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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193화 (193/221)

<혈통이 깡패임 193화>

193. 설득 (3)

바닥이 무너지는 그때, 주하연은 마법을 준비했다.

공간계 마법을 사용해서 보이지 않는 발판을 만들어서 일행을 보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하연이 발현한 마법은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채 허공으로 흩어졌다.

“설마……?”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발동 중인 마법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나 훨씬 강대한 마법이 먼저 발현되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주하연은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 일행을 돌아봤다. 그러나 일행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라졌다.

그 광경에 주하연은 자신의 추론에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이 펼친 공간계 마법이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곳은 이 세상에 딱 한 곳밖에 없었다.

“……이온.”

주하연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낙하는 길지 않았다. 금방 바닥에 착지했다.

바닥에 떨어진 주하연은 고개를 위로 올렸다. 절벽과도 같은 곳에서 낙하했으나 천장이 존재했다.

낙하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는 증거였다.

“아고고고…….”

그때,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홍이 엉덩방아를 찍은 채 앉아 있었다.

메이홍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주하연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거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마법을 사용해서 우리를 모두 찢어 놨어요.”

주하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메이 가문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이온까지 개입을 했다.

만약 둘이 손을 잡았다면 정말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일단 다른 분들을 찾으러 가죠.”

주하연과 메이홍은 자신들이 떨어진 방을 살폈다. 그러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문을 발견했다.

대단히 수상했으나 이 상황에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생각보다 빨리 빨리 이 방에 도착하셨네요.”

안에 들어가자마자 한 여인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려고 따로 방을 마련했는데. 쓸데없는 배려였던 것 같네요.”

여인의 목소리는 무척 나긋나긋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여인을 바라보는 메이홍의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얼굴에 모든 감정이 지워졌다. 아무 것도 없는 백색의 상태로 눈동자만 동그랗게 뜬 채 여인을 노려봤다.

“……메이샤오.”

천천히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메이홍의 얼굴에 감정이 번지기 시작했다.

“메이샤오!”

메이홍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주하연이 소리쳤다.

“메이홍, 멈추세요.”

흥분한 와중에도 주하연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는지 메이홍이 멈칫했다. 곧 억울하다는 얼굴로 주하연을 바라봤다.

“언니, 대체 왜…….”

“어머, 이건 좀 놀랍네요. 설마 우리 아이들의 기척을 눈치 챌 줄이야. 역시 흑천의 마녀답네요.”

뒤에서 튀어나온 두 자루의 장검이 메이홍과 주하연의 목을 겨누었다.

어느새 나타난 암살검수들이 칼을 뽑은 채, 두 사람의 뒤에 서 있었다.

“메이홍, 당신의 마음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좀 냉정하게 행동하는 게 어때요?”

메이샤오가 손뼉을 쳤다.

그녀의 등 뒤로 수십여 명의 메이 혈족이 나타났다. 전원 무장을 마친 상태였다.

메이홍과 주하연, 둘이서 어쩌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결국 메이홍은 이를 갈며 칼자루를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에게 의자를 가져다주겠어?”

암살검수 두 명이 의자를 가져왔다. 주하연과 메이홍은 의자에 앉은 채 메이샤오와 대치했다.

“두 사람 다 많이 긴장한 것 같네요.”

메이샤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를 향해 메이홍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무슨 속셈이지?”

“메이홍, 좀 진정하라니까요.”

“말해. 무슨 속셈이냐고.”

“흐음.”

메이샤오가 메이홍을 흘겨봤다. 무언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메이홍, 당신의 입장에서 나는 철천지원수겠지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내 입장에서도 당신은 찢어 죽여도 모자랄 원수라는 거.”

“새삼스러운 소리하고 있네.”

메이홍이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죽이고 싶으면 이 자리에서 날 죽이던가. 왜 망설이고 있어?”

“아, 진짜 눈치는 빨라 가지고. 그렇게 얄밉게 굴면 진짜 내 손에 죽는 수가 있어요.”

메이샤오가 툴툴거렸다. 하지만 살기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걸 알기에 메이홍도 적개심을 마구 드러낸 것이다.

“사실 저는 흑암대를 이 비고에 초대할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노리고 있던 건 어디까지나 권명우랑 흑천대 뿐이었거든요.”

메이샤오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모하마드 참카니한테 당신들을 내쫓아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제대로 통하지는 않았네요.”

“이 도시의 지배자를 움직인 사람이 당신이었단 말인가요?”

주하연이 믿기 힘들다는 듯이 물었다. 메이샤오가 웃으며 대답했다.

“예, 제가 그 사람이랑 제법 긴밀한 사이거든요.”

메이샤오가 앉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뭐, 잘됐죠. 메이홍에게 할 이야기도 있었고.”

메이홍이 인상을 썼다. 반대로 메이샤오는 미소를 듸운 채 말했다.

“메이홍, 내 후계자가 될 생각은 없나요?”

* * *

“젠장,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어두운 복도.

배철민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대로 계속 떨어져 있으면 위험한데.”

배철민은 목을 매만졌다. 권한울에게 합류하기 전, 구언은 그에게 걸려 있는 금제에 명령을 하나 내렷다.

권한울이 위험하거나 30분 이상 떨어져 있을 때, 금제가 발동하도록 말이다.

“빌어먹을.”

배철민은 이를 빠득 갈았다. 하여간 이 개 같은 금제 때문에 뭘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 금제만 해결할 수 있으면 그딴 새끼는…….”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배철민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돌렸다. 대체 언제부터 서 있었던 것인지 노인 한 명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본인은 아제트 헤르메스라고 한다네.”

이름을 듣자마자 배철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온의 수장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왜 여기 있기는. 자네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지.”

“대화?”

생뚱 맞은 소리에 배철민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오기 전, 나는 자네와 강철대에 대해서 알아봤다네. 흑천의 범죄자들만 모아 놓은 징벌부대. 흑천에서 발생하는 온갖 더러운 일의 해결을 맡고 있는 청소부들이라지?”

“혹시 지금 시비 걸려고 오신 겁니까?”

“하하핫, 그럴 리가 있겠는가.”

아제트 헤르메스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자네들은 흑천에서 키우는 사냥개나 다름없는 신세지. 상당히 쓸모가 많지만 말을 안 들으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역시 시비 걸려고 온 거 맞네.”

배철민이 주먹을 매만졌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딱 대. 당장 그 주둥이부터 으깨 버릴…….”

“벗어나고 싶지 않나?”

배철민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인상을 쓴 채 아제트 헤르메스를 노려봤다.

“내 능력이라면 자네에게 걸려 있는 금제를 풀어 줄 수 있다네.”

“이게 어떤 금제인지도 모르면서 그딴 개소리를…….”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는 ‘충결의 인장’과 마력에 의사를 불어넣는 ‘아라크네의 재봉틀’. 마지막으로 저주받은 유물 중 하나인 ‘악흑석’을 섞어서 만든 금제가 아닌가?”

배철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제트 헤르메스가 금제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지?”

“우리 이온을 너무 우습게 보는군. 이온은 이 세상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세상에 우리보다 많은 지식을 보유한 곳은 없어.”

아제트 헤르메스가 자신 있게 말했다.

“나라면 자네의 금제를 해결해 줄 수 있네. 어떤가 한번 믿어 보지 않겠나?”

배철민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게 뭘 원하는 거냐.”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면 된다네.”

그 말에 배철민의 목소리에 다시금 살기가 담겼다.

“부탁? 흑천의 손에서 벗어났으니 이번에는 네놈들의 종놈이 되라는 뜻이냐?”

“오해하지 말 게. 나는 자네를 이용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아제트 헤르메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네는 그저 원하는 대로 흑천에 복수를 하면 된다네.”

* * *

권한울이 양손을 좌우로 뻗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네 개의 팔이 돋아났다.

칼을 쥐고 있는 오른손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손에 무기가 만들어졌다.

창, 도끼, 채찍, 활 따위의 무기가 손에 쥐어졌다.

-하아…….

붉게 물들어 있던 얼굴에 긴 선이 그어지더니 입이 만들어졌다.

긴 한숨을 내뱉자 붉은 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나왔다.

-아수라가 된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군.

권한울의 목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의념이 되어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가슴이 들뜨고, 머릿속이 새빨갛게 물드는군.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베고 싶어.

권한울의 시선이 메이지펑에게 향했다. 구멍을 통해서 지옥을 쳐다보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허……!”

수류검 메이지펑은 허탈하다는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

“그 자의 말이 맞았어! 정말로 권한울 네놈은 수라혈을 가지고 있었구나!”

메이지펑은 이곳으로 오기 전, 들었던 조언을 떠올렸다.

흑천 일가의 권한울은 흑룡혈 외에도 다른 혈통을 보유하고 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는 수라혈도 존재할 것이다.

“감히! 흑천의 혈족 따위가! 우리의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있다니!”

메이지펑의 얼굴에 분노가 차올랐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네놈을 죽여 버리도록 하겠다!”

화란춘성검진(和蘭春城劍陣).

메이 가문에 존재하는 수많은 검진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완성된 것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위력은 확실하다. 무려 중화제일검 메이룽을 상대로 효과를 입증한 검진이니까.

오직 강자만을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화란춘성검진은 중화제일검 메이룽조차 파훼하기 버거워할 정도였다.

“칼을 쥐어라! 귀검을 꺼내라! 반드시 저놈을 죽여라!”

수십 명이 넘는 검수들이 권한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수들이 휘두른 오러가 온 세상을 물들였다. 순수한 살의가 권한울을 덮쳤다. 칼날의 폭풍이 권한울을 죽이려 들었다.

그때, 창을 쥐고 있던 손이 움직였다. 창을 역으로 쥐고 땅에 박아 넣었다.

<권능 ‘삼계육도 - 인간도’를 발현합니다!> 본래 원거리 공격을 자동적으로 방어하는 권능이었으나 반신화를 사용하고 있는 지금은 그 능력이 달라졌다.

아수라왕의 기운이 파동이 되어 퍼졌다. 파동에 닿은 오러들이 방향을 바꾸어 주인에게 돌아갔다.

“어?”

“엇?”

되돌아간 오러가 주인의 몸 곳곳을 베었다. 검진을 이루고 있던 검수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악!”

“으아악!”

이번에는 채찍을 쥐고 있던 팔이 움직였다. 채찍이 늘어나더니 매서운 기세로 검진을 휩쓸고 지나갔다.

“끄아악!”

“아아악!”

채찍에 얻어맞은 검수들은 단두대에 찍힌 것처럼 몸이 절단이 났다. 순식간에 세상이 비명소리와 피 냄새로 물들었다.

“물러서지 마라!”

메이지펑이 마력을 담아서 외쳤다. 공격을 당하기는 했으나 아직 검진은 무너지지 않았다. 정신만 차리면 반격할 수 있었다.

“주, 죽여! 저 괴물을 죽여야 해!”

“으아아악! 가문의 원수!”

이 자리에 모인 검수들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무시할 수 없는 실력과 흑천에 대한 원한으로 뭉친 이들이었다.

검수들은 다시 눈에 독기를 품고 권한울에게 달려들었다. 위태로웠던 검진이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이군.

그들을 바라보는 권한울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그럼 이쪽도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줘야겠지.

권한울이 칼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가슴에 칼을 찔러 넣었다.

“뭐, 뭐?”

이 순간만큼은 메이지펑조차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권한울이 죽었나 싶었던 것도 잠시, 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권능 ‘삼계육도 - 지옥도’를 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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