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통이 깡패임-192화 (192/221)

<혈통이 깡패임 192화>

192. 설득 (2)

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헌터들은 권명우의 시선을 끌까 봐 숨소리조차 조심하기 시작했다.

“다들 내 진심을 알아줘서 고맙군.”

권명우는 흡족한 얼굴로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했다. 살얼음처럼 험악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권명우가 일행을 향해 손짓을 했다. 다들 권명우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어떠냐. 내 설득방법이?”

권명우가 싱글벙글 웃으며 권한울에게 물었다. 권한울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효율적이긴 하더군요.”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이 아는 설득과는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 * *

사태가 진정이 되자 권명우를 비롯한 흑천의 부대는 비고 내부로 진입했다.

권한울과 흑암대는 물론이고 권명우와 흑천대, 구언과 강철대까지 모두 비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일하게 진입하지 않은 사람은 권소리였다. 그녀는 밖에서 다른 헌터들이 비고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여기가 메이 가문의 비고…….”

권한울은 신기하다는 얼굴로 비고 내부를 둘러봤다.

전이공간 유물의 내부라고 해서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막상 들어와 본 비고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천장이 굉장히 높았으며 고급원목으로 복도와 바닥이 지어져 있었을 뿐이다.

그때, 피투성이가 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벽에 기댄 채 죽어 있었다.

“할아버님, 저건…….”

“흠, 아무래도 먼저 들어온 손님이 제법 많은 모양이구나.”

권명우가 구언에게 턱짓을 했다. 구언이 시신을 살피기 시작했다.

“염술사 카디르 에르게치입니다. 87위의 세계랭커이자 고랄 길드의 수장을 맡고 있었죠.”

대단한 실력자에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헌터.

그런 남자가 비고 내부도 아니고 입구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어 있었다.

권명우는 턱을 매만지다가 구언에게 물었다.

“사인은?”

“외상이 많기는 하지만 진짜 원인은 독살인 듯합니다.”

“독?”

구언이 카디르 에르게치의 옷섬을 확 펼쳤다. 가슴에 좁쌀만 한 구멍이 수십 개도 넘게 뚫려 있었다.

“다수의 독침이 신체를 파고들었습니다. 아마 함정에 당한 듯합니다.”

“더블 넘버링의 헌터의 몸을 뚫고 진입할 정도의 함정이라…… 상당히 위험하군.”

권명우가 복도를 내다봤다. 넓은 복도에는 어떤 장식물도 놓여 있지 않았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건데…… 차라리 다 부수고 진입할까?”

문득, 권명우가 말했다. 그의 실력이라면 함정이든 뭐든 전부 부수고 지나갈 수 있다.

이곳에 평범한 장소였다면 말이다.

“이사님, 전이공간에서 함부로 힘을 사용하시면…….”

“알고 있네. 그러다 전이공간이 붕괴되면 다 죽는 거지.”

권명우가 귀찮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어쩔 수 없구먼. 그냥 몸으로 뚫고 지나가는 수밖에.”

권명우가 앞장섰다.

한 걸음 내딛는 그 찰나, 갑자기 천장과 벽이 열리더니 수백 발의 독침이 쏟아졌다.

권명우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독침의 범위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독침들이 일행에게 닿는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

권명우의 발밑에서부터 용투기가 번졌다. 용투기는 불길처럼 퍼지더니 천장과 벽을 완전히 뒤덮었다.

독침은 발사되자마자 용투기에 녹아내렸다. 단 한 발도 용투기를 뚫지 못했다.

“……와.”

권한울은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경외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마력을 이용해서 독침을 소멸시키는 것쯤이야 권한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면적을 뒤덮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 가자.”

권명우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그 등을 뒤따랐다.

* * *

그 뒤로 다른 함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장애물이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복도가 네 개로 나뉘어 있던 것이다.

“메이홍, 너는 비고에 들어와 본 적이 있다고 했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중심부로 갈 수 있는지 아느냐?”

권명우가 메이홍을 향해 물었다. 메이홍은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그게…… 제, 제가 들어왔을 때는 이런 길이 없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지?”

“원래 비고는 중심에 도착해야 보물들을 분류별로 나눈 방이 있을 뿐이지. 중간에 이렇게 갈라지는 구간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길이 새로 생겼다는 말인가?”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흐음.”

권명우가 걸음을 멈춘 채 고민에 잠겼다.

“전이공간 유물을 개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텐데.”

전이공간 유물은 대단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다루기가 어렵다.

공간에 작은 방을 구성하는 것조차 전문가가 달라붙어서 오랜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점점 더 수상해지는군.”

권명우는 턱을 매만지며 네 개의 갈림길을 바라봤다.

“어쩔 수 없지. 인원을 나누는 수밖에.”

권명우의 결정에 구언이 반론을 꺼냈다.

“이사님, 그러면 전력의 약화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메이 가문의 습격이라도 받으면…….”

“위험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이 가문을 두려워하며 몰려다니는 것은 흑천의 방식에 맞지 않네.”

권명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게다가 여기에는 나는 물론이고 흑천대와 강철대가 있네. 이만한 전력을 가지고 적들의 습격이 무서워서 전전긍긍하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흑천대와 강철대만 따져도 흑천 그룹의 전체 전력의 30%를 차지할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흑천제일권 권명우와 구언까지 있다.

“우리는 흑천이다. 적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든 정면에서 깨부수는 것이야 말로 흑천의 방식이지.”

권명우는 인원을 나누기 시작했다.

우선 흑천대와 강철대를 섞어서 세 부대로 나누었다.

그 중 두 개는 권명우와 구언이 맡았다. 나머지 한 부대는 흑천대의 부대장에게 맡겼다.

“네 곳 중에 한 곳은 한울이 네가 맡아 줘야겠다.”

권명우가 권한울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찌보면 다시 서운할 수 있는 명령이었다.

이곳은 메이 가문의 잔당이 도사리고 있는 적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한울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기다니.

“알겠습니다.”

하지만 권한울은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오히려 영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권명우가 권한울을 전력이라고 인정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요녀석.”

권한울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는지. 권명우가 씩 미소를 지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몇 명을 보내도록 하마.”

권명우가 흑천대와 강철대를 향해 손짓을 했다.

흑천대원과 강철대원이 각각 한 명씩 앞으로 나왔다.

“임명수라고 합니다. 권한울 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비로운 인상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인상과 달리 전신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굉장히 패도적이었다.

“자칭 흑천대의 3인자라고 우기는 놈이지.”

“대장님, 자칭이 아닙니다. 엄연히 저희들끼리 대련을 해서…….”

“실력에 비해서 허세가 심한 놈이니 너무 믿지 말거라.”

권명우가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저놈은…… 뭐, 너도 이미 알고 있으니 자기 소개는 필요 없겠지.”

권명우가 강철대원을 가리켰다. 권한울에게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배철민.

배씨 가문의 직계 혈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배철민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식당의 야외 테라스에서 권한울에게 화를 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쾌활한 모습이었다.

“수상쩍은 놈이지만 실력은 확실하지. 잘 다뤄봐라.”

그렇게 임시로 팀이 정해졌다.

권명우과 구언, 흑천대의 부대장은 자신들이 맡은 이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우리도 움직이죠.”

권한울 역시 흑암대와 강철대원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특색 없는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한참을 걷던 도중, 갑자기 복도가 끝났다. 대신 운동장 만큼이나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권한울과 일행의 걸음은 여기서 멈췄다. 이렇게 넓은 공간이 떡하니 놓여 있는 게 수상쩍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으, 으그그그, 으거거거거.”

웬 남자가 거품을 문 채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자의 주변에는 수십 명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그, 그그그, 으그그그.”

그때, 남자의 머리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핏발이 선 두 눈동자가 권한울을 발견했다.

“너, 너너, 너희들…….”

놀랍게도 남자의 입에서 멀쩡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내내내, 내가 발견한 보보보, 보물을 빼, 뺏으려고 와, 왔구나.”

“보물?”

“그, 그그그, 그래! 보, 보물! 내, 내내내, 내가 찾아낸…… 보, 보보, 보물!”

그리 말하며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번쩍 들어올렸다.

코등이가 없이 손잡이와 칼날이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칼이었다.

권한울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장검을 노려봤다. 장검에서 느껴지는 마력이 굉장히 불길했기 때문이다.

“어?”

그때, 메이홍이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장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검…… 비고에 있던 거예요. 메이 가문이 오래 전에 수집한 마검이라고 들었어요.”

“마검이라고요?”

모든 유물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오히려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것들도 있다.

마검, 마창, 마갑 등등. 앞에 마(魔)가 붙는 유물들이 그러했다.

마가 붙은 유물들은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소유자의 이지를 흐리며 정신을 타락시키고는 했다.

하지만…….

“저 마검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란 말입니까? 저 정도 되는 헌터를 지배할 만큼?”

마검을 쥐고 있는 헌터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마검에서 느껴지는 힘은 미약했다. 아무리 봐도 마검이 헌터를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럴 리가요…… 저 마검은 그렇게 강력한 유물이 아닐 텐데…….”

메이홍이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그그, 그만!”

마검을 쥔 헌터가 소리를 질렀다. 마검을 두 사람에게 겨누며 살기를 일으켰다.

“내, 내내내, 내 마검을 빼, 뺏으려고 자, 작당하는 거지! 저, 저저, 절대로 그렇게는 아아아아, 안 돼!”

남자가 땅을 박차며 권한울에게 돌진했다. 양손으로 마검을 쥐고 휘둘렀다.

“주, 주주주, 죽어라!”

마검에서 격류와도 같은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오러는 궤적을 따라서 벽과 천장을 모조리 부수기 시작했다.

“권한울 님,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자칭 흑천대의 3인자 임명수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손을 뻗자 커다란 방패 두 개가 양손에 붙잡혔다.

“그아아아앗!”

오러의 격류가 임명수를 덮치려 했다. 임명수가 왼손의 방패를 들어서 격류를 막아냈다.

방패가 검게 물들더니 격류를 모조리 빨아들였다. 요란했던 소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압!”

임명수가 다른 방패를 내질렀다. 그러자 방패가 번쩍이며 방금 전에 빨아들였던 오러의 격류를 토해냈다.

“그, 그그그긋!”

오러가 남자의 몸을 휩쓸었다. 남자는 마검을 땅에 박아넣은 채 격류를 버텼다.

옷이 찢겨나고 전신의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피가 전신을 물들였다.

“그, 어어, 어어어…….”

남자는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마검 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끈질기군.”

임면수가 짧게 중얼거리며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그 찰나, 권한울의 본능이 경고했다.

“……물러나세요!”

권한울이 외치자마자 남자가 마검을 뽑아서 가슴에 찔러 넣었다.

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임명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폭발에 휩쓸렸다. 임명수의 몸이 순식간에 육편이 되어 사라졌다.

임명수를 집어삼키고도 폭발은 멈추지 않고 방 전체로 퍼져 나갔다.

“하연 씨!”

“네!”

주하연이 마력을 일으켜서 일행을 감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권한울은 용마기를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양손바닥으로 땅을 내리쳤다.

현룡승천공 상승형(玄龍昇天功 上乘形)

기격식 운무화(氣格式 雲霧華)

땅에서 솟아오른 용마기가 벽을 만들었다. 밀려오던 폭발의 여파가 벽과 충돌했다.

벽이 깨질 듯이 뒤흔들렸다. 권한울은 더욱 많은 마력을 밀어 넣었다.

그 탓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권한울과 일행이 딛고 서 있는 바닥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것을.

“……뭐?”

권한울조차 이런 사태까지는 대비하지 못했다. 권한울과 흑암대는 바닥 아래의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 * *

땅으로 떨어지던 도중, 권한울은 안력을 돋우며 주변을 살펴봤다. 하지만 어둠만 보일 뿐이었다.

“하연씨! 후돈아!”

권한울은 흑암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메이홍! 가엘!”

남은 두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철민!”

심지어 배철민의 이름도 말했으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땅이 나타났다. 권한울은 바닥에 사뿐하게 착지했다.

“여기는…….”

권한울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 봤던 방보다 훨씬 넓은 장소였다. 기이하게도 고개를 위로 올리자 천장이 보였다.

“천장?”

분명히 위에서 떨어졌는데 천장이 존재한다.

“메이 가문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권한울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구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한울은 고개를 돌렸다.

검은 머리의 사내가 권한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 그리고 등에 매달고 있는 쌍검이 남자의 정체를 알려줬다.

“메이 가문의 혈족이십니까?”

“수류검 메이지펑이라고 한다. 부족한 몸이지만 매화칠검 중 한 자리를 맡고 있지.”

매화칠검(梅花七檢)

메이 가문의 혈족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일곱 명의 검사에게만 내려지는 호칭이다.

과거 메이 가문을 공격할 때는 매화칠검 전원이 본가에 없었기에 만날 수 없었다.

그 중 한 명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시군요. 그런 분께서 제게 무슨 볼일이십니까.”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게. 피차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다 알고 있을 터.”

수류검 메이지펑이 엄지손가락을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권한울.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겠다.”

그 말에 권한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쪽 혼자서 날 죽이겠다고?”

조롱이 아니다. 순수하게 이해 할 수 없다는 반응에 메이지펑의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건방진 애송이 같으니. 흑천의 혈족답게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 줄 아는구나.”

“질문은 내가 먼저 했습니다. 정말 그쪽 혼자서 날 죽이겠다 이겁니까?”

“하! 네놈 따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하지만 이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 혈족들의 원한을 갚기 위한 자리지!”

메이지펑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는 문에서 수십 여명의 검사들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명심해라. 한 사람당 한 번씩만 칼을 쑤셔 넣어라. 그 이상 찔러 넣으면 모두가 원한을 풀기 전에 저 놈이 죽을 테니까.”

검사들이 살기등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검진을 구성해라.”

검사들이 칼을 뽑은 채 권한울의 주변을 둘러쌌다. 가만히 서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체계적이고 일사분란한 움직임이었다.

권한울은 흥미로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아, 기억났다.”

메이 가문에는 약자가 강자를 죽이기 위한 특수한 전략이 있다고 들었다.

검진이라 불리는 영역을 구축할 수만 있으면 이들보다 몇 배는 강한 적도 죽일 수 있다던가.

“재미있는 짓을 하시는군.”

권한울의 입가가 비틀렸다. 겨우 이딴 걸로 자신을 죽이려 들다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검진이 무엇인지 오늘 처음 봤으나 이미 권한울의 머릿속에는 검진의 구성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천재혈과 수라혈 덕분이었다.

남은 것은 이제 파훼하는 것뿐.

그때, 권한울의 시야에 재미있는 게 들어왔다.

근처 바닥에 장검 한 자루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까 폭발을 일으켰던 헌터가 사용하던 마검이었다.

아무래도 폭발이 일어난 이후에 권한울과 함께 이곳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흠.”

권한울은 마검을 움켜쥐었다. 손에 쥐자마자 마검의 마력이 권한울을 지배하려 들었다.

하지만 권한울은 마검의 지배를 간단하게 떨쳐냈다. 천재혈을 쓸 필요도 없었다. SS급의 정신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뭐 하는 거지?”

메이지펑이 당황한 얼굴로 권한울을 쳐다봤다. 권사인 권한울이 검을 툭툭 흔들며 말했다.

“이걸로 상대해 줄까 싶어서.”

“흑천의 혈족이…… 검으로…… 싸우겠다고……? 그것도…… 메이 가문과……?”

메이지펑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권한울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못할 것도 없지.”

빠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메이지펑의 얼굴에 힘줄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뭣들 하는 것이냐! 당장 저놈의 입을 막지 않고!”

우렁찬 대답과 함께 메이 가문의 검사들이 권한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권한울이 짧게 한 마디를 읊조렸다.

“아수라왕(阿修羅王).”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을 발휘합니다.> <‘수라혈(修羅血)’과 ‘환수혈(幻獸血)’이 서로 반응합니다.> <환수혈(幻獸血)’의 권능이 변형됩니다!> <‘아수라왕(阿修羅王)’의 힘이 이 자리에 현현됩니다!> <반(半) 화신체를 구현합니다!>

그 순간,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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