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95화>
195. 각개전투 (1)
권한울은 칼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매화칠검 정도 되는 인물을 일검에 참살했으나 별 감흥은 들지 않았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아수라왕 덕분에 이긴 것이기 때문이다.
“아, 죽이기 전에 물어봤어야 했는데.”
메이지펑은 권한울의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흑암대와 권미, 그리고…….
“이온. 그 하찮은 놈들이 메이샤오와 손을 잡은 모양이지?”
이온만 생각하면 심장이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려야 할 놈들이었다.
이 비고 안에 있는 이온의 마법사들은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으리라.
그리 다짐하며 권한울은 이동할 준비를 했다.
“일단 다른 사람들부터 찾아야지.”
권한울은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마력을 퍼트려서 비고의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권한울의 감각과 마력은 멀리 퍼지지 못하고 막혔다. 공간자체가 권한울의 감각을 막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고가 위치한 장소가 전이공간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직접 찾아다녀야겠네.”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권한울의 시야에 메이지펑이 죽으면서 생성된 아공간 수정과 쌍검이 보였다.
아공간 수정은 따로 챙기고 쌍검은 손에 쥐고 살펴봤다.
“괜찮은 검이군.”
매화칠검이 사용하는 무기답게 쌍검은 놀랍도록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권한울은 두 물건을 챙긴 뒤, 자리를 벗어났다.
* * *
“이제 슬슬 권한울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 때가 됐는데 말이죠.”
메이샤오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하얀 로브를 입은 여성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하, 이번에는 제 예상이 맞았네요.”
하얀 로브의 여성은 고개를 끄덕인 뒤, 메이샤오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자 메이샤오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메이지펑이 죽었다고요?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같이 딸려 나간 검대가…… 아니, 검대가 아니더라도 메이지펑이면……!”
메이샤오는 황망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말을 들은 주하연과 메이홍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얼추 알 수 있었다.
“대장님이 이긴 모양이네.”
메이홍이 메이샤오를 향해 말했다.
“대장님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그렇게 입을 나불거리더니 결과는 정반대네? 혈살검도 별거 없네. 적의 수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메이홍의 조롱에 메이샤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든 추해지는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사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 남자한테 전하세요. 우리 쪽은 여력이 없으니 그쪽에서 권한울을 맡아 달라고.”
하얀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물러나세요. 아니면 또 할 이야기가 있나요?”
마법사가 또 다시 메이샤오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메이샤오의 눈동자가 커졌다.
“……권명우가 벌써 그곳에 도착했다고요?”
메이샤오가 손에 쥐고 있던 마검을 다시 검은 로브의 마법사에게 내밀었다.
“메이홍, 대답을 듣고 가고 싶었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겠네요.”
메이샤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혈족이 그녀의 애병을 건넸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정리해 놓으세요. 기왕이면 제 제안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을 추천하겠어요. 아니면 저도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거든요.”
메이샤오는 성큼성큼 걸으며 사라졌다.
그녀가 자리를 떠나자 이번에는 노년의 남성이 메이홍과 주하연 앞에 섰다.
“허튼 수작은 부리지 마라. 그러면 내 검이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노인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메이홍이 얼굴을 굳힌 채 중얼거렸다.
“단목검 메이챤…… 은둔한 사람이 어째서 메이샤오의 명령을 듣고 있는 거죠?”
매화칠검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남자.
메이 가문의 가주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던 그 남자가 바로 단목검 메이챤이었다.
“가문이 위기에 빠졌는데. 어찌 계속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메이챤이 근엄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리고서는 품평하듯이 메이홍을 살펴봤다.
“……과연.”
이내 짧게 감탄했다.
“메이샤오가 너를 다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반대했다. 너 같은 배반자는 사지를 도륙해서 죽여야 한다고 말했지.”
메이챤의 눈동자에 흥미가 떠올랐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메이샤오가 왜 너를 고집했는지 알겠구나.”
“꿈 깨세요. 저는 메이 가문에 돌아갈 생각이 없으니까.”
“그건 네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메이챤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대검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는 그저 우리의 결정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 * *
권명우는 흑천대와 함께 비고를 탐사했다.
중간중간 마검을 손에 쥐고 미쳐버린 헌터들을 마주쳤으나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던 권명우의 앞에 거대한 강철문이 나타났다.
“흠, 이건 또 처음 보는 물건이군.”
꽤 오랫동안 비고를 돌아다녔으나 문이 나타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흑천대원 중 한 명이 권명우에게 물었다.
“열까요?”
“그래, 안에 뭐가 있는지는 봐야지.”
흑천대원이 강철문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권명우의 얼굴이 급속도로 딱딱하게 굳었다.
“……멈춰라.”
흑천대원이 권명우를 돌아보며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흑천대원들 모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권명우의 명령을 따랐다.
“이 앞으로는 나 혼자 가겠다. 되돌아가서 다른 팀을 돕도록 해라.”
“예?”
흑천대원 중 한 명이 당황해서 물었다. 권명우는 손가락을 들어서 왔던 길을 가리킬 뿐이었다.
“어서 가거라!”
권명우의 목소리는 약간 다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흑천대원들은 하는 수 없이 그의 명령을 따랐다
흑천대원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권명우는 강철문으로 다가갔다.
손을 댈 필요도 없었다. 권명우는 마력만으로 문을 밀어냈다.
육중한 강철문이 마치 걷어차인 것처럼 활짝 열렸다. 권명우는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권명우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역시 드래곤슬레이어, 네놈이었구나.”
방 안쪽, 그 한 가운데에서 근육질의 남성이 씩 웃었다.
“흑천제일권. 오랜만입니다, 그려.”
“너 같은 떠돌이가 이곳에 왜 있는 것이냐.”
“용잡이가 움직일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드래곤슬레이어가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꽂혀 있던 거대한 양날 도끼를 움켜쥐며 말했다.
“용 잡으러 왔다.”
* * *
“정리 끝났습니다.”
강철대원의 보고에 구언이 고개를 들었다.
“부상자는 있나?”
“없습니다.”
“수고했다.”
구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피와 시체가 가득 쌓여 있는 방안을 걷기 시작했다.
“메이 가문에서 앙큼한 짓을 벌였군. 마검을 이용해서 헌터들을 병졸로 써먹다니.”
바닥에는 시체 말고도 박살이 난 무기들이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이 자리에서 죽은 헌터들은 전부 저 무기들을 손에 쥐고 정신이 나가 버렸다.
“상위 헌터의 정신을 오염시킬 정도의 마검이라…….”
어쩌면 흑천에서도 요긴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대장님!”
맞은편 입구에서 누군가가 뛰어왔다. 그 얼굴을 본 순간, 구언은 어리둥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배철민? 네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크, 큰일입니다!”
배철민은 구언의 앞에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메이샤오가 권한울 님을 습격했습니다! 전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저도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메이샤오가?”
구언이 미간을 좁혔다. 혈살검 메이샤오는 검강을 다룰 줄 아는 절대자다.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권명우 님이 계셔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빗나갔군.”
권명우가 적진에서 인원을 나누는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저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도망친 것이냐.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메이샤오를 막았어야지.”
“죄송합니다.”
배철민이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구언은 짧게 혀를 찼다.
“허긴, 너 같은 쓰레기가 그런 희생적신을 발휘할 리가 없지.”
구언은 짧게 혀를 차며 흑천대와 강철대를 돌아봤다.
“메이샤오를 상대하려면 권명우 이사님이 필요하다.”
하지만 권명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권한울의 목숨이 위험하다.
“한 명은 가서 권명우 님께 이 일을 보고 드려라. 나머지는 나랑 같이 간다.”
구언과 여기 있는 흑천대, 강철대가 힘을 합치면 메이샤오의 발목을 잡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계획을 세운 뒤, 구언이 움직이려던 그때였다
“대장님, 사실 거짓말이었습니다.”
대뜸 배철민이 그런 말을 내뱉었다. 구언은 잠시 배철민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그러니까 거짓말이었다고요.”
구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반역자 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대장님의 경계심을 사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지요.”
“뭐라고?”
그 순간, 배철민이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손을 쳐올려 구언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
가슴을 파고든 손이 심장을 관통하고 등 뒤로 튀어나왔다.
“커억!”
구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배철민을 노려봤다.
“금제가 왜 발동 안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군.”
배철민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 개 같은 금제는 이미 풀고 왔다.”
구언의 눈동자에 생기가 사라지며 고개가 툭 떨어졌다. 배철민은 시체로 변한 구언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구언 님!”
“이 미친놈이 어디서 감히!”
흑천대가 고함을 내질렀다. 반면 강철대는 비교적 조용했다.
아니, 그들은 구언이 죽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째서 배철민의 금제가 발동하지 않았는지 그것만이 궁금할 뿐.
“금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하지?”
배철민이 강철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풀어 줄 테니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우선 저놈들부터 죽여야 하니까.”
배철민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흑천대에게 다가갔다.
“강철대가 흑천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 자리에서 당장 죽여 주마!”
흑천대원들의 살기가 쏟아졌다. 그 살기를 한 몸에 받고도 배철민의 얼굴은 무척 평온해 보였다.
“너희들 말도 틀린 소리는 아니지. 강철대가 어떻게 흑천대를 이기겠어.”
흑천대는 명실상부한 흑천 그룹 최강의 부대다.
강철대도 무시할 수 없는 무력을 가지고 있으나 흑천대에 비할 수는 없다.
“근데 나를 다른 강철대 놈들하고 똑같이 생각하면 곤란하지.”
흑천대원들이 동시에 튀어나갔다. 짙은 오러를 두른 무기로 배철민의 곳곳을 베었다.
오러가 얼마나 날카롭던지 오러가 닿지 않았음에도 바닥과 벽이 쩍쩍 갈라질 정도였다.
하지만.
“제법 날카롭군.”
정작 그들의 오러는 배철민의 몸을 베지 못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막혀 있었다.
“이게 대체…….”
“말도 안 되는…….”
그때였다.
배철민의 피부와 근육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수축이 되었다. 배철민의 덩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윽고 수축되었던 근육이 팽창하며 흑천대원들의 무기를 때렸다.
무기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충격으로 흑천대원들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내가 누군지 잊은 모양이지?”
배철민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자의를 가진 것처럼 꿈틀거렸다.
“유일무이하게 가주의 면전에 무기를 들이댄 반역자가 바로 나다.”
배철민의 눈동자에서 서슬 퍼런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너희 같은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들이 어쩔 수 있는 몸이 아니란 말이다!”
배철민의 몸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흑천대원 한 명의 머리가 터졌다.
“수연아!”
“다들 정신 차려라! 놈은 우리보다 강하다!”
흑천대원들은 아공간에서 새로운 무기를 꺼내서 반격했다.
하지만 그 무기들이 배철민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흑천대원들이 무기를 휘두르는 것보다 배철민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빨랐다.
배철민의 주먹과 손날이 흑천대원들을 파괴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흑천대원들은 모두 시체로 변해버렸다.
“후우…….”
배철민은 피투성이 상태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자의로 사람을 죽인 게 얼마만이지 몰랐다.
학살의 여운이 그의 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배철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하지만 그 여운은 길게 가지 못했다. 강철대원들이 그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금제를 풀 방법을 찾아낸 거냐?”
“우리도 풀어 줘! 부탁이야!”
“나도! 나도 풀어 줘! 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들의 부탁에 배철민은 웃으며 말했다.
“어렵지 않지. 이것만 있으면 되니까.”
배철민이 품에서 빵칼처럼 작은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이걸로 목의 낙인을 베어라. 그러면 금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장 앞에 있던 강철대원이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배철민은 나이프를 쥔 손을 확 뺐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줘!”
“금제를 푸는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고?”
“내가 했던 것처럼 흑천대를 죽이고 강철대를 해방시켜라.”
그 말에 갑자기 강철대원들이 조용해졌다.
“흐, 흑천대를……?”
“아니, 그 괴물 새끼들을 우리가 어떻게 죽이라는 거야……?”
꿈에 그리던 자유가 눈앞에 있음에도 강철대원들은 망설였다.
그 정도로 흑천대와 강철대의 격차는 컸다.
“멍청한 새끼들.”
배철민이 조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는 강철대원들이 겁먹은 개새끼처럼 보였다.
“누가 정면에서 싸우라고 했나? 그 놈들은 너희가 금제가 풀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내가 했던 것처럼 접근해서 죽이면 될 거 아니야.”
그 말에 강철대원들의 표정이 변했다. 얼굴에 망설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알아들었으면 받아라.”
배철민이 강철대원에게 나이프를 던졌다. 강철대원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너는 같이 안 갈 생각인가?”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어.”
배철민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따로 만나야 할 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