을 사용해도 멀리 퍼지지 않아서 길을 알 수가 없다고.”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해 보라고. 이 병신아.”
“근데 이 새끼가 아까부터 자꾸 지랄하네.”
계속 이상한 곳을 헤매니 강철대 내부의 분위기도 점점 험악해졌다.
두 강철대원이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서로를 노려봤다.
그때였다.
“어, 어어?”
강철대원 한 명이 놀라서 소리쳤다.
갑자기 벽이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한 여성이 걸어 나온 것이다.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으나 가슴과 골반의 굴곡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 탓에 성별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여, 여자다.”
“여자잖아?”
몇몇 강철대원들의 눈동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여자의 몸매를 훑으나 정신이 없었다.
“이 새끼들이 여기서도 지랄이네.”
“정신 차려, 이 발정난 개새끼들아. 적이면 어떻게 하려고.”
제정신인 강철대원들은 경계의 눈초리로 여인을 노려봤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여자가 평범할 리 없기 때문이다.
“…….”
여자는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서 왼쪽의 벽을 가리켰다.
여인이 걸고 있던 목걸이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벽이 열리더니 길이 나타났다.
“어?”
“어어엇?”
강철대원들은 놀라서 여인을 돌아봤다.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나왔던 벽속으로 되돌아갔다.
벽이 다시 닫히며 여인도 사라졌다. 그러나 강철대원들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멍하니 벽을 노려봤다.
“바, 방금 뭐였냐?”
“글쎄…… 하여간 우리를 도와준 거 같은데.”
“도와줘? 그럼 저기로 가면 흑천대가 있다는 거야?”
그 말에 강철대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방금 전의 맹하고 어설픈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섬뜩한 눈빛으로 길을 쳐다봤다.
“가서 오랜만에 흑천의 피 맛을 보자.”
* * *
길을 따라 걷던 강철대는 금방 흑천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권명우는 아니군.”
“저기 우리 애들도 있네.”
그들이 발견한 부대는 비고의 갈림길에서 흑천대와 강철대를 반반씩 섞어서 임시로 구성했던 부대였다.
“저 부대를 이끄는 놈이 누구였더라. 권준열이었나?”
“아마 맞을 걸.”
“권명우 다음으로 강하다는 놈이잖아.”
부대를 이끄는 사람은 흑천대의 부대장 권준열이었다. 권명우의 명성에 가려져 있을 뿐, 흑천 그룹 내에서 직계를 빼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권준열에 대한 일화를 떠올리던 강철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면 승부는 답이 없다. 알지?”
“등신아. 애초에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배철민, 그 새끼가 말한 대로 간다.”
강철대는 조용히 작전을 구상했다.
“일단 권준열부터 죽이자.”
“대가리 비었냐? 권준열만 죽이면 안 돼. 흑천대에도 피해를 입혀야지. 걔들 서너 명만 있어도 우리 다 죽어.”
“권준열은 반드시 죽이고, 흑천대에는 최대한 피해를 입히고, 나머지는 다 같이 덤비자 이거지?”
“그래, 우리들이랑 저기 권준열이랑 같이 있는 강철대를 합치면 될 거다.”
작전회의는 금방 끝났다. 그리고 강철대원들은 무기를 들어서 서로를 겨누었다.
“에라이, 씨발. 자해를 하는 날이 오다니.”
“의외로 할 만하니까 너무 겁먹지 마.”
“그건 너 같은 변태 새끼나 그렇고.”
강철대원들은 자신의 몸을 칼로 난도질 했다. 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권준열이 이끄는 부대로 달려갔다.
“으, 으아아악!”
“사, 사람 살려!”
별안간 강철대원들이 쏟아져 나오자 권준열을 비롯한 흑천대원들은 크게 당황했다.
“강철대?”
“무슨 일이야?”
강철대원들은 흑천대원들의 앞에 엎드렸다. 벌벌 떨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메, 메이샤오가 스, 습격을 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흑천대의 부대장 권준열이 놀라서 강철대원을 붙잡았다. 강철대원은 떨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가, 갑자기 나타나서 구언 대장을 죽이고 저희들도 공격했습니다!”
말하는 동안에도 강철대원의 몸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권준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권명우 님이 계시는데. 메이샤오가 함부로 움직였단 말입니까?”
강철대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피를 너무 흘린 탓에 안색이 창백했다.
“보통 일이 아니군요. 대장님께 돌아가야겠습니다.”
권준열이 몸을 돌렸다. 그때, 강철대원이 다른 대원들과 눈을 마주쳤다.
줄곧 공포로 질려 있던 강철대원의 눈동자에 살기가 맺혔다. 일제히 무기를 빼 들려던 찰나였다.
“아!”
그때, 난데없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흑천대도, 강철대도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찾았네요.”
권한울이 반가움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달려오고 있었다.
* * *
“권한울 님?”
권준열이 놀라서 권한울을 맞이했다.
“흑암대는 어쩌고 혼자 계신 겁니까.”
“그게 말이죠.”
권한울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짧게 이야기했다. 권준열의 얼굴이 또 다시 심각해졌다.
“이온에서 비고에 개입했습니다. 아무래도 메이샤오와 손을 잡은 듯합니다.”
“어쩐지 공간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니…… 그보다 배철민이 배신을 했단 말입니까? 그 배후에는 이온이 있고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철대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습격을 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 공격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강철대의 숫자가 좀 많네요?”
“아, 그게 말입니다.”
권준열은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구언 대장님이 습격을 당해서 죽었다고요?”
“예, 어서 이 일을 대장님께 알려야 합니다.”
권한울은 놀라 얼굴로 강철대를 돌아봤다. 강철대는 통곡을 하듯 울음을 터트렸다.
“그 여자가 단칼에 저희 대장님의 목을 베었습니다!”
“메이 가문의 혈살검이 악독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설마 그 정도 일 줄은…….”
“크윽, 대장님.”
강철대의 이야기를 듣던 권한울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강철대는 구언 대장님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좀 다른 모양이네요?”
그 말에 강철대원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실제로는 그렇게 울면서 화를 낼 정도로 각별한 사이셨군요?”
“메이 가문이 대장님을 죽였는데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 맞습니다!”
몇몇 약삭빠른 강철대원들이 크게 외쳤다. 하지만 권한울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메이샤오가 공격으로 상처를 입으셨다고요?”
“그렇습니다! 구언 대장님이 막지 않으셨다면 모두 그 자리에서 죽었을…….”
“근데 왜 상처자국이 일정하지가 않죠?”
권한울이 강철대원들을 한 명씩 가리키며 말했다.
“상처의 크기로 봐서 저 사람은 단검으로 난 상처고, 이 사람은 장검에 베인 상처고, 저쪽은…… 도끼날인 거 같은데.”
이쯤 되니 강철대원들도 할 말이 궁해졌다.
“……빌어먹을!”
“저 새끼는 왜 지금 나타나서 초를 치는 거야!”
“씨발, 다 죽여 버려!”
강철대원들이 분노를 터트리며 무기를 빼들었다.
흉흉한 살기가 쏟아졌으나 권한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마력조차 끌어올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철대원들이 무기를 뽑자마자 흑천대원들이 움직였다. 무기도 들지 않은 채 맨손으로 강철대원들의 급소를 꿰뚫었다.
“컥!”
“끄억!”
흑천대원들의 손이 강철대원들의 목을 베고, 심장을 터트렸다.
강철대원들은 허수아비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딱 한 명만 남기고.
“히, 히이익!”
남아 있는 강철대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넘어졌다. 흑천대원들은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위를 포위했다.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남김없이 말해야 할 거다.”
쏟아지는 살기에 강철대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 * *
고문을 할 필요도 없었다. 강철대원은 잔뜩 검에 질린 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털어놓았다.
“……배철민이 너희들의 봉인을 풀어줬다고? 어떻게?”
“그, 그게…… 저기 저놈의 품을 뒤져 보시면 단검이 나올 겁니다…… 그걸로 목에 있는 낙인을 베면 금제가 풀립니다…….”
흑천대원 중 한 명이 시체를 뒤졌다. 강철대원이 말한 대로 심상치 않은 단검이 나왔다.
“이걸로 금제를 풀고 우리를 습격할 계획이었단 말이지?”
“이 쓰레기들이 기어코 사단을 일으키는구나.”
흑천대원들은 분노를 터트리며 강철대원을 노려봤다. 강철대원은 몸을 움찔 떨었다.
이내 흑천대원들의 분노는 남아 있는 강철대원들에게 쏟아졌다.
“너희들도 설마 이놈들의 계획에 가담했냐?”
“아, 아닙니다!”
“저,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권준열의 지휘를 받고 있던 강철대원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들은 전혀 모르는 일의 공범자로 몰려서 죽게 생겼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배철민은 비고 안에서 이온과 조우했으니 저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일 겁니다.”
의외로 권한울이 강철대원들의 편을 들어줬다. 그 말에 강철대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배철민이 저들에게 먼저 접촉했다면 똑같이 행동했겠지만요.”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강철대원들은 다시 기겁을 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 저희들은 어, 억울합니다!”
강철대원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빌기 시작했다. 권한울은 권준열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처벌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죠.”
게다가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권준열 님, 메이 가문과 이온이 손을 잡았다면 저희도 긴장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흑암대를 찾아서 지원해주세요.”
“권한울 님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권준열의 물음에 권한울은 고민 없이 대답했다.
“작은 할아버님을 찾으러 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